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위기
정부 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자 이런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오랫동안 기업 대표들에게 컨설팅해오고 프랑스 민주노조 총연맹(CFDT)에서 활동해온 올리비에 다르장리유는 '세계의 시민'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정부 조직을 재편해야 인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2) 이제 민족국가로는 경제발전에 한계가 있고, 국가주권은 환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유엔보다 유연한 세계의 정부를 추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대표가 되는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적인 조직체, 시민들이 주축이 되는 세계 정부가 중심이 돼서 새로운 민주주의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 남용을 통제하는 '세계의 시민 정부'가 생기면 분명 각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기존 결함을 보충해 새로운 국가 조직, 유럽 조직, 세계 조직을 만들도록 할 수 있다. 이미 몇 년 전에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도 기존 조직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더구나 세계 시민이 이끌어가는 새로운 조직은 여러 단체, 비정부기구들과 손잡으며 인권을 보편적으로 존중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고유한 민족, 언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각국의 시민들이 세계 시민이라는 큰 틀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 나라마다 안고 있는 서로 다른 문제(공공서비스·노동조합·환경 등)를 '글로벌 민주주의 체제'로 어떻게 통합해 해결할 것인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십자군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데 그 위험성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최근 세계의 안보와 인권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벌어진 '민주적이고 인류애적인' 전쟁을 보면 글로벌 민주주의가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3)
'세계 시민' 개념을 도입한 글로벌 민주주의 같은 이상주의적인 방법보다 더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 피에르 망데스프랑스 내각에 몸담은 프랑수아 랄랑드는 "먼저 소수 지배층이 권력을 장악하고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재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4) 객관적으로 보면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원칙(권력분립, 인권, 보통선거, 노동조합, 미디어로부터의 독립 등)을 담고 있고, 이 원칙이 잘 지켜질 때 비로소 시민들이 힘을 갖게 된다.
메커니즘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권력 집중에 대한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는 일단 내부적으로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이 문제가 모두 해결돼야 세계 시민 정부를 이룰 수 있다.
글•제레미 메르시 Jérémy Mercier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못생긴 씨앗 하나>(2012) 등이 있다.
(1) 츠베탕 토도로프, <민주주의의 내부의 적>(Les ennemis intimes de la démocratie), Robert Laffont, 파리, 2012.
(2) 올리비에 다르장리유, <세계 시민들의 놀라운 힘>(Le prodigieux pouvoir des citoyens du monde), Le Manuscrit, 2010.
(3) 프랑수아 랄랑드, <프랑스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어휘>(Vocabulaire critique de la d?mocratie en France), Bénévent, 니스, 2011.
(4) 프랑수아 랄랑드, <프랑스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어휘>(Vocabulaire critique de la démocratie en France), Bénévent, 니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