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야나', 내가 아시아를 읽어온 방법

르 디플로 에세이

2012-09-12     김남일

처음 앙코르에 간 지는 10년도 넘었다. 믿기 힘들지 몰라도, 그때만 해도 그곳은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고 있었다. 나는 미지의 세계에 두근두근 발을 들여놓은 셈인데, 과연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선 그것들은 멀리서 거대한 크기로 나를 압도했고, 가까이 다가가면 정교함으로 다시 한 번 탄성을 자아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불쑥 마주치는 유적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폐허에 가까운 어느 유적에서 밀림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다가 그만 발길을 잊고 말았다. 불붙듯 타오르던 노을마저 삼켜버린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 아주 작은 유령 같은 불빛이 반짝거렸다. 그런가 싶었다. 하나, 둘, 셋… 갑자기 연초록 형광(螢光)들이 앞다투어 나타났다. 셀 수 없이 많은 불빛이었다. 그것들이 저마다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연초록 형광의 황홀한 군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어둠에 갇힌 공포는 진작 사라졌다. 심장이 '쿵쿵' 거칠게 뛰었다. 숨이 가빴다. 아름다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어느덧 나와 동료는 그들의 군무를 흉내내어 춤을 추고 있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이자 샤를 드골 치하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는 나보다 한술 더 떴다. 그는 청년 시절 앙코르의 아름다움에 반한 나머지 도굴꾼이 되었다. 파리에서 동양어학교를 졸업한 그는 아내와 함께 캄보디아의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반테아이 스레이'는 붉은 사암을 건축 재료로 썼기 때문에 사원 전체가 불붙는 듯했다. 말로는 그때 감동을 장편소설 <왕도로 가는 길>(지식공작소)에서 이렇게 썼다.

"이번에는 나뭇잎 사이에 돌로 새긴 새 조각이 클로드의 눈에 띄어 날개를 활짝 펴고 부리가 앵무새처럼 생긴 것을 분간해볼 수 있었다. 그 새 다리에 강렬한 햇살이 부딪쳐 부서지듯 비치고 있었다. 방금 북받치던 분노도 그 자그마한 눈부신 공간 속에서 눈 녹듯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벅찬 기쁨이 온몸을 뒤흔들 듯 치밀었다. 누구에게, 무엇에 대한 것인지도 모를 감사였다. 환희는 곧 자기도 모를 눈물겨운 감동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말로가 눈독을 들이고 훔쳐내려던 물건은 두 무녀상(압살라)이었다. 그는 망치와 끌을 사용해 인정사정없이 쪼고 때리고 깎아서 떼어냈다. 그런 다음 물소 달구지를 이용해 밀림 밖으로 반출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어 수감된다. 1923년의 일이었다.

앙코르 유적에는 반테아이 스레이 이외에도 앙드레 말로가 반했을 만한 유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런 조각이나 부조에는 대개 일정한 스토리를 내포한다. 당대 사람들의 일상사나 크메르의 역사(왕의 행렬, 참족과의 전쟁)가 반영되어 있지만, 힌두교와 불교의 신화나 설화, 그리고 무엇보다 인도의 두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의 내용이 예술적으로 잘 형상되어 있다. 특히 앙코르와트에서는 두 서사시의 내용을 담은 거대한 부조들이 관람객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쯤에서 솔직히 말하자. 나는 지난해 이맘때까지 그것들을 거의 몰랐다. 아주 몰랐다고 하면 대한민국 문단의 품위를 손상시킬 것 같으니 그저 이름은 들어봤다고 고백하자. 창피한 노릇이지만, 그러고도 내가 소설가였다!

<라마야나>는 비슈누 신의 화신인 라마 왕자가 납치당한 아내를 찾아 랑카(스리랑카)섬으로 건너가서 악귀와 싸우는 이야기를 큰 줄거리로 삼는다. 그 안에 힌두교의 수많은 신화가 촘촘히 교직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긴 서사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일찍부터 인도아대륙 전역은 물론, 동남아 거의 모든 나라로 퍼져나가 제각기 그 나라의 독특한 <라마야나>로 뿌리를 내렸다. 이야기 속 원숭이 장군 하누만은 <서유기> 손오공의 모델이라는 유력한 설이 있고,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김수로왕의 왕비 허 황후가 라마의 고향 아요디야 출신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이야기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 만큼 흥미진진하다. 왜 아니겠는가. 거기서는 시간부터 쩨쩨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43억2천만 년을 한 주기로 우주가 한 번씩 바뀐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왕은 6천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려왔기에 이제 좀 쉬고 싶어 하며, 심지어 악귀마저 발심하여 고행에 접어들면 물구나무선 채 한 1천 년 용맹정진한다. 하누만은 급하면 히말라야 설산을 뿌리째 뽑아든 채 하늘로 날아오르고, 눈이 맞으면 인도양 인어와도 정신없이 사랑에 빠진다. 악귀 라바나는 머리가 10개이고, 그의 아우 쿰바카르나는 세상천지 괴력 거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한번 잠에 빠지면 6개월 내처 잠을 자는데, 그런 그를 깨우려면 수천 명이 달라붙어 꽹과리를 쳐대고 코끼리 떼를 배 위로 마구 내달리게 해도 부족할 정도다.

한마디로 나는 <라마야나>를 통해,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마하바라타>를 통해 아시아의 서사가 무엇인지 그 넓이와 깊이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그건 <그리스 로마 신화>만을 끼고 살던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을 동반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아시아의 대지에 살면서 나는 아시아를 몰라도 한참 몰랐다.

이제라도 내가 새롭게 접할 아시아가 벌써 가슴을 설레게 한다. 베트남 하노이의 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황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모스크, 팔레스타인 라말라의 올리브 나무, 그리고 네팔 히말라야의 깊은 계곡 따위. 나는 내가 가보았든 안 가보았든 그것들이 이제 전혀 새롭게 등장하기를 믿고 또 기대한다. 다만, 그 아시아가 청년 앙드레 말로를 격정에 휩싸이게 했던 그 오리엔트는 아니기를!

가령 이런 오리엔트.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지낸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한 에세이에서 <1984년>의 작가 조지 오웰은 이렇게 밝힌다.

"열대지방에서 우리의 눈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에 고정된다. 바싹 마른 토양, 부채선인장, 야자수와 멀리 보이는 산, 이런 것들만 쳐다볼 뿐 언제나 땅을 파는 농부들은 보지 못한다. 농부의 피부는 땅과 같은 색깔이라 전혀 쳐다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중략) 몇 주 동안 항상 같은 시간에 한 무리의 노파들이 장작을 등에 지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 집 앞을 지나갔다. 비록 나의 눈에 각인되었더라도 나는 그들을 보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장작더미가 지나갔다고밖에. 그것이 바로 내가 그들을 본 방법이다."(<코끼리를 쏘다>, 실천문학사)

앞서 라바나를 일러 악귀, 악귀 했지만, 그건 어쩌면 <라마야나>의 최초 설화자인 아리아인들의 시선을 반영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라바나가 살던 랑카섬에서야 어찌 악귀이기만 했을 텐가. 아리아인의 시선 너머에서, 그는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싸운 민족주의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아가 인도판 <라마야나>를 관통하는 최상층 카스트(브라만 계급)의 시선은 악귀에 붙잡혔던 시타로 하여금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순결을 증명하라 내몰지 않던가. 다른 카스트의 시선이라면?

아시아의 새로운 서사 목록에, 슬프지만 용산을 포함시켜야 한다. 쌍용자동차와 구럼비와 4대강을 포함시켜야 한다. 책임 있는 이들이 한번쯤 제발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봐주길!

글/김남일 장편소설 <국경> <청년일기> <천재토끼 차상문>, 소설집 <일과 밥과 자유> <천하무적> <산을 내려가는 법> <세상의 어떤 아침> 등이 있다. 계간 <실천문학> 주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제1회 전태일 문학상 보고문학 부문 우수상, 제17회 제비꽃 서민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