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의 시네마 크리티크] 21세기의 시공간 감각: 이동 없는 전환과 신체로부터의 해방
지금까지 몇 가지 영화를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시간여행을 통해 시간대를 옮겨가는 것뿐 아니라 물리적인 이동 없이 기억이나 예지를 통해 과거나 미래에 접근하는 설정은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개봉한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된 경향이다. 사실 이는 당대의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20세기 중후반을 지나며 세계에 대한 시공간 감각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가상 공간의 발명과 관련되어 있다. 20세기의 시공간 감각이 증기기관차와 내연 자동차로 인해 형성되어 온 것이라면, 20세기 후반 이후의 시공간 감각은 가상 현실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의 접속─로그인과 로그아웃으로 대표되는─을 통해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즉, 전자의 시공간 경험이 바로 그 ‘탈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이동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것이라면, 후자의 시공간 경험은 어떠한 실질적 이동도 없이 단 몇 번의 버튼 조작만으로 순식간에 이곳이 그곳이 되고, 이때가 그때가 되는 전환의 경험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교통수단인 기차의 전신은 19세기에 발명된 증기기관차이다. 증기기관차의 발명은 영국 산업혁명의 근간을 이루며 사회 전 부문에 거대한 변화를 초래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시의 확장이었다. 이후 내연기관의 발전으로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이동 방식은 더욱 혁신적으로 변화한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 대량생산 체제의 도입과 함께 자동차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도시 구조와 주거 형태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겨난다. 미국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미국에서 자동차의 확산으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하여 분석한 바 있는데, 이를 위해 그가 고안한 개념은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이다.(1) 자동차의 대중화로 인해 드라이브스루를 갖춘 패스트푸드점이 생겨났고, 대규모 교외 주택단지와 거대한 쇼핑몰이 건설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서 드러나듯, 20세기 전반에 걸쳐 기차와 자동차는 단지 하나의 교통수단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생활 및 사회문화 전반을 가로지르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당대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상은 달리는 차─기차든 자동차든─안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에 관련되어 있었다.
실제로, 초기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기차, 그것도 움직이고 있는 기차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그 유명한 <열차의 도착>뿐만 아니라, 1903년에 만들어져 여러 도시를 순회 상영하며 크게 인기를 끌었던 에드윈 포터의 단편 <대열차강도>도 마찬가지였다. <대열차강도>는 기차의 움직임으로 인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창문 너머의 풍경과 그로 인해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내부와 외부의 대비를 담아내며 새로운 감각을 전달했다. 한편, 늦은 밤 고속도로에서 경험하는 음산한 분위기는 20세기 중후반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당시 공포영화에는 으레 고속도로 외곽 으슥한 곳에 자리한 모텔이나 저택이 등장하곤 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기념비적인 작품 <싸이코>(1962)를 떠올려 보라. 또한, 데이비드 린치는 <로스트 하이웨이>(1997),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등에서 한밤중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담아내며 영화 전반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처럼, 달리는 기차와 자동차는 이동을 통해 수반되는 속도와 방향감각을 통해 세계에 대한 감각을 형성하고 전달하는 주된 수단이었다.
따라서 실제적인 이동과 그에 따른 세계의 변화하는 인상이야말로 당대의 시공간적 경험을 설명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나의 움직임이 아니라 기차와 자동차로 대표되는 ‘탈 것’의 움직임을 통해서, 즉 인간 신체가 아닌 기계 신체의 초인적인 추진력과 지속력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의 타임머신이 자동차와 기차로 그려진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그러나,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가상 공간이 발명되면서 이러한 시공간 감각은 크게 변화하게 된다. 21세기의 시공간적 경험은 더 이상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이동을 전제하지 않는다. 로그인과 로그아웃으로 대표되는 접속과 단절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빠져나가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신체의 움직임이 필요치 않다. 오늘날 우리는 몸을 움직여 발을 내딛지 않고서도 회의실을 들어가거나 나갈 수 있고(비대면 화상채팅), 이곳에서 저곳으로 그리고 이때에서 저 때로 옮겨갈 수 있다. 우리는 이동 없이도 전환을 경험한다. 이러한 ‘이동 없는 전환’이야말로 21세기의 시공간 경험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오히려 신체가 화두로 떠오른다는 지점은 흥미롭다. 신체의 움직임 없이도 이동이 가능하게 되면서 신체가 오히려 자유롭게 변형가능한 대상이 된 것이다. 스피어리그 형제의 <타임 패러독스>(2015)에서 신체의 변형은 영화의 반전을 이루는 핵심 단서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인물은 시간대를 거슬러 이동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단서는 시간 이동이 아니라 변화된 외양이다. 또한, <외계+인> 시리즈에서도 신체의 변형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한 인물이 여러 외양으로 자유롭게 분할 뿐 아니라, 외계인이 사람의 신체를 숙주 삼아 자신을 위장하는 식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자유로운 신체의 변형을 그것의 물리적인 구속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의 일환이자 21세기의 시공간 감각을 반영한 것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실제로 오늘날 우리는 가상공간에서 신체 없는 상태로 서로를 마주한다. 가상공간이 담보하는 이동 없는 전환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신체의 물리적 제약을 일순간 무력하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가 가상공간에서 경험하는 초월적 감각은 바로 그 신체의 물질성으로부터의 해방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착시 효과일 뿐, 우리는 결코 신체를 벗어날 수 없다. 영화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1) 조지 리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김종덕·김보영·허남혁 옮김, 풀빛, 2019.
글‧김윤진
시각예술 및 대중문화에 대하여 글을 쓴다. 2024년 대한민국 만화평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GRAVITY EFFECT 미술비평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