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남부, 두 개의 미국

Dossier 미국 대통령 선거 현장을 가다

2012-10-14     브누아 브레빌

2008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며 당선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첫 임기를 암울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하고 있다. 화합을 무엇보다 중시한 그는 공적 자유를 비롯한 여러 사안에서 상대 진영의 기대를 앞서 나가기도 했지만(12면) 정작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와 경쟁할 공화당 대선주자 밋 롬니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한 미국에 대한 롬니 후보의 열망(13면) 앞에서 무엇보다 재정 적자 감축을 바라는 일부 보수파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늘 11월 6일 치를 선거는 사실상 미국 전 지역이 아닌 소수의 주에서 승패가 갈린다. 이미 지지 정당이 확고한 나머지 주는 후보들의 버림을 받다시피 했다. 이런 선거운동의 움직임을 노스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 경우를 통해 알아보자.

40대 남성 러셀 스탠턴은 매일 아침 6시면 자신의 화물트럭을 몰고 하루벌이 일감을 찾기 위해 인근 농장을 한 바퀴 돈다. 그는 복숭아·땅콩·옥수수 등 어떤 작물의 수확이든 마다할 처지가 아니다. 무더운 8월의 어느 저녁, 그는 냉방이 가동되는 자기 방에서 이따금 모텔 주차장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조지아주 대리엔에 위치한 모텔에서 생활한 지 벌써 3년이 됐다. "아파트 임대료보다 싸거든요. 전기요금과 유료방송 시청료가 포함돼 있는데다 매일 방을 정리해주는 사람까지 있죠." 러셀은 모텔 청소부로 일하는 여동생 제나를 보며 웃는다. 객실 2개를 나란히 빌려 남편·아이들과 함께 사는 제나는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모텔에 손님이 별로 없어요. 아예 거주하는 사람들은 있지만요. 지금은 화물트럭 운전사와 여자친구, 그리고 인디언 가족이 살아요. 이 근방을 지나는 사람들도 여기에 묵지 않아요. 차라리 고속도로변에 숙소를 잡죠." 조지아주에 들르지 않기는 대통령 선거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노스캐롤라이나주와 플로리다주처럼 차기 대선에 전략적 중요성을 띠는 지역만 찾아간다.

대서양을 따라 플로리다와 캐나다를 연결하는 95번 주간고속도로에서 몇 마일 떨어진 미국 남부 도시 대리엔은 평온해 보이지만 관광명소와는 거리가 멀다. 널찍한 대로를 중심으로 수많은 도로가 좌우로 나 있고 군데군데 주유소가 보일 뿐이다. 식료품점에는 과일과 채소는 별로 없고, 사방에는 팔려고 내놓은 집들 천지다. 마을 주택 1090곳 가운데 292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 섬유산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큰 피해를 입은 마을 주민 2천 명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까지 맞았다. 대리엔이 속한 매킨토시 카운티의 실업률은 10%를 웃돌고, 연평균 소득은 2007년 2만5739달러에서 2009년 2만1771달러로 4천 달러나 감소했다. 지금은 그나마 조금 증가한 상태다.

스탠턴 남매는 온 가족이 살던 주택을 압류당한 뒤 이곳 포트킹조지 모텔로 거처를 옮겼다. "저는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았고, 어머니는 일을 관두게 되셨어요. 주택대출금이 너무 부담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죠. 1년 동안 텍사스에 머물며 이것저것 해보다가 이곳으로 오게 됐어요." 스탠턴의 설명이다. 여동생 부부도 처음에는 아파트를 구해 살았지만 이내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모텔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의 기억은 제나에게 씁쓸할 따름이다. "지난 4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에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어요. 비록 가난하지만 전 공화당을 지지해요. 민주당은 저 같은 백인 빈곤층에게는 신경도 안 쓰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도 미국 정치의 인종 양극화는 여전하다. 특히 남부가 심각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에릭 맨스필드 공화당 상원의원은 "흑인 정치인은 흑인 유권자를 대변하고, 백인 정치인은 백인 유권자를 대변하던 4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현 상황을 진단한다.(1) 루이지애나주·앨라배마주·미시시피주 등은 이런 원칙을 고스란히 적용하고 있고(하원의원들은 민주당 소속 흑인 의원 또는 공화당 소속 백인 의원이다), 조지아주의 마지막 백인 민주당 의원마저 11월에 열리는 차기 선거에서 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린지 그래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는 양당 모두에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한다. "공화당은 소수민족 출신 후보들을 내세움으로써 더 많은 유권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무효표의 75%를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2)

교묘한 선거구 획정

우파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분열은 민주당이 낙태, 동성애자 간 결혼 등의 사안에 대해 안일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은퇴한 엔지니어로 공화당 지지자인 앨라배마의 케빈 베닛은 이렇게 말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민주당에 표를 던지는 백인이 많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지나치게 좌경화되자 그들은 결국 보수 진영을 택했다." 반면 오바마 지지자들은 2010년 이후 공화당 주지사들이 주도한 선거구 조정이 문제였다고 본다. 민주당 소속의 조지아주 흑인 하원의원인 빌리 미첼은 "소수의 선거구에 흑인 유권자들을 집중시키고 나머지 선거구에서는 최대한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선거구를 정했다"고 지적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경우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220만 명 가운데 절반이 전체 선거구의 5분의 1에 몰려 있다. 그런가 하면 텍사스주는 2000년 52%에 달하던 백인 인구 비율이 2010년 45%로 떨어졌는데도 교묘한 선거구 획정 방식 덕분에 하원 선거구 70%에서 백인이 과반수를 차지한다.

흑인(44.2%)이 백인(52.9%)보다 약간 적은 대리엔에서는 혼전이 예상된다. 러셀만 해도 예상을 뒤엎는 선택을 할 작정이다. "오바마를 찍을 겁니다. 전 자녀가 없어서 메디케이드(Medicaid·빈곤층을 위한 의료보험) 대상도 못 돼요. 오바마가 승리하면 의료보험 하나는 마련해주지 않을까요." 극우 성향의 방송인 러시 림보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줄 알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사람의 말치고는 놀랍다. 아무튼 그의 여동생은 이 말에 웃는다. "오빠는 2008년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 하지만 여전히 보험 혜택을 못 받고 있잖아."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기는 했지만 이 남매가 과연 11월 6일 투표하러 갈지는 미지수다. 이들은 아직 선거인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고 정확한 선거일도, 심지어 공화당 대선 후보의 이름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정보는 <트리뷴 & 조지언> 같은 지역신문을 백날 봐야 알기 어렵다. 공화당이 밋 롬니를 차기 대권주자로 발표한 다음 날에도 이 신문은 그와 관련된 기사를 일절 싣지 않았다. 우드바인 거리에서 술에 취해 체포된 59살 여성과 세인트메리스 도로에서 병째 맥주를 마시다가 경찰에 붙잡힌 30대 남성의 이야기가 그날의 주요 기사였다.

조지아주의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대리엔에서도 대통령 선거운동이 활발하지 않다. TV 정치광고도, 운동원들의 가정방문도, 후보들의 유세도 없다. 주지사 후보들의 선거 피켓은 몇몇 카운티에서 그나마 볼 수 있지만, 오바마와 롬니의 얼굴을 공공장소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선 후보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주는 조지아뿐만 아니다. 지난 6월 이후 롬니와 그의 러닝메이트 폴 라이언은 메릴랜드·코네티컷·네브래스카·캔자스·메인·버몬트에는 한 차례도 들르지 않았다. 오바마와 부통령 조지프 바이든도 애리조나·뉴멕시코·오클라호마·미시시피·앨라배마·몬태나·아이다호 등 방문하지 않은 주가 수두룩하다. 미첼 의원은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모을 때나 조지아주에 들른다. 사실 여기서 선거운동을 해서 무슨 소용 있겠어요? 어차피 질 게 뻔한데. 차라리 플로리다나 노스캐롤라이나 같은 곳에 가서 가정방문을 하고 집회를 열라고 운동원들에게 당부합니다. 아니면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전화 선거운동을 하든지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민주당 당원이자 교사인 멜리사 왓슨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재원은 제한돼 있어요. 10억 달러면 큰돈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정해진 금액 내에 써야 하니까요. 그런데 민주당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산이 별로 없어요. …따라서 선거운동을 접전 지역에 집중시키는 게 당연하죠. 여기에 해당하는 주는 10~11곳에 불과해요."

후보가 찾아오지 않는 주 수두룩

그중 대표적인 주로는 민주당 대통령·부통령 후보가 21번 방문(공화당은 22번)한 오하이오, 그리고 아이오와(민주당과 공화당 각각 17번, 13번),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네바다 등이 있다. 대선 후보 또는 이들을 후원하는 기업에서 사들인 TV 선거광고 방영권 60만5996건도 4월 10일~9월 4일 이 지역에서 대부분 사용됐다. 이로 인해 웃는 이는 누구보다 방송사 사주들이다. 단 1년 만에 30초짜리 광고 한 편의 가격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34%, 샬럿에서는 44%나 껑충 뛰었다.(3)

양당제를 기반으로 삼은 미국의 선거 방식(간접투표, 상자 기사 참조)은 두 가지 속도로 진행되는 선거전이 특징이다. 미국 선거에서는 안정주(Safe State·지지 정당이 비교적 확고한 주)인지 부동주(Swing State·지지 정당이 선거 때마다 쉽게 변해 후보들이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주)인지에 따라 하나의 표가 지니는 가치도 다르다. 미국 남부 주들은 전통적으로 첫 번째 범주에 속해왔다. 거의 1세기 동안 민주당의 텃밭(4)이 돼준 이 지역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공화당 진영으로 넘어갔다. 남북전쟁 때 남부동맹의 일원이던 이 주들에서 1970년대 이후 우세를 보인 민주당 대선 후보는 오바마 이전에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남부 출신이다.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 정치적 분열의 얼굴 민주당은 왜 2008년 대선부터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뒷전으로 내몰게 됐을까? 얼핏 선거 결과가 유사할 것 같은데 말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 10~20년 전 건설된 노스캐롤라이나의 도심 외곽 신도시들은 전통산업(섬유, 자동차, 화학 등)과 농업(담배 재배, 가금류 사육 등)을 중심으로 한 낙후된 생활 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동쪽의 올드스톤크로싱 구역은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도로를 내고 '오래된 돌'로 주택을 꾸며도 화려하고 현대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버려진 밭과 고속도로, 상업지구 한가운데에 조성된 이 거주 단지는 복잡하게 뻗은 고속도로로 도심까지 연결되며 상점 하나, 공공시설 하나 없는 곳인 만큼 밤에는 거의 불빛을 찾아볼 수 없다. 이곳 외에 햄프셔힐스, 하일랜드크리크, 비버리크레스트, 매칼핀우즈 등 비슷한 구역이 수십 곳 더 있다. 이 구역들은 모두 적당히 호화로우며 도시계획에 따라 맨땅 위에 지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신흥 단지로 뒤덮인 옥수수밭"이라고 어느 주민은 표현했다.

지난 9월 초 샬럿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짐 헌트 전 주지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변화를 한층 긍정적인 시각에서 언급했다. "저 고층빌딩들을 비롯해 샬럿에서 누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5)에 대해 여러분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 주에 소재한 대학에 지원한 자녀를 두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50년 전만 해도 가난하고 고립된 시골 마을로 여기던 우리 주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여기에는 테리 샌포드(1961~65) 전 주지사의 공로가 큽니다. …그는 기업인·정치인·교사와 협력해 많은 훌륭한 대학, 58개의 커뮤니티 컬리지,(6) 공립학교를 세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뛰어난 인재들을 바탕으로 놀랄 만한 경제 번영을 이루게 된 것도 그런 노력의 결실입니다."

실제로 미국 30대 대학 중 3곳이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고, 500대 기업 중 14곳이 본사를 두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이런 역동성 덕분에 인구가 1990년대 이후 2배로 증가했다. 이런 인구 변화에 힘입어 오바마는 2008년 대선 때 공화당의 텃밭이던 이곳을 공략하기로 결심했다. 많은 학생, 청년, 고급 인력, 소수민족 등 새로 유입된 주민들은 자원봉사자 부대의 호소에 설득돼 오바마에게 대거 표를 던졌다. 결국 오바마는 저학력 백인과 농촌 주민들의 지지를 받은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을 근소한 차로 이겼다. 하위 지역 단위별로 살펴보면 지지 성향 대비가 더욱 극명하다. 급부상하는 도시 샬럿이 속한 메클렌버그 카운티는 인구 중 백인의 비율이 51%에 채 못 미치는데 이곳 유권자 중 62%가 오바마에게 투표했다. 반면 주민의 75%가 백인이며 가구당 평균 소득이 20% 낮은 개스턴 마을은 메클렌버그의 오바마 지지율과 비슷한 비율로 매케인 후보를 지지했다.

조지아주는 메클렌버그보다는 개스턴과 비슷한 성향을 띤다(앨라배마·사우스캐롤라이나·미시시피·아칸소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세력을 넓힐 여지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미첼 민주당 의원은 당의 잇단 패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애틀랜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가난하고 종교색이 강한 시골에 불과합니다. 주민들이 무척 보수적이죠. 이른바 '바이블 벨트'(Bible Belt)의 핵심을 이루기도 합니다." 바이블 벨트라는 호칭은 과장이 아니다. 인구 1천만 명의 조지아주에 교회가 무려 1만2292곳이나 있으며, 꾸준히 출석하는 신도 수만 330만 명에 이른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성령강림교, 성공회 등 교파도 다양하다. 조지아주 곳곳을 돌아다녀도 공공기관은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수만 곳에 달하는 종교 관련 건물은 피해가기 힘들 지경이다. 대리엔에만 10여 곳의 교회가 있다. 교회들 대부분은 낙태·피임·동성애·도박 등의 '죄악'과 투쟁을 벌이는 데 그치지 않고, 빈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노인들을 돌보고 아이들에게 학습지도를 하는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모든 활동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과 신도들의 헌금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하다.

남부의 종교적 열기는 정부에 대한 적개심과 결합되곤 한다. 자선단체들이 정부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뛰어나다는 믿음이 정치에 표현되기도 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맷 아널드 공화당 의원은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문제 해결에는 민간부문의 활동이 더 효과적입니다. 참여하는 사람도 많고 다양한 해법을 시도해본 뒤 가장 훌륭한 방법을 택하기 때문이죠. 반면 정부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기능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해법을 구상해 모든 이에게 강요할 뿐이죠. …존슨 대통령 재임 당시 '빈곤과의 전쟁'을 개시한 이래 오히려 미국에는 빈곤층이 사상 최고 규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7) 아무런 효과가 없는 조치였다는 뜻이죠. 공공지출을 마냥 늘릴 수는 없습니다. 보수파로서 저는 교회가 사회 부조에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라면 곤궁에 처한 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파악해 도움을 주는 이와 수혜자 간에 적절한 상호작용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개인은 책임감을 갖게 될 겁니다."

맷 아널드 의원에게서 몇m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색 양복과 빨간 넥타이 차림에 경직된 미소를 머금고 서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에드 라인더스 조지아주 하원의원이다. 그 역시 빈민들에게 책임감을 고취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그는 '사회복지를 누린다'는 표현이 들려오자 "사회복지에 '의존'한다고 해야지!"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고 나서 "매일 누군가 물고기를 잡아주기 기다리기보다 낚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상투적인 내용으로 연설을 시작했고, 자선사업의 장점을 강조했다. 또한 "정부의 유일한 도덕적 의무는 장애인·정신병자·영유아·노인 등 자력으로 먹고살 수 없는 이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라인더스 의원은 그 외의 사람들, 즉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을 정부가 돕는다면 그들에게 일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셈"이라며 "그들을 돌보는 것은 교회, 지역사회, 자선사업단체의 몫"이라며 말을 맺었다.

정치보다 교회… "바이블 벨트"

탬파의 비즈니스 구역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5마일쯤 달리면 탬파에서 가장 빈곤한 구역인 다운타운이 나온다. 주유소와 중고시장 사이에 위치한 '하나님의 제일교회'는 자선을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곳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래리 모블리 목사와 독실한 신도 린다 버참 부인이 음식을 나눠준다. 이 서비스는 공공기관 못지않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사이에 흑인·백인·히스패닉·젊은이·노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100여 명이 번호표를 뽑고 신청서를 작성(이름·주소·가족수 등 기입)한 뒤 냉방설비까지 갖춘 현대적인 대기실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린다. 준비한 음식이 떨어지면 늦게 온 이들은 빈손으로 돌아간다. 용케 커트라인에 들어온 이들은 과일주스 팩, 케이크, 토마토, 진공포장 소시지, 브리오슈빵 등을 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이 식량은 일주일 동안 자원봉사자 10명이 신도들이 낸 헌금으로 동네 식료품점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식품을 헐값에 사온 것이다.

63살인 리아나 켈리 부인도 이곳의 단골이다. 쿠바 출신의 이민자로 아이들 키우는 데 평생을 바친 뒤 아일랜드 출신 남편과 3년 전 이혼했다. 그와 동시에 수입이 없어지자 가난한 동네 탬파 다운타운으로 이사를 왔다. "내가 받는 사회보조금(월 377달러)으로는 집세, 전기요금, 유선방송 시청료만 겨우 냈어요. 할 수 없이 동네 전당포를 가끔씩 찾아가서 보석을 비롯해 귀중품을 팔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전당포 주인이 제게 직원으로 일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 뒤 18개월 동안 켈리 부인은 찌는 듯한 플로리다의 더위 속에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 천으로 팔뚝을 감싼 채 부시 대로변 인도에 서서 운전자들을 향해 '금 현금 매입'이라 쓰인 피켓을 흔들고 있다. 이렇게 인간 광고판 노릇을 하고 받는 돈은 시간당 7달러다. "전당포에서 필요할 때 저한테 전화를 주면 가는 거죠. 음식 배급 시간에 연락이 올 때는 참 난처해요. 하루 3시간 일하고 21달러를 벌었는데 광고판을 분실해서 그 2배를 물어준 적도 있어요."

오는 11월 6일, 쿠바 출신의 켈리 부인은 오바마를 찍을 생각이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수백만 빈곤층은 정부에 너무나 의존적이기 때문에 민주당을 찍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말을 들었는지 모른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ït Bréville 언론인, 자유기고가.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

(1) Ari Berman, ‘How the GOP is resegregating the South’, <The Nation>, New York, 2012년 1월 31일자에서 재인용. 미국에서는 인구조사를 할 때 주민들에게 자신의 인종을 설문지에 표시하도록 하는데 분류 항목이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2010년 조사에서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프리카 흑인 종족을 조상으로 둔 자’를 가리켰고, ‘백인’은 ‘유럽 또는 중동 또는 북아프리카 원주민을 조상으로 둔 자’를 지칭했다.
(2) Conathan Martin, ‘Obama’s problems in the South’, <Politico>, Washington, 2012년 8월 2일자에서 재인용.
(3) Amy Scatz, Suzanne Vranica, ‘Swing-state stations are election winners’, <The Wall Street Journal>, 2012년 9월 9일자.
(4) 예외도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 헤이스(1876), 하딩(1920), 후버(1928)는 남부의 여러 주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5) ‘노후한 남부’에 활력을 주기 위해 1959년 창설된 첨단연구단지.
(6) 도미니크 고드레슈, ‘경제위기의 수혜주 커뮤니티 칼리지는 상종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6월호 참조.
(7) 1964년 민주당 린든 존슨 대통령이 주도한 ‘빈곤과의 전쟁’ 일환으로 미국은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 메디케이드(빈민의료보험) 등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다.


케케묵은 거짓말

백인 상인을 살해했다고 억울하게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젊은 흑인 제퍼슨. 1940년대의 어느 날 그의 생애 마지막을 보내던 교도소에서, 그에게 글을 가르치도록 지시받은 한 흑인 미국인 선생이 있었다.

제퍼슨, 이들이 우리보다 나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되레 우리보다 못하면 못했지. 그들이 늘 책임을 뒤집어씌울 희생양이 필요한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야. 나는 자네가 자네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자네의 실제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하네. 그들에게 제퍼슨 자네는 수많은 흑인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겠지. 체면도 없고, 용기도 없고, 동족에 대한 애정도 없는 흑인들 중 하나일 뿐일 거야.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자네는 충분히 증명해 보일 수 있어. 내가 결코 하지 못할 일을 자네는 할 수 있어. 난 여태껏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왔지. 아이들에게 읽고, 쓰고, 숫자 세는 법을 가르치며 말이야. 인간의 존엄성이나 정체성, 사랑과 서로에 대한 존중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못했지. 그들은 우리가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조차 믿지 않네. “이 깜둥이들에게 이름 석 자 쓰는 법과 손가락으로 셈하는 법을 가르쳐라.” 나는 그 말을 따랐지만, 늘 혐오감으로 가득차 있었다네.

제퍼슨, 신화가 뭔지 아나? 신화란 건 사람들이 믿는 아주 오래된 거짓말이라네. 백인들은 지상에서 자신들이 제일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이런 것이 바로 오래된 거짓말이야. 이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흑인도 저항을 하고 생각을 하고,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인간미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백인들의 신화도 깨지고 말겠지. 흑인을 노예로 삼고, 지금 상황에 우리를 처하게 만든 정당성 따위는 없어져버리는 거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한 채 이대로 있으면 그들은 그대로 안심하고 살겠지. 나 같은 사람과는 백인들은 안심하고 살 수 있다네. 암브로즈 목사도 그들을 안심시키지. 하지만 자네에 대해 그들은 더 이상 자네가 안심할 수 없는 사람이길 바란다네.

-어니스트 게인스(Ernest Gainnes), <그들에게 나도 인간이라 하게나>, 리아나레비, 파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