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뒤마와 두 개의 혁명

2012-09-12     프랑수아즈 아소

1848년 3월 1일, 알렉상드르 뒤마는 일간지 <라프레스>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그렇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름답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위대하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눈에는 혁명만 보였다.” 뒤마는 1802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후작과 흑인 노예 출신 사이에서 태어나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으로 활약했다. 뒤마는 파리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왕당파와 맞섰던 영광의 3일과 제2공화국에 실망감을 느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공화국이 정당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혁명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었다. 고귀한 정신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혁명이 내포하는 것은 무엇인지, 혁명이 일으키는 결과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뒤마가 쓴 <어느 의사의 회고록>은 1846∼52년 신문에 연재된 소설 4편을 묶은 것으로 혁명을 환희의 시선과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본다.(1)

4편의 소설 중 <앙그 피트>는 1789년 7월에서 10월까지 일어난 사건을 다뤘고, <샤르니 백작>은 1793년까지의 일을 그리고 있다. 두 소설은 혁명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또 다른 소설 <조제프 발사모>는 루이 16세의 집권 초반 시기를 배경으로 하며 이탈리아의 악명 높은 사기꾼으로 통하던 실제 인물 칼리오스트로가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젊고 아름답고 성격 좋은 왕비로, 루이 16세는 부드럽고 관용적인 국왕으로 나온다. 국민은 형편없는 지도자였던 루이 15세보다 훨씬 나은 루이 16세에게 환호를 보낸다. 

뒤마가 혁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이탈리아 장군 주세페 가리발디 덕분이었다. 뒤마는 가리발디의 활동을 지지하기 위해 무기를 구입했고 시칠리아를 정복하기 위한 가리발디의 1860년 원정을 지지했다. 이후 1861년에서 1864년까지 3년간 나폴리에 머물며 박물관 책임자로 지내며 새로운 체제를 지지하는 신문 <인디펜덴테>를 창간해 1862년에서 1864년까지 <나폴리의 부르봉 왕가 역사>라는 이탈리아어 소설을 연재했다. 이 소설은 현재 프랑스에서 <두 개의 혁명: 파리(1789년)와 나폴리(1799년)>(2)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소설에서 뒤마는 가리발디 장군과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그의 투쟁을 1789년 프랑스혁명과 달리 지적인 혁명으로 보고 있다.

<두 개의 혁명>은 풍부한 자료와 상세한 묘사를 자랑하며 역사의 흐름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가리발디 장군이야말로 프랑스혁명이 원래 내세웠던 이념을 왜곡하지 않고 순수하게 실천한 인물로 보고 있다.

글/프랑수아즈 아소  Franoise Asso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조제프 발사모>와 <왕비의 목걸이> 중심으로 되어 있는 <어느 의사의 회고록>(Mémoires d’un médecin) 신판이 갈리마르 출판사에 의해 ‘콰르토’ 총서로 출간됐다(파리·2012). 뒤마의 소설 4편을 모두 읽을 수 있다.
(2) <두 개의 혁명: 파리(1789년)와 나폴리(1799년)>(Les Deux Révolutions: Paris(1789) et Naples(1799)>, Fayard, 파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