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바다의 민족주의 전쟁

2012-11-12     스테파니 클라이네알브란트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두 달간 대치한 데 이어 이번에는 일본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 해군은 10월 중순 군사훈련 중에 분쟁지역 해안까지 접근했고, 미 해군 항공모함 USS조지워싱턴은 남중국해에서 해상훈련을 벌였다.

몇 달 전부터 중국해 영토분쟁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4월 필리핀 해안경비대가 스카버러사주(중국명 황옌다오·필리핀명 파나타그) 분쟁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8척을 나포하려 한 사건을 시작으로 두 달 동안 양국의 전함들은 대치 상태를 이어갔다. 또 6월에는 베트남이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와 파라셀군도(중국명 시사군도) 분쟁지역에 대한 새로운 항해 규정을 선언하자, 중국은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파라셀군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겠다고 발표하며 반격했다. 지난 9월에는 센카쿠열도에서 긴장이 고조됐다. 일본 정부가 무인 화산섬인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한다고 발표하자, 중국은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이 지역으로 해안경비군을 보냈고 몇몇 대도시에서는 반일시위가 일어났다.(1)

이렇게 영토분쟁이 확대되는 현상은 '적극적 대응을 통한 영토권 확인'이라는 중국의 새로운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정책은 접경지대에서 발생한 사건을 빌미로 군사력을 과시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영토 현상(現狀)을 변경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로써 중국은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이 1970년대 말 추진한 정상화 정책과는 작별을 고했다. 덩샤오핑은 영토분쟁을 잠재우고 이웃 국가들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려고 했다. 그는 "중국의 영토주권을 확인하나 분쟁은 잠시 미뤄두고 동반발전을 모색한다"고 요약했다. 2000년 탕자쉬안 당시 외교부장은 "영토분쟁에 대한 항구적인 해결책을 찾을 만한 조건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인 만큼 대립을 막기 위해 영역권에 대한 논의는 차후로 미룬다. 이는 영역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문제를 일정 기간 보류하는 것"(2)이라고 설명하며 이 전략에 힘을 실어줬다. 후진타오 국가주석도 마지못해 "분쟁은 접고 공동 발전을 꾀하자"며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볼 때 이런 선언들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석유 유전은 물론 어업자원이 풍부하고 항로가 복잡하기로 손꼽히는 남중국해는 중국과 미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교차로다.

중국 쪽에서는 다양한 정치·경제적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영토분쟁을 이용하고, 이는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대치 상황에 개입하는 수많은 중국 기관들은 전설에 나오는 '해적질을 하는 9마리의 용'(3)으로 불린다. 사실 현재 해당 기관의 수는 신화에 나오는 용의 수보다 많다. 지방정부, 해군, 농업부, 국영기업, 해경기동대, 세관, 외교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해안지역인 하이난·광시·광둥 지방정부는 자기 지역 내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을 판매할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다. 해당 기업의 성공이 국가조직 내에서 지방정부의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공산당에 충성을 다한 덕분에 자기 지방에서 발생한 사안을 처리하는 데 상당한 자율권을 누리고 있다. 지방기구의 독립성 확대와 성장 정책이 맞물려 욕심도 커졌다. 그래서 지방정부는 어민들에게 현대적인 어선을 제공하고 위성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장착하도록 강요하면서 분쟁지역으로 최대한 진입하도록 부추겼다.(4) 규모가 큰 트롤선에 우선적으로 어업 허가를 발부하는 것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하이난 정부는 베트남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차례 파라셀군도 관광산업을 개발하려고 했다.(5)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고민하라'는 지방정부가 베이징 중앙정부를 대하는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캐치프레이즈다. 지방정부들은 경제라는 이름의 전장에서 되도록 멀리 보병을 보내고 중앙정부가 눈살을 찌푸리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해안경찰 조직인 국토자원부 소속의 중국해감과 농업부 소속의 중국해정 간의 경쟁으로 인해 함대뿐만 아니라 해상영토 분쟁에서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도 늘어났다. 소속 부처가 제공하는 특혜와 지원금을 놓고 경쟁하는 두 기구는 예산을 최대한 받기 위해 관할구역을 확장하려고 애쓴다. 두 기구 모두에 영역권과 해상권을 주장하는 일은 내부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전략이다. 중국 정부의 처지에서는 민간 행정기구를 이용하면 직접적인 군사 대립의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초계정이 군함보다 야기하는 피해가 적다 하더라도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도구로 지나치게 활용한다면 분쟁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점점 더 자국의 기수 역할을 하는 어선도 인접 국가 선박과의 마찰을 더욱 위태롭게 할 뿐이다.

중국 해군이 남중국해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음에도 지금까지는 보조적 역할만 해왔다. 분쟁이 발생하면 해군함정은 뒤로 물러나 있거나 뒤늦게 도착해서 민간 기구가 상황을 처리하도록 둔다. 암암리에 군비를 확장하고 현대화하는 작업도 여타 국가들이 자국의 해군 전력을 강화하도록 하면서 긴장을 조성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원칙상 외교부가 영토분쟁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외교부에는 전혀 권한이 없다. 베이징 정계의 한 관계자는 "양제츠 외교부장은 다이빙궈 국무위원보다 권력이 없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문제는 실질적인 공권력을 지닌 상업부·재정부·국가안전부·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외교정책을 쥐락펴락하면서 악화됐다. 중국 외교가 국가의 경제·지역적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외교부는 이런 들러리 역할이 더욱 불편해졌다.

중국 정부가 여전히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게임이 결국 자기 발등을 찍을 수도 있다. 2012년 초 외교부가 여론을 진정시키려고 중국이 남중국해 전체에 대해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발표하자,(6) 지난 수십 년간 상반된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어온 국민들 사이에서 격렬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네티즌들은 "공산당 지도부가 국민의 피땀을 빨아먹고 국가의 이익을 갉아먹는 '부패 정치인'과 '배신자'를 키우고 있다"며 그들을 숙청하라고 요구했다.(7) 지도부는 이런 적개심이 점차 확대돼 국가 안정성을 위협하는 혼란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중국 당국은 서슴지 않고 보복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스카버러사주에서 발생한 사건의 추이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필리핀은 중국 어선이 침입하자 군함을 보냈다. 중국은 이를 빌미로 이 지역에 해경함대를 배치하고 필리핀 어선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사주에 대한 영역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못박았다. 필리핀산 열대과일 검역을 강화하고, 필리핀 관광도 잠정 중단됐다. 스카버러사주의 통제권을 얻고 필리핀 어민들의 조업을 금지하면서 중국은 자국에 유리하게 새로운 질서를 수립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6월 베트남이 스프래틀리군도와 파라셀군도에 신항로를 개방하면서 새로운 해양법을 채택했을 때도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허를 찔린 중국 정부는 그 자리에서 지구 구청 소재지 산샤 설립과 군사수비대 배치를 선언했다. 게다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베트남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 유전 9곳에 대한 개발허가권을 발급했다. 현재 이곳에는 베트남 정부의 허가를 받은 페트로베트남이 진출해 있다.

지난 7월 제45차 동남아국가연합(ASEAN) 외무장관회의에서 영토분쟁에 관한 선언문을 포함시키려 한 베트남과 필리핀의 시도는 주최국인 캄보디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중국이 크게 만족했음은 물론이다. '각 사안을 별개로 처리하고 각각 승리한다'는 중국의 전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대치 상황이 지난여름 정점을 찍은 데 이어 9월에는 동중국해에서 새로운 위기가 촉발됐다. 부유한 일본 기업인이 소유하고 있던 센카쿠열도 5개 섬 중에서 3곳을 국유화했다는 소식을 일본 정부가 발표한 것이다.(8) 일본 정부는 민족주의 성향의 도쿄 도지사를 퇴진시키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정당을 세우기 위해 자진 사퇴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임명되기 전에 이 일을 진행해서 그가 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물을 먹지 않도록' 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동중국해에서 발생한 영토분쟁은 남중국해보다 민족주의를 훨씬 자극하기 쉽다.(9) 일본 침략 때 자행한 잔혹한 행위들 때문에 센카쿠열도 분쟁은 중국 내에서 다른 어떤 영토분쟁보다 격렬한 반항을 불러일으킨다. 독도 분쟁에 대한 한국의 반응이 거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본인들은 자국의 주권이 약화될까 두려워 중국 '용'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과거 중국 정부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국민의 민족주의적 기질을 조작하곤 했지만 오늘날 그런 영향력은 약화됐다. 정보기술(IT)이 등장해 반일 감정을 표출할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들의 경계심은 권력 기반을 위협할 만큼 세력이 커졌다. 중국이 일본과 맞서는 데 실패했다는 민족주의적 좌절감은 부패와 사회보장 시스템의 부재, 불안한 먹거리 사태, 부동산값 폭등 등으로 야기된 분노까지 더해져 한층 격화됐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현재의 휴전선이 적법하다고 생각하는 구세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현직 외교관 중에는 중국이 경제 면에서 일본을 제쳤고 조만간 미국도 뛰어넘을 테니 그 이후로는 경쟁 강대국의 비위를 건드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점점 중-일 관계보다 중-미 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의 수많은 고위층들에게 일본은 그저 미국의 아시아 지부일 뿐이다. 그들은 일본의 외교정책은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의 세력을 저지하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좇을 뿐이라고 폄하했다.

일본이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하자 중국은 한층 더 흥분해 경제적 보복을 가하는 것은 물론 해군, 공군, 전략적 미사일 발사대를 포함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진행했다. 또한 센카쿠열도를 사실상 중국 행정구역으로 속하게 만드는 불가침 경계선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공식적으로 중국령에 편입시키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일본 경비대가 관리하던 지역에 해경선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됐으니 향후 대치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민족주의 세력 확장, 군비 확대, 지역 리더십 부재, 정권 교체 과도기의 불안감 등의 요인이 중국해 영토분쟁의 위험성을 가중하고 있다. 이런 도발에 제동을 걸어줄 기관, 메커니즘, 프로세스가 지난 몇 년간 상당히 약화된 시점에서 상황은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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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테파니 클라이네알브란트 Stephanie Kleine-Ahlbrandt

번역 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위험한 바다’, <포린폴리시>, 워싱턴 DC, 2012년 12월 17일 참조.
(2) ‘분쟁은 접어두고 동반발전을 추구하자’,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2000년 11월 17일. ‘중국의 평화적 발전 백서’, 국무원신문판공실, 2011년 9월 6일 참조.
(3) ‘혼란스러운 남중국해(Ⅰ)’, <아시아 보고서>, 223호, 국제위기감시기구, 베이징, 2012년 4월 23일.
(4) 스카버러사주 사건에서 보듯 위성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통해 중국 해군은 대치 상황이 발생할 때 조속히 투입될 수 있다. ‘바다 이야기’, <포린폴리시>, 2012년 6월 25일 참조.
(5) ‘혼란스러운 남중국해(Ⅰ)’, op. cit.
(6) 중국 외교부 대변인 훙레이 2012년 2월 29일 기자회견.
(7) ‘중국인 엘리트들이 남중국해에서 우리의 이익을 어떻게 갉아먹고 있는가’(중국어), www.china.com, 2011년 7월 1일. ‘남중국해의 배신자들, 인민의 적, 영원한 반역’(중국어), www.nansha.org.cn, 2012년 5월 15일 참조.
(8) Christian Kessler,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중일 분쟁의 씨앗’, 플라넷아지, blog.mondediplo.net, 2012년 9월 25일.
(9) ‘폭발 위기에 있는 중-일 열도 분쟁’, <가디언>, 런던, 2012년 8월 20일.


국제법이 분쟁에 불을 붙일 때

중국해에서 발생한 대치 상황이 지난 2년간 급증했지만, 대부분 영토분쟁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으로 다시 촉발됐다. 유엔해양법협약은 해안에서 12해리(22km)인 영해 이외에 200해리(370km)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설정해 어업·에너지 등 각종 자원에 대한 인접국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했다. 이 협약은 발효되는 데 10년이 걸렸다. 일본과 중국은 1996년에 비준했고 현재는 162개국이 채택했으나, 미국은 아직도 거부하고 있다.

개번 매코맥 일본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해양법 측면에서 이 협약은 일본의 권리를 강대국에 걸맞게 강화했다. 중국과 비교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의 해안선 길이는 거의 비슷하지만(중국 3만17km, 일본 2만9020km) 배타적 경제수역 면적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일본은 450만km²로 세계 9위인 데 비해, 중국은 일본의 5분의 1 수준인 87만9666km²로 몰디브제도와 소말리아 중간인 세계 31위다." 매코맥은 사실상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제국주의의 공격에 밀리고 내부적 혼돈으로 인해 중국은 19~20세기에 있었던 태평양 영토 분할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1)

중국은 힘이 점차 커지면서 영토 분할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우선 내부 문건부터 수정하고 점차 공식적으로 나서 2009년에는 유엔에 토지 반환 청구 지도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9개 줄로 된 경계선'으로 표시하고 '적절한 영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지칭해 청구한 영향권은 남중국해의 대부분을 포함한다. 중국이 주장하는 바를 인정받게 된다면, 중국의 영토권은 법적으로 확장되면서 현재 상황보다 복잡한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풍부한 유전과 어업자원에 매료된 베트남과 필리핀도 점점 강경한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ASEAN)은 군사비 지출을 점차 늘리고, 미국은 이곳에 배치한 군사력을 재편성 중이다. 여러모로 남중국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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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 서희정 mysthj@gmail.com

(1) Gavan McComack, ‘어지러운 바다, 태평양과 남중국해에서 일본의 영토 (및 영토 청구)’, <재팬포커스>, 도쿄, 2012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