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승리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미국 대선이 목전에 다가왔으나, 여전히 승자 전망은 안갯속이다. 7개 경합주 유권자들을 대상으로한 여론조사 결과가 10월 21일(현지시각) 공개됐으나, 초접전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만 확인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9월30일부터 10월15일까지 7개 경합주 유권자 5016명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47%,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47%였다고 이날 밝혔다.
정치적 무명에 가까운 해리스가 트럼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한 것은 변화를 기대하는 미 유권자들의 바람 때문이다. 카멀라 해리스는 누구이며 그녀는 무엇을 제안하는가? 선거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민주당의 후보가 된 부통령은 민주당 진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찬사는 과거의 활동이나 정책보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을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에 기인한다. 과연 그녀는 승리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백악관을 향한 경주에서 물러나고 그의 부통령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선거 캠페인은 분명히 활기를 되찾았다. 더 젊고 활기찬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는 도널드 트럼프를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경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한 부분이 많으며, 현직 대통령의 뉴딜적 방향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몇 주 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한 미셸 오바마는 “더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열정, 환희”에 대해 언급했다. 대체로 대중들은 이 발언을 좋아했다. 그러나 일부는 이 표현을 지나치게 어색하거나 심지어 모욕적이라고 여겼다. 민주당 지지자는 현재가 이미 빛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백악관의 현 주인인 조 바이든은 전날 같은 무대에서 조금 덜 다듬어진 연설을 했다. 항상 당에 충성해 온 인물로서 그의 대통령직은 정치적 절정의 상징이 아닌가? 미셸 오바마는 단지 분명한 사실을 언급했을 뿐이다. 행사가 개최된 시카고의 다목적 경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에너지와 흥분으로 넘쳐났다.
민주당은 정말로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있나?
오래전부터 예고되었던 무의미하고 졸린 집회와는 완전히 달랐다. 갑자기 낙관적으로 변한 민주 당원들 사이에는 희망과 감격의 기운이 흘렀다. 매일 밤 프라임 타임이 되면 건물은 가득 찼고, 참석자들은 열광하고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쳤다.
분명 조 바이든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로 교체한 것은 이번 세기의 최고의 전략이었다. 단지 한 달 전만 해도, 같은 민주 당원들은 과거의 짐을 끌어안고 있었고, 그들의 후보가 입을 벌린 채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상대에게 뒤처지는 모습을 보며 텔레비전 앞에서 화를 냈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누구였던가? 바로 무시무시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는 광대이자 범죄자, 부자 정치가, 바보, 독재자의 속성을 모두 갖춘 최악의 악당으로서, 카메라 앞에서나 여론조사에서 노쇠한 조 바이든을 무참히 짓밟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완전히 뒤집혔다. 이제는 트럼프가 새로운 도전에 망연자실하며 서 있었고, 해리스는 넓은 중도층의 영역을 차지하며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중서부 전역에서 대규모 유세를 열었고, 민주당은 매력, 활력, 열정, 그리고 심지어 젊음까지도 상징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이 단순히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인물을 드디어 찾았기 때문일까? 전당대회에서 보여준 열정의 폭발은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무대에 나와 뻔한 말들을 늘어놓는 당의 노쇠한 정치인들을 보면서도, 이번에는 마침내 수년간 민주당과 미국을 지배해 온 무기력한 리더십이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960년대의 불분명한 집착도 이제 끝날 때가 온 것처럼 보였다. 그 오래된 지도층은 우파의 반격에 두려워하며 어떠한 주제에서도 공화당과 맞서 싸우기를 꺼려왔고, 전쟁 문제부터 사회 시스템 개혁까지 모든 것에 타협하며 결국 스스로의 진영을 망가뜨려 왔다. 은행과 ‘금융 혁신’에 대한 그들의 숭배도 이제 끝이었다.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 그리고 창조성과 혁신을 내세운 ‘창조적 계층’(사회학자 리처드 플로리다가 그의 저서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이후 현대 경제학과 사회학에서 중요한 주제로 논의되고 있음—역주)에 대한 사랑 고백도 이제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1980년대부터 우리를 지배해 온 이 모든 세대는 결국 실패한 유산만을 남기고 이제 퇴장당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정말로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있는 것일까? 세 가지 요소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해리스가 러닝메이트로 미네소타 주지사 티모시 월츠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는 중서부 지역의 전통적인 포퓰리스트로서, 민주당이 너무 오랫동안 놓쳐왔던 노동자 중심의 방향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물론 부통령직이 거의 상징적인 직책이라는 점에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둘째, 몇몇 노조 지도자들이 전당대회 프라임 타임에 연설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중에는 자동차 노동조합(UAW)의 회장인 션 페인도 있었을 정도로 노조단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청중들은 ‘포퓰리즘’이라는 단어의 본래 긍정적인 의미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1)
셋째로, 낙관주의가 다시 돌아왔다는 점이다. 해리스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이유 중 하나는 적재적소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그녀의 유머 실력 덕분이다.
관점을 달리하는 점잖은 사람들은 이 요소를 과소평가할 수 있지만, 수년간의 팬데믹, 인플레이션,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통한 문화 전쟁 등에 시달려온 사회 분위기에서는 이런 긍정적인 영향이 무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친기업적인 인사들이 여전히 당내 주도권 장악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위에서 언급된 요소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외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즉 마케팅 전략의 개선을 나타낼 뿐이다. 핵심은 항상 그렇듯이, 기존 시스템이 거의 그대로 지속될 것이고, 기업 마인드에 길들여진 친기업적인 인사들이 여전히 당 내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유권자들에게 청년성, 이상주의, 독창성을 내세우며 새로운 세대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과거 선거 때마다 제시된 사례의 반복이며, 과거를 보면 이제 막 나서는 새로운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던 경우도 많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같은 시카고 경기장에서 빌 클린턴이 1996년에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에도 ‘희망의 사람’(그의 고향 아칸소주의 도시 이름인 ‘Hope’에서 유래)은 “21세기로 가는 다리”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미래에 대한 수많은 희망을 담고 있었다. 젊고, 똑똑하고, 낙관적인 그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다리를 건설했다. 그것은 바로 자유무역 협정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일부 지역은 산업이 붕괴되었고, 금융 규제 완화 프로그램은 결국 2008년 위기로 이어졌다. ‘이상주의자들이여, 정말 고맙다.’
열띤 분위기의 겉모습과는 달리,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4일간은 즐거움보다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비싼 돈을 내고 형편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고, 불편한 좌석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공식적으로 마련된 참가자들 간의 위계질서 위에 훨씬 더 파악하기 힘든 비공식적인 위계질서가 겹쳐 있었다(기자 데이비드 시로타가 표현한 “자원에 기반한 카스트 제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분명, 민주당은 그들의 통치 철학을 행사장의 자리 배치에 반영하려 했던 것처럼 보였다.
관객 입장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TV 광고를 보는 것과 같았다. 날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움이 사라졌다. 모든 것은 미리 쓰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청중에게 질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이견의 여지도 없었다. 관객은 지시에 따라 박수를 쳤고, “우린 되돌아가지 않을 거야”, “우리가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와 같은 구호를 끊임없이 외쳤다. 모든 것은 각본에 따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갔다.
수개월 동안 언론에서는 미 대선 국면에서 가자 지구 문제와 환경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제기될 것이라는 전망을 언급해 왔으나, 모든 연설은 후보 교체를 반영하기 위해 급하게 다시 작성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대선 메커니즘이 멈추지 않고 순조롭게 돌아갔다는 사실은 꽤나 주목할 만한 일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것에 그쳐
하지만, 끊임없는 조명등에 노출된 관객석에서 바라보면, 무대 위에서 텔레프롬프터에 적힌 연설문을 읽고 있는 2선급 정치인들의 긴 행렬은 마치 모든 후보자들이 서로 뒤섞여 혼동되는 미인대회와도 같았다. 이틀째부터는 그들의 말을 받아 적느라 연필심을 닳게 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뻔한 이야기들 속에서 인상에 남는 것은 몇몇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기억이었다. 이는 민주당의 정책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가수 핑크(Pink)가 무대에 올라와 “What About Us?(우리에게는 어떻게 할 건가요?)”라는 곡을 부를 때가 그랬다. 이 노래는 지도자들의 배신에 관한 애절한 찬가였다.
핑크는 “우리가 속았는데, 이제 우리 ‘수많은 아름다운 영혼들’은 어떻게 될까요?”라며 물었다. “그리고 이 모든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약속들이 산산조각났는데요? / (...) 이 모든 계획들이 결국 실패로 끝나버렸는데요?”
그 비극적인 가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잠시나마 민주당이 마침내 무대에 올라와 그동안 축적해온 모든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스크린에는 부통령이 군대의 힘과 ‘국제적 안정성’에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후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 마크 켈리가 등장해 군대에서 보낸 자신의 시절을 회상하며 열광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군사적 엄격함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그 뒤를 이어 전 국방장관 리언 파네타가 등장해 로널드 레이건을 인용하면서 미군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카멀라 해리스 자신도 국가의 군사력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이라고 찬양하며 모든 존경심을 표했다. “영원히 전쟁이 계속될 수 있기를!”
전당대회의 주제는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마치 해결되는 것처럼!
왜냐하면, 그들이 반복적으로 상기시켰듯이, 미국인들의 삶의 방식은 끔찍한 트럼프라는 독재자의 위협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독재자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범이며, 자신의 경쟁자를 법정에 세우고 선거 과정을 중단시키며 언론을 검열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부추기는 인물이었다(적어도 이 마지막 비난은 상당히 신빙성 있는 증거에 기반하고 있었다). 한 연설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투표하는 것은 단지 한 명의 민주당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정치적 전당대회는 당연히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장(場)이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인들이 단순히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연설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토론하며, 당이 추구해야 할 정책을 결정하고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바로 그곳에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는 당내에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다.
그러나 바이든이 쇠약해졌음에도 민주당 경선에서는 견줄만한 경쟁자조차 없었다. 어떠한 토론도 열리지 않았고, 일부 주에서는 다른 경쟁자가 없어서 경선 자체가 취소되었다. 자신의 신체적 쇠퇴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카멀라 해리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대선 레이스에서 물러났다. 당시 그녀는 대중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2020년 민주당 경선에서 그녀는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포기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며칠 내에 당의 지도부는 한마음으로 그녀를 지지하며 전당대회 전에 그녀를 지명해버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시카고에서 불협화음이 나타나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었다.
해리스, 트럼프를 의식해 ‘폭정’에 맞설 것을 강조
몇몇 연설자들은 민권 운동가 패니 루 해머의 용기를 상기시켰다. 그녀는 196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흑인 유권자들을 후보 지명 절차에서 배제하려는 당의 술책을 비판했었다. 2024년의 전당대회에서는 그러한 용감한 행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후보 지명이 이번 행사의 주된 목적이어야 했지만, 그 과정은 너무도 가볍게, 거의 희극적으로 진행되었다. 주최 측은 이 과정을 ‘축제’의 한 순간으로 기획했다.
각 주의 대의원들이 미리 알려진 표를 발표하는 동안, 선글라스와 커다란 모자를 쓴 DJ가 음악을 틀며 분위기를 띄웠다. (“내 이름은 DJ 캐시디야, 지금부터 민주당 전당대회의 투표 시간입니다!”) 열광하는 군중 사이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완벽한 일치, 실수 없는 진행이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이제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이 전당대회는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작동되는 과정이 아니라 그저 흉내 내는 것에 불과했다. 이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 자신을 소개하는 무대였다. 일방적인 대화였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은 TV 슈퍼스타 오프라 윈프리였다. 한때 그녀는 보통 미국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그녀는 11월 선거가 후퇴에 대한 저항의 도구라고 설명했다. (이는 낙태권과 남부 주들의 인종 분리 문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퇴행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유의 전사”라고 주장했다. 오프라는 마지막 구절을 노래로 부르기까지 했는데, 이는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었다. 이 나라에서 정치 연설자가 노래를 부르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공화당이 독점하고 있다고 여겨지던 기본적인 가치들을 하나 하나 호명하며 강조했다. 도덕적 힘, 낙관주의, “품위”, “존중”, 헌법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투표에 대한 것까지도 말이다. 트럼프가 투표를 꺼린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투표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미국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민주당은 애국심을 드러내는 것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었다.(2) 그들은 이를 편협함과 광신적 행동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역사에 대한 무지와 군대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인해, 트럼프는 이러한 상징을 다시 꺼냈고, 이제 그의 반대자들은 이 상징들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이전의 (그) 어떤 때보다 더 많은 작은 국기가 휘날렸고, “U-S-A”를 외치는 목소리도 전례 없이 많았다.
카멀라 해리스는 자신의 캠페인을 미스터리로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그녀는 무엇을 옹호하고 있었을까? 바이든의 프로그램인가, 그녀 자신의 프로그램인가? 이번 전당대회의 상당 부분은 그녀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할애되었으며, 그녀의 도덕적 올바름에 대한 찬사도 과하지 않게 표현되었다. 카멀라는 당신이 어려울 때 기도해 주며,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전화를 걸고 때로는 노래까지 불러 준다고 했다.
그녀는 그냥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또한, 카멀라가 당신을 바라볼 때, 그녀는 “진정으로 당신을 본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싸우는 것”은 “그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고, 물론 그녀는 친근한 중산층 가정 출신이라고 했다.(3)
그녀가 마지막 날에 한 연설은 그녀의 공화당 경쟁자의 연설보다 두 배 이상 짧았지만, 해리스는 진지하고 집중된 모습이었다.(4) 평소의 특유의 웃음은 잠시 숨겼다. 열광적인 청중 앞에서 그녀는 마치 위기에 처한 환자를 진정시키려는 응급 구조원처럼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 40여 분의 연설로도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에 충분했다. 먼저 트럼프가 민주주의 원칙과 국가 이익을 모두 위반했다고 비난한 후, 그녀는 더 강한 군대와 더 잘 보호된 국경, 그리고 중국에 대한 강력한 태도를 요구하며 그를 우파 측면에서 압도했다. 이후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가격 인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스타트업들은 자본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노동과 자본은 협력할 것이며, 주거비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닐 것이라며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해리스는 총기 폭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 더 깨끗한 공기 보장, 가자 지구의 전쟁 종식, 이란에 대한 강경한 대응, 그리고 전 세계에서 ‘폭정’에 맞서는 것까지 약속했다. 그녀에게 투표하는 것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특권, 즉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누리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약속을 조롱하기는 쉽다. 그들의 수사는 종종 자기 자신을 패러디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비록 무색해 보일지라도, 바이든은 최근 몇 십 년 동안 그 어떤 대통령보다 노조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왔다. 그는 또한 인프라와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이러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은 전당대회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바이든의 주요 업적을 대선 연설 때 언급하지 않아
반면, 그의 가장 야심 차고 혁신적인 업적인, 4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독점 금지법을 마침내 시행했다는 점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법무부가 가장 거대한 독점 기업인 구글에 대해 거둔 최근의 승리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마치 다국적 기업의 권력을 깨트리는 것이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개념인 것처럼, 혹은 그것이 당의 기부자들을 불쾌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민주당원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의 도덕적 우수성이었다. 한 명씩 무대에 올라와 자신들의 선행을 나열하며 얼마나 카멀라 해리스처럼 좋은 사람들이었는지 보여주었다. 그들의 부모는 열심히 일하며 올바른 가치를 가르쳤고, 그들 자신도 옳은 행동을 했으며, 결코 목표를 잊지 않았고, 다양한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잠시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순간, 그 모든 달콤함은 즉시 그 맛을 잃었다. 전당대회 3일째, 케피예를 두른 한 여성이 경찰이 설치한 경계선 바로 뒤 도로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거대한 메가폰을 든 그녀는 자신이 말하길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낭독했고, 정기적으로 멈추며 책임자를 지목했다. 그녀는 미국, 특히 민주당을 비난했다. “당신들 모두, 당신들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다”고 그녀는 외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수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반론 없이 이어진 자기 칭찬의 축제에 노출된 뒤, 그리고 자신의 고귀함에 도취되라는 설교를 듣고 나서 문을 나서면 자신이 선한 존재가 아니라 악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졌다. 그 여성 곁을 지나치던 진보주의자들은 방금 자신들에게 주입된 이야기를 의심하고 싶어졌을까? 지금까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미덕의 이미지가 흐려졌을까?
그로부터 2주 반 후, 트럼프와 해리스는 TV 토론에서 맞붙었다. 민주당 후보는 지치지 않고 화를 잘 내는 사업가를 자극하고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 그가 방어 태세를 취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함정을 만들었다. 매번 공화당 후보는 그 함정에 걸려들었다. 상대가 그의 재산 대부분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팬들이 그의 집회가 너무 지루해서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난다고 비판할 때 어떻게 대답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트럼프는 자신의 억만장자 지위와 집회에 자부심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그것들이 바로 그의 성공의 증거였으니까. 그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 허공에 소리를 치고 있었고, 해리스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웃으며 TV 시청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해리스가 선택한 이름 ‘기회의 경제’, 공화당의 ‘기회의 사회’를 빼닮아
정치 해설자들에게 이러한 장난 같은 모습이야말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해리스가 어떻게 분노하는 상대를 교묘하게 무너뜨렸는지 칭찬했다. 하지만 그녀가 사용한 술책들은 고등학교의 수사학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상대의 발언 시간을 소모하게 하는 데 유용하지만, 그것이 토론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토론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중요한 주제들을 다양한 각도로 검토할 수 있는 기회여야 한다.
그렇다면, 해리스는 국가가 직면한 주요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좌파 지지자들은 그녀가 중요한 주제에 거의, 아니면 전혀 발언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공화당 쪽에서는 그녀가 2019년에 좌파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후 오늘날에는 중도적 입장을 취한다고 말한다. 최근에 그녀는 공화당의 전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가 자신에게 합류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민주당원들이 한때 그를 악마의 화신처럼 여겼던 인물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경제 정책을 위해 선택한 이름인 ‘기회의 경제(opportunity economy)’는 몇십 년 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뉴트 깅리치가 그들의 핵심 제안에 붙였던 ‘기회의 사회’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념적 혼란은 분명했고, 해리스의 캠페인 전체는 성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로부터 느껴지는 인상은 단순히 서둘러서 만들어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급조된, 확신 없이 추진된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TV 토론에서 해리스는 단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활기를 띠고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트럼프의 위협이었다. 이는 지난 9년 동안 미국 전문가들에 의해 가장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던 이슈였다. 해리스는 이 문제를 간결하고 단호하게 다루었다.
두 번째는 낙태 문제였다. 그녀는 이 주제에 대해 열정과 동정심을 동시에 보였고, 수사학적으로도 뛰어났다. 2년 전, 트럼프가 지명한 세 명의 대법관이 연방 차원에서 낙태를 합법화했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무효화했다. 그 결과, 여러 주에서 낙태는 불법이 되었다. 해리스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며 말했다. “범죄를 겪고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한 생존자가 이제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할 권리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도덕적입니다. 신념이나 종교적인 믿음을 포기할 필요 없이, 정부, 특히 도널드 트럼프가 여성에게 자신의 몸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바마와 클린턴이 좋아했던 단어 ‘혁신’, 해리스는 단 한 번만 언급
그러나 경제와 관련된 토론이 시작되자, 해리스는 뚜렷하게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택 소유, 재분배, 무역 등 경제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첫 질문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것이었을 때, 그녀는 소규모 기업을 정말 좋아한다고 빠르게 피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그녀의 어머니에게 소규모 사업을 운영하는 좋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회피의 기술을 설명하는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은, 그녀가 그 주제들에 진정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웹사이트에 게시된 경제 정책은 중구난방식으로 쏟아져 나오는 약속과 바이든 행정부의 성공에 대한 광범위한 일반론의 집합에 불과하다. 그녀는 좋은 것에 찬성하고 나쁜 것에 반대한다. 복잡한 아이디어는 없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정치인이 얼마나 무의미한 언급을 자주 하는지 측정할 수 있는 한 가지 객관적인 지표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혁신’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가 하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뿐만 아니라 클린턴 부부도 이 단어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혁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은행을 위한 경제 정책을 진보적이거나 심지어 급진적인 개념으로 위장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론인들도 혁신에 깊은 존경심을 보인다. 혁신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며, 그 비용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이 마법 같은 단어를 내세워, 우리 지도자들은 세금을 인하하고, 금융 시장을 규제 완화하며,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주고, 제약 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더 취약한 부문들을 파괴적인 경쟁에 노출시키는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다.
해리스 후보는 아직 ‘혁신’에 대한 애착을 완전히 증명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녀는 토론 중에 이 단어를 한 번만 언급했다. 그러나 상무부 장관인 지나 레이몬도는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한다.(5) 그녀는 이 주제에 ‘집착’하고 있으며 스타트업과 소규모 기업을 지원하면서 ‘억만장자와 대기업’에 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혁신이라는 단어가 세금 인하가 아니라 인상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단어 하나의 마법이 무한할 수 있다.
해리스 당선되면 뉴딜적 정책들은 사라질 듯
작년 8월 <뉴욕 타임스>에 실린 한 기사는 이 혁신 집착이 의미하는 바를 약간 드러냈다.(6) 그 기사의 필자인 벤처캐피탈리스트 리드 호프먼은 실리콘밸리에 대한 해리스의 이해가 그녀를 ‘진정한 친기업 선택’으로 만든다고 확언했다. '포퓰리스트'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아마존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하고, 일부 ‘상징적인’ 기업들을 비판하며 무역 전쟁을 촉발해 경제 활동을 방해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동안 주식 시장은 기록적인 성과를 거두었고, 투자자들은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물론, 반독점 법률의 적극적인 시행과 같은 정책들은 ‘혁신가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었지만, 호프먼은 혁신 지향적인 해리스 행정부가 이를 멈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해리스의 대통령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하지만 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비전적이고 활력 있는 요소들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트럼프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그가 2028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민주당의 포퓰리즘적 전통을 강조해야 할 유인은 사라질 것이다. 노동조합을 강화하고 독점에 맞서는 뉴딜적 정책들은 잊혀질 것이며, ‘혁신’이 주된 슬로건이 될 것이다. 군비 지출의 급증, 실리콘밸리에 우호적인 입법 구조의 발전, 그리고 민주당의 관심이 더 고학력 계층의 이익, 의견, 도덕성에 더욱 집중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민주당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워왔다. 다가오는 11월의 선거에서 카멀라가 승리한다면, 이는 최소한 트럼프 시대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아마도 현재로서는 그것이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글·토마스 프랭크 Thomas Frank
저서 『포퓰리즘, 바로 적이다! - 18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대중에 대한 혐오와 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의 역사』(아곤 출판사, 마르세유, 2021년)의 저자.
(*이 글은 미국 대선 전에 작성된 것으로, 미국 정치상황을 분석한 내용이어서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게재합니다.)
번역·박명수
번역위원
(1) 참조. 토마스 프랭크, 『Le Populisme, voilà l’ennemi!……포퓰리즘, 바로 적이다』, 아곤, 마르세유, 2021.
(2) 로버트 S. 맥켈벤, 「‘Liverals go back to the flag’ 40 years later」, <Musings & Amusings of a B-List Writer>, 2024년 8월 22일, https://robertsmcelvaine.substack.com
(3) 중상류층이었던 해리스 아버지는 스탠포드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어머니는 생물학 박사로 유명한 연방연구소에서 일했다. 해리스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등 진보주의적인 대학도시에서 성장했다.
(4) 세르주 알리미, 「Donald Trump prendra-t-il sa revanche? 도널드 트럼프는 복수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4년 9월, 「‘우리’의 검투사 트럼프는 복수를 할 수 있을까?」, 한국어판 2024년 10월
(5) 「Harris campaign : “I don’t think the American public are interested in the minutiae of the mechanism of how she’ll increase taxes on billionaires”」, <RealClear Politics>, 2024년 9월
(6) 라이트 호프먼, 「Why Silicon Valley should get behind Kamala Harris」, <뉴욕타임스>, 2024년 8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