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대 손에 넘어간 리비아
이슬람 선지자 마호메트를 조롱하는 영화 때문에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리비아의 한 무장그룹이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을 습격해 미국대사가 사망했다. 구성원 중 상당수가 리비아 내무부와 국방부에 소속돼 있으나 대중에게 배척받고 있는 민병대들이 끊임없이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의 안정과 강한 국가 창설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예상한 대로 일어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지난 9월 11일 벵가지 미국 영사관이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아 미국대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서구 언론들이 리비아에 다시 집중하게 됐다. 리비아는 카다피 몰락 이후 이미 치안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리비아는 지난 7월 총선에서 마흐무드 지브릴이 이끄는 자유연합당이 정당비례대표 80석 중에서 39석을 얻어 17석을 얻은 무슬림형제단에 승리한 이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1)
정치 지형의 파편화와 복잡성을 포착할 수 없던 수많은 논평가들은 자신이 편애하는 영역인 선거 결과 분석에 만족하면서 지브릴을 새로운 미래의 인물로 지목했다. 그 예측이 틀렸다는 증거가 몇 주 뒤 드러났다. 새로 구성된 제헌의회가 모하메드 메가리프를 의장으로 선출하는데, 그가 이끄는 중도 이슬람 성향의 '리비아 국민전선'은 총선에서 단지 3석을 얻었을 뿐이다. 지난 9월 12일 무스타파 아부 샤구르는 과도정부 총리를 지낸 지브릴을 2표 차로 누르고 제헌의회에서 총리로 임명된다.
무슬림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은 아부 샤구르는 그때까지 과도정부의 부총리직을 맡았다. 이런 선택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 고전적 이념틀을 리비아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리비아에서는 지역과 부족에 대한 충성과 경쟁이 서구에서 통용되는 이데올로기적 이념틀인 이슬람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사이의 대립보다 우세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총리 후보자 2명이 제헌의회 내부에서 자신들의 선거 캠페인을 펼친 방식도 이데올로기적 토론에 기반해서가 아니라 인기 영합적 협상에 기반해서다. 반면 자리와 종교 문제는 미래 헌법의 구성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헌법 초안의 작성을 책임진 전문가 60명을 지명하는 방식이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의원총회에서 선출되거나 국민투표로 결정될 것이다.
비록 최근에 선출됐음에도 제헌의회 의원들은 국가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의원들이 7월 선거에서 지브릴을 수장으로 앉혔으면서도 신정부에서는 그를 배제했다. 많은 리비아 사람들은 샤구르가 국가를 재건하고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특히 치안 문제에서 실패한 전 정부에서 그가 일한 점과 자신이 연구원과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걸프만 국가들과 친분을 가진 점 때문에 샤구르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80년 리비아를 떠나 2011년 5월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가 리비아를 모른다는 점 또한 비판의 대상이다.
국가 기구에서 뒤를 받쳐주는 중간 관료도, 믿을 만한 치안조직도 있지 않은 기술관료 엘리트들의 관계와 소통 부재가 부분적으로 현재의 리비아 상황을 설명해준다. 치안 상황이 악화돼 부족 간 대립, 민병대들 사이의 복수, 책임자에 대한 납치와 살해는 큰일이 아닐 정도다.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 습격은 지하드 살라피주의 그룹이 지난 1월부터 전개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것이다. 점점 더 잘 준비되고 잘 시행되는 공격은 미국 영사관, 유엔사무국, 국제적십자위원회, 영국대사 같은 목표물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지난 6월 벵가지에서 영국대사 차량이 총격을 받았을 때, 대사의 경호원 중 1명이 부상당했을 뿐 다른 희생자가 더 나타나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아서 그랬을 뿐이다.
최고의 피해자는 남아 있는 국민들
1993년 세계무역센터 테러에 연루돼 미국에 구속돼 있는 이집트인 오마르 압델 라흐만이 지휘하는 여단은 자신들이 이런 공격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이 무장세력은 시레나이크 동부(특히 데르나)에 확고한 기반을 잡고 있다.
최근 몇 달간 이슬람 성인들의 무덤과 수피파(신비주의 이슬람 분파)의 영묘(靈廟)를 표적으로 하는 또 다른 유형의 공격이 빈번해졌다. 살라피주의자들에 따르면, 이런 무덤들은 원조 이슬람 교리에 저촉된다. 벵가지에 본부를 둔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지지하는 살라피주의 민병대인 '안사르 알샤리아'가 이런 유형의 공격에 연루돼 있지만, 그들은 서구에 대한 공격에서는 항상 거리를 유지했다. 구성원 중 상당수가 2000년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잡목 숲에서 처음으로 무기를 잡았던, 잘 무장되고 훈련된 안사르 알샤리아의 전투원들은 2011년 2월 반카다피 봉기가 일어난 첫날부터 반카다피 진영에 합류해 시르테가 함락될 때까지 모든 전투에 참여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국방부 산하 '리비아 방패' 여단의 깃발 아래 올해 다시 소집됐다. 이들은 투부족과 지역 아랍 부족 사이에 전투가 발생하자 질서유지를 위해 세브하와 쿠프라에 파견됐다. 지난 7월 벵가지로 돌아온 민병대는 치안예방국의 명령을 받아 벵가지의 치안을 담당하게 되었다. 치안예방국 역시 예전 이슬람 전투원들로 구성돼 있다. 그러므로 이 부대들은 창설 중인 내무부와 국방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혁명 수행의 실질적인 합법성을 부여받고 있다.
이런 도식이 트리폴리와 미스라타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이 도시들에서도 상당수의 살라피주의 민병대들과 도시의 '치안최고위원회'가 공모하는 사실이 확인됐다. 살라피주의 민병대들이 공식적으로는 내무부 소속이지만 사실상 이들은 자기 수장에게만 복종하고, 수장들 역시 이슬람주의의 영향에 종속돼 있다. 트리폴리·벵가지·즐리텐의 중심가에서 치안최고위원회 소속 민병대들이 무기력하게 감시하는 가운데, 벌건 대낮에 행해지는 이슬람 성인들의 무덤과 수피파 사원을 파괴하는 작전이 수없이 전개되고 있다.
살라피주의자들의 지역 근거지가 없는 도시나 농촌에서는 주민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자기 성인들의 묘를 방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국방부나 내무부 소속 민병대들이 개입하지 않았다. 벵가지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알라즈마 마을에서 지난 9월 7일 살라피주의자들과 주민 사이에 전투가 발생해 3명이 죽고 15명이 다쳤다. 그 며칠 전 트리폴리 동쪽에서 100여km 떨어진 로마시대의 도시 실리네 유적지의 역사유물로 지정된 모자이크를, 트리폴리 서쪽의 해안도시 소르만에서 이슬람 성인의 무덤을 파괴하려 했던 살라피주의자들은 주민들의 개입 때문에 자신들의 공격을 포기해야 했다.
카다피 체제는 제한된 권력만을 가진 형식적 조직들로 구성돼 있다. 체제 이양 중인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도 형식적 권력을 가진 정치체제를 유지하며 똑같은 여정을 밟을 것인가? 대부분의 삶을 망명으로 보낸 학위증 가진 기술관료 장관들과 지역 현실을 전혀 모르는 의원들이 한 달에 9천 디나르(약 6천유로)를 지급받으며, 하루에 250유로인 수도의 오성 호텔 스위트룸에서 1년 내내 머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실질적인 권한이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에 참여한 지역의 작은 수장, 살라피주의 그룹, 이데올로기적으로 살라피주의자와 가까운 내무부와 국방부의 상당수 부대들, 엄청난 돈을 벌기에 유리한 상황에서 혜택을 본 마피아 그룹들은 공동 목표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한 국가 건설을 방해하고 있다.
최고의 피해자는 남아 있는 리비아 국민들이다. 그럼에도 지난 7월 7일의 투표에서 참여율이 오른 사실(투표 참여율 60%)(2)은 그들이 선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카다피 체제가 몰락한 지 1년 정도 지난 지금, 치안 환경과 물질적 삶의 조건 악화, 국가 부재, 대부분의 리비아인들이 그 이데올로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살라피주의자들의 공격 때문에 더 이상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적 정체성이 아닌 지역적 정체성을 중시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미국 영사관의 공격 책임자들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워싱턴의 압력 때문에 신임 총리의 행동반경은 아주 좁아 보인다. 세계무역센터 테러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아 구속된 오마르 압델 라흐만의 여단 대원들이 활약하고 있는 산악지역에 대해 잘 아는 믿을 만한 군대를 소유하지 못한 신임 총리는 여단 대원들과의 공동작전에서 어쩔 수 없이 보조적 역할만 할 우려가 있다. 새로운 리비아의 주권에 가장 해로운 시나리오는, 미국이 예멘이나 파키스탄에서처럼, 추정된 범인들을 표적으로 삼아 무인공격기 드론으로 살해하는 것(공식적인 은어로는 '재판 외 처형')이다.
글•파트리크 하임자데흐 Patrick Haimzadeh
2001~2004년 트리폴리 주재 프랑스 외교관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카다피가 지배하는 리비아의 심장부에서>(장클로드 라테 출판사, Paris, 2011) 등이 있다.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1) ‘혼돈 속의 리비아 선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7월호 참조.
(2) 투표 연령 인구의 70%가 선거인 명단에 등록했다.
아랍 시위자들의 기이한 선택
덴마크의 한 신문에 실린 풍자화로 인해, 여러 아랍 국가들의 수도에서 미국의 바그다드 점령이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야기된 것보다 더 많은 시위가 발생했다. 이슬람 예언자를 묘사한 인터넷판 미국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 역시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같은 선택적 성향은 왜 나타나는가?
중동 전역에서 살라피스트(극단 이슬람주의)와 무슬림형제단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시리아·튀니지·이집트 등 많은 나라에서 그들의 경쟁은 살라피스트를 지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카타르 사이의 대립 구도로 나타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비호로 인해 살라피스트들은 사회 부정의, 외국의 침입, 팔레스타인 문제 등 중요 사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반면 이슬람과 이슬람 예언자를 옹호하고 엄격한 도덕률을 지키는 문제에는 아무런 위험성도 내포돼 있지 않다. 따라서 살라피스트들은 이런 주제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취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무슬림형제단의 정치적 실용주의와 지나친 관용주의를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랍의 정부와 매체들은 이같은 시위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예컨대 <알자지라 방송>과 이 방송의 스타 설교자 유세프 알카라다위는 여지없이 대중의 열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유별나게 카타르가 이란과 헤즈볼라와 좋은 관계를 맺은 채 미국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와는 달리 이번 영화 사건에 대해 카타르 방송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 지원을 받는 매체들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분노하는 미국 사이에서 훨씬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알카라다위는 심지어 미국에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급진 이슬람주의 단체들에 돈과 무기를 제공하고 있는 걸프만 연안 아랍 국가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 국가들은 이슬람 신앙의 수호자로 비치길 원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반감을 사지 않게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무슬림형제단 같은 이슬람교 집단들이 특히 권력을 장악하거나 권력에 가까워진 이래, 이 집단들은 걸프만 연안 국가들이나 세계 여러 나라들과 맺는 관계를 해칠 만한 요인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공격은 그들의 반감을 촉발했고, 자신들의 지배 영역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이슬람 집단들 사이의 경쟁을 초래했다. 이와 반대로 사회 부정의, 외국의 침입, 전쟁, 독재, 성 불평등은 이슬람 집단들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쓰레기 같은 영화를 고발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보수·진보 진영 할 것 없이 서구 매체들은 이슬람교, 나아가 이슬람교도들이 보여주는 모든 표현에 거부감을 내보이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시위로 인해 서구 국가들은 이슬람 국가들의 정치를 다시 살펴보는 대신 오히려 이슬람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운명의 장난일까. 살라피스트 이슬람교도들의 광신주의는 서구의 반(反)이슬람주의를 더 부채질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글•아사드 아부 칼릴리 As’ad Abu Khalili 블로그 ‘앵그리 아랍’(angryarab.blogpost.com) 운영자.
번역•변광배 프랑스 인문학연구모임 ‘시지프’ 대표. 저서로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