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시리자’ 홀로 사람들과 맞서다

2012-10-14     코스타스 라파비트사스 외

그리스 신민주주의당(ND·이하 신민주당)과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이하 그리스사회당)의 보수정책은 그리스를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으로 구성된 ‘트로이카’의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유럽 지도층은 그리스 국민을 기아 상태로 몰아넣는 긴축 프로그램 이상으로, 그리스 제2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의 눈부신 약진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3월 그리스 부채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그리스는 단기적으로 한숨 돌리게 됐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공공부채는 여전히 견디기 힘들 것이다.(1) 이 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트로이카', 즉 EU·IMF·ECB는 또다시 예산 삭감을 요구했다. 2013~2014년 동안 110억~120억 유로를 감축하면 그리스가 1차 흑자(2)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 피해를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지 않다. 엘리트층은 거의 고통받지 않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임금 삭감으로 더욱 기진맥진해한다. 그리고 연금은 거의 약탈 수준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3)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어느 정도 보호받고 있다고 하지만 농민들 또한 막대한 조공을 바치고 있다. 중대한 정치적·사회적 위협은 바로 중산층의 붕괴이며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 공무원들이 그 중심에 있다. 지난 5월 6일 총선 직전, 항의가 격화되고 긴축 반대 투쟁이 큰 호응을 얻으며 파업과 시위, 시민 불복종을 촉발했다.

좌파연합, 그리스 제2의 정치세력으로

어쨌든 스탈린 동지는 무덤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공산당(KKE)은 그들의 영원한 임무 완수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노동자 혁명에 봉사하고 혁명의 기회를 엿보며, 군중들을 준비시킨다. 무엇보다 세이렌들이 좌파 승리의 노래를 듣지 않게 해야 한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 텔레비전에 출연한 공산당들은 모두, 자기들은 공산당이지 좌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리스에서 (1968년 이래) 가장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다양한 분파와 집합에서 탄생한 '부르주아 당' 시리자와의 연합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투표의 세 가지 쟁점 중 하나는 분명 좌파세력 중 하나가 우위를 차지하도록 결정하는 것이다. 16.8% 득표율을 보인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리더의 지위를 확보했고, 심지어 오랜 역사를 지닌 보수세력인 신민주당에 이어 그리스 제2의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신민주당과는 2%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투표권을 얻은 젊은 층과 실직자(무직자)층에서, 그리고 아테네 전역에서 시리자는 1위를 차지했다.

결과 발표 후 그리스공산당은 그래도 기본적인 유권자 지지(8.48%)를 받은 것을 기뻐했다. 여전히 혁명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오래전부터 기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농담은 이제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알레카 파파리가 공산당 대표는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늙은이처럼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 회사원, 빈곤해진 중산층을 결집시키며 대중 정당이 된 시리자를 바라보는 눈은 곱지 않다. 거대 미디어나 그들의 주구, 그리고 사회당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치른 지난 5월 6일 밤 내내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선 그들은 시리자 쪽 초대 인사들에게 놀랄 정도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신들은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하지만, 대체 어떻게 구성하겠다는 겁니까? 어떻게? 대체 어떻게요?" 하지만 네오나치 성향의 극우정당인 황금새벽당의 니콜라오스 미칼로리아코스가 연설에 앞서, 어미 변화가 잘못된 고대 그리스어로 '자리에서 일어나 줄 것'을 요구했을 때, 그들의 태도는 훨씬 더 관대했고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했다.

7% 가까운 표를 얻으며 황금새벽당은 눈부시게 의회에 입성했다. 2009년 신민주당에 표를 던졌던 투표자들의 7.5%가 황금새벽당을 지지했고, 그리스사회당을 지지했던 표의 4.5%가 황금새벽당으로 넘어갔다. 그리스사회당은 13.18%의 득표율로 3위에 올랐다(이 수치는 그리스 독재가 종식되던 1974년, 사회당의 역사적 지도자가 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를 후보로 내세우며 얻은 기록보다 떨어진 것이다).

치프라스,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인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정당들이 양해각서(4)를 지지하는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선거 이전과 같은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3석이 부족했다. 지난 5월 8일, 신민주당 단독 정부 구성이 어려워지자 대통령은 그리스 좌파의 새로운 거물 알렉시스 치프라스와 접촉했다. 38살의 카리스마 넘치는 치프라스는 먼저 시리자의 여러 세력 내에서, 그리고 사회 전체를 통틀어 반드시 필요한 정치인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스타일이 다소 마초적이며 포퓰리즘을 추구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압축될 수 있는 최근 동안 그가 야당에서 입지를 확보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지도자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탁월한 선거 캠페인을 벌였고, 다른 정당의 모든 지도자들이 연설에서 시리자의 제안을 거론할 정도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유로존과 EU에서 탈퇴하지 않으면서도 트로이카가 강요한 각서를 재협상하고 부채 일부를 청산하는 것이 그의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들이 따라주지 않는다. 물론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겠지만 공산당이 동의한다고 해도, 또 좌파의 세 번째 세력인 민주좌파(Dimar)- 시리자의 분파로 사회당에 가까운 정책을 지지한다- 의 지지를 얻는다고 해도, 마지막으로 좌파 정부 지지를 선언한 사회당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좌파 정부 구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스 선거법이 양당제를 유지하도록 맞춰 있기 때문이다. 내각 구성을 손쉽게 하기 위해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정당 단체가 전체 의석 300석 중 비례대표로 추가 50석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신민주당은 아티카 지역에서 시리자에게 돌아갔을 의석을 '훔쳐' 오면서 의석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됐다.

환경론자(3% 선을 넘지 못했다), 마오주의자, 레닌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공산당 내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분파를 포함해 모든 좌파 집단에게 손을 내밀었음에도 치프라스는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스는 곤경에 빠져 있고, 그리스인들은 6월 17일 2차 투표를 해야 했다.

신민주당과 시리자가 거의 나란히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보수파는 유럽 트로이카의 각서 이행과 긴축 내핍을 지지한다. 납세자들이 계속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5)를 거부한다고 생각하는 치프라스는 이런 선택을 거부하고 5가지 제안을 한다. 공공 분야에서의 해고 종식, 최저임금 480유로에서 700유로로 인상, 단체협약 정상화, 악화 상태의 일부 가계 부채 탕감, 이전 정부가 부가한 특별 주민세 폐지가 그것이다. 양해각서에 관해서는, 무효화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EU와 재협상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프랑스에서 지난 5월 6일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EU 내에서 지원에 관해 새로운 서광이 비치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해고 종식, 최저임금 인상, 단체협약 정상화?

하지만 당치 않은 희망이다. 5월 21일 파리를 방문한 치프라스는 올랑드도, 사회당 관계자들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스의 장뤼크 멜랑숑(프랑스 극좌파당 당수. 2012년 대선후보)'으로 비쳐졌기 때문은 아닐까? 환영 대신에 로랑 파비위스 신임 외무장관은 "그리스인들이 유로존에 남기 원하면서 그리스인들을 유로에서 탈퇴시키려는 단체에 지지를 표시할 수는 없다"(6)면서 그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그와는 반대로 다음날 올랑드 대통령은 1시간 동안 엘리제궁에서 에반젤로스 베니젤로스 그리스사회당 대표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스사회당은 신민주당과 함께 그리스를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투표 4일 전, 올랑드 대통령은 그리스에 "예산 정상화 조치를 계속할 필요성"을 상기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유로존 탈퇴는 피할 수 없을 것"(7)이라며 그리스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약속을 지킬 것을 상기시켰다.

6월 17일 신민주당이 29.66%를 득표하며 26.89%를 얻은 시리자에 승리를 거두자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유럽 지도자들과 유로그룹(8), IMF, 유럽시장은 크게 안심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신민주당 당수는 여러 인사들과 접촉을 거듭했다. 특히 투표에서 18%를 얻으며 세력이 약화된 사회당 대표 베니젤로스와 우파, 사회주의자, 중도좌파(Dimar)를 연합해 '연립정부'를 수립하려는 것이었다.(9) 그리스사회당은 내각에 직접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각서 조건들을 완화하기 희망하면서- "예산 적자 축소, 부채 관리, 구조 개혁 시행이라는 확실한 목표에 흠집을 내지"(10) 않으면서 "필요한 큰 변화"를 수행하기 위해 신임투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요직인 재무장관직은 일단 바실리스 라파노스 내셔널뱅크오브그리스(NBG) 총재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응급실에 입원해 6월 25일 사임했다. 그는 2001년 그리스의 유로 가입의 주역이자 파판드레우의 고문이기도 했다.

글•코스타스 라파비트사스 Costas Lapavitsas, 발리아 카이마키 Valia Kaimaki, 모리스 르무안 Maurice Lemoine

번역•김계영

(1) 민간 채권단이 보유한 총 2060억 유로의 채권에 대해 대략 1070억 유로의 부채가 탕감됐다. 그렇게 해서 묶여 있던 1300억 유로의 유럽 구제금융이 타개책을 찾았고, 임박했던 디폴트 위험이 늦춰졌다.
(2) 국채 원리(元利) 지불 이전의 흑자 예산 상태.
(3) 2010~2012년 국민총생산은 20% 가까이 누적 하락했고, 실업률은 25%에 가깝다.
(4) 이전 정부와 ‘트로이카’ 사이에 체결된 구제금융 합의서.
(5) 장 가드레, ‘도대체 무슨 빚이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호.  
(6) <유럽1>, 2012년 5월 21일.
(7) 그리스 텔레비전 채널 <메가>, 2012년 6월 13일.
(8) 유로존 회원국 재무장관들의 비공식 월례회의.
(9) 우파, 사회당, 중도좌파의 세 정당 단체의 득표율은 48%밖에 안 되지만 1위 득표 당이 50석의 비례대표 프리미엄을 차지하는 선거법 덕분에 전체 의석 300석 중 179석을 차지해 다수당이 된다.
(10) 세 정당 단체의 정책 기본 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