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속의 동아시아를 평화협력 공동체로

2012-10-14     백태웅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간 우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선의 향배를 말하고, 여당 후보의 지지율 추이와, 야권의 대표주자가 과연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의 성과가 순식간에 퇴보하는 모습을 본 까닭에, 민주적 정론과 시민사회의 건강한 역할보다는 정권을 통한 직접적 정의의 실현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정책과 노선보다는 인물을, 국가의 진로에 대한 토론보다는 정치공학과 이미지를 더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선거판은 아직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국내 정치의 변화무쌍한 진전 속에 지금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대한 변화를 간과하기 쉽다는 점이다. 국내 사정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한데 무슨 국제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세계는 심각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새롭게 번지는 신냉전의 기류

우선 중국과 일본의 긴장관계가 심상치 않다.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 열도를 가운데 두고 한바탕 힘겨루기를 한다. 일본이 첫 주먹을 날렸다. 센카쿠 열도의 3개 섬을 22억5천만 엔에 매입하는 형식으로 국유화를 진행했다. 그러자 중국 전역에서 반일(反日) 시위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고, 급기야 중국 해군의 호위를 받는 어선 대열이 센카쿠 열도로 접근하더니, 이제는 중국 해군 구축함과 유도탄정이 동원되어 동해 함대 소속 전투기와 폭격기의 엄호를 받으며 합동 해상 조준 사격훈련을 공공연하게 했다. 이에 맞서 미국은 미-일 동맹을 이유로 들며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핵추진 항모인 조지워싱턴호 전단을 센카쿠 주변의 동중국해에 보내 작전을 시작하고, 또 다른 핵추진 항모 존스테니스호 전단을 남중국해 쪽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만에 하나 일본과 중국이 서로 발포하며 군사적 충돌을 벌이면 한국은 과연 어느 편을 들어야 할까.

이런 긴장 관계는 비단 중국과 일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지난해 8월 일본 자민당 의원의 독도 방문을 위한 입국을 불허함으로써 일본 내의 독도 이슈화에 휘말리게 됐고,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우왕좌왕하던 태도와 맥이 닿지 않게 직접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더 이상 조용한 실리외교 전략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사실 한국 쪽의 일본 대응 수위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우선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낸 헌법소원 소송과 관련해 한-일협정 제3조의 절차에 따라 한국 정부가 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고 판시해 일본에 충격을 주었다. 대법원도 일제하 징용 문제와 관련해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이 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뿐만 아니라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의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연설에서 "무력분쟁하의 성폭력 문제와 과거사"라는 표현으로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이처럼 한국 정부는 일본의 긴장고조 기조에 부응해 충돌을 불사하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당연히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의 지점에 서 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북한과의 대화 채널이 끊기고, 남북의 긴장관계 또한 냉전 이래 가장 높은 지점에 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동북아시아 현재의 안보 상황은 거의 최악이라 해도 좋다.

이런 정세 급변의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냉전 이후 아시아의 평화질서와 관련한 계획 없이 동아시아의 탈냉전 체제의 형성을 미뤄 오기만 했다. 미국은 냉전 이후의 세력 공백 속에서 북한 핵문제를 부각시키고, 6자회담을 통한 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이 상황은 중국에 좋은 기회를 제공해, 이제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과거 소련에 비견할 정도로 성장했다.

게다가 중국은 이른바 유(U)자형 해양경계선을 제기해, 한국·일본에서 시작해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아시아 전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영토 및 해양 경계를 놓고 주변국과 긴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 미국도 더 이상 아시아의 상황을 손 놓고 볼 수 없게 된 면이 있다. 마침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끝내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거의 발을 뺐기 때문에 아시아 중시 정책을 내세우며 태평양 지역의 군사적 영향력을 증대하는 것이 가능해진 측면도 있다. 현재 아시아의 긴장은 중국의 성장에 미국의 중국 봉쇄 움직임이 이어지고, 일본이 미국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여 평화헌법의 개정을 성취하고 재무장을 이뤄 이른바 '정상국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아시아 긴장 상황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런 긴장은 새로운 세력 균형의 시스템이 자리잡을 때까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긴장 당분간 계속될 것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정보혁명은 인류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놓고, 문명의 대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동 지역의 석유와 가스를 근간으로 한 현대 산업사회의 국제역학 관계는 근본적 도전을 받고 있고, 국제 투기 자본과 초국적 자본의 운동은 세계 지도를 재조정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아시아에서는 지역주의가 성장 발전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속에서 한국이 급속한 구조조정을 강요당하며,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받아들이는 동안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타이·베트남 등 아세안(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은 지역 통합의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튼튼한 협력의 기초를 놓기 위해 해묵은 갈등과 패권주의, 불균등한 경제발전, 상이한 종교 등 여러 이질적 요소를 넘어서 똘똘 뭉치기 시작했고, 이제 오랜 세월 변방이던 지위를 벗어났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아세안과 결합한 '아세안+3'이 만들어지고,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를 포함한 16개국이 모여 동아시아정상회담을 2005년부터 열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전통적으로 아시아의 지역 통합에 반대해왔던 미국과 러시아까지 동아시아정상회담 정규회원으로 가입해, 이제 동아시아는 유럽공동체처럼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재 추세를 보건대 아시아는 앞으로 10년, 길어도 20년 이내에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이다. 아시아 각국을 아우르는 공동 사무국이 설치되고 안보협력과 경제협력, 인권·사회 협력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경쟁,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와 긴장은 역설적으로 이런 화해와 협력의 공동체가 시급히 필요함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북핵문제의 해결이나 한반도의 통일도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과 맞물릴 수밖에 없고, 한반도 통일도 이런 체제 속에서 주변국들의 공감과 지원을 얻어낼 때 가능할 것이다.

한국 대선… 평화공동체로 가는 길목

이런 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아도 한국의 이번 대선은 중요하다. 새 정부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후퇴해온 민주주의를 안정시키고, 경제적 민주화와 복지를 더욱 진전시켜나가야 한다. 생산과정과 노동과정, 그리고 소유와 분배 과정까지 모두 아우르는 참된 경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 동시에 아시아의 지역 통합을 선도하며, 변화하는 세계에 뛰어들어 국제협력을 주도해야 한다. 국제 경제협력이 꼭 거대기업과 부유한 소수를 위한 협력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각국 공동의 노력으로 노동과 삶의 기준을 향상시키고, 상품과 자본 시장의 개방에 부합하는 노동 과정의 인간화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함께 마련하는 일도 꼭 같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새 정부는 주변 국가와 경쟁하고 싸우는 국수주의 정부가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며 협력하고 아시아 지역 공동체를 이끄는 정부가 되어주기 기대한다. 긴장 속의 동아시아를 민주주의와 경제협력, 그리고 인권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진정한 평화협력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는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이다.

글•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부교수. 서울 법대 졸업 후 미국 노틀담 대학에서 국제인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아시아의 미래를 연구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법무법인 원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