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2024년 인상 깊은 영화, 잊지 못할 배우

2024-12-02     윤필립(영화평론가)
영화

지난 11월 20일 제4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이하 영평상) 시상식이 KG타워 KG하모니홀에서 거행됐다. 시상식에는 남녀 연기상 배우들과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 수상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남녀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파묘>의 이도현 배우와 <화란>의 김형서 배우는 각각 군복무와 공연 일정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은 미국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 수상한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올해 수상 리스트에서 이른바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물론 영평상에서 저예산 독립영화가 한번도 빠진 적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영평상의 핵심부에 늘 상업영화가 있었음은 명백하다. 이런 이유로 <괴인>(2024, 이정홍 감독)의 최우수작품상 수상을 비롯하여 여러 독립영화들이 주요 부문을 휩쓴 올해 영평상은 예년에 비해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영평상의 기조가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언급이 느는 이유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은 여느 영화 시상식과 달리 후보자 지명(노미네이션) 없이 진행되는 영평상의 특성상 대중들에게는 시상 결과만 공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수상 결과만 놓고 본다면 영평상이 독립영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수상 리스트 선정과 수상자(작) 결정을 위한 예심과 본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심사 과정에서는 여전히 상업영화들이 막강한 힘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제44회 영평상 최우수작품상은 최종적으로 영화 '괴인' 제작위원회의 <괴인>에게 돌아갔으나 본심에서는 쇼박스, 파인타운 프로덕션의 <파묘>가 <괴인>과 경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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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서는 제44회 영평상 심사 과정에서 주목받았던 작품들과 영화인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최우수작품상에는 예심을 거쳐 이정홍 감독의 <괴인>,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괴인>이 <너와 나>와 <파묘>를 차례로 제치고 수상작이 되었다. 또 감독상 부문에는 <거미집>의 김지운 감독, <너와 나>의 조현철 감독,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 <장손>의 오정민 감독, <파묘>의 장재현 감독이 예심에서 가장 많은 득표수로 최종 후보로 올랐다. 이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본심 투표에서는 김성수 감독이 오정민 감독을 한 표 차로 제쳤으나 두 감독 모두 득표수가 본심 참석자 과반에 미치지 못하여 결선 투표가 진행됐고, 그 결과 김성수 감독이 최종 수장자가 되었다. 신인감독상 부문은 예심을 통해 <핸섬 가이즈>의 남동협 감독, <괴인>의 이정홍 감독, <장손>의 오정민 감독, <너와 나>의 조현철 감독, <잠>의 유재선 감독이 최종 후보가 되었다. 본심 투표에서는 다섯 명의 감독이 고르게 득표하여 재투표가 진행되었고, 2차 투표 결과 <너와 나>를 연출한 조현철 감독이 <잠>을 연출한 유재선 감독을 한 표 차이로 제치고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

기술상 부문에서는 <거미집>, <장손>, <잠>(이상 미술), <파묘>(시각효과)가 예심을 통과했으며 본심 결과 미술의 <거미집>으로 결정됐고, 각본상은 <잠>, <콘크리트 유토피아>,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거미집>의 경합 속에서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최종 승자가 되어 김다민 감독이 수상자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각본상처럼 음악상 또한 <탈주>가 <거미집>, <빅토리>, <파묘>, <잠>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밀어내고 달파란 음악 감독이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스태프상 가운데 가장 치열하고도 극적인 부문은 촬영상이었다. 예심을 거쳐 <거미집>, <세기말의 사랑>(임선애 감독), <서울의 봄>, <장손>이 최종 후보에 올라 본심 투표에 돌입했고, 이 가운데 <장손>이 <세기말의 사랑>을 한 표 차이로 이겼으나 두 작품 모두 과반 특표가 이뤄지지 않아 결선투표에 돌입했다. 결선투표 직전에 이뤄진 지지발언에서 <장손>은 롱테이크 촬영 기법이, <세기말의 사랑>은 감각적 촬영 기법이 주목을 받았으며, 투표 결과 1차 투표를 뒤집고 <세기말의 사랑>의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 감독이 최종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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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연기상에서 남우주연상 부문에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이병헌 배우, <파묘>의 최민식 배우, <핸섬 가이즈>의 이희준 배우, <서울의 봄>의 황정민 배우가 최종 후보로 올랐는데 이희준 배우가 모든 배우를 압도하고 최종 수상자가 되었다. 이희준 배우는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주연상 부문에서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의 호연으로 평론가들이 주목하기 시작했고, <오문희>(2020)를 통해 장편 영화 주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남우주연상과 달리 여우주연상 부문은 다소 치열했다. 이미 여러 시상식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파묘>의 김고은 배우와 올해 가장 눈부신 활약을 보인 <울산의 별>(정기혁 감독), <정순>(정지혜 감독)의 김금순 배우 그리고 대중에게는 덜 알려진 작품임에도 묵직한 연기로 다른 후보들을 압도한 <그녀에게>(이상철 감독)의 김재화 배우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본심 1차 투표에서는 <파묘>의 김고은 배우가 <그녀에게>의 김재화 배우를 한 표 차이로 밀어냈으나 두 사람 모두 과반 득표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지발언과 함께 결선 투표가 진행되었다. 지지발언에서 김고은 배우에 대해서는 작품과 강한 결속성과 연결성이, 김재화 배우에 대해서는 캐릭터의 일상에 녹아드는 내밀한 연기의 어려움이 강조되었고, 그 결과 1차 투표 결과를 뒤집고 <그녀에게>의 김재화 배우가 최종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에 대해 정재형 평론가는 "연기상의 경우 모든 후보의 연기가 출중하기에 연기를 잘한다 어떻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연기가 얼마나 작품 속에 잘 녹아드는가가 결정적인 요소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남녀조연상 부문 또한 지지발언과 결선투표가 이뤄진 치열한 부문이었다. 먼저, 남우조연상에는 여러 후보 가운데 <탈주>의 구교환 배우와 <빅토리>의 현봉식 배우가 1차 최다 득표로 결선투표에 부쳐졌고, 그 결과 현봉식 배우가 네 표 차이로 구교환 배우를 제치고 생애 최초 연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투표 과정에서 <탈주>라는 작품에서 과연 구교환 배우가 조연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이에 대해 그를 이제훈과 함께 투톱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우조연상 부문에는 <시민덕희>의 염혜란 배우, <거미집>의 정수정 배우, <세기말의 사랑>의 임선우 배우, <리볼버>의 임지연 배우가 예심을 거쳐 본심 최종 후보로 지명되었는데, 본심 1차 투표에서 모든 배우가 고르게 득표하여 2차 투표가 진행되었고 여기서 <시민덕희>의 염혜란 배우가 다른 배우들을 압도하고 최종 수상자가 되었다. 염혜란 배우는 그동안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며 출중한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나 유독 영화상과는 인연이 적었기에 이번 수상의 의미가 깊다. 사견이지만, <파일럿>의 한선화 배우와 <정순>의 윤금선아 배우도 아무도 할 수 없는 연기를 선보인, 2024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조연들이었다.

 

세월:

남녀 신인연기상에서 신인남우상 부문에는 <늦더위>(서한솔 감독)의 기진우 배우, <파묘>의 이도현 배우, <빅슬립>(김태훈 감독)의 김영성 배우, <화란>(김창훈 감독)의 홍사빈 배우가 최종 후보에 올랐고, 본심 1차 투표에 이은 2차 투표에서 <파묘>의 이도현 배우가 <빅슬립>의 김영성 배우를 제치고 수상자가 되었다. 신인여우상 부문에는 <화란>의 김형서 배우, <지옥만세>(임오정 감독)의 방효림 배우, <딸에 대하여>(이미랑 감독)의 하윤경 배우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랐으며, 본심에서는 <화란>의 김형서 배우가 <딸에 대하여>의 하윤경 배우를 한 표 차이로 밀어내고 최종 수상자가 되었다. 김형서 배우는 가수(활동명: 비비)로서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최근 출연하는 작품마다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어 평단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수유천>비롯한 일련의 홍상수 감독 작품에 출연 중인 하성국 배우와 <모르는 이야기>(양근영 감독)의 정하담 배우가 남녀 신인연기상 후보에 들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이렇게 제44회 영평상은 상업영화와 저예산 독립영화의 공정한 경쟁으로 수상 결과를 내놓았다. 올해 영평상을 정리하며 몇 가지 아쉬웠던 점은, 영평상이 여전히 주요 부문에서 다큐멘터리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출중한 다큐멘터리 작품이 개봉되고 있고, 올해에도 <세월: 라이프 고즈 온>(장민경 감독) 등의 작품이 개봉했음에도 영평상이 극영화 일색으로 일관하는 것은 분명 각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주요 부문에서 영화 <파일럿>(김한결 감독)이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도 의아하다. 만약 그것이 작품의 장르성(코미디)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면, 평론가 집단에서만큼은 모든 작품에 대해 동일한 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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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윤필립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며 담화분석과 대중문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교육원을 수료했으며, 무궁화 스토리텔링 공모전 동화 입선,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기독교 영화 비평 대상 수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 등을 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심사위원 및 영평상 집행부 등을 역임했으며, 반석산 시네마 콘서트 등에서 진행과 영화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회원으로, 르몽드 코리아, 영화의 전당, 경기일보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세종사이버대학교 초빙교수 및 한국어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