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와 몰도바의 ‘유럽의 꿈’이 분열을 초래하다

두 개의 구소련 공화국, 브뤼셀과 모스크바 사이에서

2024-12-31     다비드 퇴르트리 | 저널리스트

이웃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지아와 몰도바는 10월 말 긴장감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러시아군이 일부 점령하고 있는 이 구소련 공화국들의 상황을 감안하면, 주민이 대거 반(反)모스크바 성향의 정치 세력을 지지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이 모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조지아와 몰도바, 통합과 분열의 갈림길

지난 10월, 몰도바와 조지아는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얻은 후 처음으로 전국 선거를 치렀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이 두 구소련 공화국 국민들이 러시아에 등을 돌렸을 것이라 보고, 친유럽 세력이 압도적 지지를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조지아 유권자의 53%가 야당이 ‘친러 성향’이라고 비난하는 집권당을 지지했다. 몰도바에서는 친유럽 성향의 마이아 산두 대통령이 54% 이상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으나, EU 가입을 헌법에 명시하는 국민투표는 50.5%라는 근소한 찬성으로 겨우 통과됐다.

산두 대통령의 지지 세력과 서방 외교관, 언론은 이처럼 미온적인 결과를 러시아의 개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모스크바가 이웃 국가들의 상황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유일한 이유로만 간주하는 것은 유럽 측의 안일한 해석일 수 있다.

조지아(인구 약 390만)와 몰도바(인구 약 260만)는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나라는 소규모 구소련 공화국으로 친러 분리주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러시아와 서유럽으로의 높은 이민율을 경험하고 있다. 오랫동안 유럽 통합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두 나라는 2016년에 발효된 EU와의 협력 협정을 체결하며 동부 파트너십(Eastern Partnership-구소련 국가들과 EU 간의 관계 강화를 위한 EU 정책 프로그램. 2009년)일환으로 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해왔다.

 

개혁의 조지아 vs 부패의 몰도바

두 나라는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중요한 차이점도 뚜렷하다. 몰도바는 만연한 부패 때문에 정치·금융 스캔들이 반복되어 왔다. 2015년에는 세 개의 은행이 정치권 일부와 공모해 10억 달러, 즉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하는 자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 최근에는 인터폴의 조사로 몰도바 사무소가 국제 범죄자들의 송환을 막아주는 대가로 지역 고위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2)

반면, 조지아는 2003년 ‘장미 혁명’ 이후 행정 개혁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조지아를 구소련 공화국(발트 3국 제외) 중 부패 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로 평가하며, 몇몇 유럽연합 회원국보다도 높은 청렴도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한, 법치주의 실천 면에서도 조지아는 워싱턴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World Justice Project, WJP)가 발표한 법치주의 지수에서 49위를 기록하며, 몰도바보다 훨씬 앞선 순위를 차지했다.(3)

 

EU에 가까워진 몰도바, 멀어진 조지아 

조지아는 높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브뤼셀의 신뢰를 잃었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몰도바의 가입 후보 지위를 더 선호하는 입장을 보였다. 조지아와 몰도바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러시아의 개입을 비판하기 위해 유럽 당국은 보상과 압박을 병행하는,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전략을 사용했다. 유럽이사회는 10월 중순 조지아의 가입 절차를 사실상 중단한다고 발표한 반면, 집행위원회는 몰도바 국민투표가 열리기 직전 조지아에 18억 유로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브뤼셀이 몰도바의 마이아 산두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점을 높이 평가한 반면, 조지아 정부가 2022년 이후 보여온 러시아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문제 삼은 결과다.

 

친서방이었던 조지아의 변화…

조지아 정부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자체 제재는 실시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 집권한 ‘조지아의 꿈’ 정당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제 신뢰를 잃게 하는 여러 정책을 추진했다. 2024년 5월에는 외국 자금이 20% 이상인 NGO와 언론사에 “외국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등록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2012년 러시아의 ‘외국 에이전트’법을 떠올리게 했고, 야당과 서방 외교관들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조지아 정부는 오히려 보수 세력과 정교회와의 관계를 강화했다. 2024년 9월에는 학교와 언론에서 “동성애와 근친상간 홍보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은 조지아 정부가 러시아식 권위주의를 모방해 권력을 유지한다는 비판을 키웠다. 야당 대부분이 선거 결과를 거부했고, OSCE는 집권당의 행정력 남용과 정치적 갈등 심화를 지적했다.

그렇다면 일찍부터 서방을 지향하고 대다수 국민이 유럽과 대서양 통합을 지지해온 조지아의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진영 간 극한 대립의 조지아

조지아의 정치 무대는 극도로 양극화되어 있다. 올리가르히 비지나 이바니슈빌리가 이끄는 ‘조지아의 꿈’은 미헤일 사카시빌리의 ‘국민운동당’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전 대통령인 사카시빌리는 2013년 권좌를 떠난 뒤 우크라이나로 가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2021년 10월 몰래 조지아로 돌아왔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봉기를 촉구했으나 실패했으며, 곧 체포되어 권력 남용과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있다. 이바니슈빌리는 야당이 승리할 경우 사카시빌리가 빠르게 석방되어 자신에게 보복하려 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조지아 정부는 키이우가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점을 들어 야당이 러시아와의 새로운 분쟁을 초래할 혁명을 기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라클리 코바키제 조지아 총리는 “이들은 조지아를 우크라이나화해 조지아가 우크라이나와 같은 운명을 맞도록 하려는 것이 목표”라고 주장했다.(4) 실제로, 각 진영은 상대를 깎아내리려 애쓰고 있다. 야당은 이번 선거를 민주적인 유럽과 독재적인 러시아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규정했고, 집권당은 자신들이 ‘전쟁의 당’에 맞서 평화를 지키고 있으며, 야당은 러시아와의 ‘제2 전선’을 열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조지아, 집권 세력의 승리와 야당의 몰락

이번 선거에서는 집권 세력이 야당인 국민운동당보다 더 높은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운동당은 제1야당의 지위마저 잃었다. 정치학자 알렉산더 아타순체프는 “OSCE가 선거 과정에서 일부 부적절한 행위를 발견했으나, 선거 결과 자체는 인정했다(5)”고 설명했다.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계획되었으나, 시민들의 참여는 이전 정치 위기 때와 비교해 눈에 띄게 적었다.

한편, 서방에서 흔히 받아들여지는 통념과 달리, 지정학적 문제는 조지아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미국의 지원을 일부 받는 국제공화주의연구소(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의 조사에 따르면, 조지아인들은 경제 발전, 실업 문제, 그리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같은 상실된 영토의 회복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꼽았다.(6) 유럽연합과의 협력 협정 준수는 여섯 번째 순위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몰도바인들에게는 생활비, 부패, 저임금 문제가 더 큰 우려였으며, 전쟁은 그들의 관심사 중 열여섯 번째에 머물렀다.(7)

 

캅카스의 경제 성장 몰도바의 불안한 현실

분석에서는 종종 이러한 나라들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 보면, 조지아 정부는 2021년 이후 연간 7%에서 10%에 이르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자랑한다. 이는 이웃한 아르메니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의 군사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경제적 성과를 기록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러시아가 교역 구조를 재조정하면서 그 혜택이 남캅카스와 중앙아시아 국가들로 흘러간 점이 크게 작용했다.

반면, 몰도바의 수도 키시너우는 전쟁과 몰도바 정부의 대러 제재로 인해 모스크바와의 경제 및 에너지 연결이 단절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몰도바의 GDP는 2022년 5% 감소한 데 이어, 2023년에는 정체 상태에 머물렀고, 2024년에 들어서야 소폭 회복세를 보였다.

 

친러 성향인가, 현실주의인가, 동유럽 선거의 복잡성

몰도바의 경제난은 많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정권 교체 열망을 키웠다. 몰도바 정부는 러시아가 조직적인 표 매수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비난했지만, 실제 영향력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친유럽 세력이 주요 국가기관을 모두 장악한 가운데, OSCE는 “현직 대통령이 행정력을 남용하고 편향된 언론 보도의 혜택을 누렸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몰도바 정부는 서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오히려 비판은 조지아를 향했다. 이에 조지아의 코바키제 총리는 이러한 차별이야말로 ‘진정한 불공정’이라며, 몰도바의 정치 현실을 ‘정치와 언론의 다원성 부재’, ‘야당 금지’, ‘유력 후보들의 의도적 선거 배제’라고 비판했다.(8)

몰도바 야당도 이 부분에서 조지아 정부와 같은 입장을 보였다. 주요 야당 후보인 알렉산드르 스토야놀로를 지지했던 사회당은 공식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번 대통령 선거는 국민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를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9) 몰도바 야당은 산두 대통령이 유럽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 선거와 유럽 통합 국민투표에서 승리했다며 그녀를 “디아스포라의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몰도바 내 유권자 중 51.5%가 스토야놀로를 지지했지만, 유럽에 거주하는 몰도바인들 중 그의 지지율은 17%에 불과했고, 이러한 차이가 산두 대통령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10)

또한,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러시아 내 투표소 부족 문제도 선거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야당은 이 때문에 수십만 명의 몰도바 시민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약 19만 명의 몰도바인이 거주하는 이탈리아에서는 59개의 투표소가 설치되었지만, 약 30만 명이 거주하는 러시아에는 단 2개의 투표소만 설치되었고, 이는 이전 선거의 17개에서 대폭 줄어든 수치다.

 

동유럽 선거, 지정학과 현실주의 사이의 딜레마

조지아와 몰도바의 선거 결과는 서방 엘리트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분법적 해석에 잘 맞지 않는다.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선거 결과가 지정학적 요인보다는 내부의 정치적, 사회적 역학에 따라 더 크게 좌우된다.

더 나아가, 흔히 ‘친러 성향’으로 불리는 세력들은 단순히 러시아에 우호적이라기보다는 복잡한 지역적 환경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유럽연합과의 연합 협정은 유럽과 러시아 시장의 이점을 동시에 누릴 기회를 제공하지만, 가입은 러시아에 대한 모든 제재를 수용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며, 이는 이러한 이점을 포기하게 한다. 그러나 브뤼셀이 이와 같은 현실적 입장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글·다비드 퇴르트리 David Teurtrie
카톨릭 고등연구소(ICES) 강사, 프랑스 BRICS 관찰소 소장, 『러시아 강대국의 귀환』의 저자 (Dunod, Malakoff, 2024).

번역·성지훈


(1) 줄리아 뵈르크, “몰도바에서 ‘세기의 도둑질’ 이후”,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10월.
(2) ‘인터폴 활동이 몰도바에서 반부패 작전으로 이어지다’, 2024년 6월 6일.
(3) ‘부패 인식 지수’ ‘법치주의 지수’, 세계정의프로젝트(WJP).
(4) “조지아 총리, ‘시위 지도자들이 조지아를 우크라이나와 같은 운명으로 몰아넣으려 한다’고 발언”, 이메디 뉴스, 2024년 5월 20일.
(5) 알렉산더 아타순체프, ‘조지아인들이 선거 결과에 항의하며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카네기 폴리티카, 2024년 10월 30일.
(6) 비켄 체테리안, ‘캅카스를 뒤흔든 5일’,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4월.
(7) ‘몰도바 국가 조사’ 및 ‘조지아 공공 여론 조사’, 센터 포 인사이트 인 설베이 리서치, 각각 2024년 5-6월 및 10월.
(8) 조지아 총리, “조지아와 몰도바에서 열린 선거에 대한 다른 평가가 '명백한 불공정'을 보여준다”고 주장, 2024년 11월 6일.
(9) “알렉산드르 스토야놀로는 몰도바 대통령 선거의 진정한 승자”(러시아어), 몰도바 공화국 사회당 발표문, 2024년 11월 4일.
(10) 올가 굴리나, ‘디아스포라 참여 지도’, EuDif, 202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