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환상의 폐쇄성 〈라폴로니드:관용의 집〉
<포르노그래퍼>로 문제적 감독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베네트랑 보넬로는, 이후에도 꾸준히 육체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육체에 대한 관심은 특히 보넬로의 초기작에서 두드러졌었다. 초기작들에서 보넬로의 관심은 다분히 극단적이었으며, 동시에 체계의 변화에 있었다. <포르노그래퍼>는 베테랑 포르노 감독이 새롭게 재편된 포르노 산업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야기였고, <티레지아>역시 주인공이 트렌스젠더 매춘부를 감금했는데 호르몬제가 떨어지가 남성적으로 변하는 매춘부의 모습을 보며 당황하는 사내가 주인공이었으며, <전쟁론>도 관 속에서 섹스를 하고 기묘한 세계를 탐색하는 영화감독의 이야기였다. <라폴로니드: 관용의 집>(이하 <관용의 집>)도 이런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관용의 집>에서 보넬로가 탐색하는 주제는 매춘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자 그 공간 자체이다.
<관용의 집>에 나오는 공간은 무섭도록 폐쇠적이다. <관용의 집>의 공간은 시간의 흐름마저 잡아먹으며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배경 시간을 1889년과 1900년으로 설정해 놓았다. 게다가 이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지지만 이런 분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도 어떤 극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며, 보넬로가 가져왔던 그 특유의 분위기대로 흘러가고 그 분위기를 유지한 체 영화가 마무리된다. 심지어 라스트씬은 100년을 훌쩍 넘어와 같은 공간의 매춘부를 자료화면으로 내놓지만, 그 분위기는 클라이맥스에서 나왔던 음악이 나오며 변하지 않는다.
이런 유지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매춘부의 환상, 그리고 그것을 구매하는 남성의 환상이 공모한 결과라고 보넬로는 말한다. 이 영화에 딱히 더 중요한 인물은 없지만, 이 영화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인물은 마들랜인데, 이 캐릭터가 가진 사연은 보석으로 프로포즈를 받아 이 현실을 벗어나는(신분상승) 꿈(판타지)을 꾸고, 그 꿈속의 남자를 실제로 매음굴에서 만나지만 그녀가 얻은 것은 결국 '웃는 여자'로 불리게 될 입이 찢어진 상처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구심점의 맞 캐릭터가 되는 남자는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는 가면을 쓰고 나온다. 익명성이 보장된 체 그는 현실에서 도피하여 판타지를 실현하거나 꿈을 꾼다.
이런 욕망하에 '라폴로니드'(프랑스의 고급 매음굴을 지칭하는 말)는 유지되고 100년이 지나서도 그 형태만 변형된 체 변하지 않는다. <관용의 집>은 이런 그들의 욕망을 한발치 떨어진 지점에서 관찰한다. <관용의 집>은 매우 훌륭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이미지들은 어디선가 본 이미지들이다. 서양화중에서도 누드그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던 이미지들이 이 영화에서 많이 차용되었다. 데카당스한 이미지들이지만 그 이미지들이 가지는 아름다움은 거부하기가 힘들다. 보넬로는 이 영화를 통해 이런 이미지들의 본연적 출저와 그 이미지를 사유하는 자의 욕망에 대해서 물어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글‧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신인평론상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