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사이드, 국가의 방조가 키운 다면적 ‘여혐’ 살해
‘여성 살해’가 미디어에 오르기까지 어두웠던 그늘
페미니사이드, 즉 남성권력에 의한 ‘여성 살해’가 최근 프랑스 언론과 정치 무대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 여성혐오적 살인 개념은 처음에는 앵글로색슨 국가에서 등장했지만, 여성 살해가 빈번한 라틴 아메리카의 페미니즘 학계에서 주목받으면서 학술적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살해 용어는 아직도 부부관계 범위에 국한 되어 있고 형법에도 명시되지 않고 있다.
“열정의 오해”(<록 앤 포크(Rock & Folk)>). “그들은 광적으로 사랑했다”(<파리 마치(Paris Match)>). 20년이 지난 지금, 가수 베르트랑 칸타가 배우 마리 트랭티냥을 살해한 사건을 다룬 당시 기사를 다시 들여다보면, 여성에 대한 남성 폭력을 다루는 언론 보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여배우는 1년간 동거하던 음악가 연인에게 맞아 결국 뇌부종으로 2003년 8월 1일 사망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범죄자의 폭력 이력은 대부분의 기자들에 의해 무시된 반면, 사망한 여배우의 연애사는 집요하게 파헤쳐져 비난의 증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2023년 여름, 이 사건은 대대적으로 재조명되었고, 이는 저널리즘 윤리와 관련해 일종의 언론적 반성으로 이어졌다.
2023년 7월 31일 <프랑스 2> 방송은 “당시에는 질투와 격정 범죄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비극을 정당화하는 듯했다”라고 인정했다. 또한 <웨스트 프랑스(Ouest-France)>는 “아직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여성 살해”라고 표현했다.
‘여성 살해(Femicide)’라는 단어가 미디어에 등장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공간을 거쳤다. 역사가 리디 보디우와 동료 프레데릭 쇼보는 이 단어의 초기 흔적을 17세기 프랑스어에서 발견했다. 이는 극작가 폴 스카롱의 희곡 <세 도로테 혹은 따귀 맞은 조들레(Les Trois Dorothées ou Le Jodelet souffleté)>에서였다.
한 남성이 아내에게 폭력을 가할 때, “당신의 눈은 여성을 살해하려 한다”라고 묘사하는 구절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위베르틴 오클레르, 20세기초 ‘페미니사이드’에 의미를 부여
푸아티에 대학교의 두 연구원은 “관객들이 이 단어를 이해했다는 것은 이미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단어는 20세기 초반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였던 위베르틴 오클레르의 글에서 다시 등장한다. 오클레르는 한때 여성혐오적 모욕으로 쓰였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되찾아 왔고, 덜 알려진 단어 ‘페미니사이드’(Feminicide, 사회적 통제나 정치적 폭력의 형태로 여성을 살해하는 행위—역주)에 오늘날의 의미를 부여한 인물이기도 하다.(1)
1902년 11월 기사에서 오클레르 기자는 이혼권을 옹호하며, “이 여성 살해적 법이 폐지되고 남성과 여성이 결혼에서 동등하고 자유로운 협력자가 된다면, 어느 한쪽의 의사에 따른 이혼이 더 이상 여성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간지 <르 라디칼(Le Radical)>에서 주장했다.
‘페미니사이드’라는 단어는 이후 사라졌다가, 70년 후 페미니즘 운동의 맥락에서 다시 등장했다. 1976년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여성 대상 범죄 국제 법정에서였다.
유럽, 북미, 라틴 아메리카 등 40여 개국에서 약 2,000명의 여성 운동가들이 참석한 이 법정은 ‘제2의 물결’ 페미니즘 운동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초창기의 참정권 운동과 달리 성과 가정 폭력에 중점을 두었다.
브뤼셀 여성대학의 전시회 큐레이터 밀렌 르 고프는 “이 법정은 사법기관이 아니라 의견을 밝히는 곳으로, 1966년 철학자 베르트랑 러셀과 장 폴 사르트르가 베트남에서의 전쟁범죄를 고발할 목적으로 주최한 모의 법정인 <러셀법정>과 같은 맥락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브뤼셀 법정에서는 성적 수단을 통한 범죄, 여성과 이주민으로서 겪는 이중 억압 등 이후 수십 년간 페미니즘 의제를 형성하게 될 다양한 문제들이 다뤄졌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법정을 “여성의 급진적 탈식민화의 시작”이라고 칭송하며, 격려 편지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서로에게 말하고, 세상에 말하라. 인류 절반이 숨기려는 수치스러운 진실을 밝히라.”
‘여성 살해’의 광범위한 의미를 제시한 다이애나 러셀
이러한 이야기들이 모여 폭력의 연속성(2)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으며, 이는 198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리즈 켈리에 의해 이론화된다. 여성 살해는 이 과정에서 극도에 다다른 극점이라 할 수 있다.(3) 즉, “여성 살해는 강간, 고문, 성적 노예, 강제적 이성애, 강제 불임, 강제 임신(피임과 낙태를 범죄화), 정신외과 수술, 특정 문화에서 여성에 대한 영양 불균형 등을 포함하는, 여성 혐오적 공포의 연속성의 극단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브뤼셀 법정의 마지막 날, 남아프리카의 여성주의 활동가이자 작가인 <페미니사이드>의 저자인 다이애나 러셀(1938~2020)은 부부간 살인 관련 주제 발표를 하며 “여성들이 살해당할 때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선구적인 연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1992년에 출판된 ‘여성 살해 명명하기’(4)라는 주제별 선집 형식의 앤솔로지는 <여성 살해>에 대한 최초의 이론화를 제공했다.
범죄학자 질 래드포드와 공동 편집한 저서에서 러셀은 제인 카푸티와 함께 쓴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테러리즘’이라는 장(章)에서 여성 살해(femicide)에 대한 광범위한 의미를 제시했다.
또한 이 선집은 여성 살해를 단순한 개인적 범죄가 아닌, 여성혐오와 성차별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여성 살해 용어는 초기 개념화부터 부부 관계에 국한되지 않았다.(5) 여성 살해는 오히려 다양한 사회적 이유로 인해 여성들이 조기에 사망에 이르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포함한다. 이 개념은 중앙아메리카에서 특히 큰 공감을 얻었다. 1990년대 초 멕시코의 국경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는 여성들을 상대로 한 대규모 범죄의 현장이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미국 시장을 위한 하청공장의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로, 1993~2003년에 발생한 여성의 연쇄 살인 사건만 1,000건이 넘었고 사건은 미제(未濟)로 남았다.
장기 밀매업자들, 카르텔, 사탄 숭배자들이 범인일 것이라는 온갖 소문들만 도시전역에 나돌았다. 세르히오 곤살레스 로드리게스 기자는 “많은 여성들이 마지막으로 버스를 기다리던 모습이 목격된 직후 사라졌으며, 그 주변에서 차량이 돌아다니는 것이 목격되었다”라고 전했다.
‘우리 딸들을 집으로’(Nuestras hijas de regreso a casa)와 같은 단체들은 1993년부터 이러한 희생자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후아레스 대학교 사회학자 줄리아 에스텔라 모나레즈 프라고소는 “당시 멕시코에서는 여성 살해에 대해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서가에 있던 제인 카푸티의 『성범죄의 시대』(1987)를 참고했다. 프라고소는 1998년부터 대학 내 팀을 구성해 이 문제에 대한 기록을 확장했다. 2023년 8월 그녀는 “1993년 이후 2,526건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됐다”라고 밝혔다.
분석을 통해 그녀는 유형화를 제시했다. 가정 및 부부 관계 맥락에서는 ‘친밀한 여성 살해’라고 부르며, 이는 ‘체계적 성적 여성 살해’와 구분된다. “많은 희생자들이 17세 이하에, 피부가 짙었고 빈민가에 거주했다. 시신에는 고문과 성적 절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남성과의 권력 갈등 속에 벌어지는 젠더 범죄
이러한 살해 행위는 단순히 생명을 빼앗는 것을 넘어, 모욕과 모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한 논문에서(6) “살해된 것은 여성의 생물학적 신체뿐만 아니라, 그녀의 신체가 문화적으로 짓밟힌 모습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프라고소는 또한 ‘낙인이 찍힌 직업군’에서 발생하는 여성 살해를 심각하게 거론하며, 여기에는 웨이트리스, 성 노동자, 마사지업 종사자에 대한 살해 사건이 포함됐다. 그녀는 “이들이 여성의 전통적 역할 관점에서 볼 때 ‘여성성’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으며, ‘나쁜’ 여성들로 간주되어 극히 위험한 공간에 머문다”라고 썼다.
코스타리카에서는 같은 시기, 멕시코의 프라고소와는 별개로 몬세라트 사고트와 아나 카르세도라는 두 대학 교수가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착수했다. 이들은 1992년의 여성 살해 앤솔로지를 읽은 후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고트는 2012년 인터뷰에서 “이전에 코스타리카에서는 이런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창의적으로 방법론을 세웠다”라고 회고했다.(7) 즉, 사고트와 카르세도는 1990년대의 이러한 살인 사건을 연구하며, 하위 범주의 시나리오를 구상하여, 친밀한 경우와 비친밀한 경우, 그리고 ‘연관성에 의한’ 경우를 각각 구분했다.
예를 들면, ‘연관성에 의한’ 경우는 피해자가 다른 사람을 지키려다 ‘총알이 날아온 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살해된 경우다. 딸, 자매, 친구, 이웃을 보호하려다 희생된 사례가 그러한 경우다. 코스타리카 학자들은 앵글로색슨권과 마찬가지로 ‘페미사이드(femicide)’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데 반해, 스페인어권에서는 ‘페미니시디오(feminicidio)’라는 단어가 더 흔히 쓰이며, 프랑스에서는 공적으로 ‘페미니시드(féminicide)’라는 용어가 자리잡았다.
이 번역어는 멕시코 학자이자 정치인인 마르셀라 라가르데 이 데 로스 리오스가 1990년대부터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멕시코의 시우다드후아레스 지역을 연구하다가 러셀과 래드포드의 앤솔로지를 접했는데, “이 책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겪는 권력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젠더 범죄를 이해하게 해줬다”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여성살해에 관한 원래의 정의를 확대해 이를 ‘면책’의 개념과 연결했으며, (여성 살해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한 태도를 이 범주에서 비판했다.
유엔이 공식 인정한 두 개념, ‘페미사이드’와 ‘페미니시드’
‘페미사이드’와 ‘페미니시드’가 라틴아메리카의 경험과 이론화에 힘입어 젠더 범죄의 체계성을 띠게 되자, 유엔(UN)은 두 용어 중 어느 하나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자주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한다.
유엔은 2012년 빈 심포지엄에서 이 개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이 자리에는 다이애나 러셀도 초청되었다.(8) 이와 관련하여 여성 살해를 유형별로 세분화했는데 ‘친밀한’ 여성 살해와 ‘비친밀한’ 여성 살해를 구분하고 ‘명예’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살인도 유형의 하나로 제시했다.
이는 여성이 도덕적 법률이나 전통을 어겼다고 비난받을 때, 예컨대 간통, 혼외 성관계, 혼외 임신, 심지어 강간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발생하며, 특히 인도에서 종종 발생하는 지참금 문제와 관련된 살인도 이해 해당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살해당한 여성 중 35% 이상이 배우자에게 살해된 반면, 남성의 경우는 겨우 5%에 불과하다.
프랑스에서는 2010년대에 들어 여성 살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북미에서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은 흔적을 남겼다. 가정폭력 미디어화 전문가인 정보통신학자 주세피나 사피오는 “초기의 여성 살해 용어 사용 사례들은 주로 해외, 특히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식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언론에서 주목한 사건 중 하나는 2011년 7월 아르헨티나에서 프랑스인 유학생 두 명이 살해된 사건이다. 카산드르 부비에와 후리아 무므니는 하이킹 중 납치, 강간, 살해되었다. 카산드르의 아버지 장미셸 부비에는 언론을 통해 여성 살해의 법적 인정을 위한 캠페인을 펼쳤다.
프랑스 사전에도 등재된 “여성 살해”
그는 <르몽드>에 기고한 글에서 “내 조국의 형법에 여성 살해 범죄를 명시하는 것이 이제 내 노년의 소망이다”라고 썼다.(9) 또 다른 중요한 사례로는 2014년 여성 단체 Osez le féminisme! (OLF)가 주도한 “여성 살해를 형법에 인정하자”라는 캠페인이 있었다. 이 캠페인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프랑스에서 관련 논의의 선례를 남겼다.
이듬해인 2015년, “여성 살해”라는 단어가 프랑스어 사전인 『르 로베르』에 등재되었고, 이후 프랑스 언론의 기사 제목에서 점점 더 눈에 띄게 되었다. 정보통신학자 주세피나 사피오는 페미니스트 단체 Nous Toutes와 함께 이 단어의 미디어상 등장 과정을 추적했다. 사피오는 “2017년에는 100여 개의 기사가 이를 언급했으나, 2022년에는 무려 3,200개 이상의 기사가 이를 다뤘다”라고 설명했다. 소셜 미디어는 이러한 논의를 증폭하는 역할을 했다. 2010년대에 성차별적 폭력 및 성폭력 반대 운동을 정치적 무대로 끌어올린 것은 여러 개의 해시태그였다. 가장 유명한 #MeToo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2015년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즘 운동도 #Ni Una Menos(“한 명도 더는 안 된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이 구호는 2011년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살해된 멕시코 시인 겸 활동가 수사나 차베스의 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그녀는 신념과는 무관하게 우연히 청소년들에게 공격받아 목숨을 잃었다. 또 다른 예로, 칠레에서는 여성 집단이자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인 라스 테시스(Las Tesis)가 2019년 페미니즘 논제를 전파하기 위해 길 위의 강간범이라는 퍼포먼스를 공연했으며, 이들은 브라질계 아르헨티나 인류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리타 로라 세가토의 저서(여성의 폭력 남성의 권력)에서 영감을 받았다.(10)
라스 테시스(Las Tesis) 멤버들은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발을 구르며 “El violador eres tú”(강간범은 너다)를 외친다. 이 퍼포먼스는 세계적으로 퍼졌고, 프랑스에서는 2019년 11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파리 벽보 집단과 Nous Toutes 단체 회원들이 “강간범은 너다, 살인범은 너다”라는 문구로 재현했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여성 살해 반대 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2016년부터는 “동반자 혹은 전 연인에 의한 여성 살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자발적 활동가들이 새로운 희생자가 발생할 때마다 두세 달 간격으로 소식을 전하며 피해 사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단어가 공적 논의 속에 자리 잡긴 했지만, 여전히 공적 통계와 형법에서 벗어나 있으며 친밀한 관계와 부부 관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2006년부터 매년 발표되는 피해자 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부부간 폭력 사망 사례를 다루고 있으며,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최소 2,346명의 여성이 부부 관계에서 살해된 것으로 집계되며, 이는 연평균 약 146명에 달한다.
프랑스 의원들, 범죄항목 신설 보다 가중처벌 시스템 선호
이러한 범죄에서 성별의 비대칭성은 뚜렷하여, 피해자의 85%는 여성이고 가해자의 85%는 남성이다. 마를렌 시아파의 주도로 정부는 부부 폭력에 대한 그르넬 회의(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를 조직하고, 부부 살해 건수를 줄이기 위한 여러 약속을 내놓았다. 프랑스 경찰서와 헌병대에는 치명적 폭력 가능성을 평가하는 위험 평가표가 배포되었고, 이론상 첫 고소 접수 시 총기 소지자의 총기 압수 조치가 의무화되었다.(11)
당시 여당 소속이었던 피오나 라자르 의원은 ‘여성 살해’에 대한 별도의 범죄 항목 신설을 검토하기 위한 보고서를 주도했으나, 대신 제도적으로 이 용어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의회가 해당 문제를 논의한 두 번째 사례로, 첫 번째는 2016년 사회당 소속 카트린 쿠텔 의원 주도로 조용히 진행되었으며, 그녀는 여성 권리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정당에 상관없이 결론은 동일했으며, 프랑스 의원들은 ‘여성 살해’를 형법에 직접 명시하기보다는 가중처벌 시스템을 선호했다.
1994년 형법 개정 이후 배우자가 자신의 파트너를 살해할 경우 무기징역형이 적용되고, 2006년부터는 전 배우자에게도 해당된다. 2017년 1월 27일에는 성별, 성적 지향, 혹은 실제 또는 추정되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범죄와 관련하여 ‘성별’에 대한 가중처벌이 신설되어, 이는 비친밀한 여성 살해의 사례도 포함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사법 정책은 처벌뿐만 아니라 치명적 폭력을 포함한 폭력 예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입법 의원은 위험 신고 전화와 접근 금지 팔찌, 그리고 2010년에 도입된 보호 명령과 같은 장치를 통해 피해자가 파트너와 분리될 수 있는 안전한 절차를 지원하고자 한다. 보호 명령은 가해자가 재판이나 처벌을 받기 전에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며, 발부 자체로 자동으로 형사 소송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2010년에서 2021년 사이 보호 명령의 발부 건수가 10배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보호 명령 활용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다(프랑스 약 6,000건, 스페인 40,000건, 영국 25,000건).(12) 문제는 이러한 보호 명령 발부 권한이 프랑스의 가족 법원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 모델은 전통적 가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어, 폭력적인 아버지의 부모 권한을 긴급히 제한하고 공동 양육 모델을 흔들게 될 것을 우려하는 판사들이 많다. 이 주제를 연구한 사회학자 솔렌 주아노이에 따르면, 이같이 낮은 발부 신청 중에서도 약 40%가 이미 기각됐다.
‘부부 내 폭력 사망’ 외에도, 현재의 통계 및 경찰 시스템은 다른 여성 살해 사건의 구체적인 상황, 특히 ‘가족 외 범죄’로 분류된 경우(2022년 기준 121건, 여성 살해의 약 44%)를 상세히 분석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13) 이러한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인터 오르가 데 페미니시드(Inter Orga des féminicides)는 2023년 1월부터 종합적인 집계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언론 감시뿐 아니라 성 노동자 권리를 옹호하는 파라플루이 루즈, 트랜스젠더 인권 단체 Acceptess-T, 장애 권리 단체 Les Dévalideuses와 같은 현장 조직의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는 ‘강제 자살’ 사례도 포함되며, 이는 여성 살해 시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서, 법적으로는 종종 ‘폭행 및 상해’로 분류된다.
2023년 134건이 집계되었으나, 이는 실제 사례보다 낮은 추정치다. 새로운 집계에 참여했던 기호학자 주세피나 사피오는 “이들 이야기 대부분이 여전히 불분명하게 남아 있다”라고 탄식했다.
글·로렌 다이카르 Laurène Daycard
저널리스트. 『우리의 부재자들: 여성 살해의 기원』(2024, 파리) 저자
번역·김민주
번역위원
(1) Margot Ciacinti, 「Nous sommes le cri de celles qui n’en ont plus : historiciser et penser le féminicide 우리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의 외침이다: 여성 살해를 역사화하고 고찰하다」, <Nouvelles questions féministes, Lausanne>, vol. 39, n° 1, 2020, Marie Mathieu, Vanina Mozziconacci, Lucile Ruault, Armelle Weil 편집.
(2) Liz Kelly, 「Le continuum de la violence sexuelle 성적 폭력의 연속성」, <Les cahiers du genre>, n° 66, 2019, Marion Tillous 번역.
(3) Christelle Taraud, 『Féminicides. Une histoire mondiale 여성 살해: 세계사』, La Découverte, Paris, 2022.
(4) 이 프랑스어 번역은 원래 Open University Press에서 『Femicide: The politics of woman killing 여성 살해: 여성 살해 정치』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5) Myriam Hernández Orellana, 「Le lissage de la formule fémicide par le discours institutionnel. Le cas de la loi sur fémicide au Chili 제도적 담론에 의한 여성 살해 공식의 평탄화: 칠레 여성 살해법 사례」, 『On tue une femme. Le Féminicide. Histoire et actualités 여성을 죽인다 : 여성 살해, 역사와 현재』, Hermann, Paris, 2019, Lydie Bodiou, Frédéric Chauvaud, Ludovic Gaussot, Marie-José Grihom 및 Laurie Laufer 편집.
(6) 「Feminicidio sexual sistémico : impunidad histórica constante en Ciudad Juárez, víctimas y perpetradores 체계적 성적 여성 살해: 시우다드 후아레스의 지속적인 역사적 면책, 피해자와 가해자」, <Estado & comunes>, revista de políticas y problemas públicos, LIEU, vol. 1, n° 8, 2019.
(7) Julie Devineau, 「Autour du concept de fémicide/féminicide : entretiens avec Marcela Lagarde et Montserrat Sagot 여성 살해 개념에 관하여: Marcela Lagarde와 Montserrat Sagot과의 인터뷰」, <Problèmes d’Amérique latine>, LIEU, n° 84, 2012.
(8) Diana Russell, 「Vienna Declaration on Femicide 여성 살해에 관한 빈 선언」, 개인 블로그, dianarussell.com.
(9) Jean-Michel Bouvier, 「Reconnaître le crime de féminicide. L’assassin de ma fille l’impose 여성 살해 범죄 인정: 내 딸의 살해범이 이를 요구한다」, <Le Monde>, 2011년 10월 5일.
(10) Rita Laura Segato, 『La guerre aux femmes 여성에 대한 전쟁』, Payot, Paris, 2022.
(11) 「En France, un tiers des victimes de féminicides conjugaux ont été tuées par arme à feu 프랑스에서 가정 내 여성 살해 피해자의 3분의 1은 총기 사망」, <La Chronique d’Amnesty International>, 2023년 12월 1일.
(12) Solenne Jouanneau, 『Les femmes et les enfants d’abord? Enquête sur l’ordonnance de protection 여성과 아이들이 우선? 보호 명령에 대한 조사』, CNRS Éditions, Paris, 2024.
(13) 「Insécurité et délinquance en 2022. Bilan statistique 2022년 치안 및 범죄 통계」, 프랑스 내무부, 2023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