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환상문학은 어떻게 부활하는가

2024-12-31     뤼카 드 게이터 | 음악가

『문어 이야기들(Les Contes de la Pieuvre)』을 이야기할 때 1920~30년대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 SF 그래픽 노블 시리즈 ‘키메라 부대(La Brigade Chimérique)’(1)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키메라 부대'가 『문어 이야기들』과 같은 장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SF 작가이자 비평가인 세르주 레만(Serge Lehman)은 2015년 전집 후기에, 1970년대 말 어린 시절 미국의 슈퍼히어로들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상상 속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반면, 유럽, 특히 프랑스에는 그런 슈퍼히어로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유럽에서는 왜 그런 영웅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보여준다.

이러한 의문은 그가 성장하여 SF 작가가 된 후, ‘닉탈로프(Nyctalope)’(2)나 ‘펠리팍스(Félifax)’(3)와 같은 20세기 전반기 SF 작품의 주인공들을 탄생시키면서 더욱 깊어졌다. 이 캐릭터들은 슈퍼히어로의 모든 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잊혔기 때문이다.

 

세르주 레만이 되살린 프랑스의 슈퍼히어로들

그는 공동 시나리오 작가인 파브리스 콜린과 그래픽 디자인과 그림을 담당한 게스와 함께 잊힌 슈퍼히어로들을 가장 프랑스다운 방식으로 부활시키려 했다. 이들 모두 레만처럼 SF와 판타지 장르에 정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슈퍼히어로들을 슈퍼 빌런들이 지배하는 가상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에 얹혔다.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전으로 판타지적인 초능력과 과학적 변형이 등장하지만, 마리 퀴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이야기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설정으로 전개된다.

『문어 이야기들』은 1930년대가 아닌 19세기 말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파리 코뮌(1871년 3월부터 5월까지 파리에서 짧게 존재했던 노동자 중심의 사회주의 정권)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다. 15년이든 30년이든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부르주아와 경찰이 다시 권력을 잡았고, 빈민들은 여전히 가난 속에 살았다. 범죄자들이 여기저기 날뛰며 갈취하고, 칼부림하며, 훔치고, 창문 밖으로 사람을 던지고, 매춘하며 술에 취해 살았다. 당시의 파리는 지금과 달랐다. 마을처럼 작은 구역과 외곽 지역, 어둡고 더러운 거리, 그리고 몇몇 웅장한 대로들이 뒤섞인 곳이었다. 몇 킬로미터만 나가도 푸른 시골이 펼쳐지던 시절이다.

지금은 클리시 광장과 아스니에르 문 사이에 자리한 세련된 지역으로 변한 레 바티뇰(Les Batignolles)(4)도 예전에는 웅장한 대로가 없는 파리의 초라한 한 구역이었다. 이곳이 바로 문어가 지배하는 위험하고 악명 높은 지역이었다.

 

파리의 이면, 문어 조직과 네 가지 이야기

문어 조직의 핵심인 눈, 코, 입, 귀는 항상 문어 여관의 첫 번째 홀, 로즈 아가씨가 지키는 카운터 옆 같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조직의 사업을 관리한다.

이 조직은 전형적인 범죄 조직과 다르지 않지만,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바로 조직원들 중 다수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특별한 능력은 조직에 높은 가치를 더해준다. 지금까지 출간된 4권의 책은 각각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물 한 명과 그 인물을 둘러싼 세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1권은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암살자로 활동했던 귀스타브 바벨(5)의 이야기이고, 제2권은 원하는 물건이나 사람을 거의 즉시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경찰 에밀 파르주(6)의 이야기다. 제3권은 사람들의 진정한 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셀레스탱(7)의 이야기이며, 제4권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공감자 파니 라 르누즈(8)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 이야기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초능력의 가면, 산업화 시대 파리의 민낯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마지막 몇 줄을 읽고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 뻔한 얘기네.” “노력도 안 했군.” “그래, 또 장르에 편승하는 사람이구만.”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야기에서 ‘초능력’은 단순히 판타지적 요소가 아니다. 키메라 부대와 마찬가지로, 초능력은 그저 역사적 사실주의의 틀을 벗어나 폭력과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 한 도시의 기묘하고 뒤틀린 인간성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 시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실패로 끝난 봉기에 대한 후회와 산업화가 모든 것을 뒤흔들기 시작한 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소비에트 혁명은 다가오고 있었고, 권력과 영토는 변화를 겪고 있었지만, 결국 영주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고 빈민들의 삶도 변하지 않았다.

 

 

글·뤼카 드 게이터 Lucas de Geyter
음악가

번역·아르망


(1) 세르주 레만, 파브리스 콜린, 게스, 셀린 베소노,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라탈랑트 출판사에서 6권 출간, 2015년 최종 전집, 320페이지.
(2) 닉탈로프, 장 드 라 이르 작, 첫 등장 1911년.
(3) 펠리팍스, 폴 페발 2세 작, 1929년.
(4) 파리 17구.
(5) 『귀스타브 바벨의 저주(La Malédiction de Gustave Babel)』, 게스 작, 델쿠르 출판사, 2017년, 200페이지.
(6) 『발견자의 운명(Un Destin de Trouveur)』, 게스 작, 델쿠르 출판사, 2019년, 224페이지.
(7) 『셀레스탱과 방드레잔의 심장(Célestin et le Cœur de Vendrezanne)』, 게스 작, 델쿠르 출판사, 2021년, 200페이지.
(8) 『매듭을 푸는 파니(Fannie la Renoueuse)』, 게스 작, 델쿠르 출판사, 2024년, 208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