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피조물의 발칙하고 기이한 반란, 그리고 성장-<가여운 것들>

2025-01-06     김희경(영화평론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들엔 특유의 불편함과 기괴함이 흐른다. 신체 훼손과 성행위 등을 노골적으로 담는 기이한 설정이 곳곳에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란티모스 감독은 늘 창의적인 시도와 연출로 관객들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가여운 것들>(2024)은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들을 능가하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영화 전체를 통틀어 대부분의 장면에서 전개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처음엔 전형적인 프랑켄슈타인의 서사를 차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사 갓윈(윌렘 대포)은 해부학 실험을 이어가던 중 스스로 창조주가 된다. 임신한 채 자살을 시도한 여성을 발견하고, 여성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해 벨라(엠마 스톤)라는 피조물을 만들어낸다. 성인 여성의 육체를 갖고 있지만, 세상과 사회를 학습하지 않은 순수한 아기의 뇌가 합쳐졌기 때문에 벨라는 지극히 충동적이고 원초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렇게 영화는 초반에 벨라의 육체와 지성의 불협화음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벨라는 점차 이 간극을 좁혀가게 된다. 결정적인 계기는 두 번 찾아온다. 한번은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마크 러팔로)을 따라 갓윈의 집을 떠나 세계를 여행 다니며 이뤄진다. 두 번째는 그런 덩컨마저 떠나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대로 살아갈 때 이뤄진다. 갓윈의 집에만 갇혀 지내던 벨라는 덩컨을 만나 우선 육체적 욕망을 실현하게 된다. 이어 세계의 다양한 도시와 사람들을 만나며 내면의 호기심을 일깨우게 된다.

덩컨은 그런 벨라를 자신만의 소유물로 가둬두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하려 한다. 하지만 벨라는 그의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과 자유로운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의 안내로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벨라는 덩컨의 돈을 몰래 빼내 그들을 돕고, 덩컨을 떠나 자신만의 결정과 가치관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영화가 독창적으로 다가오는 중요한 요인은 가늠하기 어려운 벨라의 파격적인 행보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파격은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난 과감한 ‘탈(脫) 규칙’에서 비롯된다. 벨라는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아도, 사람과 사회로부터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숙이 파고들어 인간의 본성을 파고든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과 사회가 만든 규칙에 얽매이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벨라는 세상에 적응을 하는 가운데서도, 어떤 규칙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로서의 의무와 한계, 그 피조물들이 사회에서 만들어낸 각종 규범과 억압에 얽매이거나 복종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규칙을 정하는데, 이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소통과 연결의 방식이다. 벨라는 덩컨의 온갖 모욕적인 언사에도 창녀가 되길 선택한다. 그리고 손님과 단순히 육체만이 아닌 감정적 친화를 추구한다. 벨라가 결말에서 자신만의 사람들을 연결해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 또한 파격적이다. 벨라는 남편, 머리와 몸통을 다르게 만들어 버린 자신의 전 남편, 사창가에서 만난 여성 애인, 갓윈이 만든 여성 실험체와 함께 가족을 이루어 산다.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들처럼 <가여운 것들> 역시 잔인하고 외설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 이미지를 보다 강렬하게 만들어 나열하는 경향도 심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는 단연 독보적으로 과감하고 기발하다. 그 이유 또한 탈 규칙, 새로운 소통과 연결 방식에 있지 않을까. 벨라가 그랬듯 란티모스 감독의 발칙하고 기이한 반란, 그리고 성장 역시 갈수록 기대된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김희경
인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자체등급분류 사후관리위원,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은평문화재단 이사, 영화평론가,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기자,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경영 겸임교수, 前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