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좌파의 새 사령탑, 쉰바움
멕시코의 신임 여성 대통령은 전임자의 역사적인 인기에만 의존해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다. 지난해 6월 대통령직에 오른 클라우디아 쉰바움은 시민 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바람을 일으키려 한다.
처음에는 동네 다른 집들 사이에서 노란색 외벽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단서가 이곳이 우리가 찾는 곳임을 알려준다. 문 앞에 모여든 여성들의 작은 무리다. 1999년 봄의 어느 아침, 우리는 멕시코시티 북동부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구에 있는 단체 ‘아세암블레아 데 바리오스(Asamblea de barrios, 동네 회의 또는 AB)’의 사무소에 도착했다.
이 단체는 12년 전, 한때 게릴라 활동에 참여했던 좌파 운동가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아세암블레아 데 바리오스는 당시 1985년 9월 19일 발생한 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의 재정착 권리를 옹호하고 있었다. 이 지진은 1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정부의 재건 계획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은 점차 AB 를 통해 공공기관이 제공하지 못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공임대에서 시작된 연대의 이야기
그날 회의의 목적은 대부분 가정주부인 참석자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의 분양 일정 진행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다. AB는 다른 시민 단체들과 함께 멕시코시티의 공공주택 일부를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이 단체들에게 프로젝트의 조정 및 관리는 물론, 때로는 주택 건설과 관련하여 행정 기관과 협력해서 신청자들의 서류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역할까지 위임했다.
이 단체의 활동가들은 이러한 회의 시간을 활용해 주민들의 불만과 요구 사항도 수집했다. 경험이 풍부해 보이는 한 활동가는 여름 동안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 목록을 소개한 뒤, 단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나 이혼 절차를 진행 중인 여성을 돕는 법률 상담, 무료 의료 서비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곧 이야기는 동네 주민들의 당면한 관심사에서 멀어져,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UNAM)의 학생 동맹 휴학,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 운동, 즉 정치적인 주제로 전환되었다.
평범함 속의 혁명, 멕시코 좌파의 승리 비결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이 25년 전의 공개 회의는 사실 멕시코에서 좌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해 온 정치적 현장 활동의 일환으로, 이를 통해 좌파는 점차 전국적인 승리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 이러한 승리는 2018년부터 2024년까지 멕시코 국가원수를 지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의 당선과, 지난 6월 클라우디아 쉰바움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승리가 가능했던 이유는 수년에 걸쳐 수천 번의 이와 같은 모임이 사회운동과 클라우디아 쉰바움 및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대표하는 좌파 정치 사이의 연결고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1990년대 말 멕시코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에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역사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 1929년 이후로 하나의 정당이 국가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 정당은 역설적인 이름을 가진 ‘제도혁명당(PRI)’이었다. 1988년 대선에서 PRI의 보수적 노선을 거부한 PRI 탈당자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으나, 개표 시스템이 갑자기 멈추는 사건이 발생했다. 개표가 재개되었을 때는 PRI의 후보인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가 갑작스럽게 선두로 올라섰다. 6년 후, 또 다른 후보가 여당의 노선을 비판하며 대선에 출마했으나, 그는 1994년 3월 23일 암살당하고 만다.
북부와 남부의 충격 이후, 멕시코 좌파의 재편 노력
몇 주 전, 1월 1일에 멕시코를 뒤흔든 두 가지 지진이 발생했다. 첫 번째 충격은 북부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체결로 인해 멕시코 경제가 미국 경제의 위성처럼 변한 사건이었다. 두 번째 충격은 남부에서 발생했는데, 치아파스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봉기를 선언한 것이었다.(1)
이러한 상황 속에서 멕시코 좌파의 한 축은 AB와 같은 단체들을 통해 현장에 밀착한 활동을 선택했다. AB는 현재 클라우디아 쉰바움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축가 하비에르 이달고 폰세를 비롯한 인물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확장이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단체들은 특히 멕시코시티에서 점점 더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AB와 같은 ‘지역 거점’ 단체들은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서비스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하며, 종종 페미니즘적이고 항상 대중적인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 자리 잡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단체들은 도시의 일상적인 삶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활동가, 지역 간부, 공무원, 그리고 ‘평범한 주민’들 간의 공유된 경험을 통해 날마다 결속을 다졌다. 이로인해 형성된 광범위한 단체 네트워크는 좌파가 의존할 수 있는 정치적·지역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시작된 저항의 물결
처음에는 이러한 기반이 1988년 대선에서의 “실패” 이후 1989년에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가 창당한 민주혁명당(PRD)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특히 1997년 PRD가 멕시코시티를 장악했을 때, 많은 시민 단체 활동가들이 지역 의원으로 선출되거나 시 행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2006년 대선에서 대규모 부정선거로 AMLO가 승리를 빼앗긴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멕시코시티에 ‘정당성 있는 정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지역 단체들은 단순히 지역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서비스를 고르게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정치적 저항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동력으로 자리 잡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AMLO는 멕시코시티 시장(2000~2005)으로 재임하는 동안 PRD를 통해 지역 사회의 활동을 주도하는 단체들과 구축한 관계를 바탕으로, 전국 규모의 동원 운동을 조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운동 중에는 멕시코의 국영 석유 회사인 페멕스(Pemex)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캠페인도 포함되어 있다.
페멕스 민영화 저지와 모레나의 탄생
2008년 4월, 아델리타스(Adelitas)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행동에 나섰다. 멕시코 혁명(1910~1920) 당시 여성 군인을 지칭하는 이름을 딴 이들은 500명씩 구성된 20개 여단, 총 1만명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조직이었다. 이들은 페멕스(Pemex)의 민영화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20일 동안 상원 건물을 봉쇄했다. 페멕스는 1938년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의 국유화 정책 이후로 멕시코의 국가 독립과 복지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아델리타스 대다수는 주거권 운동에 참여해온 시민 단체의 활동가들이었으며, 그들의 이러한 봉쇄 운동은 민영화 법안이 좌절되며 승리로 끝났다. 이 사건은 AMLO의 조직 기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2014년 창당된 국가재건운동(Morena)의 초석이 되었다.
당시 활발했던 시민 단체 활동의 기반은 AMLO에게 물질적 구조, 정책 프로그램, 정치적 지도자를 제공했다. 또한, 아델리타스의 총괄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다, 2000년 AMLO의 멕시코시티 시장팀에 합류했던 클라우디아 쉰바움에게도 국가적 차원의 공적 위상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2018년 AMLO의 뒤를 이어 멕시코시티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멕시코의 새로운 길
클라우디아 쉰바움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며 자율적인 지역 단체와 진보적인 공공 정책 간의 연계를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 중 하나가 2019년 멕시코시티 시장직에서 도입한 Pilares 프로그램(“혁신, 자유, 예술, 교육, 지식의 거점”이라는 뜻)이다. 이 프로그램은 도시 전역에 걸쳐 300개의 지역 커뮤니티 센터를 설립하게 했다.
노인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이곳에 몰려와 다양한 무료 워크숍에 참여한다. 디지털 문해력 교육, 도시 농업, 기후 변화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저소득 지역 평지 지붕의 녹화 작업 등이 그 예다. 쉰바움은 시장 재임 기간 동안 매주 목요일 이 프로그램 센터를 직접 방문하며 현장을 살폈다.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들으러 간 것이 아니라, 그녀가 사람들의 말을 들으러 갔던 겁니다”라고 하비에르 이달고는 최근 그녀의 멕시코 대통령 선거 승리를 설명하며 말했다. 그녀의 승리는 무려 30년에 걸쳐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였다.
글·엘렌 콩브 Hélène Combes
사회학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소장. 『거리에서 대통령직까지. 멕시코시티의 저항의 거점들』(CNRS 출판사, 파리, 2024) 저자.
번역·아르망
(1) 마르코스 부사령관, 「제4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7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