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탐욕의 희생양이 된 오세아니아 섬나라들
기후위기 속에서 어느 강대국을 택해야 하나
호주와 뉴질랜드는 올해 7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뉴질랜드는 NATO와 신규 파트너십 체결을 검토 중인데, 이는 솔로몬 제도와 키리바시와의 관계를 공고히 다진 중국을 견제한 조치다. 이런 상황에 기후 위기 문제까지 덮치면서, 오세아니아 섬나라들은 한쪽 진영을 선택해야 하는 진퇴양난에 놓였다.
한때 세계 지도자들은 사방이 망망대해인 지구 반대편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경제·안보 쟁점이 부상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20년 전부터 국제관계의 쟁점이 해양 분야로 쏠리더니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일본 총리는 2007년 인도의회 연설에서 이 개념을 사용했다. 호주, 인도네시아, 미국은 이 개념을 2013~2017년 국방전략에 통합했다. 그리고 프랑스는 2019년에 인도양과 남태평양에 위치한 해외 영토 12곳 중 7곳을 기반으로 국방전략을 수립했다.(1) 이후 인도·태평양은 그 중요성이 꾸준히 증가하여 이 지역을 두고 각국이 영향력 경쟁을 벌이는 외교정책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공식 방문을 늘린 것은 물론, 2023년 한 해에만 한미일 3자 회담, 필리핀 내 미군기지 강화, 파푸아뉴기니와 안보협정(2022년 중국-솔로몬제도 안보협정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 체결, 통가에 대사관 개설, 솔로몬 제도에 공관 부활, 키리바시와 바누아투에 새로운 재외공관 설치 등의 계획을 추진했다.
“기후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섬나라들의 전례없는 위기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2023년에 뉴칼레도니아,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에 이어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인도, 일본, 중국을 방문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카테린 콜로나 당시 외무부 장관이 호주를 방문해 양국 협력을 재개했다(호주는 2016년에 프랑스 방산업체 나발 그룹과 잠수함 건조 계약을 체결했지만, 2021년에 계약을 파기했다). 또한 프랑스 외무부는 사모아에 대사관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2)
이런 경쟁 과열은 비교적 최근 일이지만, 오세아니아 섬나라들은 오래전부터 국제기구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자신들은 기후 위기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았으며, 강대국의 영토 욕심에 휘말린 작은 땅덩어리가 아니라 전례 없는 위험에 노출된 섬나라로 마땅히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기후 변화(어족자원의 이동, 해양의 산성화, 가뭄 현상, 이상기후 증가, 해수면 상승 등)는 이들 섬나라의 주요 안보 위협이자 존재론적 위협으로 부상했다.
특히 섬 전체가 산호로 형성된 저지대 섬나라들이 받는 타격이 극심하다. 대피할 고지대가 없는 좁은 지대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키리바시, 마셜제도, 투발루, 토켈라우(뉴질랜드 자치령) 등 인도양의 몰디브를 제외하곤 모두 오세아니아에 위치한다. 이들 섬나라는 육지가 침수되기 전부터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에 처할 것이다. 또한 직접적인 소멸 위협이 없더라도 극심한 변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투발루와 호주가 체결한, 불평등한 ‘팔레필리 협약’
환경 변화로 발생하는 이주 문제와 관련하여 모든 오세아니아 주민들이 동일한 수준의 이주 안전성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섬 주민은 소속 영토에 따라 자의적 또는 강제적으로(만족스러운 기후 위기 해결책이 아니겠지만) 더 안전한 지역으로 피난해 정착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오세아니아는 (각기 다른) 지역적 역사 때문에 온갖 헌법적 지위가 난무하는 ‘법적 실험실’과 같다.
탈식민화 과정을 거친 독립 국가(바누아투, 피지 등)와 속령(프랑스령, 미국령 등)이 공존하며, 자유연합이라는 독특한 협정 형태도 있다. 미크로네시아, 마셜 제도, 팔라우 국민은 미국과의 협정에 따라 미국에 정착할 수 있다. 쿡 제도와 니우에 국민은 뉴질랜드와의 협정에 따라 뉴질랜드 시민권을 갖는다. 반면 나머지 섬나라들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추첨식 비자 제도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다.
한편 태평양 지역은 (관련국의) 영향력 경쟁과 기후 위기가 밀접하게 얽혀있어, 하나를 이해하려면 다른 하나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기후 변화는 군사적 상황을 변화시키는 불안정한 요소지만, 동시에 기회 요인이자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여겨진다.(3)
중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태평양이 경쟁의 각축장이 되기 전부터 기후 문제를 도구처럼 활용했다. 중국 당국은 2006년 중국-태평양 포럼에서 자연재해 대응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중국은 태평양 지역의 자원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렸지만, 최근에는 다소 정체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4)
이 전략은 효과를 거두는 듯했다. 2019년에는 솔로몬 제도와 키리바시가, 2024년 1월에는 나우루가 대만과 단교한 이후 이 지역에 대만 수교국은 단 세 곳만 남았으며, 투발루 총선에도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중국의 경쟁자들도 이와 동일한 행보를 취하며, 인도·태평양 전략의 합의적 측면을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2022년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담에서 8억 1천만 달러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처럼 여러 ‘장르’가 뒤얽힌 가운데 2023년 11월에 호주와 투발루가 체결한 협약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일명 팔레필리 연맹은 최초의 기후 이동성 협약으로 투발루 인구의 점진적 재배치를 규정하고 있으며, 2024년 5월 8일에 발표한 양해각서에 따라 매년 투발루 주민 280명에게 호주 영주권을 발급한다.(5) 투발루어로 ‘친절한 이웃’이란 뜻의 팔레필리 협약은 기후 적응을 위한 상당한 지원금과 재연재해 발생 시 지원 의무도 포함한다.
반면 호주는 온실가스 배출에 관해서는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상당한 전략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 특히 협정 제4조에 따르면, 호주는 투발루가 중국과 맺으려는 방위협정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할 권한을 갖는다.
해양 자원탐사와 개발권은 누가 통제하게 되나?
그렇다면 투발루 정부에게는 실질적인 선택권이 있을까? 이 주권국가는 실용적이지만 명백히 불평등한 탈출구를 받아들였다. 태평양 섬나라들이 차지하는 CO₂ 배출량은 전 세계의 0.03%도 채 되지 않는데, 기후 변화 주범국들이 구원자를 자처하고 나선 꼴이다.(6) 이런 협정은 섬 나라들에게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강요하고 ‘푸른 대륙’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장기적 의도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기후 위기의 긴급성 뒤에는, 영토가 완전히 수몰되어 전 인구가 이주할 운명에 처한 나라들의 생존에 관한 정치적, 법적 문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에 국제해양법에 따라 국가관할권에 속한 영해는 어찌 되는 걸까? 만약 투발루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75만 6,000㎢(국토 면적의 2만 9,000배)가 넘는 해양의 자원탐사 및 개발권은 누가 통제하게 될까?
그리고 투발루와 같은 운명에 처한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될까? ‘팔레필리 연맹’ 협정을 살펴보면, 기후 변화 주범국들이 자신이 초래한 섬나라 소멸에서 오히려 이득을 취하는 미래를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태평양 섬나라들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태평양 섬나라 대표들도 이 치열한 지정학 경쟁에서 이익을 최대한 뽑아내려 하고 있다. 태평양 지역은 결속력이 취약하고 거대한 장애물이 도사리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태평양도서국포럼(PIF,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와 뉴칼레도니아 등이 정회원으로 속한 오세아니아 주요 기구)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PIF의 ‘푸른 태평양 전략’, 강대국 간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거부
이에 현지 정부들도 여러 선언문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수면 상승에 대비한 해양구역 보존에 관한 2021년 8월 선언은 대표적인 예다.(7) 또한, 이들의 기후 정의 투쟁도 중대한 발전을 이루었다. 일례로 바누아투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각국의 기후 변화 대응 의무에 관한 의견을 자문했고, 이는 지역적으로 큰 지지를 얻어 2023년 3월 유엔 총회에서 결의안으로 채택됐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는 논의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인도·태평양 섬나라들은 외부에서 구축된 강제적 논의 방식을 거부하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태평양 가족’ 또는 ‘좋은 이웃’이라 부르는 다소 간섭적인 방식을 벗어나, 자신이 직면한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8)
이들은 위기에 대처하려면 막대한 경제적 자원이 필요함을 인지할 정도로 현실적이며, 동시에 정당한 인정과 정의를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과 관계없는 전쟁에 휘말리길 거부하고 있다. PIF의 ‘푸른 태평양’ 전략도 이런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PIF의 그러한 의지는 최근 개최한 회원국 정상회담의 슬로건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선택, 우리의 태평양 길”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글·제랄딘 지로도 Géraldine Giraudeau
파리사클레대학(UVSQ) 공법학 교수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Rory Medcalf, 「L’Indo-Pacifique aux couleurs de la Chine 중국의 색으로 바라본 인도·태평양」, <Politique étrangère>, Paris, 2019년 가을호. Cf. 「Stratégie française en Indopacifique 인도·태평양에 대한 프랑스 전략」, 2019년
(2) Philippe Leymarie, 「Crise des sous-marins : Paris toujours groggy 잠수함 위기: 여전히 혼미한 프랑스」, Défense en ligne, <Les blogs du Diplo>, 2021년 10월 14일.
(3) Anastasia Kapetas, 「China, climate and conflict in the IndoPacific」, <Australian Policy Institute>, 2023년,
(4) <Lowy Institute>, Pacific Aid Map, https://pacificaidmap.lowyinstitute.org. Cf. Denghua Zhang, 「Assessing China’s Climate Change Aid to the Pacific」,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2020년,
(5) 「Explanatory memorandum - Falepili Union between Tuvalu and Australia」, <호주 외교통상부>, www.dfat.gov.au
(6) 「SPREP competes in the Climate Change ‘Race Against Time’」, <Secretariat of the Pacific Regional Environment Programme>, 2015년 10월 7일, www.sprep.org
(7) FIP, 「Declaration on preserving maritime zones in the face of climate change-related sea-level rise」, 2021년 8월 6일.
(8) Élise Barendon, 「De l’usage stratégique des récits en Océanie : quand famille et politique étrangère ne font plus bon ménage 오세아니아, 담론의 전략적 사용: 가족과 외교정책이 더는 양립하지 않을 때」, 2024년 3월 13일, https://lerubic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