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소멸의 트라우마를 확산시키는 네타냐후 정권
독선과 절망 사이에 선 이스라엘 사회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이스라엘 국민이 의지하던 강력한 이스라엘군의 신화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충격에 빠진 이스라엘 사회는 복수심에 휩싸였지만, 그렇다고 하마스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확신도 없다. 한편, 이스라엘 정부의 무모한 질주는 국가 소멸에 대한 국민의 트라우마를 부추기고 있다.
텔아비브나 서예루살렘의 카페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며 아몬드 크루아상을 즐기고, 저녁에는 파스타를 먹는다. 전쟁? 아, 물론 전쟁 이야기도 한다. 저주받은 2023년 10월 7일, 강력한 군대가 돌연 무력해진 그 충격의 날은 끊임없이 회자되는 단골 소재다. 그러나 금세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굳이 전쟁 얘기를 해야 하나? 가자지구는 너무 멀고(텔아비브에서 70km 거리) 전쟁 얘기는 너무 우울한데…. 영화감독이자 스데로트대학 영화과 학과장을 지낸 에레즈 페리는 “이스라엘 사회가 이렇게 빨리 적응한 게 놀라울 따름이다. 카페테라스만 보면 아무 일도 없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당수가 깊은 좌절이나 광적인 분노에 빠져 있다. 현재 집단적 분노는 최고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스라엘계 미국인 네이선 스롤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카페에 사람이 득실거린다고? 그렇게 팔레스타인을 ‘비가시화’ 해버리고 마음 편히 사는 건 쉽다. 하지만 현재 이스라엘 사회는 전반적으로 우울증이 만연한 상태다.”(1)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팔레스타인 쪽 말고(알다시피 이쪽은 처참한 상태다), 팔레스타인을 짓밟은 쪽 말이다. 뉴스 토론에서는 극심한 혼란과 자기중심적 국민성이 느껴진다. 스튜디오에서는 고성과 욕설이 난무한다. 어떤 내일을 기대하는 걸까? 잘 모르지만, 일단 팔레스타인이 시야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산스크리트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데이비드 슐먼은 “여론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하다. 이는 이스라엘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현실을 반영한다. 한나 아렌트(독일 태생의 유대인 정치철학가—역주)도 이를 예견했다”고 말했다. 한나 아렌트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부터 초민족주의와 시온주의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었다.
“현실에 대한 목표도, 내일에 대한 비판도 없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가자지구의 “대량학살”을 조사하도록 조치한데 대한 분노감과 에바 자블론카가 이스라엘을 겨냥해 “팔레스타인에게 저지른 짓에 대한 참혹한 눈감기, 고의적 무시”라고 했던 비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에바 자블론카는 “지도층이 세뇌를 계획했고 국민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지도층은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범죄를 부인하거나 은폐하는 담론을 반복하고, 이는 이스라엘 국민이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하기에 어떤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스라엘은 희생자이며 유일한 피해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이미지를 덧입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애덤 라즈는 이러한 현실부정이 번민의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스라엘 과거사를 파헤치는 단체 ‘아케보트’(히브리어로 ‘발자취’란 뜻)를 설립한 젊은 역사학자다. 애덤 라즈는 2023년 10월 7일 이후 “네타냐후 총리는 ‘오직 힘만 사용하자’고 주장하며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 수만 명을 학살한 사실을 오래도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스라엘 국민 대다수가 비관론에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실패에 분노하고 있다. 1999-2003년에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 의장을 지낸 아브라함 버그는 “이스라엘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이스라엘 내에서 해결됐다고 발표한 팔레스타인 문제가 폭력적 형태로 재등장했다. 우리는 국가가 생기면 안전해지리라 기대했지만, 모든 게 무너졌다. 현재 이스라엘은 유대인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됐다. 무엇보다 미국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전쟁을 치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967년 6월, 이스라엘군은 단 엿새 만에 아랍 3개국 연합군을 무찔렀다. 그러나 지금은 8개월째 가자지구에 병력 20만 명 이상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훨씬 열세한 무장단체 3만 명을 “전멸”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군 전문가이자 사회학자 야길 레비에 따르면, 10월 7일 이후부터는 “군사력에 기반한 국가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그러나 “현실적인 목표도 내일에 대한 비전도 없는” 이스라엘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옭매인 상태며, 이는 더 큰 굴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류학자 요람 빌루는 10월 7일 사건의 여파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우리 군대가 제공하는 안보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둘째, 이 사건은 극심한 공포를 초래했다. 셋째, 사회의 우경화가 더욱 심화됐다.”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이 6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목표인 “하마스 소탕”이 여전히 달성 가능하다고 믿는 이스라엘인은 단 28%에 불과했다. 반면 네타냐후 총리가 “우리를 실패로 몰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은 날로 커지고 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0월 7일로부터 260일째 되던 날에 “하마스는 이념이다. 이념은 제거할 수 없다”며 ‘비비’(네타냐후 총리의 별명)에게 일침을 가했다. 자신의 지도자를 철석같이 믿던 수많은 이스라엘인은 불현듯 “이 모든 게 고작 이걸 위해서였나?”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
한편 이스라엘군의 전쟁 범죄를 폭로하는 비정부기구 ‘브레이킹 더 사일런스’의 공동 설립자 예후다 샤울은 이 실패가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만약 ‘비비’가 우리 상황의 주된 원인이고 다수가 그렇게 믿는다면, 하마스는 우리 불행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민 대다수는 정부가 전쟁을 지속하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믿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가 열린다면, 중도파 야당 연합이 우파·극우파 연립여당을 근소한 차이로 앞설 것으로 최근 여론조사에 나타났다. 극우 식민주의 및 종교 세력은 크게 성장하지 않았지만, 정치학자들은 이 세력들이 정치적 의제를 주도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베찰렐 스모트리치 재무부 장관의 압력 아래, 이 전쟁을 이용해 권위주의 체제를 확립하려 하고 있다. 지난 7월, 오를리 노이 기자는 최근 8개월간 의회에 채택된 법안 및 논의 중인 안건 목록을 작성했다. 다음은 그 일부다.(2)
- 군대 및 신베트(정보기관)의 인증에 관한 법은 “개인 컴퓨터에 대한 침투 (···) 문서의 삭제, 수정, 방해”를 허용하며, 이는 소유자 동의나 사법부 허가 없이도 가능하다.
- ‘좋아요’에 관한 법안에 따르면, “테러를 선동하는” 메시지에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권리를 지지하는 메시지 등이 그렇다.
- 노이는 마지막으로 가자지구 내부 정보를 유일하게 제공하던 알 자지라 방송의 이스라엘 사무소를 폐쇄한 것과, 이스라엘 시민권을 소지한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이 자신의 민족에 대한 연대감을 표출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을 언급했다.
또한, 7월 11월에 <채널13>이 막대한 압력 끝에 유명 탐사보도 전문기자 라비브 드러커와 결별한 사건도 덧붙일 수 있다. 라비브 드러커는 네타냐후 총리가 향후 예정된 소송 때문에 가장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이밖에도 “강력한” 체제 도입을 시사하는 여러 징후가 존재한다. 공개 토론장에서는 “좌파 유대인 배신자” 또는 “하마스의 유용한 바보들”이라 불리는 “제5열(스파이)”에 대한 비난이 증가하고 있다. 젊은 도시계획가 다니엘 몬테레스쿠는 “문화계에 자기검열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키 조하르 문화부 장관은 이제 “비정치적” 영화만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요새 유행하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야만화(brutalisation)’다. 네이선 스롤은 “가자지구에서 잔혹행위를 저지르는 군인들의 끔찍한 이미지 뒤에서, 거세당한 듯한 상실감이 표출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 9개월간 복수와 보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군인이 누리는 관용은 일반 대중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스롤은 이스라엘 지도층이 국제사법재판소의 조사를 두고 “섬뜩한 폭력성”을 띤 발언을 한다고 꼬집었다. 저명인사도 저속한 일행을 일삼는데, 일반인이라고 다르게 행동할까? 스데 테이만 비밀수용소에서 수감자를 고문한 사건이 밝혀졌을 때도 아무 논란도 일지 않았다. 한 병사의 아버지가 텔레비전에서 가자 전쟁의 운영실태를 비판하자, 한 리쿠드(우파 정당) 의원은 그에게 “당장 꺼져!”라고 소리 질렀다.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고발당해서 해고되는 일도 있었다. 텔아비브 부근 아얄론 고속도로에는 “배신자들을 추방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심리학자 요하난 유발은 “우리는 매우 성공적으로 역사를 역행하고 있다”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7월 말, 이스라엘군 헌병대가 스데 테이만 수용소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게 “심각한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군교도관 10명을 체포하자, 극우 시위대가 이를 저지하려고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의원들을 앞세워 군 기지에 난입했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은 “테러행위로 기소된 대상에 대한 증오심은 이해되고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은 “군인 신분의 군교도관을 범죄자처럼 체포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직 야당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만이 장관의 선동적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다른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묵인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괴물이나 열등한 인간으로 간주하는 메시아주의자들
극우 세력은 암울한 분위기에도 그 누구보다 굳건해 보인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주저 없이 행동한다. 메시아주의는 이스라엘 국민에게 승리와 영광의 미래를 약속하는 유일한 세력처럼 보인다. 이들은 요르단 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더 나아가 레바논 남부까지 병합하고, 적을 완전히 짓밟아 안정을 되찾겠다고 주장한다. 시라트 모셰 탈무드 학교의 책임자인 엘리아후 말리 랍비는 가자전쟁을 “종교전쟁”으로 규정했다.(3) 그의 성경적 해석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무도 살려두지 말아야 한다.
메시아주의 세력은 최근 수십 년간 크게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카르델림(Khardélim)이 있다. 카르델림은 두 단어의 합성어로, 카르(Khar)는 카레디(Kharédi, ‘신을 두려워하는 자’라 불리는 초정통파 유대인), D-L은 다티 레우미(dati leoumi, 종교적 민족주의자)를 의미한다. 이 두 세력은 초민족주의·메시아주의 유대교를 번영시키기 위해 한 세대 전부터 협력해왔다. 이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알아크사 모스크(이슬람 성지)의 자리에 곧 성전이 재건되리라 믿는다.
메시아주의에 강력히 반대하는 의사 슐로모의 말에 따르면, 메시아주의자들은 2013년 10월 7일을 ‘네스 엘로힘(ness Elohim)’, 즉, 신의 기적이라 여긴다. 또한, 가나안 땅을 힘으로 정복한 여호수아의 시대로 돌아왔다고 믿는다. 그리고 “때론 신이 행동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괴물 또는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며, 탈무드 군사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오늘날 이런 학교는 33개나 있으며, 네차 예후다(불멸의 유다)처럼 가장 치명적인 부대에 보낼 인력을 양성한다.
중도좌파 성향의 싱크탱크 몰라드의 젊은 연구원 야이르 레이블은 “메시아주의자들은 매우 강력한 조직을 구축했으며, 사상 및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역사학자 애덤 라즈에 따르면, 고등교육 준비반 학생의 54%가 카르델림 출신이다(종교인의 출산율은 평균보다 2배 더 높다). 영화감독 에레즈 페리는 “비종교인과 종교인의 대립은 그 어떤 쟁점보다 미래를 가장 크게 좌지우지한다. 만약 비종교인이 승리한다면, 팔레스타인 문제를 비롯해 여러 분야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주의자가 승리한다면, 이는 종말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종말이라? 상상조차 힘들다. 그런데도 왜 그리 많은 이스라엘인(극좌파뿐 아니라)이 종말을 거론하는 걸까? 이들은 주로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동맹자에 대항하는 반대자 사이에서 발견된다. 매일 같이 모여 총리에게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들이다. 6월 26일 저녁, 텔아비브의 베긴 도로에 위치한 국방부 앞에서 시위가 열렸다. 약 4,000명이 집결했는데, 주중임을 감안하면 적은 수는 아니다. 토요일에는 15만 명이 모였다. 이들은 “264일이면 이제 충분하다”고 성토했다. 하마스의 수중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흘려보낸 시간이다. 시위대가 입은 티셔츠에는 “거짓말쟁이 정부”, “살인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살인자”는 정부가 인질을 구하는 대신 죽게 내버려둔 것에 대한 비난이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에게 저지른 행위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아나트 이븐은 “대다수가 요구사항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철저히 배제하려 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시위대 주변에서 40여 명이 “당장 휴전하라!”라고 적힌 팻말을 흔들었다. 팔레스타인 깃발도 잠시 흔들더니 곧이어 행렬을 빠져나갔다. 이 반식민주의 성향의 이스라엘 좌파는 심한 고립감을 느낀다. 샤울에 따르면, 이들은 “기껏해야 이스라엘 인구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저항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월 13일, 가자지구 파병군의 부모 900명이 “무책임한” 전쟁을 중단하라는 청원서에 서명했다.(4) 6월에는 장교를 포함한 예비군 42명이 가자지구로 재소집되더라도 가지 않겠다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5) 두 자녀를 둔 역사학자 애덤 라즈는 “내 자녀들이 10년 후에도 유대교 메시아주의의 이득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자에서 싸우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불만은 사회 주변부에서만 머물다가, 점차 반식민주의 영역을 넘어 더 넓은 범위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사회 비판에 거부감을 갖는 이스라엘 국민
이스라엘 국민은 자국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다(모두 반유대주의라고 치부). 그러나 이와 동시에 국가 이미지가 계속해서 나빠진다는 사실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물론 어느 아랍국가도 이스라엘과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지만, 네이선 스롤은 2024년 4월에 엘리자베스 워렌 미국 상원의원이 가자지구의 “대량학살”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 “매우 중대한 변화”였다고 말했다. 또한 “왕따 국가”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유럽을 여행하는 자국민에게 지하철에서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말고, 가슴에 다윗의 별을 달지 말라는 권고사항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물론 예방조치일 뿐이지만, 예전에는 외국에서 범죄자 취급당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스롤은 “제품을 팔기 위해 국적을 숨기는 이스라엘 기업이 늘고 있다”고 부연했다.
고국을 떠나는 사람도 생겼다. 몇 명일까? 전쟁이 발발한 첫 6개월간 10만 명이 떠났다는 소문도 있지만,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국가안보 기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텔아비브의 어린이집에 갑자기 빈자리가 생겨났다. 에바 자블론카에 따르면, “지난 8개월간 떠난 지식인, 과학자, 예술가의 수는 전례 없는 수준이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의 그리스나 키프로스로 떠났다. 인류학자 요람 빌루가 아테네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이제 거의 모든 승객이 러시아인 또는 이스라엘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애덤 라즈는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더는 용납하지 못하고 영영 떠나버린 사람은 몇이나 될까?”라고 자문했다. 이들은 주로 35-45세로, 재정적 여유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독일에 쉽게 정착할 수 있다.
나머지는 이스라엘에 남았지만, 더는 견디기 힘든 상태다. 라즈(41세)는 “이 나라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지만, 떠나고 싶지 않거나 떠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자블론카(71)는 “내 아들은 뉴욕대학교 사회학자로 있는데 난 매우 만족스럽다. 내 형제는 런던으로 떠났다. 난 이 나라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 이곳에는 내 언어와 내게 익숙한 풍경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존경받을 만한 사회로 재건하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파시즘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자블로카처럼 깊은 근심을 표출하는 이스라엘인이 늘고 있다. 요람 빌루는 “우리의 지도부는 미치광이들에게 점령당했다. 벤그비르와 스모트리치는 북한에서도 장관이 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에레즈 페리는 “사람들은 이 나라가 붕괴 직전이라고,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쇠퇴를 언급한다. 먼저 경제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스라엘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인텔은 이스라엘 공장 건설에 150억을 투자할 예정이었지만, 6월에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이스라엘 경제학자 캔델(네타냐후 총리의 경제고문)과 론 추르는 핵심인재 20만 명 중 10%가 이스라엘을 떠난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유지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6)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이스라엘에 미래는 없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두려움은 헤즈볼라와의 전쟁이다. 7월 말 기준으로 “북부 전쟁”은 아직 발발하지 않았었고, 이스라엘 여론은 크게 분열된 상태였다. 바르일란 대학의 정치학자 메나헴 클라인에 따르면, 굴욕을 당한 이스라엘군 지도층은 “명성 회복”을 꾀하고 있다. 6월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들렸던 말은 “오늘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지 못한다”였다. 북부 이스라엘에서 대피한 주민 7만 명은 레바논 남부에서 30km에 이르는 안전지대를 영구적으로 점령하지 않는 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인이 이런 요구가 전면전의 발단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메나헴 클라인은 “북부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1982-2000년 레바논 남부 전쟁과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사실을 잊었다는 것이다. 현재 헤즈볼라가 어떤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2006년보다 더 많아지고 정교해졌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군 전문 사회학자 야길 레비는 “헤즈볼라의 보복력, 군대의 피로도, 전례 없는 수준의 이스라엘 도시 파괴 가능성에 대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이스라엘 사회가 느끼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인이 발전기를 구입하고 대량의 물과 동결건조 식량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에게 치명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레바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많은 이스라엘인에게 매우 오래되고 특유한 감정을 상기시킨다. 나라가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슐로모는 “이 나라가 30년 이내, 아니 그보다 더 빨리 사라질 것이다. 이는 불가피하다”고 확신했다. 연구원 야이르 레이블은 “무조건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에겐 미래가 없다”고 경고했다. 우리가 만난 사람 대다수가 갖는 이스라엘 종말에 대한 공포는, 10월 7일을 기점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런 분위기를 증명하듯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의 알루프 벤 편집장은 지난 2월에 “이스라엘의 자기파괴”라는 제목의 긴 기사를 게재했다.(7)
희망의 빛줄기를 찾는 사람도 있다. 정치학자 메나헴 클라인은 “난 이스라엘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엄청나게 변했으며,” 그 변화의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예후다 샤울은 이스라엘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힘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다. 아직 확실한 전망은 없지만, 이건 중요한 발전이다.” 마지막 발언은 데이비드 슐먼에게 넘기겠다. “어느 날 아침, 난 이스라엘에 탈식민주의 운동이 싹트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뜬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형식적으로는 인질 석방을 위해 시위를 하지만, 실제로는 재앙을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난 이스라엘의 집단 자살을 목도하는 기분을 느끼며 눈을 뜬다.”
글·실뱅 시펠 Sylvain Cypel
기자, 『이스라엘 국가 대 유대인(L’État d’Israël contre les Juifs)』(2024년)의 저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Nathan Thrall, 『Une journée dans la vie d’Abed Salama 아베드 살라마의 하루』, <Gallimard>, Paris, 2024년.
(2) Orly Noy, 「Only an anti-fascist front can save us from the abyss」, <+972 Magazine>, 2024년 7월 4일, www.972mag.com
(3) Yaffa Rabbi, 「According to Jewish Law, all Yaffa residents must be killed」, 2024년 3월 9일, www.middleeastmonitor.com
(4) 「900 soldiers’s parents urge military to halt “deathtrap” offensive in Gaza Rafah」, 2024년 5월 13일, www.firstpost.com
(5) Liza Rozovsky, 「Three Israeli army reservists explain why they refuse to continue serving in Gaza」, <Haaretz>, Jérusalem, 2024년 6월 27일.
(6) 「Social upheaval will lead Israel to collapse in coming years」, 2024년 5월 22일, https://thecradle.co
(7) Aluf Benn, 「Israel’s Self-Destruction. Netanyahu, the Palestinians, and the Price of Neglect」, <Foreign Affairs>, New York, 2024년 2월 7일.
미래 살해(Futuricide)
2023년 10월부터 가자지구를 피로 물들인 전쟁은 지금까지 거의 사용되지 않던 여러 단어와 개념을 탄생시켰다. 그중 하나인 ‘스콜라스티사이드(scholasticide)’는 교육 인프라(학교, 대학, 문화센터)의 체계적인 파괴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어버사이드(urbicide)’라는 용어는 가자지구의 도시들에 가해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나타낸다. 이 용어는 1960년대에 미래 예측 문학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고대 유산을 보호하려는 운동가들이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욕심에 맞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용어는 이미 구유고슬라비아(모스타르, 사라예보)와 시리아(알레포)의 전쟁을 규정짓는 데 사용되었다. 올해 5월 말, 유엔 위성센터(ONU SAT)는 가자지구의 건축물 중 55%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보고했다. 이 통계는 여름 내내 지속된 폭격, 특히 가자, 라파, 칸유니스 등 도시들에 가해진 피해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파괴의 정도가 너무 심각하여, 심지어 지속적인 평화가 찾아온다 해도 가자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소장인 스테파니 라테 압달라는 이 전쟁을 “미래 살해(Futuricide)”라고 표현하며, “가자에서 살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파괴하는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이 전쟁 이후의 삶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
열 달간의 전쟁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 시작됨. 이스라엘 측에서 1,163명이 사망하고 252명이 인질로 잡힘. 10월 8일 이스라엘은 1973년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이후 처음으로 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가자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개시함. 10월 9일 텔아비브는 30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해 ‘철검’ 작전(Iron Swords)을 시작함. 10월 13일 이스라엘 군대는 가자 북부에서 100만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24시간 내에 대피할 것을 명령함. 10월 27일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지상 공세를 시작함. 11월 24일 카타르, 미국, 이집트가 휴전을 성사시킴. 하마스는 110명의 이스라엘 인질을 풀어주고, 이에 대한 대가로 210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가 석방됨. 12월 29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이스라엘의 행동 중지를 요구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청원함.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스라엘 군대를 집단 학살과 1948년 유엔 협약 위반으로 고발함.
2024년 1월 14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만4,00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하고 9만 명이 부상당했으며, 1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피난을 떠났다고 함. 이스라엘 측에서는 136명의 인질이 하마스에 의해 여전히 억류 중이며, 188명의 병사가 공격 중에 사망함. 1월 26일 ICJ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한 달 전에 제출한 청원을 받아들이고, 팔레스타인에서 집단 학살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함. 3월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5개 회원국 중 14개국이 가자에서의 즉각적인 휴전을 지지함. 미국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함. 4월 13일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약 300대의 드론과 미사일을 야간에 발사함.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방공망과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국가의 지원으로 요격됨. 5월 20일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 카림 칸이 베냐민 네타냐후와 요아브 갈란트를 대상으로 한 체포 영장을 요청함. 이들은 “고의적인 민간인 기아 유발, 의도적인 살인 및 민간인 학살” 등의 전쟁 범죄 혐의를 받고 있음. 하마스의 세 명의 지도자, 특히 야히야 신와르도 “학살 및 성폭력, 인질 강탈 및 전쟁 범죄”로 기소됨. 5월 24일 ICJ가 이스라엘에 라파 침공을 즉시 중단할 것을 명령함. 5월 28일 스페인, 노르웨이, 아일랜드가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함. 7월 6일 UNRWA 학교에 대한 폭격으로 누세이라트 난민 캠프에서 16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75명이 부상당함. 7월 29일 가자에서 소아마비가 공식적으로 발병함. 10월 7일 이후 UNRWA는 가자에서 약 4만 건의 A형 간염 사례를 보고함. 7월 30일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으로 헤즈볼라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가 레바논에서 사망함. 7월 31일 하마스는 이스마일 하니예 정치 지도자가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확인함. 이에 대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란의 보복을 약속함. 8월 6일 야히야 신와르가 하마스의 수장으로 임명됨.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국가가 자국민에게 “가능한 빨리” 레바논을 떠날 것을 권고함.
글·이바니 르그랭 Ivanie Legr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