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약탈하는가
전통 음식, 자수, 고고학 등은 시온주의 정치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문화적 전쟁의 일부이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요소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땅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며, 이를 통해 국가의 서사를 형성해왔다. 이 서사의 역사적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단순히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2017년 말, 영국 항공사 버진 애틀랜틱의 항공편에서 제공된 기내식 메뉴 중 하나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팔레스타인식 쿠스쿠스 샐러드’로 명명된 이 요리는 근동 지역에서 매우 인기 있는 전통 쿠스쿠스인 마프툴을 참조한 것으로 간단한 설명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맛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한 승객이 이 샐러드 이름에 불만을 품고, 항공사와 직원들을 “테러리스트를 지지하는 자들”이라 비난하며 해당 메뉴의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사진 이미지는 친이스라엘 단체들에 의해 확산되었고, 수많은 누리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일부는 이 샐러드가 사실 ‘유대인’ 또는 ‘이스라엘식’ 요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압력이 거세지자, 버진 애틀랜틱 항공사는 공식적으로 고객들에게 “불쾌감을 준 것에 대한” 사과를 표명했으며, 이후 메뉴에서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식’이라는 단어를 삭제했다.(1)
이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문화적 정체성 싸움의 단면을 보여주며, 특히 음식, 예술, 전통과 같은 분야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화적 차용(appropriation)과 관련된 논란을 상기시킨다.
팔레스타인 ‘후무스’요리가 이스라엘 미식으로 탈바꿈
2020년 아랍에미레이트와 이스라엘 간의 정상화 협정이 체결된 후, 에미레이트 항공사 플라이두바이는 양국 간 항공 노선을 개설했다. 이 항공사는 버진 애틀랜틱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
플라이두바이의 웹사이트에 있는 ‘이스라엘 관광 가이드’에서는 특히 이스라엘 요리로 후무스(병아리 콩 퓌레), 팔라펠(병아리 콩과 잠두로 만든 튀김), 므사바하(후무스의 변형)와 같은 “맛있고 정통적인 미식”을 소개하고 있다.(2) 그러나 이러한 음식들은 팔레스타인과 레반트 지역의 전통 요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3)
버진 애틀랜틱과 달리, 플라이두바이는 팔레스타인인들과 다른 아랍 국가 출신 사람들이 제기한 비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문화 박탈 논란을 심화시켰고,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자신들의 전통 음식이 이스라엘 문화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불만을 더욱 고조시켰다.
이 두 사례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상징적 차원에서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벌여온 문화적, 이념적 전쟁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주요 측면 중 하나로 영토적 차원, 식민지적 차원과 나란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상징적 정당성을 둘러싼 문화 패권 싸움은 19세기 말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의 ‘토착민’을 희생시키며 추진되었고,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정치적 시온주의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나탄 비른바움(1864~1937)과 테오도르 헤르츨(1860~1904)이 이론화한 것으로, 모든 현대 유대인들이 히브리인들의 후손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이에 따라 그들은 팔레스타인(후에 ‘이스라엘 땅’으로 개명됨)에 대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선조적 권리(先祖的權利)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고대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에 의해 대규모로 추방되는 바람에 팔레스타인이 원래 주인, 즉 유대인이 비울 수밖에 없었던 땅이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이후 이 땅은 아랍인들에 의해 점령되었으나, 이 ‘외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 땅을 방치한 채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시온주의가 빼앗은 팔레스타인의 집단 기억과 정체성
강제 추방된 한 민족이 하나의 종교, 문화, 그리고 모두 다 함께 돌아가서 지켜야 할 공동의 고향을 가지고 있다는 신화는 ‘시온주의’라는 식민지 프로젝트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유대인들의 ‘고향으로의 귀환’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 특히 다비드 벤구리온(1886~1973)은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에 대해 갖는 독점적 권리는 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 대해서는(4), 역사학자 슐로모 산드가 설명하듯, 그들을 ‘임차인’ 또는 ‘임시 거주자’로 간주해 그들의 땅에서 추방하거나 대체할 권리가 있다고 여겼다.(5)
비록 시온주의가 구축한 이러한 신화들이 이스라엘 및 다른 나라의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에 의해 해체되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국가의 이념적 기반과 국가적 서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6)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한 이 문화 전쟁은 역사, 전통, 예술뿐만 아니라 물질적, 비물질적 유산, 주거 환경, 자연 환경 등 다양한 영역을 포함한다. 즉, 한 민족의 집단 기억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이 전쟁의 대상이 된다.
이 지역에서 고고학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왜 팔레스타인의 유산이 텔아비브의 표적이 되고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아랍-이스라엘 전쟁 중 예루살렘 동부,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점령했을 때, 이스라엘은 1957년에 체결한 무력 충돌 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헤이그 협약(1954)을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의 국립고고학박물관을 장악했다.
‘팔레스타인 국립고고학박물관’이 ‘록펠러 박물관’으로 개명돼
이 팔레스타인 박물관에는 유명한 사해 문서를 비롯해 수많은 유물과 고대 서적들이 보관되어 있었지만, 박물관은 즉시 록펠러 박물관으로 개명되었고 정부 산하 기관의 감독하에 놓였다. 추정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1967년부터 1992년까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약 300만 개의 고고학적 유물을 압수했으며, 1995년부터 매년 약 12만 개의 유물을 추가로 압수한 것으로 추정된다.(7)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문화적 침해를 넘어,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정체성을 말살하고 이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유한 권리를 주장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안지구에는 6천 개 이상의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이 등록되어 있으며, 그중 약 200곳은 유대인 정착촌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수천 개의 유적이 서안지구를 둘러싼 분리 장벽 건설 과정에서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 이스라엘군은 대부분의 고대 유적과 유물에 대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으며, 해당 지역은 주로 유대인 또는 외국인 방문객들에게만 개방되어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들은 1967년부터 1994년까지 이스라엘에 의해 직업 활동이 금지되었으며, 현재는 제한된 지역에서만 허가를 받고 있다. 이들 허가는 주로 기독교 성지와 건물로 제한되어,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를 외부인들에게 설명할 기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8)
가자지구의 문화유산, 즉 350개 이상의 유적지, 건물, 그리고 역사적인 기념물이 기록되어 있는 이 지역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200곳 이상의 유적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거나 파괴되었으며, 이 중에는 7세기에 지어진 알-오마리 모스크와 12세기 성 포르피리 교회뿐만 아니라 가나안, 필리스티아(구약성경에 나오는 블레셋—역주), 이집트, 로마, 오스만 제국 시대의 유적들도 포함된다.(9)
또한, 2024년 1월 12일, 이스라엘 고고학청(IAA) 국장은 X(전 트위터) 계정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훔친 고고학적 유물을 이스라엘 국회의 한 방에서 전시한 사진을 게시했다.(10)
팔레스타인 전통의상 ‘타트리즈’, 이스라엘 패션으로 바뀌어
팔레스타인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과 재산을 차지하려는 이스라엘의 의도는 시온주의자들이 고안한 ‘비(非)아랍화’ 프로젝트에서 기인한다. 이는 1901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유대인 국가 기금(FNJ)’이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개척자’들에게 부여한 임무였다.
FNJ는 팔레스타인 땅을 매입하는 한편, 유럽에서 가져온 나무, 특히 침엽수를 심어 농업 정착촌을 확장하고 삼림을 조성하는 것을 지원했다. 이러한 삼림화 프로그램은 이민자들에게 익숙한 서구 환경을 재창조하는 데 기여했으며, ‘지나치게 동양적’으로 여겨진 자연을 대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문화적 탈취 전략은 의복 관습에도 영향을 미쳤다. 팔레스타인의 전통적인 수제 의상, 특히 타트리즈(tatreez)라 불리는 자수 예술은 수천 년 전 가나안 시대에 레반트 지역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로 농촌 가정에서 세대를 거쳐 전승되었다. 팔레스타인의 각 마을은 그 마을 고유의 색상, 기하학적 무늬, 동식물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디자인 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약속의 땅’에 대한 ‘고유한 권리’를 주장하며 이 의복 기술의 기원마저 자신들의 것으로 돌리고 있다. 성경 시대에도 이미 이러한 자수가 사용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이스라엘 내에서 타트리즈는 점차 이스라엘 문화의 일부로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최근 몇 년 동안 이 자수는 이스라엘의 패션 시장과 국제적인 패션계에서도 유행하게 되었으며, 텔아비브의 젊은 힙스터들이 입는 옷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스라엘이 탈취해 자신의 것으로 전유한 것은 자수만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상징이 된 전통적인 케피예(keffieh) 스카프 역시 패션 산업에서 이스라엘 것으로 변질되었다.
1936~1939년 아랍의 대규모 봉기 이후 팔레스타인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케피예는 2016년 이스라엘 디자이너 도리트 바로르(Dorit Baror)에 의해 여성복으로 재탄생했으며, 그녀의 부티크에서 고가로 판매되었다. 2021년에는 프랑스의 LVMH 그룹이 582유로에 이스라엘 국기 색깔이 들어간 루이뷔통 케피예를 판매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타르와 아쿠브를 위한 저항
버진 애틀랜틱과 플라이두바이 사건에서 보듯, 팔레스타인 음식 역시 이스라엘에 의해 차용되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뉴욕, 파리, 런던 등지에서 후무스, 타불레, 타히니 같은 요리들이 종종 이스라엘 요리로 둔갑 되며 레반트 지역의 기원을 지닌 이 음식들은 텔아비브의 문화적 선전 활동 탓에 그 본래 의미가 퇴색되었다.
자타르(타임이 주재료인 향신료 혼합물)와 아쿠브(카돈의 일종)도 팔레스타인 정체성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사례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이 야생 식물들은 봄철에 수확되며, 그 미식적 가치와 약리적 효과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77년과 2005년부터 이스라엘 당국은 이 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유로 이들의 수확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과학적 연구들은 이러한 결정에 반대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11)
이제 자타르와 아쿠브는 이스라엘 농업 기업들에 의해 재배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의 주요 고객은 아랍 소비자들이다. 야생 자생 식물인 타임과 아쿠브를 불법으로 채집하는 사람들은 무거운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며, 벌금을 지불하지 못할 경우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팔레스타인인은 부모와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여전히 이 식물들을 채집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예술가 주마나 만나의 영화 <Foragers(채집자들)>(2022)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 법의 부조리함과 그로 인한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세밀하게 다룬다.
이 영화는 또한 이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법에 맞서 싸우는 아랍인 채집자들의 저항을 보여준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는, 이스라엘 자연공원청(INPA) 소속 요원들에 의해 점령된 골란에서 아쿠브가 가득 찬 자루를 들고 있던 ‘불법’ 채집자 사미르가 체포되는 이야기가 조명된다.
이스라엘 법정에서 그는 한 판사 앞에 서게 되는데, 판사는 사미르가 카드론과 자타르를 불법으로 채집한 많은 ‘전과’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벌금을 지불하지 않아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 사미르는 단호하게 말한다. “2050년에도 나는 내 자식들과 손주들과 함께 또다시 붙잡힐 거예요. (...) 나는 내 조부모들의 길을 따를 겁니다.”
이 말은 팔레스타인인들이 100년 넘게 벌이고 있는 문화 전쟁 속에서 매일같이 보여주는 수모드(인내, 끈기) 정신을 요약해준다. 또한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억압과 탈취에 맞서 자신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저항을 상징한다.
글·올리비에 피로네 Olivier Pironet
프랑스 언론인. 주로 정치, 사회, 문화 분야에 대한 분석과 기사를 작성해왔다.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중동 문제 및 국제적 현안들에 대한 심층적인 글을 다루며, 문화적 전유와 정체성 문제에 대한 논의에 참여해 왔다.
번역·아르망
번역위원
(1) Michael Bachner, 「버진 애틀랜틱이 쿠스쿠스 설명에서 팔레스타인을 삭제」, <The Times of Israel>, 2018년 2월 13일.
(2) <이스라엘 여행 가이드>, Flydubai.com.
(3) Akram Belkaïd, 「후무스 전쟁」, <Manière de voir> n° 142, 『Ce que manger veut dire 먹는 것이 의미하는 것』, 2015년 8~9월. <마니에르 드 부아르> 한국어판 9호, 2022년 10~11월.
(4) “20세기 초, 팔레스타인의 인구는 약 75만 명이었으며, 이 중 약 80%는 무슬림, 12%는 기독교인, 8%는 유대인이었다.”
(5) Shlomo Sand, 『이스라엘 땅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성지에서 고향으로』, Flammarion, <Champs histoire>, 파리, 2014 (1판: 2012).
(6) “벤 구리온 본인도 팔레스타인인의 다수가 고대 유대인의 후손이며, 그들이 기독교와 이슬람을 받아들였다고 믿었다. 한편 소수는 유대교를 유지했다.” Tom Segev,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비드 벤 구리온의 생애』, Head of Zeus, 런던, 2019.
(7) Luma Zayad,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의 체계적인 문화 전유」, <DePaul Journal of Art, Technology & Intellectual Property Law>, 제28권, 2019, DePaul University, 시카고.
(8) 「팔레스타인의 문화유산과 이스라엘의 점령, 이스라엘의 식민지 점령하에서의 팔레스타인의 관광과 고고학」, 2020년 12월 16일 및 2022년 6월 20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협상 사무국(NAD).
(9) Clothilde Mraffko, Samuel Forey,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폭격이 유산을 파괴하고 기억을 지운다」, <르몽드> 2024년 2월 14일.
(10) 「이스라엘: 가자에서 훔친 유물을 의회에서 전시한 군대」, <Middle East Monitor>, 2024년 1월 22일.
(11) Rabea Eghbariah, 「자타르와 아쿠브를 위한 투쟁: 이스라엘 자연보호법과 팔레스타인 허브 채집 문화의 범죄화」, Oxford Food Symposium, 202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