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노동총동맹, 저항의 신(新)주축?

Spécial 정치 시험대에 선 이슬람주의

2012-11-12     헬라 유스피

시리아에서는 항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랍 각국에서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이 과정에서 1970년대부터 부상한 무슬림형제단을 위시한 이슬람주의 조직들이 곳곳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며(10,12면), 이로 인해 걸프 지역의 몇몇 왕조국가에서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11면). 이슬람주의자들은 모로코에서 국왕의 통제하에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12면), 이집트에서는 군부와의 세력 다툼에서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난관과 일부 사회계층의 강력한 저항에 시달리고 있다(10면). 튀니지에서는 연립정부를 이끄는 집권당 엔나흐다가 야당 역할을 하는 튀니지 최대 노조의 반발 앞에서 고전 중이다(하단 기사).

이슬람주의 정당 엔나흐다(1)가 집권한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 '존엄성의 혁명'이 발발한 도시인 시디부지드는 농민·공장노동자·실업자 등 각계각층의 시위로 또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시위들의 배후에는 튀니지노동총동맹(UGTT)이 있다. 지난 8월 14일 UGTT는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지역 발전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시위 도중 무력 진압 경찰에게 체포된 청년 실업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엔나흐다 시디부지드 지부는 UGTT 본부 및 지부에 모든 정치적 행동을 삼가고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권고했다.

엔나흐다와 UGTT의 대결 구도는 지난 2월 25일 총동맹 본부의 주도로 수도 튀니스에서 벌어진 시위로 촉발됐다. 그보다 얼마 전 튀니지 극빈층에 속하는 지방 공무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UGTT의 여러 지부에서 오물 투척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시위에 함께한 5천 명의 참가자들은 이 사건이 엔나흐다 당원들의 소행이라며 비난했다. 당시 후신 아바시 UGTT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우리 입을 틀어막고 우리의 운명을 자기들끼리 결정하려 한다. 대의와 권리를 지키려는 우리의 행동을 방해하기 위해 공포심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굴복하거나 순응하지 않겠다."

이슬람 정당 vs 노조의 대립 구조

양쪽의 대립이 절정에 달한 것은 지난 5월 1일, 혁명의 사회·경제적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열린 시위에서다. '우리의 영혼과 피로 정부를 수호하자'고 외치는 엔나흐다 지지자들과 '부끄러운 정부는 몰락하리라'며 맞서는 반대파의 불협화음 가운데 UGTT의 대표 슬로건인 '노동, 자유, 국가적 존엄성'은 표류했다.

의사노조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사미 수일리는 이런 충돌이 과거에도 있었다고 했다. "UGTT를 표적으로 삼은 건 엔나흐다가 처음이 아니다. 벤 알리 전 대통령의 퇴진 이후 두 차례 들어선 과도정부도 UGTT를 대상으로 공세를 퍼부었다. UGTT가 튀니지의 경제위기와 사회혼란의 주범이라는 비난이 끊임없이 가해졌다. UGTT는 유일하게 체계를 갖춘 반정부 조직이기 때문에 그 세력을 꺾으려는 시도가 잇따르는 것이다."(2)

51만7천 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튀니지 최대 노동 세력인 UGTT는 오랫동안 유일한 합법 노조였다.(3)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24개 지역 노조와 19개 업종별 노조, 그리고 21개 기업 노조를 거느렸고 각양각색의 정치 성향을 아우르며 모든 지역과 사회계층(노동자·공무원·의사 등)에 조합원을 두고 있다. 식민지배기에는 민족운동의 주춧돌이 되었고, 이후에도 줄곧 튀니지 정치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UGTT는 단순한 노조 차원을 넘어선다. 1956년 튀니지가 독립한 뒤, 두 가지 경향이 총동맹 내에 공존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정권에 대한 순응적 태도로 이른바 '노조 관료주의' 형태로 나타났고, 다른 하나는 저항이었다. 위기의 시절에는 저항의 경향이 교사, 체신·통신직 및 일부 지역의 노조를 중심으로 우세를 보였다. 노조 관료주의 성향으로 다소 모호한 구석이 있었음에도 UGTT 산하 조직들은 많은 사회운동의 든든한 구심점이 돼주었다. 결정권이 집중되고 여성·민간부문·사헬 등 특정 지역 조합원들의 비율이 낮다는 등 문제가 있었지만 UGTT는 독재자 축출에 공헌한 파업과 집회, 시위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두 차례의 과도정부를 물러나게 한 2011년 1~2월 카스바 광장 점거시위를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지방공무원 지위에 관한 논쟁이 가열되던 시기에 엔나흐다와 UGTT가 벌인 신경전도 이런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양쪽은 요구 해결 방안을 두고 이견을 보이는 수준을 넘어 정치적 싸움을 벌였다. 공무원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을 두고 하마디 제발리 총리는 지난 5월 28일 한 TV 토론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위치와 임무를 지켜야 한다고 UGTT에 역설했다. 더 이상 사실을 부풀려서는 안 된다. 정부는 공무원과 노동자의 적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계급투쟁론을 믿지 않는다. 실업자는 우리의 아이들과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른바 노사협상이나 임금 인상을 위한 압력이 아니다. 지금은 더 시급한 과제들이 우리 앞에 있다. …저들의 목적은 정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들이미는 것은 사회적 발표문이 아닌 정치적 선언뿐이다. 저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방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국민의 지지를 획득했다.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

벤 알리 대통령 재임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헌정연합(RCD)이 그랬듯 엔나흐다도 UGTT를 장악할 심산일까? 민간부문을 중심으로 이슬람주의 성향의 신규 노조원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추측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2011년 12월 타바르카에서 열린 총회에서 선출된 UGTT 신임 집행부는 이른바 '좌파 합의 공천 후보' 덕분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정치적 자율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UGTT는 제구실을 못하는 야권을 UGTT가 사실상 대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정부와 더욱 팽팽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UGTT는 "시민사회, 그리고 다양성을 지닌 튀니지 국민 곁에서 노동자 계층뿐만 아니라 튀니지 공화국과 제도를 지키기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실제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고 살라피스트(급진적 이슬람 종파) 조직의 폭력 규탄을 위한 총동맹 본부의 호소가 노동문제 자체를 위한 활동보다 우위를 점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제발리 총리의 발언에 대해 샤미르 셰피 UGTT 부사무총장은 지난 5월 30일 TV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UGTT는 국가적·사회적 투쟁에 동참해온 대규모의 전국적 조직으로서 (총리의) 그런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월권행위에 해당한다. 우리는 1946년 창립 이래 항상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6월 18일 UGTT는 정치인들과 시민사회의 각계각층이 참여해 튀니지의 경제·사회·치안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국민대화협의회'의 창설을 주장했다.

노조에 달린 튀니지의 미래

이와 더불어 정치권도 점차 양극화되고 있다. 진보민주당(PDP)과 아펙의 합당으로 탄생한 공화당, 민주헌정연합 출신들의 연맹, 그 밖에 최근 베지 카이드 에셉시 전 총리를 중심으로 통합된 여러 '민주주의' 표방 정당에 이르기까지 야권의 많은 중도·자유주의 정당들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UGTT가 '튀니지에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며 비난하더니 이제는 와타드(민주애국운동)나 튀니지노동공산당(PCOT) 등 극좌 정당이 UGTT에 보내는 지지에 동참하고 있다.

이리하여 제각기 일관성을 지닌 두 개의 담론이 대립하게 됐다. 정부 지지자들은 "UGTT가 순전히 당파적 목적을 가진 내부 관료조직에 의해 조종되고 이용되고 있는데, 노동조합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한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정부 진영에서는 "UGTT는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고, 정부의 견제 세력으로 필요할 경우 정치에 적극 가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UGTT 지도부가 종종 강조하는 사회·경제적 요구도 전통적으로 권력에 대한 중앙당의 독립성 추구보다 후순위에 놓였다.(4) 물론 열성 노조원들과 간부들은 지방 공무원들을 옹호하거나 임금 인상 협상을 주도하기도 했고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부 섬유업을 비롯한 업종에서 비정규직 관행을 철폐했고, 공무원들이 월 70디나르(약 34유로)의 상여금을 받도록 힘을 썼다. 그러나 UGTT 조직은 엔나흐다의 공공연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대체할 만한 사회·경제적 방향을 제시하고 이로써 튀니지가 위기를 벗어나도록 해줄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10일 도입한 금융법에 대한 토론 부재도 이를 증명한다.

UGTT를 수호하기 위한 자유주의 정당과 일부 극좌 정당들 간의 연맹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교사이자 노조원인 모하메드 카문은 여기에 내재된 갈등을 이렇게 설명한다. "노조원들은 모두 지쳤다. 과거에는 민주헌정연합을 상대로, 지금은 엔나흐다에 맞서 투쟁을 벌이다 보니 정작 조직 내부를 재정비하거나 경제적 대안을 마련하는 등 자체적 문제에는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에셉시 전 총리를 주축으로 조직을 정비 중인 광범위한 야권 세력과 집권당 엔나흐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보니 새로운 길을 제시할 겨를이 없다."

좀더 넓은 관점에서 UGTT에 대한 공격이 꾸준히 이어지고 다른 형태의 사회운동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정치 엘리트들의 태도에 의문이 생긴다. 이들은 각종 권리 요구 운동을 끈질기게 비난할 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를 토론의 중심에 놓을 줄 모른다. '이슬람주의자'와 '민주주의자'의 구분에만 집중하다 보니 권력 쟁취와 관련된 주제를 우선시하고 사회문제의 중요성은 폄하하는 경향을 띤다.(5) 튀니지노동공산당을 주축으로 최근 결성된 민중전선은 이런 공백을 메우겠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정치권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세력을 자처하는 이들의 대표 슬로건은 이러하다. '에셉시도, 즈발리도 아니다. 우리의 혁명은 서민들의 혁명이다."

튀니지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다양한 사회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특히 수도·전기·언론 등 일부 분야에서 추진 중인 공기업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긴장을 가중하고 있다.

혼돈 속에 이뤄진 정권 교체로 들어선 집권당은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이전 정권과 동일한 신자유주의적 경제모델을 공공연하게 추진하고, 야권은 여기에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야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UGTT와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 새 헌법 제정 시한(2012년 10월 23일)을 설정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진 격렬한 논쟁을 두고 후신 아바시 UGTT 사무총장은 일간지 <알슈루크> 9월 19일자를 통해 차기 선거 준비를 비롯한 정치 일정이 우선임을 재차 확인했다.(6)

국가 균형을 위한 견제 세력이자 사회운동의 본거지를 자처하는 UGTT가 이에 걸맞게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하고 각종 정치적·국가적 요구를 조율하면서 '노동, 자유, 국가적 존엄성'이라는 슬로건에 부응하는 진정한 사회·경제적 프로젝트를 탄생시킬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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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헬라 유스피 Héla Yousfi 저서 <튀니지 혁명의 중심, 튀니지노동총동맹>(모하메드 알리 하미 출판)을 2013년 1월 출간 예정.

번역 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

(1) 엔나흐다는 2011년 10월 23일 실시된 제헌의회 선거에서 37%의 득표율로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공화국회의(CPR), 노동민주자유포럼(FTDL)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2) 인용된 발언들은 2011년 1월부터 2012년 5월 사이에 있었던 각종 인터뷰에서 발췌.
(3) 전 UGTT 노조원인 하비브 구이자는 2011년 2월 튀니지노동총연맹(OGTT)을 출범시켰다 2011년 5월 1일에는 1990년대 UGTT 사무총장을 지낸 이스마엘 사바니가 창설한 튀니지노동동맹(UTT)이 발족했다.
(4) Sadri Khiari, <튀니지, 마을의 분리: 강제, 동의, 저항>, Karthala, Paris, 2003.
(5) Choukri Hmed, 헬라 유스피, ‘튀니스 정권의 몰락을 위해’, <리베라시옹>, 2012년 5월 9일.
(6) 선거일로부터 1년 이내에 새 헌법을 마련하도록 규정한 제헌의회 선거 시행령을 근거로 야권은 2012년 10월 23일을 국가기관(제헌의회, 정부, 대통령실)의 헌법상 적법성이 만료되는 시한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