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두 남녀와 어두운 심연으로 뛰어든 방문객이 수놓은 인간 희비극, <메이 디셈버 May December>

2024-12-23     김채희(영화평론가)

 

 

1. 빌리 푸알 그리고 메리 케이 레투르노

  미국은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에 대해 그 어떤 죄목보다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 그래서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포르노 제작자, 유포자 혹은 그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범죄자는 평생 교도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범죄는 대중의 공분을 사지만 그 자체로 논쟁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왜냐하면 판단력이 미숙한 아이들에게 행한 사악한 범죄는 도덕적,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 중에 가장 논쟁적이면서 지금도 언론에서 회자되는 사례는 1997년 타블로이드 신문의 1면을 장식했던 ‘르투어노 사건’이다. 메리 케이 레투르노(Mary Kay Letourneau)는 당시 13세에 불과했던 빌리 푸알로(Vili Fualaau)와 성관계를 맺어 2급 아동 강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다가 더 이상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다. 그러나 레투르노와 그녀의 어린 연인은 법을 어기며 재회했고 그녀는 그 대가로 7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여기까지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레투르노는 최종 선고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를 낳았고 교도소에 다시 수감된 지 8개월 만에 두 번째 아이까지 출산했다. 졸지에 푸알로는 10대 중반에 두 딸의 아빠가 되었다. 그녀는 2004년 8월 만기 출소했으며 그 사이에 성인이 된 푸알로는 법원에 청원하여 레투르노에게 내려진 접근 금지 명령 조치를 뒤집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이 세기의 결혼식은 CBS 산하 레이블인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에서 독점 중계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종종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일상을 대중들과 공유했다.

  남편 푸알로는 이 사건 이후 학교를 중퇴하면서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는 작은 매장에서 시간제로 일했으며 종종 클럽에서 DJ로 활동하면서 일상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법을 어긴 레투르노는 로펌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일하면서 가정을 돌보는데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인들의 가십성 기사를 주로 다루는 '피플지'는 “그들은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으며, 잘못된 일은 오래 전에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인으로서 현재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라고 그들의 일상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2017년, 이들이 법원에 공식적인 별거를 신청했다는 기사가 등장하면서 다시금 당시의 사건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2019년 두 사람은 정식으로 이혼했고 2020년 레투르노는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푸알로와 두 딸은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며 트위터에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레투르노는 유언장에서 재산 대부분을 푸알로에게 물려주었다.

  전 세계인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던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는 1996년에 알려졌지만 그들이 처음 만난 때는 1991년, 푸알로가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다. 선생과 제자로 인연을 맺었던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취하다가 4년 후 푸알로가 6학년이 된 1995년, 레투르노가 담임을 맡게 되면서 감정의 격랑에 휩싸였다. 2년 동안 숨겨왔던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는 1997년 3월 레투르노가 어린 연인에게 쓴 편지가 남편에게 발각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레투르노 사건은 이미 두 차례나 책으로 발간되었고, 지난 2000년에는 USA Network가 <All-American Girl: The Mary Kay Letourneau Story>라는 제목의 TV용 영화로 제작해 출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논쟁이나 법률적 다툼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영화는 사실의 이면을 파헤쳐 진실에 접근하는 르포르타주나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올아메리칸 걸 : 메리 케이 레투르노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재구성한 다소 밋밋한 방식으로 제작되어 비평가들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여주인공을 맡았던 페넬로페 앤 밀러(Penelope Ann Miller)가 레투르노의 캐릭터를 분석하기 위해 당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당사자에게 면회와 전화로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다는 사실이다. 토드 헤인즈의 <메이 디셈버>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프로젝트였다.

 

 

2. 토드 헤인즈의 전략

  헤인즈가 <메이 디셈버>를 기획했을 때는 이미 레투르노가 사망한 이후였다. 그러므로 헤인즈는 레투르노가 부재한 상태에서 푸알로가 자신의 소회를 플래시백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이야기를 빌려 다른 주제를 표현해야 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두 사람의 사건 자체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던 헤인즈는 방문객을 등장시켜, 그가 기존 인간관계의 틈을 파고 들어들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파국을 떠올렸다. 낯선 방문객은 스릴러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수면 아래로 잠복한 불안정한 현재를 흔드는데 매우 요긴하게 활용된다. 이 방문객은 주로 위선과 위악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인물들의 내면에 도사리는 충동, 불만, 분노와 같은 감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만든다. <메이 디셈버>가 특별한 점은 이 역할을 유명 여배우가 맡는다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는 연극과 TV를 오가면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녀는 러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여주인공에 캐스팅된 상태라서 자신이 연기할 인물을 연구하기 위해 조지아로 간다.

 

엘리자베스는 레투르노와 푸알로를 연상시키는 그레이시(줄리언 무어)와 조(찰스 멜튼)에게 접근해 대화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잡아가는 한편, 그들의 자녀, 전남편, 이웃 주민들, 펫샵(그들이 정사를 벌이다 발각된 장소) 주인, 변호사 심지어 조의 초등학교 친구이자 그레이시와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조지(코리 마이클 스미스)와도 교분을 쌓으면서 '원초적 열정’의 근원을 찾으려 한다. 엘리자베스가 관계의 핵심에 다가갈수록 이들 가족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있는지 관객들은 차츰 깨달아간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는 이 가족의 내면에 자리한 결코 드러낼 수 없었던 감정들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거울을 활용해 인물을 이중화하거나 인물이 거울을 보는 것처럼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함으로써 관객이 그들의 내면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쇼트가 종종 등장한다. 헤인즈도 언급했듯이 <메이 디셈버>는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1966)에서 거울 장치를 빌려왔으며, <졸업>(1967)과 <헤롤드와 모드>(1971)에서는 나이든 여자와 젊은 남자의 연애 모티프를 취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관계의 실체를 드러나도록 설계된 방문객 혹은 틈입자 캐릭터는 조셉 로지의 <중개인>(1971)에서 빌려왔는데, 헤인즈는 로지 작품에 사용된 미셀 르그랑의 테마 음악을 거의 모든 시퀀스에서 그대로 반복하면서 <중개인>의 극적인 분위기를 계승하려 한다. 그런가하면 헤인즈는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1967)에서 여주인공 줄리에트 장송과 그 역할을 맡은 마리나 블라디를 관객에게 설명하는 장-뤽 고다르의 내레이션에서 메타-영화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한 적도 있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브라운 대학에서 기호학과 문학 전공으로 우등 졸업을 한 헤인즈는 20대 중반부터 영화에 몰두했고 43분짜리 단편 영화 <슈퍼스타: 카렌 카펜터 이야기>로 1987년에 데뷔했다. 원작자의 허락 없이 영화 전편에 무단으로 카펜터스를 포함한 많은 아티스트들의 원곡을 그대로 삽입해 아직까지 정식 출시되지 못한 이 문제작은 수없이 복제되면서 컬트영화의 고전 반열에 올랐고 이젠 누구나 자유롭게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는 카피 레프트의 대표적인 콘텐츠가 되었다. <슈퍼스타: 카렌 카펜터 이야기>는 1983년 거식증으로 사망한 가수, 카렌 카펜터에 관한 전기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데, 헤인즈는 대역을 사용하는 대신 등장인물들 전체를 바비 인형으로 채운 기발한 방식으로 관객을 놀라게 만들었다. <벨벳 골드마인>(1998)에서는 글램록의 창시자들 특히 그 중에서도 데이비드 보위를, <아임 낫 데어>(2007)에서는 그 유명한 밥 딜런을 너무나 독특한 방식으로 재현했다. 인물의 전기에 유별난 관심을 보인 헤인즈는 해당 인물과 닮은 배우를 통해 인물이 겪는 연대기적인 사건을 나열하는 고전적인 방식과는 철저히 담을 쌓는다. 전기 영화에 대한 헤인즈의 독특한 접근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메이 디셈버>에서도 일반적인 전기 영화와 다른 무엇을 기대했을 것이다. 영화가 소재로 삼은 실제 사건에 등장하지 않는 엘리자베스라는 거울 장치는 영화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그들만이 공유했던 내밀한 감정을 관객들에게 대리체험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독특하고도 실험적인 아이디어는 그들이 벌인 과거의 사건보다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3. 메소드(The Method)는 무엇인가?

  한석규는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작품 촬영이 끝나면 낚시터에서 여러 날을 보낸다고 했다. 그가 크랭크 업 이후 낚시터를 찾는 이유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였다. 짧으면 몇 달 길면 해를 넘기는 일이 허다한 프로덕션에서 배우는 꽤 긴 시간 동안 캐릭터를 온전히 몸과 영혼에 각인하기 위해 마치 무당처럼 타인에게 빙의한 삶을 산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2010)에서 최민식은 극악무도한 괴물 장경철을 연기했다. 그는 촬영장에서 동료들과 말을 섞는 것을 자제했을 정도로 캐릭터 구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최민식은 촬영이 끝난 후에도 장경철 캐릭터로 인해 상당한 후유증을 겪었다고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 한 대목을 소개해본다. 어느 날 최민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고 평소 안면이 있던 사람이 그를 반기며 반말로 어디 최 씨냐 물었다. 그때 최민식은 “근데 이 새끼가 왜 반말을 하지?”라고 속으로 되뇌었다고 한다. 니체의 아포리즘은 악을 투쟁하는 인간이 그 자신도 부지불식간에 악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한 문구이다. 이 아포리즘은 다른 인격과 일정 기간 동거해야 하는 배우들이 겪는 감정적 문제를 파악하는 데도 유효하다. 어떤 감정과 사상을 가진 타인을 오랜 기간 동안 육체와 영혼에 붙들어 매야 하는 배우는 캐릭터를 떠나보내는 숙려 기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캐릭터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한석규는 낚시터에서 하릴없이 세월을 낚았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배우는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 감정을 몸소 느껴야 하는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는가?” 이 질문에 대해 상반된 답을 한 거장들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대사를 입으로만 말하는 배우들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정열의 꿈속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상찬했다. 반면 계몽주의자 디드로는 셰익스피어와 상반되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배우들은 번갈아가며 강하고 약하게, 불같이 뜨겁고 얼음처럼 차갑게 그리고 때로는 둔하고 때로는 숭고하게 연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디드로가 보기에 배우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에서 비껴나 감각과 감정을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좋은 연기에는 감정이 아닌 인위적인 계산과 기교가 필수적이다. 그 자신이 울고, 우는 것이 아닌 계산된 행동으로 관객을 울려야 하는 배우는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드로는 ”모든 위대한 자연의 모방자들은 누구든 아름다운 상상력, 위대한 판단력, 섬세한 촉각과 매우 확실한 취향을 가졌으면서 또한 가장 덜 감성적인 사람들이다.”라고 결론짓는다. 우리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배우를 하면 잘하겠다.”라고 가벼운 덕담을 건넨다. 그러나 디드로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특성은 배우의 재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메소드(The Method)는 참으로 파악하기 힘든 개념이다. 비평가 알렉산드라 슈워츠는 “메소드만큼 널리 오해받는 예술적 개념은 거의 없다. 인상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박물관에 가서 모네 작품을 보면 된다. 의식의 흐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면 『율리시즈』나 『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면 된다. 하지만 배우가 메소드를 사용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혹자는 <살인의 추억>에서 시골 형사 박두만을 연기한 송강호를 메소드 연기의 전형이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송강호 연기는 배역 밑에 깔려 있는 자연인으로서의 배우 자신을 지시하기에 그를 자기-지시적인 배우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떤 배역을 연기하든지 배우 송강호가 자연인 송강호의 인용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호아킨 피닉스 역시 메소드 연기자라고 자신을 규정하는 비평가들의 시선을 부정하기도 했다. 이제 메소드는 정관사를 삭제하고 복수가 되어야 할 정도로 각양각색이며, 특정 배우가 메소드 연기법을 구사하는지 여부는 그 어느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미국식 메소드는 러시아에서 건너온 예술적 부산물이다. 셰익스피어의 연기론과 궤를 같이했던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는 1923년 1월 뉴욕에서 ‘차르 표도르 이바노비치’라는 연극을 러시아어로 공연했다.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올라선 스타니슬랍스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연극계 인사들이 모여들었고 후에 메소드 연기의 창시자들이라고 불리는 리 스트라스버그와 스텔라 애들러도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들로 인해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은 ‘메소드’란 이름으로 정착되었고 향후 미국 엔터테인먼트 계를 휩쓸었다. 메소드는 정관사가 붙었지만 결코 하나의 연기론이 아니다. 많은 연기 이론가들이 자신만의 메소드를 가지고 있다. 프랜쵸 톤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을 계승한 다양한 메소드 연기론들의 공통점을 “모든 대사 사이에 멈춰서 과거의 깊은 곳으로 모험을 떠나 올바른 감정을 찾는다.”라고 주장했다. 연인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어머니의 죽음을 대신 떠올리면서 상황에 몰입하는 식으로 메소드를 구현한다. 그런데 대다수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못한 감정일 경우는 어찌해야 하는가? 이러한 벽을 마주할 때 배우들은 감정의 빙의를 위해 범죄자나 사이코 패스를 만나고 교도소와 경찰서를 들락거린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감정을 체화하기 위해 배우들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관찰하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무경험을 유경험으로 승화시키려한다.

 

<메이 디셈버>의 엘리자베스는 디드로주의자면서 한편으로는 메소드 신봉자이다. 그레이시는 엘리자베스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묻는다.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답한다. 교수와 작가 부모를 둔 자신은 어린 시절 너무나 영특했고, 부모는 그녀가 배우가 되겠다고 하자 자신의 영특함을 매우 아쉬워했다고. 자기 확신에 찬 이 배우는 섬세한 감각을 자신의 지성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심연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다. 그런데 빙의의 대상이 되는 그레이시는 생각보다 훨씬 더 견고하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에게 어떤 이유로 자신의 역할을 맡았는지 묻는다.

 

엘리자베스: 대본을 읽었을 때 이 사람은 내가 알던 것보다 그러니까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읽거나 공동체의 기억 속에 남게 된 것보다 더 많은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레이시: 그 일은 이제 별로 생각 안 해요.

엘리자베스: 과거 생각을 안 한다고요?

그레이시: 네. 현재에만 집중하죠.

 

  엘리자베스가 이웃집 여자에게 그레이시의 어떤 점을 좋아하냐고 묻자 그녀는 “이 가족은 이웃에게 사랑 받는 사람들이예요. 그레이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죠. 자기변명도 안하구요.”라고 답한다. 내일을 사는 엘리자베스는 오늘만 사는 그레이시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레이시는 과거와 단절한 채 현재만 생각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만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난공불락의 성에 사는 ‘괴물’에 접신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어찌할 것인가? 그녀는 디드로주의자의 일면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메소드 신봉자로서 그레이시가 스스로 봉인한 그녀의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 엘리자베스는 우선 그레이시의 전남편을 만나면서 그녀의 과거를 그려본다. 그리고 원초적 열정을 직접 느끼기 위해 문제의 장소인 펫샵의 창고로 향한다. 엘리자베스는 이 특별한 장소에서 20년 전의 그레이시로 돌아가 조와의 첫 경험을 대리 체험하기에 이른다. 엘리자베스는 선배 배우 프랜쵸 톤가 그랬듯이 “과거의 깊은 곳으로 모험을 떠나 올바른 감정 찾기”를 위해 더 과감하고 극단적인 방식에 골몰한다. 지금껏 그레이시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대화했지만 그것만으로 그레이시라는 ‘괴물’을 온전히 그리기 힘들다고 판단한 엘리자베스는 조의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

 

그레이시를 의식하면서 조와 간헐적으로 접촉을 하던 엘리자베스에게 우연찮은 기회가 찾아온다. 천식을 앓고 있는 엘리자베스가 새로운 호흡 보조 기구의 사용법을 몰라 당황하자 친절한 조는 여동생도 천식을 앓았다면서 능숙하게 기구 사용법을 알려준다. 약간의 친밀감을 느낀 조는 “지금은 열어보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20년 전에 그레이시가 자신에게 보냈던 연애편지를 내민다. 엘리자베스는 이 남자에게 강한 동정심을 느끼면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속삭인다. 이내 동정심은 그레이시가 그랬던 것처럼 ‘원초적 열정’으로 변한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품을 파고드는 두 사람. 그런데 그 와중에도 엘리자베스는 편지의 내용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 섹스가 끝나고 엘리자베스가 남자의 인생을 ‘이야기’라고 발화하는 순간 화가 난 조는 거칠게 항의하고 나가버린다. 자신의 말실수로 인한 남자의 상처보다는 올바른 감정 찾기에 매몰된 엘리자베스는 20년 전 편지를 서둘러 읽는다.

 

“내가 더 늦게 태어났거나 네가 더 일찍 태어났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비극이나 불운을 만났을지 모르는 거잖아. 내가 결코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감사해. (중략) 내 바람은 적어도 법적 문제가 없을 때가지 비밀을 지키는 거야. 우리는 어떤 선을 넘었고 아마 또 넘게 될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지금은 그 선이 뭔지조차 모르겠어. 대체 누가 그은 선인거야? 내가 아는 건 그저 내가 널 사랑하고 너도 날 사랑한다는 거야. 오늘 밤에 넌 내게 큰 즐거움을 줬고 나도 네게 그랬기를 바라. 그리고 이건 태워버려. 누가 발견하면 내가 어떻게 될지 알겠지?

- 너의 그레이시로부터”

 

이 편지를 독백 형태로 읽어나가면서 엘리자베스는 완벽한 그레이시가 된다. 이후 몇몇 시퀀스가 이어지다가 실제 영화 촬영 중인 장면에 다다른다. 엘리자베스는 뱀을 손에 감고 어린 연인 역할의 배우와 사랑을 속삭이는 중이다. 감독이 오케이 신호를 내보낸다.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자청해서 다시 한 번 이 장면을 재촬영하자고 요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더 진짜 같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4. 도덕의 회색지대

  레투르노와 푸알로는 실제로는 두 딸을 낳았지만 <메이 디셈버>에서는 이를 약간 변형시켜 두 번째 아이들을 남녀 쌍둥이로 바꾼다. 극중에서 첫째 딸은 이미 대학생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났고 미성년인 남매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의 과거 깊은 곳을 찾아 헤매다가 쌍둥이 중에 한 명인 메리에게 접근하게 되고 그녀와 친밀감을 쌓기 위해 학교에서 연기론 특강을 한다. 아직 철이 덜든 아이들은 연기론에 대해 질문하라고 하자 “섹스 연기 해본 적 있어요?”라고 키득거린다. 엘리자베스는 당황하지 않고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한다.

 

“둘 사이에 교감이 진짜 생기는 경우도 있지. 이상한 진짜니까 서로 절대 인정하지는 않아. 그래서 내가 이 감정을 이상한 진짜라고 하는 거야. 거의 알몸으로 몇 시간 동안 서로의 몸을 비벼대면 내가 쾌락을 느끼는 건지 연기하는 건지 헛갈리기도 해.”

 

  엘리자베스의 대답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은연중에 고백하면서 메소드 연기론의 도덕적 딜레마를 암시한다. 엘리자베스가 시시콜콜한 질문을 넘기지 않고 진지한 답변을 내놓자 강의를 듣던 일행은 차분해진다. 이어서 그들 중 한 학생이 캐릭터는 어떻게 고르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내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선택해. 그 인물을 가져다가 왜 그런지 캐보고 싶거든. 그렇게 태어난 건지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진 건지. 그런 인물은 다양하게 존재해. 왜 악인을 선택하느냐고? 복합성이 포인트야. ‘도덕의 회색지대’가 가장 흥미롭지.”

 

  헤인즈는 언제나 과거에서 예술을 길어 올리는 사람이다. 그가 전기 영화에 몰두한 이유는 과거를 통해야만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과거만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죠”라고 말한 적도 있다. 1970년대 뉴 할리우드와 주제를 공유하는 <메이 디셈버>뿐만 아니라 <파 프롬 헤븐>(2002)과 <캐롤>(2015)은 1950년대 멜로드라마 스타일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는 장르의 과거를 현재로 옮겨 관객의 흥미를 끌지만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지는 않는다. <슈퍼스타: 카렌 카펜터 이야기> 이후에 선보인 거의 모든 영화는 과거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전복적인 영화적 장치를 활용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관객들이 영화적 상황을 선악이나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과거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와 동석한 자리에서 엘리자베스는 우연히 그레이시가가 전남편과 사이에 낳은 조지와 만난다. 그는 엄마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면서 영화에 사용될 사운드 트랙의 슈퍼바이저 자리를 요구한다.

 

“제 트라우마 한 번 들어볼래요? 엄마의 일기장을 우연히 읽은 적이 있죠. 한참 전에요. 엄마의 오빠들이 12살 때부터 시작했어요. 내내 간헐적으로…….엄마 머릿속은 정상이 아녜요. 내게 들은 말 엄마한테는 하지 마세요.”

 

  조지의 폭탄선언을 듣고 놀란 엘리자베스는 “그것으로 많은 것이 설명이 되네요.”라는 말을 독백하듯 되뇐다. 그레이시가 실제로 자신의 벌인 범죄의 원인을 근친상간의 영향 때문이라고 고백한 적은 없지만 헤인즈는 레투르노 아버지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도덕적 회색지대에 머물고 있는 그레이시의 원초적 열정의 근원을 찾으려 한다. 실제로 레투르노의 아버지 존 슈미츠는 1972년 대선에 출마했으며, 캘리포니아 주에서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번갈아 지냈던 유력 정치인이었다. 1982년 승승장구하던 슈미츠는 과거 커뮤니티 칼리지 강사 시절, 학생과 혼외정사로 두 자녀를 낳은 것이 밝혀져 정치 경력이 영원히 단절되었다. 아버지의 스캔들은 레투르노 사건과 매우 유사한데 헤인즈는 그 사이에 근친상간이라는 또 다른 복선을 집어넣어 관객을 설득하려 한다. 만약 이 장면이 진실이라면 “그렇게 태어난 건지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진 건지.”라고 말하면서 그레이시가 도덕적 회색지대에 머문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엘리자베스의 궁금증은 영원히 미궁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의 스캔들은 그레이시의 행위를 타고난 것에서 원인을 찾게 하고 근친상간은 그 반대의 원인에 동력을 제공한다. 엘리자베스는 과거로의 여행을 마치고 그레이시 가족과 작별을 고하려 한다. 그런데 헤어지는 순간 그레이시는 이렇게 말한다.

 

“날 이해해요? 그 역겨운 오빠들 이야기가 진짜인 줄 알지 않았겠죠? 구역질나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지껄이고 다니는 건지. 자아가 불안한 사람들은 참 위험하다니까요. 그죠? 내 자아는 튼튼해요.”

 

헤인즈는 그레이시의 말을 빌려 관객에게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라고 경고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물에 빙의해서 과거로 뛰어든다고 해서 결코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메소드 연기론의 한계를 그러한 방식으로 지적한 것일까? 당황하는 엘리자베스에게 그레이시는 “그 점을 꼭 짚어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브리지트 마리클로드 트로뇌는 아미엥에 사는 프랑스·라틴어 교사였으며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녀는 39살을 맞이한 1993년, 학교 연극반에서 24살 차이나는 영특한 15세 소년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소년의 부모는 둘의 사랑을 격렬히 반대하며 그를 파리에 있는 학교로 전학시켰다. 소년은 성인이 되면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만나 원초적 열정에 휩싸인 지 14년 지난 2007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10년 후인 2017년, 소년은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다. 마크롱 이야기다. 메리 케이 레투르노와 브리지트 트로뇌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세간의 인식과 평가는 이토록 다를까? 그들의 상대였던 푸알로는 클럽 DJ로 일하고 마크롱은 한 국가를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는 신분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둘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점이 톨레랑스(tolérance)의 이유가 될까? 트로뇌는 전남편과 사이에 마크롱보다 2살 많은 아들뿐만 아니라 마크롱과 초등학교 동창인 딸도 있었다. 자녀들은 엄마 트로뇌와 마크롱의 결혼식에 참석해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기도 했다. 도덕의 회색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경우에 따라서는 또 다른 회색지대에 머문다.

 

 

5. 그레이시의 죄

  엘리자베스는 조가 젊음을 무위도식하듯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기의 판단으로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여전히 그레이시에게 조정당하면서 사는 것 같아 엘리자베스는 연민의 감정을 제어할 수 없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그를 어둠 속에서 탈출시키려 한다. <메이 디셈버>에는 약간의 서스펜스를 동원해 긴장감을 불어넣는 장치가 있다. 조는 극 초반부터 누군가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헤인즈는 끝까지 대화 상대를 밝히지 않은 채 그들이 나눈 메시지가 주로 애벌레 사육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만 흘린다. 극중에서 애벌레와 관련된 장면은 꽤 여러 번 등장한다. 초반부에 그레이시는 안방에서 벌레를 사육하는 조에게 타이르듯 사육함을 밖에 내놓으라고 부탁한다. 애벌레 장면은 펫샵 창고에서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의 감정에 동화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엘리자베스는 특별한 목적으로 시작한 행위에서 실제로 쾌감을 느끼게 되자, 그 자신도 어이가 없었는지 허탈하게 웃는다. 헤인즈는 다음 쇼트를 애벌레 장면으로 프레이밍하고 다시 리버스 쇼트로 돌아와 엘리자베스의 표정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장면은 마치 애벌레가 엘리자베스의 행위를 낫낫이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극 중간에 이르면 날씨 예보가 TV를 통해 들리는 가운데, 조가 키우던 애벌레가 탈피해서 나방이 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조는 사육함을 열어 나방 한 마리를 꺼내 허공으로 날려 보낸다. 여기에서 교차편집이 등장하는데, 이때 그레이시는 새벽녘 숲에서 사냥을 한다. 그녀의 라이플이 여우를 겨냥한다. 쏠 것인가 말 것인가? 헤인즈는 결과를 보여주지 않고 다음 컷으로 넘어간다.

 

애벌레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와 아들이 지붕위에서 나눈 대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극중에서 조는 36살로 등장한다. 첫째 딸은 20대 초중반이며, 쌍둥이들은 조와 17살 정도 차이나는 고교 졸업반이다. 아이들은 모두 부모 곁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염원한다. 특별한 가족 관계로 인해 아이들은 살면서 사람들의 눈총을 사거나 자신들 뒤에서 험담하는 일을 수도 없이 당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그렇게 멍들어갔을 것이고 사춘기 이후로는 둥지에서 탈출만 생각했을 것이다. 젊은 아빠는 조숙한 아들이 마리화나를 꺼내 피우지만 제지하지 않는다. 조는 또래 아이들이면 의례히 할 수 있는 생각이나 행동을 그레이시의 감시와 보살핌이라는 창살 아래서 한 번도 실행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마리화나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리라. 이윽고 젊은 아빠는 마리화나에 호기심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마약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어떤 시절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다. 아들은 잠시 말리다가 아버지에게 마리화나를 건넨다. 연신 기침을 해대는 젊은 아빠. 이를 보고 웃고 있는 아들.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처음 술을 접하는 떨떠름한 표정의 자식과 그를 지긋이 바라보는 세상의 아버지들을 힘들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헤인즈가 설계한 장면은 이 관계를 역전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레이시는 도덕의 회색지대에서 한 발짝도 꼼짝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행하고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녀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순진했다. 전남편 가족과 식당에서 우연히 조우한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는 분위기를 환기할 겸,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레이시: 오빠가 늘 하는 말이 기대를 낮추면 실망도 없다죠? 그 말을 늘 잊고 사네요.

엘리자베스: 그러면 뭘 기대했는데요?

그레이시: 오늘 밤이 잘 지나갈 거란 기대, 내 아이들이 날 사랑할 거란 기대, 내 인생이 완벽할 거란 기대.

엘리자베스: 좀 순진하셨네요.

그레이시: 난 순진하죠. 늘 그랬어요. 이것도 재능이랄까요?

 

  그레이시는 순진함이라는 재능으로 모든 사람이 비난하는 도덕의 회색지대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어린 연인이었다가 이제는 남편이 된 조가 자꾸만 바깥세상을 꿈꾸는 것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애벌레를 키우는 조가 못마땅하다. 지붕위에서 아들은 아빠에게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Are you gonna be out here for a while or…….)”라고 묻자 조는 “그럼 안 되니(Should I not be?)"라고 답한다. 아들의 대사는 ”너무 오랫동안 지붕위에 머무른 것 같으니 이제 내려가자“라는 뜻과 함께 “나는 내 삶을 찾아서 집을 떠나는데 아빠는요?”라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졸업식 날 사냥을 떠난 엄마는 제시간에 오지 않고 남은 가족들만 행사에 참석한다. 조는 아이들에게 주차하고 나서 엄마를 찾아보겠다고 말한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조는 저 멀리서 쌍둥이의 졸업식을 쳐다본다. 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레이시가 가족석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고 있다. 조는 그 장면을 물끄러미 보다가 넋을 놓고 운다. 자식들이 애벌레에서 탈피해 더 큰 세계로 날아오르는 날. 진작 날아올라야 했을 자신은 여전히 애벌레 신세를 면치 못한 채, 그레이시 안에 갇혀 있다. 이것이 그가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졸업식에서 깨달은 진실이다.

  조는 어린 시절의 순진함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레이시는 재능에 비견되는 순진함으로 도덕의 회색지대에 자신을 가두고 성년이 한참 지난 남편마저 가둔다. 커밍아웃 게이로 살았던 헤인즈 역시 회색지대에 머무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헤인즈는 관객이 그레이시의 삶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가 지목한 그레이시의 유일한 죄는 자신의 어린 연인을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사랑이란 이름의 철책을 두른 것이다. 그래서 조는 한 번도 비상하지 못한 채 날개가 퇴화된 애벌레로 살아간다. <메이 디셈버>는 가족들 사이에 방문객을 틈입시켜 날지 못한 남자의 고독과 자기 안에 갇힌 여자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상처받은 아이들을 응시한다. 한편 <메이 디셈버>는 견고한 회색지대에 머물고 있는 ‘괴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 자신 괴물이 된 엘리자베스와 메소드라는 연기론을 통해 도덕적 딜레마를 우아하고 예리하게 파고든다. 실제로 레투르노의 변론을 맡았던 데이비드 게르케는 이 특별한 부부의 이혼 소식을 전하며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게르케의 말은 신데렐라의 결혼식 이후를 우리가 애써 상상하지 않는 이유와 공명한다.

 

“때때로 완벽하게 사랑에 빠진 사람들도 사랑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글·김채희
영화평론가, 부산대 영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