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언주의, 길드사회주의 그리고 현장위원운동
이 점에서 길드사회주의자이자 노동사가인 동시에 노동자교육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25년 초판)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찍이 콜이 '페이비언협회'(영국의 점진적 사회주의 사상 단체)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1820~30년 이래 영국 사상 단체 사이엔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복음'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책도 이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상황을 반영한 상세한 역사서라기보다 '역사적 해석', 다시 말해 큰 틀에서 오언의 길드사회주의, 윌리엄 모리스의 비의회 사회주의 전통 속에서 집필한 것이다. 그는 1880년대 들어 1830년대 운동에서 사라진 것이 부활한 경험, 즉 노동자들의 '산업관리'라는 꿈 재생에 관심이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 특징적인 것은 노동조합 이외에 협동조합, 정당, 사상 단체 등 노동운동과 분리할 수 없는 줄기의 운동을 다뤘다는 점이다. 다만 이들은 "이념과 열망을 각기 다른 입장에서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는 화해의 시대인 1867~75년에도 밑바닥 인간들의 절규와 투쟁은 멈추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영국 노동운동에 가해진 화해와 타협이란 해석을 반박하려 했다.
콜은 이 책에서 산업혁명 이후 운동의 3단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 번째 단계는 다양한 수단과 조직을 이용한 일련의 폭동(러다이트, 농민 의식, 빈곤과 절망에 반발한 오언주의 공동체 등)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 시기를 영국 노동계급의 청년기, 폭동의 시대로 해석했다. 두 번째 단계는 '화해와 조정'의 시기로, 1848~80년 자본주의에 순응하며 대공업제도를 사회질서의 기초로 수용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를 적대시하는 강령·정책이 부재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전 시기와 다른 새로운 질서에서 성장해, 잘 조직된 온건한 노동운동과 협동조합이 확산되기도 했다. 마지막 단계는 1880년대 이후 교리로서 사회주의가 출현한 동시에 비숙련노동자 조직화와 독립노동당 등이 출현한 시기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콜과 톰슨 간의 논쟁이다. 콜은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며 산업혁명이 노동운동을 초래했다"고 이 책에서 주장했다. 톰슨과의 논쟁점은 생산양식에서 계급의 현존을 도출하는 콜류의 문제인 동시에, 계급을 문화·사회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톰슨의 계급경험론, 그리고 1780년대 전후를 공론적 선동가이자 전 노동자계급 운동 단계로 콜이 평가절하하는 문제다. 이 점에서 콜도 톰슨이 <영국 노동계급 형성>에서 복원시키려 한 제1단계 운동에 관한 일정 부분 편견- 폭동의 시대, 공장 증오 등 대공업 제도에 반대하는 토지 유지 사상, 모든 노동계급 운동은 농민운동이란 주장 등- 을 공유하고 있다. 이 점에서 콜 역시 톰슨에게는 극복 대상이었을 것이다.
다만 콜은 자유의 나무를 장인들이 심게 해준 원재료로 오언주의를 본 톰슨과 비슷하게 오언주의 전통에 대한 설명에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하지만 19세기에 잦아든 오언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2~3년 전 길드사회주의 형태로 젊은 노동조합주의자, 사회주의자 사이에 '복음화'됐다. 바로 강력한 노동자 조직에 기초를 둔 혁명적 산업투쟁, 즉 직접행동에 의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부활했다. 모든 산업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공동체를 구상하려는 시도는 노동자의 생활 수준 향상을 이뤄내지 못한 정통적 조합주의와 자유당과 연정에 기초한 의회정치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1911년 파업의 성공으로 이는 소수의 전유물에서 새로운 전망으로 대중적 정당성을 획득했다. 이런 전망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인 1914~15년 이어져 '현장위원 운동' 형태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쟁점은 영국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에 관한 콜의 논의다. 1815~32년의 의회개혁 운동은 중산층과 일시적 동맹 형태의 민중운동이었고, 중산층은 1832년 정치권력 참여권 획득 이후 급진 운동에서 탈락하며 양자 간 동맹은 해체된다. 그럼에도 자유-노동 연합 시도는 중기 빅토리아 시기까지 반복됐다. 한편 1856년 차티즘운동의 실질적 소멸 이후 새로운 지도자들은 혁명이 아닌 투표권을, 중산층 자유주의자와 최대 협력을 추진했다. 1867~74년 런던노동자협의회나 1888년 노동자선거협회는 독자 의회 정치활동을 재추진했지만 당시 목적은 자유당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즉, 노동자 독자 당선보다 노동자 표를 자유당이 두려워해 친노동자 요구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883년 모리스의 사회민주연맹, 1884년 사회주의동맹의 분화와 코먼윌을 통해 초기 길드사회주의가 등장했다. 이들은 기존 개량주의를 추방하고 사회주의 사상으로 개종한 노동조합주의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 건설을 추진했다. 그뿐만 아니라 페이비언협회 활동의 가시화 등 이론과 사상의 백가쟁명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더불어 반동적 방어 조직으로만 여기던 노조관이 급격히 변화했다. 1889년 런던 부두 대파업 이후 '만인을 위한 노동조합'인 신조합주의라는 새로운 노동조합 운동이 공인된 세력이 됐다. 이를 기반으로 국가정책 입안을 추구하는 강한 노동계급 정당이 추진됐다. 그 결과 1893년 독립노동당, 1899년 노동자대표위원회란 정점을 거쳐 20세기 노동당 창당은 이 시기 노자 간 대결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독일·프랑스 등 대륙사회주의와 다른 영국적 특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리가 없는 사회주의' 혹은 '온건한 사회변혁관'과 '진화론'이 콜이 언급한 특수성이었다. 애초 독립노동당의 목적은 '생산과 분배, 교환과 관련된 모든 수단의 집단적 소유'란 사회주의 용어로 정의됐다. 실제 하디 등 독립노동당 주요 세력은 중도주의- 현실 가능한 개혁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영국 노동운동은 '새로운 사회주의'의 시대를 경유했다. 사회민주연맹의 이상적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페이비언협회의 공리주의적 사회주의, 독립노동당의 신조합주의가 그것이었다.
이처럼 영국 노동자들은 점차 사회주의에 완전한 동의는 아니지만 적어도 독립적 노동계급 정당을 결성하도록 대중을 설득해, 드디어 1910년 총선거 전에 자유-노동파는 소멸하고 1907년 노동당은 입당자가 10만 명 넘는 노조운동의 대표자로 서게 됐다.
1992년 진보정당 초창기로 퇴보한 2011년 한국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당운동에 콜의 책이 시사하는 바는 국가나 정책 입안이 아닌, '노동자의 현장' 문제에서 운동이 벗어나선 안 된다는 점이다. 콜이 강조한 오언주의, 길드사회주의, 그리고 산업관리란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물론 제국주의 시대 영국이란 민족국가의 창 안에서 중심부-주변부 국가 간 위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취약했던 콜의 한계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글•김원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석·박사 졸업.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