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와 수탈의 땅, 필리핀

2012-10-14     필리프 르벨리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농민들은 일찍이 이사벨라주의 산마리아노시 일대에서 사탕수수밭을 본 적이 없었다. 루손섬 정중앙에 솟은 산악지대 이사벨라주의 다른 도시들이라고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네그로스섬이나 민다나오섬에 진출한 사탕수수 생산업체에 감정평가를 의뢰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상자 기사 참조). 그러던 산마리노시에 오늘날 연둣빛 사탕수수 물결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강을 낀 도시 끝자락에는 그린퓨처이노베이션(GFII) 에탄올 공장도 우뚝 서 있다.

공장 소유주는 일본 기업 이토츠와 필리핀·대만 자본이 손잡고 설립한 합자회사다.(1) GFII 사업은 투자금 1억2천만 달러가 투입되는 필리핀 최대 재생에너지 생산 프로젝트다. 매년 에탄올 5400만ℓ를 제조하고, 사탕수수 찌꺼기 버개스(Bagasse)를 재활용해 19메가와트(MW) 규모의 전력 생산을 목표로 출범했다.

2006년 12월, 시중 판매 연료에 일정 비율의 에탄올 혼합을 의무화한(처음 5%에서 시작해 2011년 이후 10%로 확대) '바이오연료법'(Biofuel Act)이 통과됐다. 이에 바이오연료 시장이 확대되리란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이듬해인 2007년 GFII가 설립됐다. 물론 바이오연료 틈새시장에서 GFII가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선 연간 3600만ℓ의 에탄올을 생산하는 산카를로스바이오에너지주식회사가 필리핀 최대 생산업체로 군림하고 있다. 일본과 필리핀 기업들이 합작해 설립한 퍼시픽바이오필드홀딩도 루손섬 북쪽에 있는 일로코스노르테주에 40만ha의 토지를 확보해놓고 있다.

바이오연료법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려면 매해 4억4천만ℓ의 에탄올을 생산해야 하지만 현 수준으론 어림도 없다. 이에 정부는 바이오연료 개발사업을 출범시키고, 사업 운영을 '필리핀농업개발통상공사'(PADCC)에 맡겼다. 농업부 산하 기관 PADCC는 "투자자들이 농공산업 관련 대형사업을 추진하면서 겪는 법적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주거나 필요한 물자를 지원"(2)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물론 사업에 필요한 토지 확보도 PADCC가 해야 할 역할이다. PADCC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가용토지'로 간주되는 토지는 200만ha로 집계된다. 가용토지란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유휴지(Idle Land), 폐지, 한계지(심지어 자연공원 가장자리에 자리한 필지도 한계지로 취급한다)를 모두 아우른다. 이처럼 용지 정의가 모호한 것은 결코 우연이라 보기 힘들다. 그 덕에 가용토지로 분류되는 토지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박'을 위해 부정도 서슴지 않는 대지주들

산마리아노시에 자리한 GFII는 원료 공급을 위해 반경 30km 내 사탕수수밭 1만1천ha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결코 무리한 계획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역 행정관 알렉산드르 우위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그는 "산마리아노시 토지 대부분이 유휴지"(3)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정이 달랐다.

엘 필라 마을에 사는 농민 헤레미아스 조비토가 말했다. "작년까지 5ha에 달하는 옥수수밭을 경작했다. 추수가 끝나자 에탄올 사업자들이 트랙터를 몰고 나타났다. 추수 뒤니 당연히 밭이 비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옥수수가 자라야 할 그의 땅에는 사탕수수가 심겨 있었다. 사실 조비토의 사례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산마리아노시에서는 마을 땅 대부분이 에탄올 사업에 동원됐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토착민 선조의 땅도, 시에라마드레 자연공원의 삼림보호 지대도 마찬가지였다.

"산마리아노시에서는 GFII의 수요 증가로 토지시장이 활황을 맞았다. 그로 인해 지역 유지들이 대박 기회를 좇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뛰고 있다." 농민단체 '다가미'(현지어로 '우리 땅'을 의미)의 자문의원으로 활동 중인 '진정한 농업개혁을 위한 센터' 소장 시타 마나구엘로드가 말했다. "대지주나 부유한 상인들은 영세농의 땅을 탈취하기 위해 서류를 위조하거나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영세농은 자자손손 경작해온 땅에 대해 제대로 된 땅문서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이 유휴지 분류를 담당하는 농업부 관리들도 대충 자료만 훑어볼 뿐, 실제로 현장 조사를 나오는 법은 없었다.

정부는 1987년 헌법을 유린해가면서까지 농공산업용 토지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헌법 제18조 22항에 따르면, '유휴지나 폐지를 정부가 수용하는 경우 해당 토지는 농지개혁 수혜 대상자에게 나눠주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마나구엘로드가 탄식하며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영세농이 아닌 외국인 투자자에게 토지를 제공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사벨라주는 국내 최대 옥수수 생산지이자 제2의 쌀 생산지이다. 쌀과 옥수수는 필리핀인의 주식이다. 하지만 내수를 충족할 만큼 충분한 생산이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 필리핀은 오늘날 세계 최대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산마리아노에서는 에탄올 사업에 반기를 든 저항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2011년 2월 인근 마을에서 온 수백 명의 시위대가 GFII 사무소 앞에서 거리행진을 벌였다. 같은 해 8월 엘 필라 마을에서는 누군가 GFII 보유 트랙터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결국 농민단체 다가미의 주도로 결집한 농민과 토착민들은 GFII에 부당하게 탈취당한 토지를 돌려받기에 이르렀다. 그로 인해 GFII는 애초 계획한 농장 규모를 1만1천ha에서 6천ha로 하향 조정해야 했다. 8월 말 GFII는 산마리아노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공장이 가동에 들어갔지만, 금세 악취를 동반한 매연 방출과 유독성 폐기물 하천 방류 등 각종 환경법을 위반한 혐의로 덜미가 잡힌 것이다.

"개발이 이뤄져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민다나오섬에서는 필리핀-사우디 기업 '극동농업투자회사'(FEAICO)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출할 쌀·옥수수·바나나·파인애플을 생산하기 위해 7만8천ha 토지에 대해 25개월간의 임대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산마리노와 달리 이곳에서는 거센 항의 물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의 주도로 필리핀 기업 아즈트로펙스와의 합작회사인 FEAICO가 설립됐다. 필리핀 정부도 적극 지원에 나섰다. 필리핀 정부는 중동,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자국 노동자 2만 명이 거주 중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농업 부문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의 전초기지로 삼기를 원했다. 특히 무슬림 인구가 많은 민다나오 지역에서 컨소시엄 FEAICO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조가 무슬림 사회에서 누리는 막강한 인기 덕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FEAICO는 민다나오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소속 반군들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MILF 반군들은 무슬림 투자자 유치에 우호적 입장을 표명했다. "발전 뒤에 평화가 찾아오는 법이다. 그것이 순리다. 일단 경제를 발전시켜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4)고 필리핀 기업 아즈트로펙스 대표 로즈 시라가 말했다.

하지만 계획된 규모의 농지를 확보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정부 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이수란시에서는 FEAICO가 바나나 경작용으로 토지 1500ha를 임대하기 원하자, 농업개혁부에서 일하는 관리 로저 바라스키아가 사업 홍보를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외국인 투자자 유치는 지역 농민에게도 좋은 기회다. 토지감가삼각비용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여기서 토지감가삼각비용이란 지역 농민이 정부에 지불해야 할 돈을 의미한다.

술탄쿠다라트주에 속하는 이 도시에서는 현재 한 농가가 평균 1.5ha의 땅을 경작하고 있다. 농지개혁의 일환으로 각 농가가 배분받은 토지다. 하지만 그들이 이 땅의 법적 소유주가 되려면 필리핀토지은행(LBP)에 '감가삼각비용'이라 불리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문제는 그럴 경제적 능력이 되는 농민이 드물다는 것이다.

바라스키아는 "농민들이 토지를 임대하면 1ha당 연간 8천 페소(140유로)를 받을 수 있다. 그 가운데 50%를 토지은행이 채무변제 명목으로 떼가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런 방식으로 농민들은 경작권 없는 토지 소유주가 될 것이다. 그리고 25~50년에 걸친 단일집약경작이 끝나서야 도로 토지를 반환받는다. 비정부기구 종합농촌개발재단(IRDF) 대표 아르제 글리포는 "사실 이같은 토지증서 배부작업은 투자자가 토지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편이 돼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급 호텔로 바뀌고 있는 오래된 해변 묘지

FEAICO는 주민 관리를 위해 부동산·인력 대행업체 '바드룬'을 설립했다. 2009년부터 이 업체는 영세농 수백만 명과 계약 체결 즉시 토지 경작을 중단하는 규정이 포함된 임대 계약을 맺는 데 참여했다. 대신 토지를 임대한 농민에게는 농업 일자리 고용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바라스키아가 "1ha당 일자리 하나다. 1500ha를 임대하면 15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라고 환호하며 말했다. 바드룬과 거래한 농민들은 자신의 땅을 빌리려는 임차자가 중동 출신의 투자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정확한 회사명은 들을 수 없었다.

업체는 가가호호 농민들을 방문하며 선물 공세를 퍼붓고 감언이설을 쏟아냈다. 게다가 이 방법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FEAICO는 지역 행정 당국과 종교지도자들의 힘까지 총동원했다. 이런 주도면밀한 작전은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라길라이얀 마을(이술란시)에 사는 농민 아베딘 다쿠칸이 "물론 지역 주민들은 반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술탄(이슬람 종교지도자)이 나서는데 주민들이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것이 무슬림 세계의 관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걱정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우리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1ha에 달랑 1개의 일자리만 제공된다면 아들 넷의 운명은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계획한 사업은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시작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임대 계약에 따라 더 이상 토지도 경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농민들은 돈줄이 말라붙었다. "그들은 계약서만 가져가고 우리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이후 그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대체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라길라이얀 마을에 사는 술탄 부인인 바이노리아 시니엥가얀이 몹시 난처한 기색으로 말했다.

사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연구원 벤 셰퍼드가 지적하듯 "외국인 투자자 유치 열풍에서 시작된 대규모 토지 임대사업 대부분은 아직 준비 단계에 있다."(5) 현지 주민들은 법적 절차를 거쳐 실제 경작에 이르기까지, 왜 수십 년에 달하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때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유야 어쨌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영세 농민에게 돌아가는 실정이다.

대만·한국행 해양 직항로가 열려 있는 심수항(Deep Water Port)이 자리한 필리핀 오로라주 카신구란에서도 오로라주태평양에코존&자유항(APECO)이라 불리는 대규모 경제특구 조성사업이 벌어지면서 지역 토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2007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정권이 첫 삽을 뜬 이 사업에는 애당초 총 500ha에 달하는 토지가 소요될 것이었다. 하지만 2010년 베니그노 아키노 정권이 들어서면서 특구 조성 면적은 무려 1만3천ha로 확대됐다. 부동산개발업자들도 주변에 사업 확장에 대비한 가용 토지가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정부는 이른바 '에코존'이라 불리는 경제특구(SEZ)의 투자자 유치를 위한 중요한 정책 수단(마킬라(수출가공지역·EPZ) 등의 남미정책, 혹은 오늘날 여전히 인도에서 실시되는 투자자 유치 정책과 유사)으로 삼고 있다. 2012년 무역산업부 산하 필리핀경제자유구역관리청(PEZA)에 등록된 기업 수는 2천 개가 넘는다. 경제구역(에코존)은 350곳에 달하고, 의류 제작에서 농업, 전자공학, 자동차 제조, 관광(의료관광 포함), 통신, 은행, 콜센터에 이르기까지 유치 분야가 광범위하다.

PEZA 등록 기업에는 자유구역 입주시 간단한 절차만 거치도록 배려한다. 6~8개월간의 면세, 기계·설비 수입에 대한 면세 등 다양한 세제 혜택도 누린다. 게다가 투자자는 언제든 본국으로 자본을 송환할 수 있고, 정권이 교체돼도 해당 권리를 계속 보장받는다. 경제특별구역은 이른바 '특수구역'으로 간주해 자체 경찰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비록 명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무노조·무파업'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몇 년 전부터 필리핀 정부는 특히 농공산업과 관련한 SEZ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상품 선적이 편리한 항만 인접 지역에 잠재적 투자자 수요를 충족할 만큼 드넓은 규모의 경제특구를 조성하는 것이다."(6)

카시구란 자유경제구역 조성과 관련해, 현재 한국 정부와 4개 대만 기업이 자유항·컨테이너선 터미널 건설과 양식장·해산물가공산업센터 조성 등의 투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7) 물론 이외에 국제공항, 관광단지, 코코넛 공장 등의 분야도 사업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지역민이 이구동성으로 이 사업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5개 마을이 APECO 사업 대상지로 지정될 것이다. 그러면 주민 수천 명이 타지로 이주하고, 어민과 민간농이 생계수단을 잃게 될 것이다. 또 고급 호텔을 짓기 위해 토착민 묘지가 파괴될 것이다. 항만과 양식장 건설은 망그로브 숲과 해양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민들이 특구 조성에 반대하는 것은 비단 사회적·환경적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농민단체 '파마나'(8), 환경운동단체, 가톨릭 교계 등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일부 반대 주민들은 사익을 위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데에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 예로 2007~2010년 특구 조성에 지출된 예산은 모두 4600만 달러였고, 2012년에도 이미 750만 달러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9) 반대운동은 필리핀 수도에서 'APECO에 저항하라' 운동과 합류해, 경제특구사업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대법원 위헌심판 제청으로 이어졌다.

민다나오 지역에서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토지 임대가 무력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법이 되고 있다는 게 로즈 시라 아즈트로펙스 대표의 견해다. 반면 카시구란에서는 공산계 반군 신인민군(NPA)과의 전면전이 제48대대 주둔과 탄압의 명분이 되어, 사업 반대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농민단체 파마나의 대표 엘머 데이슨은 다음과 같이 성토했다. "군인들은 우리가 NPA에 가담했다고 몰아세운다. 그런 식으로 정부사업에 반대하는 자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거나 위협하거나 심지어 폭행까지 한다." 2010년 6월 26일 호세 프란시스코 탈라반 신부의 저택에 수류탄이 투척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 주동자는 비아노안(신부가 사는 마을의 이름)에서 활동 중인 '반공산주의 연합'이라고 불리는 민병대 조직원들이었다. 한편 코조 마을에서 농민단체 파마나가 홍보 집회를 열었을 때도, 느닷없이 군인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토론 참여에는 전혀 관심 없이, 그저 집회장 구석에 조용히 앉아 (프랑스 기자를 포함해) 참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했다. 그것이 무언의 경고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키노 대통령은 2010년 대선전 당시 대규모 토지임대 계약 및 협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몇몇 지지 단체들은 PADCC의 해체를 요구했다. 글리포는 "하지만 현재로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현 정부도 과거 정권처럼 외국인 투자가 필리핀 발전과 고용 창출을 위한 수단이라고 판단하기는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내몰리다 못해 저항에 나선 철거지역민

정부가 눈독 들이는 것은 비단 농지만이 아니다. 정부는 필리핀 수도의 한 교차로 요지 340ha에 걸쳐서 사무실, 상업센터, 주거지를 건설하는 '케손시티-중앙 비즈니스 구역'(QC-CBC) 조성사업을 벌이며, 이 지역을 필리핀 최대 비즈니스 거점으로 개발할 꿈에 잔뜩 부풀어 있다. (세계은행의 지원까지 받은) 이 사업의 일환으로, 부동산그룹 아얄라는 필리핀주택청과 29ha의 토지 개발을 위한 민관 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문제는 개발 예정 지대에 산로케 서민 6천 가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향 땅을 빼앗아가더니, 이제는 이곳 집마저 허물려 한다. 그것도 거물 사업가가 사용할 고층 빌딩을 짓기 위해서 말이다!" 산로케 '재개발 반대 연합' 대변인 에스트릴리타 바가스바스가 개탄하며 말했다. "정부와 아얄라는 우리가 땅값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이 땅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빌려주면 토지 수익성을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민다나오에서 바가스바스는 쌀 경작과 야자나무를 재배하며 살았다. 하지만 땅을 빼앗긴 뒤로는 일자리를 찾아 마닐라까지 흘러 들어왔다. 그녀는 110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밀집한 거대도시 마닐라에 가까스로, 빈 공간을 비집고 얼기설기 들어선 무허가 빈민촌에 겨우 살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26년을 살았다. 다른 산로케 주민들도 그녀처럼 대부분 가난과 토지난으로 인해 농촌 지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었다.

2002년 정부는 빈민촌을 재정비하고 무허가 건물을 합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5년 뒤 비즈니스센터 조성사업이 시행되면서 정부의 약속은 공염불로 돌아갔다. 정부 당국이 내놓은 대책이라곤 그저 마닐라 북쪽 20여km 떨어진 외곽 지대 몽탈반 지구에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방안이 전부였다. 사실 대다수의 산로케 주민은 인근 상점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산로케를 떠나는 것은 그들에게 곧 실직을 의미한다. 그나마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에도 높은 교통비 부담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그들이 이주할 몽탈반은 상습 침수 지역에 지진이 빈번한 지대이기까지 하다.

결국 주민들은 저항에 나섰다. 2010년 9월 주민들은 정부의 철거 시도를 철저히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무력 충돌이 빚어졌다. 이후 주민들은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24시간 경계태세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정부의 압력은 거세지고 있다. 2012년 3월 2일 또 다른 공동체 대표 조시 로페즈의 집에 아얄라 그룹 보안요원들이 난입해 폭행과 살해 협박을 자행했다. 이제 주민들은 언제든 자신도 방화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 카다마이 도시빈민퇴치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제이슨 디마야가는 "불법 방화는 이런 종류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흔히 동원되는 수법"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화재보호국에 따르면, 2011년 총 851건의 화재사건이 집계됐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이 철거 예정지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글•필리프 르벨리 Philippe Revell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필리핀 바이오에탄올 에너지 투자회사, 대만 기업 GCO 홀딩컴퍼니, 일본 기업 JGC.
(2) Ceres P. Doyo 인용, ‘Human face of food sovereignty’, <Philippine Daily Inquirer>, 마닐라, 2009년 7월 30일.
(3) ‘P6-billon bioethanol facility to rise in Isabela’, 2011년 10월 11일. www.philstar.com.
(4) Tania Salerno 인용, ‘Transnational land deals in Mindanao: Situating Ambivalent Farmer Responses in Local Politics’, Land Deal Politics Initiative, 로테르담, 2011년 4월.
(5) Ben Shepherd, ‘Redefining food security in the face of foreign land investors’, Centre for non-traditional security studies, 싱가포르, www.rsis.edu.sg.
(6) ‘Agri-business ecoomic zones’, 2009년 5월 14일, www.agriculture-ph.com.
(7) ‘Taiwanese companies commit investment in Aurora ecozone’, 2011년 12월 3일, www.aurorapacifics.com.ph.
(8) ‘파마나’와 ‘다가미’는 필리핀 농민운동(KMP) 계열의 지방 조직이다.
(9) ‘Angara using underhanded tactics to get back at critics of ecozone’, 2011년 9월 27일, http://opinion.inquirer.net.


대지주들의 나라

페르디난드 에드랄린 마르코스가 실각한 뒤인 1987년 신헌법이 제정되면서 필리핀에서는 본격적으로 민주주의 표현의 장이 활짝 열렸다. 하지만 독재자 축출에 공헌한 좌파  계열의 민중단체들은 여전히 정치무대에서 배제됐다. 대신 지주 계급 출신의 경제 엘리트층이 상원의원, 하원위원, 주지사 등의 자리를 독식했다. 그들은 강도 높은 사회구조 개혁의 시도를 모두 철저히 봉쇄했다. 그로 인해 오늘날 필리핀 사회는 심각한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필리핀의 각 주에서는 1988년 농지개혁(포괄적 농지개혁 프로그램·CARP)의 일환으로 200만여ha의 토지가 농민들에게 배분됐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대지주들이 거의 봉건제후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한다.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극단적 예가 암파투안 학살 사건이다. 2009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의 지지자인 한 지역 정치가는 그와 함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정적의 부인과 딸, 그리고 32명의 언론인을 포함해 모두 57명의 암파투안 지역 주민을 학살했다.

2001~2010년, 대통령 친인척 연루 비리사건, 쿠데타 시도, 심각한 인권 유린(1) 등으로 점철된 두 번의 임기 동안, 아로요 정권은 군부에 상당 부분을 의존했다. 미국의 대테러전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아로요 대통령은 수년 동안 공산당 계열 반군조직인 신인민군(NPA), 이슬람 저항조직인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이나 아부 사야프 등의 무력투쟁에 대해, (협상보다는) 무력강경책으로 대응했다.

2010년 베니그노 아키노가 필리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대선전 동안 그는 전직 대통령이던 모친 코라손 아키노 여사의 후광 덕을 톡톡히 봤다. 또한 부정부패와 빈곤이라는 골칫거리를 해결하려는 단호한 의지 덕분에 수많은 온건좌파의 표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명문가 자손인 그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나라를 개방하고, 저부가가치 하청산업과 광물·농산물 부문 수출산업을 주축으로 한 경제특별구역(SEZ)을 확대하는 등 전직 대통령들이 표방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아키노는 빈곤 퇴치를 위해 취약 가정에 매월 최대 30여 유로까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건부현금지급사업’(CCT·Conditional Cash Transfer)을 약속했다. 하지만 체 데 로스 레이예스 기자에 따르면, “이 사업은 전시 효과를 노린 선심성 공약”에 불과했을 뿐, 실질적 빈곤해소 정책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CCT사업을 관리하는 컴퓨터에 극빈곤층에 관한 자료가 누락되는 바람에 결국 극빈곤층은 사업 대상자에서 제외됐다”고 했다.(2)

오늘날 필리핀 전체 인구 9700만 명 중 26.6%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전체 국민의 60%가 거주 중인 농촌 지대에서는 이 수치가 무려 38%까지 치솟는다. 최근 사회복지·개발부가 실시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사람도 필리핀 전체 인구의 무려 21.5%에 달한다. 현재 빈곤과 토지난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가정이 대도시 외곽으로 몰려드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영양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은 지역은 수도 마닐라인 것으로 조사됐다.

(1) 필리프 르벨리, ‘필리핀인들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그리워할 지경이다’, 다비드 캉루, ‘쿠데타를 반복하는 필리핀인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6월호, 2006년 6월호.
(2) Che De Los Reyes, ‘Hype & rush mask gaps in CCT rollout’, Philippin Center for Investigative Journalisme, 케손시티, 2011년 5월 29일, http://peij.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