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고민 '식량자급의 머나먼 길'

2009-03-02     알랭 그레쉬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전문기자

식량자급 경작지 확장, '물 고갈 될라…'우려와 갈등
해외농업투자 전환, 서방언론 '오일머니 농업식민'왜곡

리야드에서 알하르즈에 이르는 사막 도로를 따라 대추야자 가공 공장들이 늘어서 있다. 이를 보니 새삼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 최대 대추야자 생산국이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알하르즈 시(市) 입구의 거대한 표지판은 2003년까지 미군 부대가 주둔해 유명해진 프린스 술탄 공군 기지가 있음을 알린다. 수 킬로미터를 더 가서 갈림길 하나를 따라가니 경비가 삼엄한  출입문이 나온다. 그 위로는 '알 사피 세계 최대 낙농업 통합농장'이라 씌어 있다.
 
 세계 최대 낙농장과 유제품 공장
 이곳을 출입하는 모든 차량은 소독 후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출입문엔 1998년도 '기네스북' 한 페이지의 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3천500 헥타르의 땅과 2만4천 마리(현재는 3만 7천 마리)의 암소를 보유한 이 농장에 관한 내용이다. 소는 캐나다에서 수입한 얼룩 무늬 홀스타인종을 인공 수정했으며, 수송아지는 도살되어 육류로, 암컷은 젖소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기후 적응은 쉽지 않다. 냉각기가 축사 온도를 섭씨 27도 미만으로 유지하고 이동식 패널이 작열하는 태양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고 있다. 착유 과정은 자동화되어 컴퓨터로 제어된다. 같은 구역에 유제품 공장이 들어서 있다. 역시 자동화된 이곳은 2001년 1월부터 프로젝트 제휴사인 프랑스 다논이 운영하고 있다. 농장의 연간 생산량은 2억2천만 리터이며, 국내 소비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알 사피는 선견지명이 있던 압달라 알 파이살 왕자의 구상으로 탄생한 회사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그는 현 외무부 장관의 형이다. 사우디 물 공급을 위해 북극 빙산을 예인해올 꿈까지 꾼 그의 덕분에 사우디의 우유 자급자족이 가능해졌다.
 "이곳 생산성은 꽤 높습니다. 1인당 1일 평균 33리터로 세계 평균을 웃돌죠." 알 사피-다논의 젊은 대표이사 카림 만수르의 설명이다.
 "저희는 판매점 3만 곳, 사우디 및 걸프 지역에 각각 25 곳과 5곳의 창고, 요르단과 예멘에 지사를 하나씩 두고 있고, 레바논, 시리아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직원 수는 2천500 명인데, 그 중 4분의 1은 인도인, 또 다른 4분의 1은 사우디인입니다. 사우디인 고용을 늘리는 것이 하나의 과제죠. 내국인 육체 노동자를 찾기가 어려워 남부, 서부 등 빈곤 지역까지 찾아가 구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만수르 대표는 "다논과 제휴하지 않은 농장에도 추가로 1천 명 가량이 일하고 있다."며 이 같이 소개했다.
 
 모래밭에서 일군 대규모 밀밭
 오두막 한 곳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땅에서 끌어올린 섭씨 70도의 물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지하 200 미터만 내려가도 물이 있었으나, 이제는 무려 2천 미터까지 내려가야 한다. 만수르 대표는 "전에는 사료 곡물을 현장에서 재배했지만 지하수층 고갈을 방지하려 재배지를 200㎞ 멀리 옮겼고, 물 재활용 정책도 펴고 있다."면서 "목축은 사우디 물의 3~4%를 소비하는 반면, 농업은 80% 이상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1980년대 사우디는 거대 밀 생산국으로 탈바꿈했다. 당국은 농민들에게 국제 시세보다 높은 수매가를 보장했고 1984년부터 자급자족을 달성했다. 1980년도 6만7천 헥타르이던 재배지는 1992년 90만7천 헥타르로 급증했다. 생산성도 향상되어 1980년 헥타르당 2.12톤에서 1988년 4.7톤, 2005년에는 5.19톤으로 늘어났다. 참고로 프랑스는 6.98톤, 중국 4.22톤, 오스트리아 5.03톤 등이다.
 또한 민간 회사들이 설립돼 막대한 수익을 냈다. 1993년에는 생산량 530만 톤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수출량은 200만 톤을 넘어섰다. '사막 한복판에서 밀이 난다고?…' 당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이러한 성과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비록 사우디라고 척박한 토지만 있는 건 아니며, 북부와 남부에 녹지대가 있긴 하나 수십만 헥타르의 밀 재배지는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일군 땅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1970년대 특히 1973년 이후 유가 급등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제3세계는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꿈꾸었고 서구는 '식량무기'를 꺼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즉, 일부 '적대' 국가에게 밀이나 우유의 수출을 중단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많은 '적대'국 정부들은 자국의 자율성 확보 의지를 천명했다. 사우디도 그들 중 하나였다. 당시 공식 책자들을 보면 '사회주의' 알제리 같은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어조로 이러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1) 또 유가 급등으로 돈을 벌고 나니 세상에 안 되는 게 없어 보이기도 했다. 나아가서 대량의 우유 생산까지 가능해 보였다.
 
 '밀농사로 물이 메말라' 비난
 "우리는 이 지역의 주요 물 수출국이 됐다."는 한 농업 기술자는 "밀과 청과물을 생산해서 인근 국가에 수출하는 대신에 수자원이 고갈되니까 결국 그런 결과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여느 관료들처럼 그도 수 년 전부터 이에 대한 관심을 당국에 촉구했다. 식량안보 지지자들과 수자원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밀 생산을 폐기해야 한다는 후자가 승리했다. 정부는 결국 국내 생산보조금을 줄여 2016년까지 완전 철폐하기로 했다. 그 때가 되면 25년 만에 처음으로 밀 30만 톤을 국제시장에서 사 와야 한다.
 압둘라 알 오베이드 농업차관은 그러나 솔직히 토로했다. 2005년 발효된 사우디의 국제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협상대표단 일원이었던 그는 "농업부는 생산성이 높은 만큼 밀 생산을 유지해야한다고 봤다"면서 "특히 북부 지방은 헥타르당 80~100퀸틀(1퀸틀은 약 50.8kg)에 달했는데, 그곳은 물 부족 문제가 덜했기 때문에 생산을 계속하길 원했다."고 털어놨다.
 투르키 파이살 알 라시드는 대형 농산물 회사 골든 그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최근 쿠웨이트 총선에 참관인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의회제도 도입을 희망하는 사람이다.
 그도 알 오베이드 차관의 지적에 동의했다. "모든 국가가 물 부족 문제를 겪습니다. 심지어 미국도 마찬가지죠. 그래도 경작은 계속해야 합니다. 궁핍한 농촌도 돕고 사우디가 물을 절약하는 첨단 농기술을 익히는 데에도 보탬이 되니까요. 보조금을 사우디인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과 연계하면 좋았을 겁니다." 밀 보조금 중단의 일차적 피해자인 기업체들은 지난 11월 열린 농업박람회에 대거 불참했다.
 
 국외농업투자, 각국 언론 '질시·우려'
 사우디 당국자들은 여전히 자급자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8년 봄 식량위기가 경종을 울렸다"는 알 오베이드 차관은 "사우디는 벼, 옥수수, 콩을 비롯한 곡물의 순 수입국이어서, 국외투자로도 눈을 돌려야 했다"고 한다.
 "관리와 민간 부문 관계자로 구성된 대표단을 터키, 우크라이나. 이집트, 수단, 태국, 필리핀, 베트남, 에티오피아, 우즈베키스탄에 파견했습니다. 방문단들은 현지에서 큰 환영을 받았죠." 그러나 '식민주의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고 단언하며, 일부 해외 언론의 또다른 해석을 일축했다.
 "우리는 국외농업에 투자하려는 것뿐입니다. 생산물을 사우디가 독점할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경작 면적을 늘려서 생산량 일부는 현지에 남기도록 보장할 것입니다."
 실제로 각국 언론은 최근 수개월간 걸프 지역 국가들이 빈곤국 농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데 대해 크게 우려했다.
 <르몽드>는 '경작 가능 영토를 향해 쇄도'라는 제하의 기사(2008년 12월 13일자)에서 비정부기구 그레인(Grain.org)이 제공한 지도를 게재하고, 사우디가 161만117 헥타르의 땅을 구입했을 것이라고 너무나 정확하게 밝혔다. 한편 인터넷 사이트 아프릭닷컴(Afrik.com)은 12월 12일 '아프리카 농토를 싹쓸이하는 국가들'을 고발했다. 어느 고3 담당 역사·지리 교사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신의 블로그에서 '빈곤국 농경지로 뻗은 마수의 손길'이라고도 했다.2)
 종종 그렇듯 언론을 통해 기정사실화될 것도 자칫 허위 또는 과장인 경우가 많다. 이를 가늠하려면 사우디의 농업 분야 업체 관계자에게 확인해 봐야 마땅하다.
 이 문제에 관해 현지 언론에도 수차례 기고한 바 있는 알 라시드 씨는 "수단 투자에 대해 특히 말이 많다."고 시인했다.
 "수단은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경작 가능 면적이 엄청난 반면 개간율은 20%에 불과해요. 강우와 나일강으로 물이 풍부하고 기후도 유리합니다."
 실제로 수단은 이미 1970년대에 '아랍세계의 곡식창고'로 소개된 바 있다. 알 라시드 씨는 "그러나 농업의 빈곤성, 재래성, 기술적 낙후성은 차치하고 명확한 소유권 제도조차 없다."고 열악한 현실을 지적하며, "제안된 땅은 유전지대에 위치하여 훗날 수용될 위험이 있고 인프라도 취약한데, 이 모든 문제는 수단 당국의 책임 하에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비로소 투자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언론에서 흔히 또 다른 '엘도라도'로 언급되는 이집트에 관해서도 같은 지적을 했다. 다만 아시아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대부분 '계획'이나 '의향' 수준
 농업 부문의 외국인 민간 투자는 역사가 길다. 수세기 전 서구 국가들이 식민지에 진출했고, 식민지 독립 후에도 판도는 바뀌지 않았다. 아마 2008년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서구 국가들은 잠시나마 군침을 흘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과 현실은 다르다. 게다가 걸프 지역 국가들이 세계 농경지를 식민 지배하려든다는 비난은 무리다. 더구나 벼나 밀을 재배하고 세계시장에 팔아 이익을 보는 건 민간 투자자들 뿐이다. 이들이 과연 현지에 생산물을 남길지는 의심스럽다.
 비정부기구 그레인은 각국의 2008년 농업투자 프로젝트 목록을 작성했다. 사우디와 걸프 지역 국가들의 경우 계약 체결보다도 의향 표명이나 방문, 발표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사우디 빈 라덴 그룹이 인도네시아와 서명했다고 알려진 협정도 계획에 불과해 보인다. 이는 사우디 소비자들이 특히 즐겨 찾는 바스마티 쌀 농장 50만 헥타르를 개발하는 대가로 43억 달러를 지불한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비록 일시적일지언정 금융위기가 농산품 가격 하락과 맞물리면서 그런 의욕도 시들해 질 것이다.
 인구는 급증하고 지하수층은 오염 또는 고갈되는 가운데 물 소비 및 담수화 공장 신규 건립을 합리화하는 프로젝트만으론 사우디의 물 공급을 보장하기에 역부족이다.3)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북극빙하를 가져올 발상을 하지 않는 마당에, 사우디는 식량 안보를 지켜줄 참신한 방법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1) <사우디아라비아 밀의 역사>(아랍어), 정보센터협회, 리야드, 1988, 참조
2)
http://tribouilloterminales.over-blog.com
3) <월스트리트저널>(2008년 9월 10일자 기사 '유엔 식량 수장, 농지 매입에 대해 경고')이 인용한 발표에 따르면 자크 디우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은 걸프 지역 국가들이 국외 토지를 직접 매입하는 데에 관하여 경고했다. "농업에 대한 직접 투자만이 유일한 빈곤 퇴치 수단이다. 그러나 우려가 되기 시작하는 것은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