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 익숙함과 생경함 공족하며 융합하는 소코 바

2024-12-20     이현아, 장효정

한남동 골목 어귀에 자리한 바 <소코>. 2017년에 문을 연 이곳은 월드클래스 바텐더·정교한 재패니스 바텐딩·<커피바 K>의 헤드 바텐더 등 화려한 수식어를 보유한 손석호 바텐더의 척 업장이었기에 뜨거운 관심 속에서 등장했다. 그는 애초에 유행을 좇을 생각이 없었다. 개화기에서 영감 받은 공간과 그의 장기인 클래식 칵테일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만의 이정표를 찾아갔다. 그렇게 묵묵히 지내온 7년. 이제는 손석호 바텐더를 언급할 때 굳이 화려한 경력을 읊지 않아도 '소코' 하나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된다. 소코가 한국 바신에 간판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방증이다.

그는 이제 탄탄하게 다져온 한국식 바텐딩을 디딤돌 삼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중이다. 2022년 57위로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 처음 이름을 올렸고, 이듬해에는 46위로 상승하며 아시아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나아가 일본 <하이 파이브>의 우에노 히데츠구, 싱가포르 <너트메그 앤 클러브>의 콜린 치아 등 세계적인 바텐더와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며 국내 바 문화를 확장해오고 있다 소코는 7년 전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지만, 끊임없이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움직여온 손석호 바텐더. 그를 만나 고요하게 증폭해온 소코의 시간에 대해 들어봤다.

 

왼쪽부터

소코(Soko)가 생긴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더군요. 코로나19 같은 힘든 시기를 지났음에도 한남동 골목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게 새삼 반갑고 든든하네요.

감사하게도 꾸준히 찾아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팬데믹 시기가 지나고 나서는 외국인 손님도 늘었고요. 바가 밀집한 지역도 번화가도 아니라, 오는 데 수고로움이 있을 텐데 부러 찾아와 주시는 게 항상 감사하죠.  

 

외국인 손님이 많아진 건 아무래도 2021년부터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 이름을 올린 영향이겠죠? 외국인에게는 이곳의 동양적인 무드가 더 매력적이겠어요. 

맞아요. 처음 방문한 분들에게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저희의 의도를 잘 알아채 주더라고요. 1920년대 개화기 시절의 응접실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아늑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우드나 벨벳 같은 따뜻한 소재를 주로 사용했고요.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세월이 흘러도 멋스러운 바를 만들고 싶었죠. 잠깐 머물더라도 손님이 아늑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랐고요.

 

소코

최근 해외 바텐더의 게스트 바텐딩도 활발해 보이더라고요. 

‘아시아 베스트 바 50’이 가교 역할을 해준 셈인데, 순위권에 들면서 해외 바텐더와의 교류가 늘었죠. 또 한국의 바텐딩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북미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덕에 저희 역시 해외 바텐딩 기회가 늘어났어요. 일본 바텐딩에서 대부 같은 존재이자 하이 파이브(High Five) 바의 오너 바텐더인 우에노 히데츠구, 싱가포르 바 너트메그앤클러브(Nutmeg & Clove)의 바텐더 콜린 치아, 런던 니퍼킨(Nipperkin)의 헤드 바텐더 쥬세페 데스테파노(Giuseppe Destefano) 등 유명 바텐더가 소코를 다녀갔어요. 니퍼킨과는 그때의 인연을 계기로 저도 니퍼킨에서 바텐딩을 했죠.

 

 

다양한

지난 4월에 다녀왔죠? 런던에서 바텐딩 경험은 어땠나요?

당시 영국 증류소 ‘더 레이크스’의 초대로 간 건데, 니퍼킨 뿐만 아니라 포시즌스 호텔 내 앙투안(Antoine) 바에서도 바텐딩을 했어요. 전 세계 바 업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건 동양적인 재료나 맛보다 바텐딩 문화인 것 같아요. 유럽이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손님과 바텐더가 함께 즐기는 분위기라면, 한국 바텐딩은 공연처럼 관람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인 특유의 정 넘치는 따뜻한 접객을 좋아해 주시는 분도 많고.

 

소코 칵테일에 대한 현지의 반응도 궁금한데, 호응이 좋았던 메뉴는 뭐였나요?

‘샌달우드 하이볼’이요. 나무의 스모크한 향을 좋아하는 분이 많았어요. 소코의 시그니처 향인 샌달우드를 모티브로 한 칵테일인데, 기주는 ‘더 원 파인 블렌디드 위스키’를 사용했어요. 위스키의 상쾌한 과수류나 훈연향과 샌달우드 아로마가 잘 어우러지더군요. 칵테일을 제조할 때 ‘밸런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 튀지 않으면서 두루 잘 어우러지는 기주를 선호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원 파인 블렌디드’는 손이 자주 가는 술이에요. 

 

소코바에

위스키를 기주로 사용하는 게 쉽진 않죠. 캐릭터가 강한 종류도 있으니. 

맞아요. 코냑이나 고숙성 위스키는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드는 기주죠. 기주의 양이나 얼음까지도 섬세하게 컨트롤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만드는 재미’를 주는 재료이기도 하고요. 앙투안에서 나뭇가지를 가니시로 올린 우디한 풍미의 하이볼 ‘브랜치’를 선보였는데, 기주로 더 레이크스의 ‘리저브 넘버 7’을 사용했어요. 올로로소, PX(페드로 히메네스) 같은 레드 와인 캐스크에서 숙성시킨 싱글몰트 위스키로 개성이 또렷하죠. 흔히 위스키를 니트로 마실 때 맛과 향을 끌어올리기 위해 물을 한두 방울 떨어뜨리기도 하잖아요. 이처럼 칵테일을 만들 때 얼음이 녹으면서 풍미가 피어나는 술이 있는데, ‘리저브 넘버 7’이 그렇더군요. 다시 말해, 물에 희석될 때 풍미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살아나는 거죠. 니트로 마셔도 충분히 좋지만, 하이볼로 마셨을 때 ‘리저브 넘버 7’의 너티한 노트가 탄산과 함께 톡톡 터지는 느낌이 흥미롭고 좋았어요.

 

궁금해지는 맛이네요. 언급한 칵테일 외에도 런던 바텐딩에서 어떤 메뉴를 선보였는지 궁금합니다.

 

게스트 바텐딩을 할 때는 제가 운영하는 소코와 탄산 바의 시그니처 메뉴를 변형하거나, 어웨이용 메뉴를 따로 만들기도 해요. 니퍼킨에서는 소코 팀의 시그니처 메뉴를 트위스트 했어요. 이를테면, ‘리저브 넘버 7’을 사용해 탄산 바의 시그니처 칵테일 ‘미스터 피넛’을 선보이는가 하면, ‘더 레이크스 진’을 사용해 보태니컬 뉘앙스를 한층 살린 ‘라임 트리’를 준비했죠. 앙투안에서는 ‘From Nature(자연으로부터)’라는 주제를 잡고 세 가지 메뉴를 새롭게 짰어요. 진을 사용한 데이지 스타일의 칵테일 ‘플라워’, ‘더 원 파인 블렌디드 위스키’로 과일의 풍미를 표현한 ‘프루트’를 선보였죠. 

 

‘더 레이크스’처럼 뉴월드 위스키를 모험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어요. 바에서도 체감하는 부분인가요?

저희 바를 찾는 손님은 엔트리급 위스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위스키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기에 바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보틀을 찾는 편이에요. 바 손님을 차치하더라도 한국 위스키 문화 수준 자체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미지의 위스키를 디깅하며 갈증을 해소하는 마니아층도 증가했고요. 그들은 지금 신생 증류소의 새로운 시도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는데, 더 레이크스가 그런 아이템 중 하나이기도 하죠.

 

손석호

바텐더가 아닌 위스키 애호가로서 선호하는 더 레이크스 위스키를 하나 꼽는다면?

니퍼킨 바에서 갤럭시아를 처음 맛보고 놀랐어요. 스파이시하고 달큰한 풍미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입안에 그 여운이 꽤 오래가더라고요. 목 넘김도 엄청 부드러웠어요. 

 

 

알코올 도수가 54도던데… 

아, 정말요? 그런데 정말 꿀떡꿀떡 넘어갈 만큼 크리미했던 기억이 나요.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갤럭시아가 더 레이크스에서 지금까지 선보인 라인업의 특징만 응축시킨 제품이라고 들었어요.

 

다시 말하면 더 레이크스의 정수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네요.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경험해 보세요. 

 

오는 9월 31일에는 런던 도노반의 바텐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도노반(Donova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예요. 일단, 전설적인 바텐더이자 브렉퍼스트 마티니를 창조한 살바토레 칼라브레세가 디렉팅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죠. 이곳 대표 바텐더인 페드리코와 알레산드로가 9월 31일 소코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번 바텐딩도 ‘더 레이크스’와의 협업인데, 그날 선보일 칵테일 메뉴는 아직 구상 단계라고 하니 드릴 수 있는 정보가 없네요. (웃음)

 

같은 바텐더로서 기대되는 부분도 있나요?

어느 나라를 가도 헤드 바텐더나 유명 바텐더는 대부분 이탈리아 출신이에요. 도노반의 살바토레를 비롯해 루카 치넬리(Luca Cinalli), 시모네 카포랄레(Simone Caporale)만 봐도 알 수 있죠. 이번에 방문하는 두 바텐더도 이탈리아 출신이에요. 이탈리아의 바텐딩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죠. 개인적으로 한국과 이탈리아 바텐딩의 접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섬세한 바텐딩 스킬뿐만 아니라 칵테일의 맛 또한 한국인 입맛에 잘 맞을 거라 생각해요. 사실 가장 기대하는 건 그들의 호스피탈리티죠. 우리가 이탈리아 여행만 가봐도 알잖아요. 친근하고 정이 넘치는 접대와 기분 좋은 환대, 그날 소코는 아마 이탈리아의 에너지로 가득 찰 겁니다. 저도 기대되네요. 

 

글·이현아
사진·이생
진행·장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