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혼란에 빠진 쿡 제도

미국의 핵전략과 기후변화

2024-10-31     글렌 존슨 | 기자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는 깨끗한 백사장 해변. 옥빛 바다가 넘실대는 석호. 육지 끄트머리 산호초에 밀려와 부딪히는 파도. 이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환초, 산호섬, 화산섬 등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남태평양의 작은 국가 쿡 제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거의 잊게 된다. 기후변화가 일상적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주민들이 뉴질랜드와 호주로 도피하며, 지정학적 긴장으로 이 지역의 비핵화를 재검토하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

 

쿡 제도의 총리실 기후변화 담당자 셀린 다이어가 라로통가 섬 수도인 아바루아의 아담한 집무실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이 자리에는 다이어의 동료 샤를렌 아카루루와 테리토 스토리도 참석했는데, 두 사람은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 각각 청소년 홍보대사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모두 연안 침수, 해안 침식, 해양 산성화, 점점 강해지는 풍수해, 어류 산란지 소멸 등 기후 온난화로 끓어오르는 세계가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의 조상들은 별과 해류를 어떻게 읽는지 알았다. 현재는 자동기록식 검조기를 사용해 장애물이나 해수면의 변화를 파악하여 어부를 돕는다. 그러나 몇몇 섬에서는 인구 이동이 이미 피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특히 쿡 제도의 북부 군도(群島)는 온난화 영향으로 전통 생활방식과 문화가 파괴되고 있다. 다이어에 따르면 40년 전에는 이곳 주민들이 인접한 섬들의 수로에서 낚시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주민들은 점점 더 먼 바다로 나가야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이어서 다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이제 더 많은 노력과 힘을 들여야 한다. 모터보트, 알루미늄 소형 보트를 구입하고 연료도 구해야 한다. 즉,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정체성 상실이라는 문제도 발생한다. 그렇다고 고립된 섬에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다.”

 

뉴질랜드로 이주한 원주민이 쿡 제도 잔류 주민보다 앞서

라로통가 섬 주변의 산호초가 훼손되어, 와편모충이 달라붙는 조류(藻類) 번식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이 작은 독성 유기체는 먹이사슬을 거슬러 올라가, 결국 바닷가 주민들에게 ‘시구아테라’라는 중독증을 유발한다. 이 독소에 중독되면 마비와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해수면 상승은 묘지도 위협한다. 쿡 제도에서는 주민들이 집 근처에 가까운 고인(故人)들을 매장하는데, 프랑지파니(협죽도과의 관목)와 치자나무로 무덤을 장식하고 정성껏 가꾼다. “이 무덤들이 파도에 휩쓸려 가면 우리 국민들이 지도에서 지워지는 것과 같을 것”이라며 다이어는 안타까워한다.

초기 선교 지역에 자리한 ‘쿡 제도 박물관 및 도서관’은 지역 역사와 문화를 기념하는 곳이다. 커다란 아웃리거 보트(배의 측면에 지지대를 부착한 보트—역주)를 타고 이 해안에 도착한 최초의 폴리네시아 뱃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은 감탄을 자아낸다. 제임스 쿡 선장이 1773년에 남부 군도의 한 섬인 마누에를 발견했을 때 폴리네시아인들은 오래전부터 이미 이곳에서 살아왔고, 태평양은 무역 및 이주 경로가 사방으로 교차하는 곳이었다.

여기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전통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한다. 초기 선교사들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노래, 춤, 타악기 연주를 금지했다. 집단 기념행사는 교회 주변에서 거행되기 시작했다. 국외 이주는 문제를 악화시키는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 1970년대부터 뉴질랜드로 이주한 원주민 수가 쿡 제도에 잔류한 원주민 수를 추월했다.

 

심해(深海)에 매장된 수십억 톤의 망간단괴, 쿡 제도의 운명 좌우 

여기에 덧붙여 재정 압박도 상당하다. 경제가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역주)의 송금과 서비스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산업은 과일 가공, 직물 및 수공업 같은 소수의 부차적인 활동에 국한되었다. 또한 대외무역은 대체로 단일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며, 뉴질랜드의 보조금만이 쿡 제도의 무역적자를 메울 자금으로 쓰인다.

라로통가 섬의 아바티우 항구에 정박돼 있는 ‘아누아누아 모아나’(Anuanua Moana)는 모아나 미네랄스 소유의 해양조사선이다. 모아나 미네랄스는 ‘코발트 해저자원(Cobalt Seabed Resources)’ 및 ‘CIC 해양조사’와 함께 쿡 제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탐사 허가를 받은 세 회사 중 하나다. 탐사는 현재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 탐사의 모든 욕망은 어디로 향할까? 바로 망간단괴다. 감자 크기만 한 이 응결물은 수백만 년 진화의 결과이며, 값비싼 광물(코발트, 구리, 니켈, 망간 등)을 함유하고 있다. 쿡 제도의 심해저(深海低)에는 화석연료 퇴출과 ‘녹색혁명’에 필수로 여겨지는 이런 광물이 수십억 톤 매장돼 있다. 쿡 제도 총리 마크 브라운에게 이 사안은 명확해 보인다. 이 자원을 개발한다면 국가 경제는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고 기후변화의 실존적 위협에 대처하는 문제도 보다 용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쿡 제도의 브라운 총리는 2022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 기후변화 총회(COP27)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 바다의 해저에는 녹색혁명에 매우 유용한 천혜의 자원 광물로 뒤덮혀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은 녹색혁명 추진에도 우리 국가 경제에도 대단히 중요한 기회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그 기회를 버리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다수의 우리 태평양 국가에서 환경을 보호하고 지키는 문화는, 우리보다 수천 배 더 높은 비율로 이산화탄소를 끊임없이 배출하면서 모라토리엄을 강요하는 나라들보다 훨씬 뿌리 깊고 월등히 발전되어 있습니다.”

해저는 대부분 여전히 미개척 영역이며, 해양 시스템에서 단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환경보호론자들은 이 자원을 채굴했을 때 환경이 파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채굴은 트럭만큼 큰 기계를 이용해 해저를 긁어낸 뒤, 촉수처럼 생긴 거대한 파이프를 통해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 선박들로 긁어낸 단괴를 대량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수많은 심해 서식지가 파괴될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거대한 퇴적물 기둥이 형성되어 일부 생물들을 질식시킬 수 있다. 이 작업과 소음이 수중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 외교부 공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접근 방식은 매우 조심스럽고 모든 법적 틀이 마련되어 있으며, 우리는 예방 원칙을 매우 엄격하게 준수한다. 이 자원은 우리나라에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고, 우리는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자원을 채취할 것이다. 실현 가능한 일인가? 이익은 동등하게 배분될까? 지금으로서는 현장 자료가 부족하여 답하기 힘들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 광물이 국내는 물론 지역 및 국제사회 파트너들과 더불어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안보를 내건 미국의 비상한 관심 

그러나 누가 운영 감독을 할 것인가? 탐사 권한을 부여받은 광산기업 3곳은 그들이 도출한 결과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기업들은 이미 어마어마한 재정적 투자에 동의했기 때문에, 정부가 채굴을 철회하기로 최종결정한다면 이들이 군말 없이 물러나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해저 광산 채굴에 대해 지역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키리바시, 나우루와 통가는 결단을 내리기로 한 듯하고, 반면 투발루, 팔라우, 바누아투는 여전히 심각하게 의문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여하튼 미국인들이 투자를 빌미로 이곳에 들어오며 전쟁 기계를 함께 가지고 왔다. 늘 그렇듯이 탐욕적인 채굴과 전쟁 도구는 긴밀하게 움직인다. 2023년 9월까지 쿡 제도는 고소득 국가인 뉴질랜드와 연합 관계를 맺고 있으나 미국의 재정 지원을 필요로 했다. 미국은 쿡 제도의 주권을 인정하여, 2018년에 채택된 빌드법(Build Act, ‘Better Utilization of Investments Leading to Development 개발로 이어지는 투자 활용 개선법’의 약자)에 따라 쿡 제도에 대출 자격을 부여했다.

플로리다주 공화당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는 망간단괴 채굴에 막대한 투자를 요구함으로써 즉각 이 법을 이용했다. 그는 같은 해 10월 17일 미국 국제개발금융청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아시다시피 중화인민공화국은 악의적이고 폭압적인 행태로 세계 각지에서 전략적 광물 매장지를 발견하고 개발하는데 적극 개입하고 있습니다.”

쿡 제도의 배타적 경제수역 해저에는 꾸준한 수요 증가를 보이는 희토류를 포함해 필수 광물이 매우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안전하고 확실한 공급망을 시급히 구축해 미국의 경제적 안보와 번영을 보장해야 합니다.”(1)

 

미국이 구상하는 핵전략에 휘말린 남태평양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태평양에서 상호운용성을 달성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발표는 2022년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정의된 포괄적 지배 개념의 일환이었다. 최초로 호주, 일본, 뉴질랜드, 한국 등 우방국으로 확대된 이 회의는 중국을 분명하게 표적으로 삼았다. 당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개회식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어지럽히려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와 번영을 촉진하고 우리의 가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 단결해야 합니다.”

수십 년간 영국, 프랑스, 미국의 시험장 역할을 한 태평양 국가들은 1986년 라로통가 협약에 서명하여 비핵무기지대가 되기로 서약했다. 오늘날 워싱턴이 베이징과의 갈등 상황으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다.

원주민의 권리 수호와 더불어 핵전쟁과 핵무장에 맞서는 대규모 운동이 동력을 크게 잃은 것은 사실이다. 라로통가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미국은 명백히 자신들의 핵무기 배치를 위해 이 지역을 의미 있는 한 요소로 만들고 싶어 한다. 태평양 국가들이 핵실험 때 그랬던 것처럼 이 위협에 맞서 단결에 나설까?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쿡 제도 외교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중요한 파트너다. 우리는 지난 9월 워싱턴과 수교를 맺었고, 중국과는 수년간 교류해왔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에게는 딜레마가 없다.”

그러나 쿡 제도가 미국 진영을 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면 솔로몬 제도 같은 경우는 워싱턴의 보복을 초래할 위험을 무릅쓰고 지난해 베이징과 안보 협정을 체결했다.

쿡 제도의 브라운 총리는 2월 초 뉴질랜드 및 호주와 3자 간 국방 및 안보 파트너십을 구축하자고 요청했다.(2) 2021년 호주는 오커스 협약(Aukus, 미국·영국·호주 3자 간 외교 안보 협의체)을 통해 핵잠수함을 확보할 목적으로 총 3,680억 미달러를 지출하기로 약속하면서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프랑스와 체결한 잠수함 인도 계약은 파기됐다.

뉴질랜드 노동당 저신다 아던에 이어 크리스 힙킨스가 이끄는 이전 팀은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제 뉴질랜드의 새로운 극우 성향 정부는 드론, 킬러 로봇, 군집 지능 등의 자동화 전쟁 연구 개발에 집중된 ‘오커스 필러2’에 합류할 계획이다.

오클랜드 공대 태평양 역사학자 마르코 드 종은 이렇게 분석했다.

“미국에 있어 오커스 협약의 근본 목표는 위험의 외주화를 위해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태평양에 미국의 핵기지를 건설하는 데 호주를 참여시켜 핵 억제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오커스 필러2’는 차기 군비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한다. 다음 세대를 종말로 몰아갈 기계를 향해 비인간적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이처럼 태평양은 미국의 안보 구축에 날마다 한 발짝씩 더 들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태평양은 이미 오래전부터 선제 핵 공격 능력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지배하려는 그들의 계획에서 그 위상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글·글렌 존슨 Glenn Johnson
파리사클레대학(UVSQ) 공법학 교수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2023년 10월 17일자 서신, www.rubio.senate.gov 
(2) “Cook Islands and Australia celebrate 30 years partnership – Cook Islands call for trilateral defence and security arrangement 쿡 제도와 호주는 30주년 파트너십을 축하합니다. - 쿡 제도는 3자간 국방 및 안보협정을 요구합니다.” , 쿡 제도 외교이민부, 2023년 2월 1일, https://mfai.gov.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