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은 어떻게 서구를 매(미)혹시켰나

Corée 21세기 최대 신흥종교에 대한 종교인류학적 접근

2012-10-14     박정진

 

 

한국에서 시작된 기독교 계열의 통일교는 20세기 이후 등장한 세계 최대의 신흥종교이다. 이들은 자칭 300만 명의 신도를 바탕으로 전세계 194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단 시비 속에서도 거대한 성장을 이뤄낸 창립 교주의 죽음을 계기로 이 신흥종교의 역사를 돌아본다.

통일교는 1954년 5월 1일 서울시 성동구 북학동 391-6호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의회'로 창립된다. 한국전쟁 피란 중에, 문선명 총재가 부산 범냇골 토담집에서 완성한 '원리원본(原理原本)'(1952년 5월 10일)을 토대로 일어난 신흥종교이다.

통일교 발생과 미국 진출

통일교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하나님 섭리의 완성 과정에서 고대 '이스라엘(식민지)-로마(제국)'와 현대 '한국-미국'의 구도를 자주 비교하면서 은유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말한다. 다시 말하면 통일교가 미국에서 성공하는 것은 바로 기독교가 로마에서 성공하는 것을 비유하는 셈이다.

통일교는 기존 기독교단의 성서 해석에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출발했다. 통일교는 처음부터 '기독교 통일신령'을 주장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통일신령'이라는 말은 문 총재가 종교인으로서 지향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기독교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모든 신령의 통일을 주장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통일교가 후에 초종교 초종파를 주장하면서 모든 종교의 통일과 통합을 주장하게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작명에 따른 수순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앙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서의 해석은 자유로워야 하고, 교주의 탄생도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이 초월적 신성(神性·神聖)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어떤 신흥종교가 정통이냐 이단이냐의 문제는 실은 세속적 권력다툼의 문제일 뿐이며, 신흥종교가 이단의 시련을 겪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그런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오래 지속되면 점차 정통으로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시련 과정 중에 자신이 소속한 사회에서 범법(犯法)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다스려질 수밖에 없다. 신흥종교가 자신이 범법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이다.

통일교는 창립 다음해에 바로 최대 위기를 맞는다. 이른바 '이대연대 사건'이다. 교주 문선명 총재의 '병역기피'를 죄목으로 일어난 이 사건은 통일교엔 "기성 교단이 자유당 권력과 짜고 처음으로 가한 종교탄압"이었다. 당시 기성 교단과 언론들은 통일교를 '남녀가 함께 발가벗고 춤추고 노래하는 종교', '음란패'로 몰아세웠다. 문 총재는 1955년 7월 4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혐의를 벗고 출감했다.

이화여대와 연세대의 관련 교수·학생의 퇴직 혹은 퇴학 사태를 몰고 온 이 사건은 통일교가 맞은 최초의 수난이며 자유당의 종교탄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통일교를 더욱 결속시켰다. 퇴직·퇴학 대상이던 교수와 학생이 결국 통일교의 핵심세력이 되었고, 해외 선교의 길을 텄기 때문이다.

통일교는 미국으로 진출하기 전 일본을 교두보로 삼는다. 일본 선교는 당시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곤경에 처하지만 세 차례 시도 끝에 성공한다. 일본은 당시 경제대국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통일교는 일본을 기독교상의 해와(하와)국으로 상정하고, 원죄의 탕감과 식민지 기간 동안 한국에 가한 일제 만행의 탕감 조건으로 헌신적인 헌금을 요구한다. 이는 통일교의 선교 자금줄이 되었다. 통일교 일본 신도들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이고, 물심 양면으로 통일교의 버팀목이 돼주었다. 통일교의 미국 개척은 1959년 김영운·김상철에 의해 이뤄졌으며, 1964년 육군사관학교 2기생으로 당시 주미 대사관 무관보좌관으로 있던 박보희의 입교로 급진전된다. 통일교의 미국 선교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미국은 "성적 문란과 청소년의 탈선, 이혼 증가 등 온갖 가정적·사회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문선명 총재가 미국에 처음 간 것은 1965년 2월 12일이었다.

"거대한 미국을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문 총재는 한국에서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기 직전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1973년 4월 30일에는 미국 영주권을 손에 넣었다. 당시 미국 영주권은 로마 시민권과 같은 상징성이 있었다. 이것은 '문선명 통일교'의 세계적 착륙을 의미했다.

문선명은 이에 앞서 이미 세 차례 세계 순회선교를 감행했다. 아담의 혈통, 순결을 강조하는 통일교는 복합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미국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문 총재는 "미국은 소돔성, 악마의 도시"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미국을 선교하는 데 승패의 갈림길은 매디슨스퀘어 가든 집회(1974년 9월 18일)였다. 이날 문 총재의 강렬한 설교와 특별보좌관 박보희의 유창한 영어 통역으로 집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통일교에 매디슨스퀘어 가든은 이 시대의 로마광장과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기성 교단의 세속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이지 않는 견제가 곧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로 '댄베리교도소' 사건이다. 탈세 혐의였다. "1973~75년 3년간 통일교회 신도들이 헌금한 160만 달러를 뉴욕 체이스맨해턴은행에 예탁했는데 여기서 발생한 이자 11만2천 달러에 대한 소득세 1천 달러(당시 약 70만 원)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1984년 5월 30일 미 연방대법원이 문 총재에게 투옥 결정을 내리자, 신도들이 워싱턴에서 항의 시위집회에 들어갔다. 미국 60개 종파 30여 명의 성직자들도 투옥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집회에 참가했다. 댄베리 사건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 침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도리어 통일교를 미국 전역에 선전하는 작용을 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냉전시대의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통일교는 반공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승공(勝共)운동을 벌인다. 통일교 재단 소속 언론매체인 <뉴스월드>와 <워싱턴타임스>를 앞세운 반공산주의 운동과 로널드 레이건에 대한 강력한 지지는 레이건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에 앞서 벌어진 한국의 박동선 미 의회 로비사건, 일명 '코리아게이트'(1976) 사건 때는 "통일교회는 한국의 대미 로비 자금줄이고, 통일교회는 한국 중앙정보부(KCIA) 앞잡이"라는 도널드 프레이저 상원의원의 청문회 주장에 대해 박보희 선교사가 효과적으로 방어함으로써 통일교는 대미 선교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워싱턴타임스>를 통한 통일교의 미국 조야에 대한 정치적 입김은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는 자신들이 "미국 내 여론을 주도해 레이건 대통령으로 하여금 임기 중에 전략방위구상(SDI)을 입안하도록 했으며, 그 결과 소련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여기고 있다. 또한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설득해 소련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었으며, 오늘의 세계 판도를 결정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통일교는 옛 소련의 개혁·개방 과정 중에 군부 주도의 반혁명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탱크에 올라가서 쿠데타를 불발에 이르게 한 젊은 세력들이 실은 통일교가 미국에서 교육한 언론인·대학생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통일교는 간단하게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도외시하기에 너무 커져버렸다. 현재 통일교는 신도가 194개국 300만 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1991년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20세기를 만든 1천 명의 인물' 가운데 한국인으로는 이승만, 김일성과 함께 문선명 통일교 총재를 선정했다.

경기도 청평에 자리한 문선명의 영결식인 성화식(聖和式)장에는 "해외에서 5만 명 이상의 조문객이 참가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온 조문단만 '1만 명 이상'이어서 한-일 항공노선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통일교는 그 성격에 대한 평가를 넘어 적어도 교세만으로는 20세기 이후 생겨난 최대의 신흥종교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어째서 이런 거대 신흥종교가 한국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여전히 연구 대상이다.

통일교가 말하는 종교 통일의 '원리'

한민족은 스스로를 '천손족'이라고 부르고, 예로부터 '하늘'(하나님·하느님·한울님) 신앙을 가지고 살았다. 한민족은 81자로 된 인류의 최고(最古)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을 지닌 민족이다. 단군시대부터 내려오고 있다는 이 민족 경전의 영향을 통일교는 적잖게 받았다.

통일교가 사용하는 여러 용어 중에는 동양의 천지인(天地人) 사상이나 음양사상, 그리고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다. 특히 후천개벽 사상은 고대로부터 동양 사회에 전해져온 혁명사상이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의 동학(東學)은 처음으로 서양의 '천지창조' 이론에 정면으로 맞선 선천후천 개벽 이론을 교리에 도입한 종교이다.

근세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한국의 신흥종교 가운데 후천개벽 사상을 주장한 종교는 동학의 천도교 이외에 원불교와 증산교가 있다. 이 가운데 특히 통일교가 주목되는 것은 기독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통일교는 기독교의 창조종말론과 개벽론을 묘하게 통합하고 있다. 따라서 통일교를 전통 종교적 맥락에서 보면 '동학+기독교'이다. 기독교의 '창조-종말론'과 민족종교의 '선천-후천개벽 사상'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이것도 '창조-종말'을 하나의 개벽 과정으로 편입시키면 논리적 통합이 가능해진다.

통일교의 교리 체계 가운데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개념도 독특한 것이다. 지상천국이라는 개념은 실은 공산주의 이상에 가깝다. 천상천국·지상천국은 동양의 태극음양론을 기독교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통일교의 교리 체계에는 동양의 천지인 사상이나 음양사상이 요소요소에 깔려 있다.

예컨대 통일교는 천지인 사상을 애천(愛天)·애국(愛國)·애인(愛人)으로, 기독교의 하나님 이외에도 참아버님·참어머님·참부모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동양사상과 기독교 신학이 만나서 문화적 확대재생산을 시도한 결과라 해석할 수 있다. 통일교는 가인과 아벨, 아담과 해와, 천사와 사탄 등 기독교의 근본적 개념을 개인적·종족적·국가적·세계적인 현실을 해석하는 상징으로 사용한다.

통일교는 교리상의 핵심국가를 아담국가·해와국가라고 하는데 한국을 아담국가, 일본을 해와국가라고 한다. 일본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에 반해 미국은 아벨국가, 독일은 가인국가라고 한다. 또 한국은 천사 편 아담국가, 북한은 사탄 편 아담국가, 미국은 천사장국가, 중공(오늘날의 중국)은 사탄 편 해와국가, 소련(오늘날의 러시아)은 사탄 편 천사장국가라고 한다.

통일교는 동양의 전통사상을 바탕으로 기독교적 이상인 '천국'과 '세계평화'를 새롭게 도출하고, 끝내 기독교적인 완성을 의미하는 '성약(成約)시대'를 선언한다. 성약시대란 구약과 신약에 이어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시킨다는 의미이다.

통일교는 성약시대를 열기 위해 수많은 차원의 탕감복귀, 책임분담이라는 실천적 신학체계가 있다. 통일교 성약의 정점에는 천주천일국(天宙天一國)이 자리한다. 문선명 총재의 관에는 '천일국진성덕황제(天一國眞聖德皇帝) 억조창생만승군황(億兆蒼生萬勝君皇)'라고 쓰여 있다.

동학이 서학인 기독교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민족자생종교(철학)였다면, 통일교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기독교를 극복한, 혹은 재해석한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통일교는 아직 신학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 많지만, 적어도 통일교의 성장은 기독교 토착화의 성공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기독교 국가인 서구에 통일교를 전파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통일교의 성공을 한국 전통사상사의 관점에서 보면, 원효의 '화쟁(和諍)사상' 이후 한국인이 세계에 내놓은 가장 괄목할 만한 종교적 업적으로 볼 수 있다. 통일교는 한국의 자생종교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후발 종교이다. 동학(1860)에 이어 증산교(1911), 원불교(1916)의 뒤를 따라 기독교에서 습합되어 나타나 가장 세계적으로 확장된 종교가 됐다.

 

 

통일교, 서구 기독교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유대 민족의 종교였던 유대교는 예수라는 인물과 사도 바울을 만나서 세계 종교가 된다. 유대교의 유일신 여호와는 그리스 문명의 로고스와 만나고, 다시 로마제국을 만나서 이론 무장을 강화하고 폭넓은 신앙 인구를 거느리게 된다. 이는 그 시대가 로고스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성 중심의 철학과 신학은 그리스·로마 이후 줄곧 서구를 지배했다. 그러나 신을 이성의 안에 넣으면 합리적 설명에는 유효하지만, 신을 결국 인간의 안에 가두게 된다. 그 결과 이제 서양에서 기독교 신은 '인격신'이 아니라 '인간'일 뿐이다. 합리주의와 보편성은 신성을 결과적으로 제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생성적 우주관으로 볼 때 '드러나지 않는 신' 혹은 '달아나는 신' 혹은 '생성되는 신'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이는 신의 해체는 물론이거니와 이성의 해체에 들어갔음을 뜻한다. 현재 서양의 후기 근대 철학은 마르틴 하이데거와 자크 데리다, 그리고 질 들뢰즈의 계열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해체철학은 자연스럽게 신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전통적 존재신학이나 조직신학은 짜임새와 역동성을 요구받고 있다.

통일교의 통일신학과 원리강론도 종래 기독교 신학의 폐쇄 체계인 '창조-종말론'을 극복하고 신학적 가능성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예로부터 '신명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기독교의 한국적 토착화와 기독교의 세계적 새로운 가능성은 통일교에서 만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남북통일이 냉전 종식의 마지막 피날레 잔치이고, 동시에 세계 평화로 가는 길목의 결정적 사건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통일교는 남북통일에 어떤 단체보다 관심이 크다. 문선명은 더욱이 남북통일이 된 조국이라야만 통일교의 천일국(天一國) 기반이 지상에 조성된 것이라고 봤다. 이는 통일교의 '섭리 완성' 과정에 남북통일이 절대적 과제로 들어 있음을 말한다.

이 통일교의 신학에는 역시 '천지개벽 사상'의 힘이 결정적이다. 또한 사위기대(四位基臺)를 비롯해서 주체와 대상(객체)의 역동적 변화를 신학 내부에 깔고 있다.

해체철학 입장에서 볼 때 우주의 주체나 정체, 불변의 신이란 없다. 이를 존재론으로 볼 때는 '없기 때문에 시간(역사) 속에서 새롭게 주장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주의 진정한 주체나 실재는 증명되지 않고(결코 증명될 수 없기도 하다) 단지 가상실재를 향해 어떤 재현이 일어난 것이 가장 실재에 근접한 재현일 뿐이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동시에 환원하는 존재이다. 말하자면 앞으로 가면서 동시에 뒤로 환원적 사고를 하는 양 방향의 존재라는 말이다. 그 환원의 결과가 철학이고 과학이고 신학이다. 인간의 생각은 필연적으로 소급하게 되고 지나간 것을 설명하려 한다. 필연은 이미 소급의 결과이다. 이것은 원시반본적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보편성은 항상 새롭게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문화는 환원주의의 산물이다. 인간은 '만물유전'(萬物流轉) 속에서 항상 '대칭적 놀이를 하는 존재'이다. 철학이나 신학이나 문화라는 것도 그런 유전(流轉) 속에 흘러가는 '유행'(流行)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칭을 이루는 것들은 시간과 공간이 관계하는 역사와 과학 속에서는 대립되고, 대립은 항상 이상과 이상적 모델을 추구하게 한다. 기독교나 통일교도 예외는 아니다.

역사(절대정신 혹은 진리)와 과학(시간과 공간)이라는 것도 실은 그런 대립의 소산이다. 대립의 하나로 근대에 발생한 것이 바로 '자유주의-자본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이다. 머지않아 이런 대칭은 역사의 유물로 남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대칭을 요구하고 있다.

통일교는 그동안 '순결'과 '승공' 운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교세를 넓혔다. 지금은 가정교회와 인류평화의 완성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통일교는 머지않아 '기독교'라는 라벨을 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종교'라는 라벨마저 뗄지 모른다. 통일교 교리 자체가 초종교, 초종파, 초종족, 초국가, 초인종, 초문화를 넘어 복귀의 완성으로서 천주평화통일국(天宙平和統一國: 天一國)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제 통일교도 다른 종교처럼 인류평화의 실현을 놓고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과연 하나의 종교가 인류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인간에 내재한 욕망과 선악(善惡)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진선(眞善)의 문제는 결코 판단이 쉽지 않다.

인류 문명은 지금 권력적(존재자적)인 곳에서 비권력적(존재적인) 곳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절대적 종교의 해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통일교는 절대와 상대를 통합한 절대상대론에 있으면서 동시에 부분적으로, 경우에 따라 절대론과 상대론을 쓰고 있다. 통일교 자체가 '신령통일'을 통해 기성 기독교와 종교의 해체를 주장하면서 발생했고, 재림주의 성약시대는 종래의 것을 해체한 다음 구축한 새로운 신학이 된다. 즉 예수는 새로운 성령운동 과정에서 희생양이 되었지만, 문선명은 신령의 통합에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통일교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교를 이어받은 후계 세력들이 통일교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통일교의 운명이 달렸다. 통일교는 계속해서 시대에 맞는 자신들의 새로운 신학과 영성의 개발이 절실할 것이다.

서양의 후기 근대 철학은 기독교나 합리주의가 둘 다 '자연의 인간동형론'(Anthropomorphism), '인간중심주의'의 소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기독교도 겉으로는 유일신을 표방하지만 이면에는 역시 인간중심주의가 깔려 있다. 서양에서는 진정한 '하나님주의'(Godism)가 쇠퇴한 지 오래다. 서양의 교회는 텅 비어 있다. 목회자나 선교사를 구하기 어려워 과거에 자신의 선교 지역이던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구하고 있다.

통일교는 서구에서 쇠퇴하고 있는 '하나님주의'를 부활시키는 측면에서 서구 기독교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성(理性)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 아닌 '심정(心情)으로서의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심정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신을 느끼는 것이고, 나아가서 몸으로 신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통일교에서 말하는 '일심일체(一心一體)이고 일심일화(一心一和)'이다.

한국사에서 볼 때 원효의 화쟁사상이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끌었듯이, 통일교는 자신들의 통일사상이 남북통일을 이끌어낼 시대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믿는다. 통일교의 '두익사상'(頭翼思想)은 특히 좌우대립·남북대치 상태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현대판 화쟁사상의 실천적 화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경제공동체로서의 통일교

통일교는 여러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통일교의 사업은 흔히 재벌에 비할 수도 있다. 종교단체가 수많은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종래의 보수적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대체로 종교단체나 교회, 절이라는 곳은 신도들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것이고, 사업체를 운영할 때는 종교 사업과 관련되는 복지나 후생, 육아·교육·양로원·고아원 사업 등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이 아니다.

통일교가 기업에 눈을 돌린 것은 신흥종교 박해와 관련 있다. 이단으로 취급받는 통일교 신도들(통일교 내에서는 '식구들'이라고 부른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생업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묘안을 낸 것이 사업이다. 통일교는 신앙경제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통일교는 많은 국내 기업과 학교, 사회단체, 예술단체를 거느리고 있다. 보수 교단의 시각으로 볼 때 통일교가 종교단체인지, 기업체인지 모르겠다고 할 수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선문대를 비롯해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 청심국제중학교, 선화예술중고등학교, 미국 베리타운 신학대학이 대표적이다. 기업으로는 일화제약, 용평리조트, 여수디오션리조트 등 공식적으로 13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공시된 재산 가치는 1조 8600억 원이었다. 북한에서는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을 운영한다. 언론 기업은 <세계일보>를 비롯해 <UPI> 통신사, <워싱턴타임스>, 워싱턴 TV센터 등이 있다. 이 밖에 유니버설발레단, 리틀엔젤스예술단, 일화성남축구단 등 문화·예술·스포츠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통일교가 소유한 국내 부동산은 4600만m²로 알려져 있고, 국내외 자산은 6조 원을 넘을 것이다. 문선명 총재 사후의 통일교는 그의 아들인 문형진 통일교세계회장과 문국진 통일교유지재단 이사장의 쌍두체제가 이끌어갈 전망이다.

통일교는 앞서 든 두 형제가 이끄는 주도세력과, 현재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와 신세계백화점 건물을 소유하면서 통일교 미국 재단을 따로 운영하는 3남 문현진씨와 그의 장인인 곽정환 목사가 연대한 세력과 법정 소송 중에 있다. 통일교는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분열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통일교 신도 수가 가장 많은 일본통일교는 한국통일교 쪽에 좀더 강한 결속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어떤 종교적 성공도 재산이나 명예를 과도하게 소유하려고 하면 부정부패나 퇴폐에 못지않게 종단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소유는 종교의 적이다. 소유권 분쟁은 말할 것도 없다. 통일교 교회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창시자 문선명의 메시아적 존재를 부정하거나 유훈을 거역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통일교의 처지에서 볼 때 제2대 교주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와 신자들에게 남은 과제는 기왕에 이루어낸 세계적 교세를 착실하게 다지는 일이 시급할 것이다. 신흥종교운동은 항상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신흥종교들도 제1대 교주의 성공을 2대, 3대가 지켜내지 못해 사라져갔다. 적어도 100년을 버텨내야 기성 종교의 대접을 받게 된다는 점을 통일교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박정진 영남대 문화인류학 박사. 문화방송·<경향신문> 기자, <세계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역임. <한국문화와 예술인류학>을 비롯해 <불교인류학> <종교인류학> <예술인류학, 예술의 인류학> <굿으로 본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