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혁명'들'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루소의 사상은 1776년부터 토머스 제퍼슨에 의해 작성된 미국의 독립선언에도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루소의 저작에서 영감과 정당화를 발견한 또 다른 많은 반(反)식민지 투쟁이 있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금지됐던 남미의 여러 스페인 식민지 해방에 결정적 기여를 한 시몬 볼리바르(1773∼1830)는 헌법과 정치에 관련된 저작에서 루소의 교훈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또한 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인도차이나에서는 식민지 당국의 위험 인물이자 독립 사상을 전파하는 신문의 책임자로 있었던 능위엔 안 닌이 <사회계약론>(베트남에서도 금지됐다)의 발췌본을 1926년 베트남어로 번역했다. 이 책에 대해 약간의 우려를 품은 당시의 유력인사 폴 카르통의 말을 빌리면,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이 책을 '사회 복음서'로 여겼고, 이 책을 '반항의 효소와 살인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원주민들에 의해 게걸스럽게 소비됐다.
일본을 필두로 극동 전체가 루소에 흠뻑 빠지게 된다. 일본에서는 나카에 초민이 1874년부터 <사회계약론>의 일부를 한문으로 번역하고 주해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저서를 발판 삼아 그들의 운동을 전개했고, 유럽 모델에 따라 일본을 건설하려 했던 자들 역시 이 저서에 입각해 그렇게 했다. 중국에서는 혁명적 시각으로 이 저서를 전파한 것은 <주르날 뒤 풰플>이었다. 쑨원이 조직한 당의 기관지였던 이 신문은 1912년 창립된 중화민국을 위해 투쟁했다. 물론 <사회계약론>을 원용한 모든 사람들의 목록을 여기에서 소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루소의 이름은 계몽과 진보의 딸인 이른바 '근대성'으로 진입하는 여러 민족들과 보조를 같이했다.
전세계로 퍼져나간 혁명 사상
이런 모습을 가진 루소는 '공포에 대한 영감을 준 자'라는 비난 역시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극우파의 주요 인물인 폴 데룰레드는 20세기 전환기에 우정 어린 태도로 루소의 이름을 거론했고, 비시 정권에서 장관직을 수행한 마르셀 데아는 1942년 루소를 '전체주의자 루소'로 찬양하고, '민족혁명의 선구자이자 조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1) 루소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지만 무아마르 가다피가 쓴 <그린북>에도 루소의 여러 개념이 녹아들어 있다. 크메르루즈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하면, 비록 이 이데올로기가 루소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폴 포트와 키우 삼판이 루소를 깊이 연구했을 수도 있다. 이들의 이데올로기와 루소 철학의 주요 개념 사이에 친화성이 있다는 것은 그다지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다. 마오쩌둥주의자들의 문화혁명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알랭 바디우의 견해이기도 하다.(2)
그렇다면 루소에 대한 해석에서 이런 폭넓은 애매성이 엿보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루소의 저작에서 대체 어떤 요소가 스페인 팔랑헤 당원들의 반대파에 대한 증오와 동시에 열렬한 진보주의자이자 자신의 <서양철학사>(2012)에서 루소를 "의사(擬似)민주주의적 독재에 대한 정치철학 창안자"로 묘사하고 "히틀러를 그 결과물"이라고 결론을 내린 논리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도전을 낳을 수 있었을까? 영향이 너무 커서 이미 민주주의의 공동 자산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루소의 정치 저작들, 특히 <사회계약론>을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사유의 쟁점, 이 사유의 애매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의 사유가 단지 과거에만 속하는 것 같지는 않다.
루소의 위대한 교육학 개론인 <에밀>과 마찬가지로 <사회계약론>(3) 역시- 두 저서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1762년에 간행됐다. 게다가 두 저서는 주네브 당국이 내세우는 논리에 따라 "무모하고, 파렴치하고, 반종교적이고, 기독교와 모든 정부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는 그 유명한 이유로 분서의 선고를 받게 되었다. 당시 주네브 당국의 이런 관찰은 그다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사회계약론>은 다음과 같은 혁명적인 표현으로 시작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은 어디에서나 구속 상태에 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이 자유는 인류의 유년 시절 자유, 그러니까 놀랄 만한 진화가 약속된 두 발 가진 동물인 인간이 아직 순수한 감각에 의존하던 동물일 때의 자유다. 이런 원시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의 힘은 각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용하는 힘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단결하게 된다. 그들은 사회를 만들고, 자신의 동물성을 상실하게 되고, 자신의 재산과 힘에서의 불평등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그로부터 기인하는 종속성에 맞서 연합 형태를 고안해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 연합은 모든 구성원의 공동의 힘으로 각 연합자의 인격과 재산을 옹호하고 보호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연합을 통해 각자는 모든 이에게 복종하지만, 그럼에도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해야 하며, 옛날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워야 한다." 이런 연합 형태가 '사회계약'이다. 즉 하나의 정치 공동체, 시민들로 이루어진 민중을 낳는 모든 계약자의 모임이다.
물론 그 목표는 구성원들의 평등과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루소가 '주권자'라고 명명한 민중은 '일반의지', 다시 말해 각자의 합리적 선택과 다름없는 집단적 결정을 드러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개인적 차이는 극복되고, 이는 당연히 이성 덕분에 가능하다. 이성은 각자에게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연대적 이해관계를 지각하게 해준다. 이때 일반의지, 평등과 자유의 보장을 표현하는 법에의 복종은 자유 그 자체가 된다. 이같은 복종에 "공동체에 대한 자기 자신의 모든 권리를 가진 각 연합 당사자의 완전한 소외"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이 공동체가 지속되는 데 필요불가결한 조건이 된다.
여기에서 기본적 개념만 소개한 이같은 주장은 명백하다. 이 주장에는 자연권의 존재, 이성의 보편적 가치, 주권재민의 원칙 등의 가정이 포함돼 있다. 물론 각 요소는 다른 요소와 연결돼 있다. 자연권을 천명하는 것은 계몽의 항구적 요소로, 그것은 무엇보다 인류 통합의 원칙을 단언하며, 인류를 애초에 자유로운 존재로 규정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그의 이웃에 대해 자연적인 권위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고, 또한 힘은 그 어떤 권리도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권을 천명하는 것은 그대로 각자는 자신의 자유에 대한 보호권을 가진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노예의 족속도 없고, 주인의 족속도 없다. 이런 통합, 이것을 정초하는 것은 당연히 이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는 오성(사람의 다섯 가지 성정인 기쁨·노여움·욕심·두려움·근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루소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징이며, 인간은 교육을 통해 이성을 계발해야 할 임무를 띠고 있다.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의 이행을 통해 인간에게 아주 주목할 만한 변화가 발생하고, 이 변화를 통해 그의 행동에서 정의가 본능을 대신하게 된다." 공화국이 시민의 자유를 거쳐 평등의 조건을 조성할 수 있는 유일한 체제다. 왜냐하면 이 체제만이 개인에게 한 명의 시민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또한 그의 의지를 공동선의 이름하에 표명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루소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 개념이 익숙해지기까지 이론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개념은 한편으로 신이 바라는 자연적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중, 일반의지는 반드시 계몽돼야 한다는 것을 가정한다. "인간의 자연적 권리, 양도 불가능한 권리, 성스러운 권리"를 선언하면서 1789년과 1793년에 제정된 인간의 권리선언이 보장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런 권리는 이후 1946년까지 잊히고 만다. 낙관주의와 순결주의를 비롯해 이런 구상에 수많은 비판이 대립각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이성인가? 하물며 대중이 문제시되는 경우,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오히려 감정이 아닌가? "자유가 계속 구속을 만들어내는 정념에 자신을 내맡기는 인간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사물의 부동의 법칙이다." 1791년부터 아일랜드 출신 정치인이자 열렬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2011)에 이어지는 <한 하원의원에게 보내는 편지>(2012)에서 민중·이성·자유 사이의 등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정확히 루소 사상의 다양한 수용의 한복판에 있는 문제이자 공포에 의해 대변되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일반의지에 대해 어떤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가?
루소에 의하면, 주권적 민중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때, 이 민중이 자신의 힘을 위탁하는 심급들은 이 의지가 실현되게끔 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이 의지는 공동선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거기에 해방 계획을 위한 '자유의 전제주의' 논리가 자리잡을 수 있게 된다. 이 표현은 로베스피에르가 1794년 국민의회에서 했던 연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의 의지에 포함된 절대주권은 정의상 그 안에 '좌파 전체주의'로의 경사를 포함하는 것일까? 물론 이것은 여러 권의 저서 중에서 특히 <프랑스혁명을 생각하기>(1978)라는 저서에서 볼 수 있는 프랑수와 퓌레의 주장일 수 있다. 그는 자코뱅에 대한 분석에서 '정의로운 자들'과 '심술궂은 자들' 사이의 필연적인 대립으로의 귀착을 비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런 대립은 선(善)의 폭정을 낳았고, 이것이 바로 '세속적인 레닌-인민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예고한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대중이 가진 주권의 불가침성에 근거한 인간의 권리선언은 어쩔 수 없이 폭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의회의원들이라는 민주주의와 주권의 독점 수단을 제거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은 대중의 권리에 속한다." 가다피는 <그린북>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당제도가 이기주의적 내용을 가진 민주주의의 캐리커처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결국 루소의 잘못일까?
"민주주의는 신들의 신민을 위해서만 생각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주장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사회계약론>에는 이상적인 공화국의 조건이 기술돼 있다. 이 공화국은 이상적 차원에서도 교육에 의해 계몽된 시민들로 구성된 대중에 의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 인류가 공유한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이 조건은 분명 다음과 같은 것들 사이의 긴장과 모호함으로 나타난다. 즉 즉자적으로, 원칙적으로 평등의 요소인 이성의 보편성과 평등주의의 고결한 요인으로서 일반의지 사이, 그리고 추상적인 공동선과 개별적 욕구 사이의 긴장과 모호함이 그것이다. 따라서 탐문해봐야 하는 것은 우리가 실천하는 것 같은 민주주의 그 자체의 긴장이고, 이 민주주의에 의해 가려진 잠재적 폭력이다. 왜냐하면 신이 되는 것을 기다리면서 시민들은 그들의 판단을 단 하나의 '이성'이 아니라 여러 개의 '이성들' 위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일반의지는 내재된 갈등에 대한 성찰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갈등의 해결책으로 앞에 서서 길을 밝히는 전위부대가 선택되든, 아니면 교육의 계몽을 통해 서서히 깨우치는 대중이 선택되든 간에,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계획은 우리 인간 자신의 '완벽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18세기의 철학자들이 고안한 이 신조어는 어쩌면 현재 그 당시보다 덜 공유되고 있는 하나의 확신을 보여준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변광배 프랑스 인문학연구모임 '시지프' 대표. 주요 저서로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등이 있다.
(1) 마르셀 데아, http://rousseaustudies.free.fr.
(2) A. Badiou는 크메르루즈와 문화혁명을 지지했다. 특히 ‘캄푸치아가 이길 것이다’(<르몽드>, 1979년 1월 17일)라는 제목의 논단을 볼 것. 그는 이 논단에서 크메르루즈가 저지른 범죄가 밝혀졌음에도 ‘반(反)캄보디아 캠페인’을 비난하고 있다.
(3)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플라마리옹(GF), 파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