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바람’에서 예견된 재앙
네타냐후 정부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현재의 재앙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네타냐후에 반대하는 세력들, 특히 자신들을 민주적이고 자유롭고 도덕적이라고 여기는 이스라엘 좌파가 얼마나 약하고 모순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비드 그로스만(이스라엘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작가―역주)은 이스라엘 안팎을 통틀어 인간의 존엄성, 즉 이스라엘의 인본주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1987년, 젊은 작가인 다비드 그로스만(David Grossman)은 ‘노란 시간’이라는 뜻을 지닌 『하-제만 하-차호브(Ha-Zeman Ha-Tzahov)』 (하키부츠 하메우하드 출판사)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1)
그의 책은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직시한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로 꼽힌다. 다비드 그로스만은 이 책에서 점령의 폭력적인 현실을 이야기하며, “자국민들의 현실 외면과 집단적 맹목성이 결국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6개월 후 제1차 인티파다(Intifada), 즉 이스라엘 점령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규모 저항 운동이 발발했다. 또한 그는 예언하듯 말했다. “과거 세계사를 볼 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만약 점령이 계속된다면 그 대가는 치명적일 것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있던 2023년 10월 7일 사건의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구절이 예언적으로 보인다. 작품에서 이 장면은 작가가 아부 하르브(팔레스타인 노인)와 대화하는 부분에서 나온다. 그로스만이 노인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책의 히브리어 제목 『하-제만 하-차호브(Ha-Zeman Ha-Tzahov)』(노란 시간)를 말하자, 노인은 작가에게 “‘리흐 아스파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며 이것이 재앙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수 세대마다 한 번씩 이 지역을 불타오르게 하는 뜨겁고 두려운 동풍이 불어오면, 사람들은 그 분노를 피해 동굴과 바위틈으로 도망가지만, 그 바람은 거기서도 자신이 원하는 자들, 즉 불의와 잔혹함을 저지른 자들을 찾아내어 바위틈에서 하나씩 하나씩 죽인다. 그런 날이 지나고 나면 이 땅은 시체들로 뒤덮일 것이며, 바위들은 불에 하얗게 될 것이고, 산들은 누런 먼지가 되어 노란 솜처럼 대지 위에 내려앉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경고했던 ‘노란 바람’
그로스만은 작품을 통해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과 자국민들의 무관심을 비판하지만, 정작 그 자신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제 고통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시오니스트 좌파의 한계를 보여준다.
즉, 그의 비판은 결국 유대인의 관점을 뛰어넘지 못해 1948년 나크바(대재앙)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직접적인 고통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가 히브리어 ‘노란 시간’이라고 부른 것 속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해 온 아랍어 ‘노란 바람’의 재앙이 숨어있었다.
다비드 그로스만의 새 책 『생각하는 마음(Le Coeur pensant)』(Seuil 출판사, 2024)이 프랑스에서 나왔다.(2) 최근 몇 년, 특히 2023년에 쓰여진 짧은 에세이들을 모은 이 선집에서, 다비드 그로스만은 신이나 땅이 아닌 오직 인간의 생명만을 신성시하는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유대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티쿤 올람’(Tikkun Olam)이라는 유대교 전통 개념을 다룬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라는 뜻의 이 개념은, 부당한 일을 마주쳤을 때 무관심하게 있지 말라는 유대교의 가르침을 설명한다.
한계를 드러낸 이스라엘 지식인의 모순
그로스만은 2022년 암스테르담에서 에라스무스상(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였던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따서 네덜란드에서 매년 수여되는 상—역주)을 받으며 한 연설에서 에티 힐레숨이라는 특별한 인물을 언급했다. 유대계 네덜란드인이었던 힐레숨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나는 이 수용소 전체의 생각하는 마음이 되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이 선집을 통해 그로스만은 자신을 제목처럼 ‘생각하는 마음’의 작가임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편에 둔다. 이스라엘 좌파들이 흔히 취하는 태도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고, 대신 이를 비극적 상황으로만 그린다.
그는 평화를 원하는 양측 시민들이 극단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보며, 가자지구뿐만 아니라 텔아비브도 포위된 도시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모든 책임을 외면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팔레스타인과 동일시하는 태도는, 결국 힐레숨이 경계했던 절망으로 이어진다.
2021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있었던 텔아비브 연설에서 그로스만은 이 갈등을 “죽음의 고리”, “자동 메커니즘”, “최면적 마법”, “폭력의 저주”와 같은 운명론적 표현을 동원하며 설명했다. 이는 세속적 유대인이라는 그가 오히려 현실을 주술과 저주로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종교적이지 않다는 그가 오히려 현실의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저주’처럼 인식하고 설명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서구에 의존적이었던 이스라엘 좌파
2017년 뮌헨 안보회의에서 그로스만은 세계 강대국들에게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는 큰 모순을 안고 있었다.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은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초래했고, 이는 지금의 중동 갈등의 근원이 되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강대국들이 중동을 분할하면서 이 지역의 정치 질서를 뒤흔들어 놓지 않았던가? 그런 서구 강대국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이스라엘 좌파가 여전히 과거 식민 제국들을 동맹자로 보는 식민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민족 문제 외면하며 비전 제시 못해
이 책은 2023년의 극적인 사건들을 이스라엘 좌파의 시각에서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그간 두려움에 침묵하던 많은 사람이 네타냐후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외친 ‘민주주의’라는 구호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것이었다.
결국 이 운동은 변화가 아닌 현상 유지를 위한 싸움이었다. 이는 처음부터 유대교 사회 내부의 문제, 즉 세속 도시 텔아비브와 종교 도시 예루살렘의 갈등이자,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교 정체성 사이의 분열을 다룬 것이었다.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반발은 먼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특권층에서 시작되었다. 그로스만은 두 종류의 적을 지목한다. 첫째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이다. 그들이 특히 짜증나는 이유는 인본주의적 좌파와 달리 군대에 가기를 거부하고, 대신 기도와 토라(Torah, 구약성서 모세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역주) 연구가 유대 민족의 생존을 지켜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둘째는 평화를 방해하는 정착민들이다.
하지만 이는 모순된 비판이다. 이스라엘 좌파 정부들을 포함한 모든 정부가 점령 정책을 추진해왔고, 1967년 6일 전쟁 이후의 동예루살렘 병합도 현 종교 시오니스트 정권의 점령지 병합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과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이 점령을 끝내고 대재앙의 나크바를 완결하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 좌파는 체제 변화에 대한 반대 시위에 나서지 않았고, 시위대는 오히려 기존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그들이 걱정한 것은 ‘노란 시간’이 끝나는 것이었다. ‘노란 시간’이란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을 당연하게 여기며 안정과 번영을 누렸던 시기를 말한다.
그로스만은 2023년 상황을 설명하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후순위로 미뤘고, 시오니스트 좌파처럼 이스라엘 내 아랍인 문제와 점령 문제를 분리해 다뤘다. 그는 이스라엘이 아직 점령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23년 6월, 그로스만은 가장 용기 있는 글에서 “점령 체제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회가 현실을 부정하고 환상 속에서 사는 경향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팔레스타인 민족 전체의 문제는 회피했다.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시오니즘 정신의 대안적 유대국가를 말하면서도, 그는 점령 문제를 감추고 오직 아랍계 시민들의 권리만을 언급한 것이다. 그로스만은 결국 현재 이스라엘 국가 체제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여전히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다수결 민주주의’라는 기존 틀 안에 갇혀 있었다.
1948년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재앙적 사건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그로스만의 후퇴하는 성찰, 자기정당화에 갇혀
‘노란 시간’에서 팔레스타인 노인이 예견했던 “지옥의 문”이 2023년 10월 7일에 열렸고, 그로스만은 그해 10월 12일 글에서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이 표출했다. 그는 점령자가 피점령자들의 저항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용기 있는 선언을 했고, “이스라엘인으로서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곧 “인간으로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행동을 판단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모순된 입장을 보였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의 잘못에 대해 침묵하던 그의 양심이, 이제는 팔레스타인의 행동을 더 큰 잘못으로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로스만은 “그들이 우리보다 더 나쁘다”, “학살이 점령보다 더 나쁘다”라는 익숙한 논리로 돌아갔다. 이는 그가 처음에 보였던 용기 있는 성찰에서 벗어나 기존의 이스라엘 중심적 시각으로 돌아갔음을 보여준다.
도덕적 권위자로 여겨진 그로스만은 하마스 전사들이 “인간의 얼굴을 잃었다”라고 주장하며 입장을 바꾸었다. 그는 예전에는 점령이 가져올 위험한 결과들을 경고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점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극단적 증오를 키웠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 지식인들과 좌파들은 이 사태를 절대악, 급진 이슬람, 반유대주의, 인간성 상실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다. 그로스만도 10월 7일 희생자 추모문에서 1903년 ‘키시너프 포그롬’을 다룬 비알리크의 시를 인용하며 같은 시각을 보여주었다. 유대 민족시인 비알리크(1873~1934)는 1903년 러시아 제국 키시너프에서 발생한, 유대인 49명이 살해되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한 학살사건을 「살육의 도시에서」라는 시로 남겨, 반유대주의의 잔혹성과 유대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한 바 있다.
그로스만은 자신의 글 선집에서 시간 순서를 의도적으로 섞고, 2022년의 에라스무스상 수상 연설을 순서 끝에 배치했다. 이러한 구성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에티 힐레숨이 말한 “수용소 전체의 생각하는 마음”이란 표현에 새로운 불편한 해석을 더하게 된다.
결국 이런 배치를 통해 그로스만은 이스라엘인들을 이스라엘 내부의 극단주의자들 때문이 아니라, 외부의 비유대인들과 아랍인들에 의해 수용소에 갇힌 피해자로 그려내고 있다.
‘노란 바람’이 담아내지 못한 팔레스타인의 목소리
10월 7일의 사건으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과거의 포그롬과 홀로코스트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내면의 양심, 즉 생각하는 마음은 이러한 감정을 이성적으로 다스려야 하는 소명과 책임이 있다.
비알리크는 키시너프 포그롬 이후 복수를 위한 폭력을 강하게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복수를 외치는 자는 저주받으리라! / 그러한 복수, 아이의 피에 대한 복수는, / 사탄조차 아직 발명하지 못했노라…”(3)
비알리크가 당시 거부했던 폭력의 형태는 지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자행하는 파괴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학살이 제노사이드인지는 그 의도를 살펴봐야 하는 문제다.
비록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가자지구의 민간인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양심은 이러한 죽음을 막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로스만은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회가 누려온 안정과 평화의 ‘노란 시간’은 끝났다.
글·엘라드 라피도트 Elad Lapidot
릴 대학교 히브리어학 교수
번역·아르망
*이 글은 <베를린 리뷰(Berlin Review)>에도 게재되었다.
(1) 다비드 그로스만, 『노란 바람(Le Vent jaune)』, 쇠이유 출판사, 파리, 1988. 이 책과 그로스만의 다른 저작들의 인용문들은 출간된 프랑스어 번역본과 일치하지 않는다.
(2) 다비드 그로스만, 『생각하는 마음. 예고된 혼돈에 대한 성찰들(Le Coeur pensant, Réflexions sur un chaos annoncé)』, 쇠이유 출판사, 파리, 2024.
(3) 엠마뉘엘 모제스 (편), 『현대 히브리어 시선(Anthologie de la poésie en hébreu moderne)』, 갈리마르 출판사, 파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