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일변도의 미국 국가안보체제
Dossier 미국 대통령 선거 현장을 가다
2008년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는 관타나모수용소 폐쇄, 2001년 통과된 안보 법률 패트리엇법(Patriot Act) 폐지, 정보기관 및 군대 내 내부고발자의 보호를 약속했다. 9·11 테러 이후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진 안보 관련 정부기관을 길들이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지금, 관타나모수용소는 여전히 건재하고, 군법재판소는 재판을 재개했으며, 패트리엇법도 여전히 유효하다. 민감한 정보 유출 제재를 결심한 사법부는 방첩법(Espionage Act) 위반으로 6건을 기소했는데, 과거 정부에서의 기소 건수를 합친 것보다 2배 넘게 많다. 임의적이고 철저히 그늘에 가려진 기준에 따라 선정된 미국 내 입국 금지자 수는 2011∼2012년 2배 넘게 증가해 2만1천 명에 이른다. 2011년 말,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미국 시민에 대해 연방정부가 자의적으로 무기한 구금을 행사할 수 있는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에 서명했다. 이는 인신보호법(1)이나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는 결정이었다. 또한 철저한 사법 조사 없이 테러리스트로 일단 지명된 해외 거주 미국민에 대해 직접적으로 무장활동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살인을 허용한다는 결정을 승인했다. 그리고 2011년 9월 11일 예멘에서는 알카에다 소속으로 추정된 인물의 16살 아들이 실수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알고 보니 미국 시민권자였다. 이렇듯 국가보안에 대한 편법 때문에 발생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정부 때 파키스탄·소말리아·예멘 등지에서 무인기 폭격을 통한 외국인 '비밀' 살해는 한층 증가했다.
비대해진 국가안보기관들을 다스리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을 믿은 게 순진했던 것일까?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은 이미 역사적 전례가 있다. 197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세를 몰아, 당시 국회 내 다수당이던 민주당은 공화당 소속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정부에 대항해 침해적인 경찰권과 국내 감시 행위를 제한했다. 특히 국외에서 수행하는 비밀작전과 관련한 군사 부문의 대통령 권한 확대를 막았다. 오바마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믿으며 비대해진 국가안보기관의 권력 행사가 역행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실망했다. 미국 내 140개 공항에 배치된 신체 스캐너가 보여주듯, 미국 국민의 일상 속에 국가보안을 위한 침해 행위는 더욱 증가했다. 일부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이런 관행은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간만 허비시키는 한 편의 '안보 연극'에 그칠 뿐이다. 이미 운송안전협회는 인체 스캐너가 취약하고 쉽게 눈속임을 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2) 그럼에도 승객의 인체 스캐너 통과 거부는 곧 굴욕적인 몸수색으로 이어진다.
2011년 한 해에만 7700만 개 기밀 생겨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바마 정부가 국내 보안감시 활동을 강화하면서 미국인들의 전화 도청을 위해 3만 명의 인원을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신설된 국토안보부는 창설 10년 만에 국방부와 보훈부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강력한 권력기관이 되었다. 또한 문어발식으로 수집한 정보를 보관하기 위해서 유타주 블러프데일의 9ha 부지에 20억 달러를 들여 데이터보관센터를 건설 중이다.(3) 9·11 테러 이후 지난 11년간 국가보안 시스템이 얼마나 팽창했는지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다. 복잡하게 뒤얽힌 지배 영역을 차지한 각 기관들은 넘쳐나는 예산과 출처가 불분명한 민간 자본에 힘입어 워싱턴 도심 한가운데에 부동산 붐을 일으키며 전체 150ha가 넘는 지역 안에 33개 빌딩을 지었다. 무려 22개 캐피톨 힐과 국방부 부지 3개를 합친 규모의 땅이었다. 신설된 국내 감시·통제 조치로 인해 매년 쏟아지는 보고서만 5만 개에 달하는데, 하루 136개 보고서가 나오는 셈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국가안보 문제 전문가인 <워싱턴포스트>의 다나 프리스트 기자는 "지난 10년간 지출된 보안감시 활동 예산액이 총 2조 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하지만 감시기관들을 감시하는 총괄 기관이 없는데다, 이론상 이 기관들을 감독하도록 돼 있는 국가정보국장은 아무런 실질적 권한이 없다.
미국 정부의 정보 비공개 정책도 한층 강화됐는데, 2011년 한 해에만 7700만 개 문서가 기밀로 분류됐다. 전년 대비 40% 증가한 수치였다. 전 정보보안심사국 국장인 윌리엄 보산코는 정보의 기밀화 과정에만 연간 100억 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기밀 문서의 공개화 작업은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 지난해 국가안보국(NSA)은 전쟁과 관련한 문서를 공개했는데, 다름 아닌 영국과 치른 1812년 전쟁에 관한 문서였다. 경력 많은 변호사들을 선임할 재정적 여력이 되는 탄탄한 조직만이 알 권리를 들어 기밀의 벽을 뚫을 수 있지만, 그나마도 실질적 공개 범위는 제한적이다.
재정이 풍부한 정부 보안기관들이지만, 그럼에도 기밀 유지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 '기밀취급 보안허가'가 급증하면서 '기밀'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최고기밀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보안허가 등급을 가진 미국인 수만 85만4천 명에 이른다. 또한 기밀정보가 정부 컴퓨터로부터 일반에 공개된 인터넷상으로 유출되는 경우가 생겨나는데, 인터넷에 익숙지 못한 머리 희끗희끗한 고위 공직자의 자녀들이 컴퓨터에 설치한 P2P(Peer-to-Peer) 프로그램에 의해 유출되는 것이다.(4) 미국 첩보 분야의 사학자 매슈 에이드는 기밀문서가 그대로 저장된 하드디스크가 내장된 미군 소유의 컴퓨터가 버젓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판매되는 것을 보기도 했다.(5) 내부정보 유출이나 내부고발자에 대한 단속 강화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 내 고위 관료들은 유출이 가져올 영향에 대한 큰 우려 없이 기밀을 털어놓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최고 기밀문서인 '아프가니스탄 전망 보고서'가 유출됐고, 파키스탄에 대한 무인기 폭격 기사는 빈번히 대중매체에 오르내렸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임기 동안 국가안보 체제 팽창은 많은 미국민들에게 시민권 위협으로 인식됐지만,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내 시민권과 자유권 수호 운동은 민주당이 야당일 경우에만 탄력을 얻는 듯하다. 1970년대 초에 그러했듯 말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즉시, 시민권에 대한 우려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오늘날 친(親)민주당 지식인들은 과거 국가안보 체제에 대한 비판이 안보기관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올바르지 못한 정당이 정보기관을 통제하는 데 대한 비판이었다고 설득하려 애쓴다. 법학자 조나단 털리는 "부시 대통령을 공격했듯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을 거부하는 진보파들이 흔히 내세우는 주장"이라고 개탄했다.(6) 진보주의자들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인색한 반면, 딕 체니를 포함한 전 부시 정부 인물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포스트 9·11 안보체제' 지지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안보정책도 긴축재정 대상이 될 것인가
임기 초반만 해도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공약을 지키려는 듯했으나, 곧 의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2009년 5월 21일 의회는 공약 이행에 필요한 8천만 달러 예산 승인을 거부했다. 의회의 거부를 무시한 채,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예고 없이 관타나모수용소의 수감자 5명이 뉴욕 민간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라 공표했다. 찬반이 분분한 가운데 이번에는 뉴욕시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이로 인해 오바마 대통령은 약속한 기한 내에 관타나모수용소를 폐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 뒤 군사재판, 무기한 구금 등을 포함한 관타나모수용소 문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의회의 무조건적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비상안보 조치가 점차 정착되는 현상이 사법권과 입법권을 경시하는 '황제대통령'의 소산이라는 해석은 오류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급속한 안보국가 체제 확산은 미국 내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안보국가 사안을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행한 반공산주의 흐름에 힘입어 민주당 출신인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실시한 통제 및 감시 정책 강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케네디 대통령 정권과 레이건 정부를 거치며 국가안보 체제는 한층 강화됐고, 냉전 시기 국가 안보와 관련된 부문은 거의 완전한 독립성과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이 국가안보 정책을 사생활 침해로 인식해 그런 조치에 적대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국민들은 안보 조치에 그럭저럭 잘 적응해나가는 듯하다. 공화당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 보호에 민감한 포퓰리스트적 우파인 티파티가 미군의 국외 군사개입 및 국내 안보기관들의 권력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티파티 내 우파자유주의자들의 관심사가 사적 재산권 보호에만 있다는 것을 간과한 기대였고, 그 결과 국회 내 티파티 세력은 2011년 패트리엇법 갱신에 일치단결로 찬성했던 것이다. 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는 티파티지만 '국가안보'의 명분 아래 실시되는 인권침해적 정책에는 이론이 없는 듯하다.
오늘날 안보국가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정치색을 떠나 정당마다 조금씩 찾아볼 수 있다. 재정적으로 풍부한 중도좌파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권연맹은 몇십 년 전부터 불법 감시, 정부의 극단적인 기밀화 및 다른 공권력의 침해 활동에 대한 반대운동을 해왔다. 정치권에서는 신기하게도 과도한 국가안보 조치에 거부를 표명한 유일한 정치인이 공화당의 론 폴인데,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자 공천에 나섰던 극우파 성향의 인물이다. 텍사스의회 소속 의원인 론 폴은 극단적인 자유주의 성향으로, 반제국주의와 극단적인 자유주의적 담론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시민자유권 수호를 위한 과도한 안보체제 반대가 어디에서 비롯됐든 간에 그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 거부 움직임이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는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은 해안가 대도시 지역이 아닌, 미드웨스트 북부나 남서부 주, 록키마운틴 주 등 인구밀도가 낮은 일부 지역이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에서는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이 국내 감시설비를 담당하는 대규모 통신사와 안보기관과 함께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미국 내 안보기관들은 미군의 국외 군사개입 심화와 더불어 팽창해왔다. 미국이 심각한 부채 문제에 직면하자 공화당 내부에서도 국방 부문 예산 삭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안보정책이 향후 긴축재정의 대상이 될 것인가?
글•체이스 마다르 Chase Madar 시민권 전문 변호사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1) 재판 없이 구금을 금지하는 법적 원칙.
(2) David Kravets, <국토안보부, 공항 인체 스캐너의 취약성 인정>, Wired, 샌프란시스코, www.wired.com, 2012년 5월 7일.
(3) James Bamford, ‘입단속하세요: NSA는 지금 국내 최대 첩보센터 건설 중’, Wired, 2012년 3월 15일.
(4) Dana Priest, William Arkin, <톱 시크릿 아메리카: 신미국안보국가의 부상>, 리틀브라운, 뉴욕, 2011.
(5) Matthew Aid, <정보와 스파이전쟁>, 블룸버리, 뉴욕, 2012.
(6) Jonathan Turley, ‘미국이 더 이상 자유의 땅이 아닌 10가지 이유’, <워싱턴포스트>, 2012년 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