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두렵다
검찰총장 사퇴의 변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수차례 들먹인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지금까지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반복해 강조하지만(1), 한국의 자유 지수는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보다도 낮고, 거의 매일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아프리카의 가나, 가봉, 중남미의 브라질과 같은 나라들보다도 열악한 수준이다.
남 탓 잘하는 그로서는 억울하겠으나 국제 비영리 민간기구인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지난 5월 3일 발표한 올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1년 만에 무려 15단계나 하락한 62위였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41위,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31위에 비하면 거의 폭락이다. 더욱이 언론자유의 체감 정도는 ‘만족스러운 상태인’ 2등급에서 ‘문제 있는’ 3등급으로 곤두박질했으며, 같은 3등급 국가 중에서도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61위)보다도 낮은 순위다. 과거 우리나라가 학계에서 ‘파시즘’ 내지 ‘유사 파시즘’으로 규정되던(2) 이명박 정부 때의 69위, 박근혜 정부 때의 70위와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자유민주주의자’ 자처하며 교과서 난도질
한국 현실이 응축된 조사 결과는 당연하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 여론에 맞서 자격 미달의 인사들을 공영방송과 방송 관리 감독기관의 수장으로 임명해왔고, 비판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렸다. 계속되는 언론장악·언론탄압으로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윤 정권이 자신들을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로 자처하며, 지금의 ‘민주주의’가 좌파적이라고 비난하고, 급기야 미래의 주인공들이 배워야 할 교과서들을 제 입맛대로 난도질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공개된 내년도의 한국사 교과서 9종에는 ‘자유민주주의’ 등 정권 및 보수학계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표현들이 수두룩하다. 보수 진영에선 민주주의로 기술할 경우 북한의 인민 민주주의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 교육에 부적절하다고 주장해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관련된 서술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 보수진영이 개입한 2022 교육과정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참고로 역대 정부의 표현을 보면 노무현 정부에서는 민주주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자유민주주의, 문재인 정부에서는 민주주의와 헌법 전문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썼다.
반공과 숭미, 친일의 색채가 다분한 보수정권이 입에 달고 사는 ‘자유민주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혹 그들만의 자유, 모든 자연인에 주어지는 천부적 자유(Freedom)나 사회적 합의를 뿌리 삼아 누구나 평등하게 공유하는 자유(Liberty)와는 완전 별개의, 공동체적 가치와 공동선(善)의 지향점이 철저히 배제된 오로지 탐욕에만 집착하는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 그 자유의 또 다른 레토릭이 아닐까. 권력의 의도에 방해가 되는 것들(반국가세력과 연결)로부터의 거리를 구축하는 해괴망측한 도구로서의 자유가 아니어야 한다. 한국의 자유 지수를 추락시키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그 도구가 자유가 되어선 안될 말이다.
결국 이 정권 사람들이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어원적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화학적 결합을 의미하는 듯싶지만, 사실 내 맘대로의 ‘자유’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정권이 금과옥조로 삼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4가지 자유’(Four Freedoms)를 근간으로 삼으며, 이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대통령이 1941년 연두교서에서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 신앙의 자유(Freedom of worship), 결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를 강조함으로써 미국 민주주의의 완성을 도모했다. 이 ‘4가지 자유’는 1941년의 대서양헌장, 1942년의 연합국공동선언을 거쳐, 국제연합(UN)헌장의 인권조항이 되었다. 또한 1948년 12월 10일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의 전문에 자리 잡게 되었다.
냉전 시대의 철 지난 ‘자유민주주의’ 들이대
미국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자주 들먹이지만, 두 단어를 기이하게 조합한 자유민주주의를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는 그냥 민주주의일 뿐이지, 어떠한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 우스꽝스럽게도 우리 사회에 ‘자유민주주의’라는 기이한 용어가 우리나라의 얼치기 학자들과 정치인들에게 비교적 그럴듯한 용어로 자리 잡은 건 역시 얼치기 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영향이 크다. 그는 동유럽의 사회주의권(社會主義圈)이 붕괴하기 시작한 1989년 「역사의 종말」이라는 논문에서 “세계정신(weltgeist)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의 확립과 함께 역사의 종료, 즉 공산주의 절멸을 선언하며, 미국 등 서방 자유민주 진영의 주도로 더 이상의 전쟁이나 대립 없이 평화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건재, 끊이지 않은 전쟁 등으로 자신의 이론을 일부 철회했다.
그는 2011년과 2014년 잇따라 펴낸 『정치질서의 기원(The Origins of Political Order)』과 『정치질서와 정치쇠퇴(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라는 두 권의 책에서 현대 정치질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로 국가(state)와 법치(rule of law), 민주 책임제(accountability)를 든다. 이상적인 경우는 이 삼자가 평형을 이룰 때다.
그리고 정치질서 건설에서의 우선순위는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는 게 첫 번째고 이어 법치, 그리고 마지막이 민주 책임제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는 “신자유주의가 자유주의 이념을 왜곡하고, 모든 사회적 연대를 폄훼하고, 정부의 기초적 역할조차 파괴하는 등 정치적·사회적으로 양극화된 피폐한 현 사회를 낳았다”라며, 은근히 중국식 사회주의를 편드는 발언을 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기까지 했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창조자인 후쿠야마조차도 뒤늦게나마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고, 자신이 한때 경원시한 사회주의 지도자를 만나는 유연성과 적응력을 보여주는데도 이 정권이 시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 지난 이 용어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반국가세력 들먹여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와 별도로 동어 반복하는 말이 또 있다. <반국가세력>이다. 8.15 광복절 축사는 물론이고 지난 8월 1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훈련 및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이 곳곳에 암약하고 있다”라며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최고 권력자의 온당한 자세가 아니다. 며칠 후 기자회견에서 ‘반국가세력’ 발언이 누구를 말하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간첩 활동을 한다든지, 국가기밀을 유출한다든지, 북한 정권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아주 부정한다든지,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야권이나 야당을 지칭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엔 웃음을 지으며 답변을 피했다.
하지만 지난 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국민의힘 한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저서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는 책에 등장하는 ‘혁명’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이 연상됐다”라고 말하며 “현재 대한민국에 이런 사상을 가진 분들이 다수당의 대표로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떼려고 하는 세력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와 유사한 체제를 지향하는 반국가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대표와 야당들을 향해 ‘반국가’라는 낙인을 찍었다. 윤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웃음으로 암시한 ‘반국가세력’을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한 셈이다.
한국 정치를 10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생뚱맞은 용어는 교육부의 검정을 거쳐 내년 3월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9종 모두에 등장한다. 야당 소속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들과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연도나 단체명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의 오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일관성 없는 용어 사용, 음력과 양력 표기 오류, 명백한 오타, 부적절한 사진과 도표·자료 인용, 부정확한 서술,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 오류까지 그대로 옮긴 베껴쓰기 등 무려 338건의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일제 강점기에 관해선 식민사관이 그대로 투영돼 있고 일본에 대한 긍정적 측면만 부각되어 있는 편향적 태도, 의병운동에 대한 폄훼, 조선총독부와 일제 식민정책을 미화 및 긍정하는 서술 등이 곳곳에 배어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불량 교과서다. 넣어서는 안 될 재료나 조미료가 끼어든 불량식품과 같은 불량 교과서다. 배워야 할 학생들은 그 불량 교과서를 통해 역사와 지식을 습득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살아내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 그 궤적으로서의 발자국일 뿐 그 누구의 손으로도 작위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범죄다.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심지어 독립기념관장까지 역사 연구와 관련된 다수 국책기관의 수장이 친일성향의 뉴라이트 논란이 있는 인사로 채워진 상황에서 교육부가 검정한 교과서의 천박한 수준은 그들의 역사 인식과 의도, 수준 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해방 이후 역사에 대해서도 8·15 광복 대신 ‘건국’ 의미 강조, 미국이 제안한 38도선 의미 과장,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승만의 정읍 발언 옹호 등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수립 의의와 평가가 “대안교과서-교학사 교과서-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거쳐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에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역사 교과서는 단순히 대학 관문에서 치러야 할 입시 과목이 아니라, 미래의 주인공들이 읽고 외우고 배워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할 반듯한 사기(史記)여야 한다. 권위주의 체제의 국가주의적 시각을 극복하고, 민주화 시대에 맞게 시각의 다양성을 위해 민간 교과서 검정제로 바뀌었으나, 임기가 반밖에 남지 않은 기껏 5년짜리 정권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역사를 제멋대로 재단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이지 않다.
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임기가 주어지는 그 어떤 권력자도 역사를 왜곡하거나 진실을 함부로 편집할 권한은 주어져 있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다. 헌법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명시되어 있고 그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국민의 권리가 보장되는 국가 체제에서 국가의 자유 지수를 추락시키고 역사를 왜곡하며 국민의 보편적 요구를 무시하는 세력이야말로 반국가세력이 아니겠는가.
뉴라이트 교과서 채택 앞두고 서울 교육감 누가 될까
오는 10월 16일,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가 있다. 여기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정권의 역사 왜곡 논란이 진행 중인 뜨거운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역사 논쟁에 더욱 불이 붙을 것이란 전망과 함께 선거 결과에 따라 교과서 기술 및 사용 여부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친일 색채와 숭미 성향이 다분한 이 정권의 사람들과 뉴라이트 보수세력이 고집스럽게 집착한 ‘자유민주주의적’인 역사 교과서가 내년도 새 학기에 일선 학교에서 얼마나 채택될지, 그 바로미터가 이번 서울 교육감 선거인 셈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성일권,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 수호가 의미하는 것’,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년 4월호.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388
(2) 한완상,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파시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6월호.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36 / 파시즘 관련 학술대회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402241124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