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갇힌 각색의 단조로움 - <보통의 가족>이 간과한 이들과 심리
* 영화와 원작소설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 자식이 믿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누구와 했던 왜 그랬던 그 과정은 그리 중요치 않다. 일단 일은 벌어졌고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는 부모에게 남는 숙제일 것이다. 그런데 한 남성에게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이 남성은 자신에게 선천적으로 분노를 조절하기 힘든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식이 나를 닮아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아들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았던 아내는 왜 굳이 나에겐 비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의 정신적 문제가 유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었을까? 아들을 임신했을 때 아내는 이에 대해 확인은 해봤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사고같은 일이 언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오랫동안 각오해왔던 것은 아닐까? 남성은 고민은 이어진다.
가령 이런 내용의 소설이 있다고 하자. 이 소설에서의 화자는 남성이었지만 이 사이 불안한 마음으로 남성과 아들을 바라봐 온 또 하나의 시선이 자리한다. 오랫동안 불안을 견뎌왔던 아내의 시선, 남편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도 게다가 곧 태어날 아이조차 이러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던 아내의 시점이 그것이다. 만약 이 소설의 내용을 심리극으로 옮긴다면 불안을 가득 안고 견뎌내야 할 임무를 지닌 인물로 누굴 부각시켰을까? 그래서 관객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이는 누구였을까? 앞서 설명한 내용은 소설 <더 디너>(헤르만 코흐), 그러니까 영화 <보통의 가족>의 원작 소설의 내용을 설명한 것이다. 파울은 아들 미헬이 유력한 차기 총리후보인 형 세르게의 아들인 릭과 살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부인 끌레르와 함께 세르게와 바베테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미헬과 릭의 살인에 관한 것이지만 파울의 심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의 비행에 집중되지 않는다.
원작에서의 성격과 인물 사이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소설 <더 디너>의 동생 파울과 아내 끌레르는 <보통의 가족>에서의 소아과 의사인 재규(장동건)와 연경(김희애)으로, 형 세르게와 바베테 부인은 변호사 재완(설경구)와 재혼한 부인 지수(수현)로 각각 연결된다. 사실 이 인물들의 직업과 성격, 그리고 관계 등을 생각했을 때 이 작품은 원작 소설을 따랐다기보다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더 디너>(2015)와 훨씬 흡사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영화화 한 작품은 <보통의 가족>을 제외하고도 세 편이나 되고, 각각은 당연히도 조금씩 그 양상을 달리한다. 한 작품의 각색이 어떤 부분에 혹은 어떤 버전에 집중하여 이루어졌는지는 전적으로 작가의 자유에 따른 것이지만, 원작과 결이 다른 한 버전에 집중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과 비교했을 때 <보통의 가족>과 이탈리아 영화 <더 디너>가 가장 크게 변화하는 것은 아내 끌레르와 바베테 부인의 성격과 상황의 변화이다. 남편과 아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품고 있던 소설의 끌레르는 아들의 태도에 약간은 불안을 느끼던 인물에서(<더 디너>), 애초에 문제없던 아들의 사고를 대면하는 인물로 변화한다(<보통의 가족>). 소설의 바베테는 남에게 보이는 것이 집중하는 정치인 남편에 대한 깊은 불만을 표현하던 인물이었지만 두 영화로 넘어오면서 능력있는 남성과 재혼하여 어린 아기를 키우는 젊은 여성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두 여성의 성격이 변화하면서 추가되는 것은 젊은 여성의 미모를 깎아내리려는 중년 여성의 시기, 그리고 그에 대한 환멸로 큐레이터 혹은 봉사활동 하는 자신의 직업을 치켜세우는 것이다. 특히 <보통의 가족>에서의 연경은 원작 소설과 <더 디너> 어디에도 없던 치매가 있는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며느리로서의 역할까지가 부여되며 그 성격을 가른다.
<보통의 가족>이 부인들의 성격을 이게 바꾼 이탈리아의 <더 디너>를 따른 것, 이보다도 더 여성들의 성격을 평면화시킨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 인물들의 변화는 자식의 살인을 대면해야 하는 심리에 있어 엄마라는 두 여성 인물을 배제시키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원작 소설에서 보여주었던 끌레르의 설정, 그리고 결국 끝까지 아이들을 자수시키겠다던 세르게의 얼굴을 깨진 와인잔으로 긋고 마는 끌레르의 분노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끌레르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은 각색자의 선택이겠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의 시기나 며느리로서의 도리는 살인을 저지른 아이를 앞에 둔 부모와 전혀 접점이 없다는 점부터 이들을 중심서사에 놓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택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쯤에서 떠오르는 것은 <보통의 가족>이 던진 문제, 그러니까 범죄를 저지른 자식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딜레마를 다룰 수 있는 이는 강력하고 완고하고 또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밀고 나갈 수 있는 남성의 역할이라는 고정된 인식이다. <보통의 가족>이 그리고 있는 부모의 갈등과 역할은 아버지의 것으로 규정될 뿐 그 선을 넘어가지 않는다.
이러한 각색은 원작 소설이든 다른 버전의 영화이든 새롭게, 그리고 ‘심리’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이미 차단한 채 시작되었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보통의 가족>의 인물의 설정을 보았을 때 살인을 저지른 자식의 문제에 있어 가장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은 지수이다. 게다가 지수의 딜레마는 다른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자신이 딸의 범행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혔을 때, 그것은 자식을 생각해서라기보단 계모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시선이 훨씬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기에 지수는 여타의 인물들과 다르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수라는 인물은 젊은 여성으로 자신의 미모를 가꾸는 모습만이 등장할 뿐, 아이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쉽사리 하지 못한다. 영화의 후반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지수의 의심과 불안은 영화가 이 인물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만약 지수를 부각시킨다면, 즉 지수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면 재완과 재규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는 많은 한국영화가 쉽게, 아니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각색의 방향이었을 테다. 즉 애초에 엄마로서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결말을 그리지 않고서야 자식의 문제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은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살인을 저지른 자식의 문제에 있어 ‘엄마’는 적어도 객관적으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는 폐쇄된 상상력은 여기에 힘을 보탠다. 원작 소설에 기대어 연경의 서사로 갈 수 있던 방향 역시 차단한 것도 이 방향에서 읽어낼 수 있다. 이 글의 처음 설명했던 소설 속 끌레르의 심리는 이 작품이 던지는 자식에 대한 문제를 넘어 한 인간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까지 고민해 볼 여지를 주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 사이 <보통의 가족>이 선택한 것은 돈으로 죄의식을 줄이고 자식을 위해 형을 차로 치는 것과 같이 외적으로 그 방법을 드러내고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강렬함의 표출이라는 착각이었다. 재규는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의 비약을 보일 뿐이었고, 재완은 예의 그렇고 그런 엘리트의 모습 속에 박제되듯 자리해 있었다.
<보통의 가족>은 영화적 상상력의 빈곤뿐 아니라 현재 한국영화가 어디에서 배회하며 관심을 잃어가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특별히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하긴 어려웠고 영화가 던지는 문제도 매우 단순해지면서 논쟁과는 멀어져 있었다. 순수한 창작 시나리오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각기 다른 매체의 각색이나 리메이크, 실화를 바탕으로한 작품이 개봉 영화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원작이 어떠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한 작품을 어떤 방향에서 새롭게 끌고 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겠지만 고심한 흔적이 드러나는 영화는 찾기 힘들다. 그만큼 보아왔던, 으레 그러했던, 그렇고 그런 예상이 적중하는 작품들이 쌓이는 요즘이다. 서사적으로든 시각적으로든 그 방향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때다.
헤르만 코흐, 강명순 역, [더 디너], 민음사, 2024.
<더 디너>(2015)
<보통의 가족>(2024)
사진출처: 네이버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