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벗기 위한 자메이카 꿈의 연대기

2012-11-12     로맹 크뤼즈

자메이카와 국제통화기금(IMF) 사이에 현재 진행 중인 새로운 구조조정 협상(1977년 이래 14차례)을 통해
자신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메이카인들은 거의 없다. 성공을 얻기 위해 모든 희생을감수하더라도 그들은 음악산업에 더 큰 희망을 걸고 있는 실정이다.

말끔한 단화에 새하얀 바지와 순백 셔츠를 입고 흰색 모자를 쓴 커트니는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에서 가난에 도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킹스턴은 카리브해 국가의 덥고 건조한 수도들 중 하나다. 킹스턴에서는 가난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다. 외모는 언젠가 '댄스홀' 스타 가수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문자 그대로 '춤무대'라는 뜻의 댄스홀은 1980년대 나타난 하나의 음악 장르를 지칭한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 댄스홀은 '자메이카 음악'과 동의어로, 넓게는 이 음악의 생산과 소비에 관련된 모든 행위, '음향 시스템'(1)은 물론이거니와 댄스그룹이 입는 옷 스타일까지 포함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커트니는 댄스홀 가수이며, 지금 신곡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킹스턴의 변두리에서 유일한 혈육인 고모와 함께 가진 돈도 없이, 비벌리힐스의 부르주아들 동네에서 정원사로 일하며 2주 주급(2)으로 자메이카 달러화로 12달러(약 110유로)를 벌며 살아가는 커트니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수입은 자메이카 중산층에 속한다. 그는 이 수입으로 월세와 세금을 내고, 식료품을 구입한다. 하지만 같은 달에 세 가지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수백 명의 자메이카인들처럼 킹스턴에 있는 10여 개의 녹음실 중 한 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을 한다고 꼭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속담이 그의 삶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다. 어쨌든 음악은 적어도 무기와 갱단에서 떨어져 사는 사람들에게 덜 가난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첩경이다.

히트곡을 내서 빨리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 마바도, 엘리펀트맨, 비니맨, 빕즈 카르텔 등 몇 안 되는 빈민가 출신 스타 가수들에 대한 동경 속에서 이 희망은 부풀어만 간다. 이들의 수익금은 공연당 종종 5만 유로가 넘기도 한다. 이들이 독일제 컨버터블 승용차를 타고 킹스턴의 주요 대로인 호프로드에서 드라이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지역 매체는 그들 소식으로 요란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댄스홀 음악은 수많은 비공식 산업활동 영역에서(국민총생산의 45%를 차지하고 자메이카 인구 3분의 2가 종사하는), 그리고 관광산업이나 면세 지역의 산업 영역에서(자메이카에서 3차산업이 실질적인 국부 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3)) 일상적 노동에 동반되는 음악이다.

커트니는 녹음실과 부촌의 정원, 자신의 아파트를 오갈 때 낡은 빨간색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는 자전거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구두 밑창을 자전거 뒷바퀴에 대야 한다. 와레이카 언덕 아래에 위치한 그의 방은 좁은 '주둔지'에 설치된 보루의 일부다. 그가 사는 이 가난한 구역은 자메이카 정당들이 매수한 갱단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그곳은 이런 보루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심지인 킹스턴 동쪽이다. 보루들은 1962년 자메이카가 독립했을 때 지어진 부촌들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에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후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은 중산층을 위해 구상된 이 분양주택들 때문에 이곳을 떠나야 했다. 여러 개의 방으로 구분된 분양주택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할 능력은 안 되지만 적어도 킹스턴 서쪽 쓰레기장 주변 판자촌이나 리버튼, 혹은 맹그로브 숲에 있는 시뷰로 밀려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도로를 따라 세워진 벽에는 국가 영웅 마르쿠스 가비(4), 전설적인 밥 말리, 사회주의자인 마이클 맨리 전 총리(1972~80년, 1989~92년 집권), 몇몇 지역 주둔군 지휘관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커트니의 방은 스펀지 매트리스로 된 침대와 오래된 냉장고, 작은 텔레비전, 오디오, 지붕으로 새는 빗물을 받는 데 쓰이는 큰 빨래 양동이를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넓다. 꽃이 그려진 장미색 커튼은 언제나 닫혀 있는 금속제 덧문을 가리고 있다. 전기를 불법으로 끌어다 쓰는, 대각선으로 늘어진 전선에는 옷걸이가 걸려 있다. 검은색 테이프로 엉성하게 동여맨 콘센트를 꼽아 벽에서 튀어나온 선풍기를 원격 조정한다. 불은 전구를 돌려야 켜지고, 원래 자물쇠가 걸려 있어야 할 문고리에는 볼펜 조각이 끼워진 상태로 문이 닫혀 있다. 킹스턴의 다른 곳에서 단순히 이 구역들 중 한 구역의 이름만 언급해도 사람들은 경멸과 두려움으로 입을 이죽거리기 일쑤다. 정치인들의 인기 전술이 펼쳐지고, 마약이 거래되며, 상거래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킹스턴시가 노력하는 와중에 이곳은 전쟁 무기로 가득 채워졌다. 갱단 조직원들은 서로 죽이고, 무기는 청소년, 곧 '건보이'(gunboy)들 손에 들어갔다.

"월요일 아침 블루스, 내야 할 세금, 새 신발이 필요한 아이, 또 한 번의 월요일 아침 블루스, 이곳 빈민촌에서 사는 건 쉽지 않아. 매일 새로운 고난의 연속이야…." 커트니는 교회에서 노래를 배웠다. 그는 딱히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수년에 걸쳐 노래 부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미국의 솔 음악 음색을 가진 그는 아침마다 구두에 광을 내며 빈민촌의 우울한 송가를 흥얼댄다. 저녁에는 그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한 젊은 여자가 나오는 노래 대목에서 더욱 외설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이때 그는 즉흥적으로 자메이카어인 파트와어로 개사해 부르기도 한다. 한 친구는 병 2개로 댄스홀 음악의 독특한 리듬을 내며 커트니의 반주를 맡는다.

살인과 마약 밀매로 감옥에 간 유명 가수들

이런 광경은 이 구역의 한 작은 술집 앞에서 벌어진다. 술집 사장은 흐뭇해한다. 옆으로는 10살가량의 한 소녀가 무관심한 태도로 한 손에 물통을 든 채 아무것도 들지 않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걸어가고 있다. 좀더 위에서 아이들은 웃통을 벗고 반짝이는 살을 드러낸 채, 나무로 만든 총으로 무장하고서 경찰 역할과 '나쁜 애들'(갱단) 역할을 나눠 하면서 놀고 있다. 제복을 입은 한 초등학교 여학생은 경찰의 폭력적인 행동을 따라하며 남동생의 주머니를 뒤지고 있다. 남동생은 손을 벽 위에 올린 채 다리를 벌리고 있다. 그러는 동안 소년의 누나는 손으로 동생의 주머니 위를 만지작거리고 뒤통수에 일격을 가한다. 갑자기 아이들이 도망친다. 거리에 침묵이 흐른다. 무장한 2대의 지프차가 파헤쳐진 도로 위로 천천히 순찰하면서 5대의 경찰차 행렬에 길을 터주고 있다. 경찰차 행렬 뒤에는 중무장을 하고 지붕에 사수가 있는 군용차 2대가 경찰차들을 보호하며 따라가고 있다. 자메이카 경찰은 가난한 사람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영국 식민 통치자들에 의해 양성됐다. 독립된 지 반세기 이후 자메이카 경찰은 갱단들로부터 부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자들조차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갱단을 조직했다. 실제로 자메이카의 갱단들은 초기 정당들과 함께 생겨났고, 한 정당의 집회를 보호하기 위해 적이 되는 다른 정당의 집회를 공격했으며, 일부 사람들이 선거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했다. 1940년대에는 이 일에 우선 항만노조가 투입됐다. 그 뒤 몇몇 구역에서는 젊은이들로 구성된 갱단에 보수를 주기도 했다. 게다가 초기 군인들은 '표몰이꾼'(Vote Fetters)이라는 별명으로 빈민촌에 들어왔다.

하층민 먹여 살리는 '음악과 춤'

커트니는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 환경이 그의 노래 배경이다. 또한 댄스홀 음악의 배경이기도 하다. 자메이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아티스트인 빕즈 카르텔과 부주 방통은 현재 각각 살인과 마약 거래로 감옥에 갇혀 있다. 세 번째로 인기 있는 가수 자 큐어는 강간죄로 생트카트린 교도소에서 8년 동안 복역하고 출소한 이래 성공을 거두었다.

하나의 댄스홀 곡이 탄생하기까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타이틀곡 녹음, 동시녹음, 판촉이 그것이다. 한 곡을 3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녹음하는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셀블록 녹음실에서는 시간당 자메이카 달러화로 1달러(약 14유로), 터프공처럼 유명한 녹음실에서는 이보다 거의 2배가 들기 때문이다. 화음을 넣기 위해 한 명의 코러스 가수를 쓴다면? 5달러 이하로는 안 된다. 타이틀곡을 상품화해주니까 필수불가결한 단계인 동시녹음에는? 최소 5달러는 든다. 하지만 가장 힘들고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매년 자메이카에서 나오는 수많은 타이틀 곡 중 눈에 띄는 뛰어난 곡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주요 방송사에서 노래가 반드시 방송돼야 한다. 자메이카 차트나 댄스홀 음악만 다루는 두 방송사 <RE TV>나 <Hype> 차트에 올라가는 것도 필요하다. 책임자들이 뭐라 하든 여기에는 돈이 든다. 자메이카의 일류 라디오 방송사에서 석 달 동안 매일 방송되는 데만 뇌물로 5천 달러(약 460유로)가 든다. 그렇다고 모든 곡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에이전트같이 방송 진행자를 잘 아는 사람을 거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물론 비용이 추가로 들긴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돈거래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이틀 곡이 효과적으로 방송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차트에 오르는 것은 비용이 더 많이 든다. 텔레비전 방송에 접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시 돈이 들고, 비디오라도 만들게 되면 더 많은 돈이 든다. 누군가 이같은 판촉 단계에 돈 쓰기를 원한다면, 커트니 같은 젊은 사람의 1년치 임금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한 가수가 국내에서, 그리고 국외에서 인정받는 것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고, 또 비로소 자신의 음악으로 벌어먹고 살기 시작하게 된다.

댄스홀은 조금씩이나마 다음 같은 많은 자메이카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한다. 공연이 있을 때 음료수와 음식을 판매하는 상인, 버스와 택시 기사, 무용수, 안전요원, 기술자, 해적판 음반 판매자, 음반을 배달하는 사람, 행사 전 여성들이 들르는 작은 뷰티숍 점원, 콘서트와 음향 시스템 주변을 맴돌며 일하는 전문가가 그들이다. 하지만 돈은 다른 곳에 모인다. 자본이 투입된 곳 말이다. 가수 에이전트와 프로듀서, 판촉자, 투자자, 공연을 지원하는 세계 유명 기업, 외국 음반회사, 마지막으로 마약 밀매상들에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으로 음악을 통해 짜인 조직망은 마약 밀거래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피라미드 조직의 형태를 띠는 댄스홀 경제에는 국가 경제가 반영된다. 백인 하층 부르주아들과 특히 재정 분야에서 1970년대 말 새롭게 등장한 흑인 부자들에게 수익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자메이카의 독립 뒤에도 백인 하층 부르주아들에게 수익은 여전히 집중되고 있다.

자메이카 경제가 독립 이래 다양화되긴 했지만(광업, 면세 지역, 관광, 음악산업), 그 구조 자체는 거의 진화하지 않았다. 몇몇 카리브해 국가 경제학자들은 '수정된 플랜테이션 경제'(5)를 이야기한다. 농업 분야에만 의존하는 플랜테이션 경제가 아닌, 국내 부르주아들과 외국 투자자들 손에 수익이 집중되는 수정된 플랜테이션 경제에 대해서 말이다. 1961년이 되자마자 프란츠 파농이 저서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에서 예고한 것처럼, 국내 신종 부자 계층은 식민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사실상 거의 모든 곳에서 식민지 구조를 다양화하는 데 집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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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로맹 크뤼즈 Romain Cruse 경제, 경영, 모델화, 응용정보과학 연구소(Ceregmia) 소속.

번역 변광배 프랑스 인문학연구모임 '시지프' 대표. 주요 저서로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등이 있다.

(1) 문자 그대로 ‘음향효과를 위한 기자재들’을 가리킨다. 넓게는 여러 개의 스피커와 거대한 서브 우퍼를 벽처럼 쌓아올려 설치한 댄스홀 무대가 있는 전형적인 파티에서 공연하는 가수 그룹들을 가리킨다. 자메이카에서는 이런 형태의 음악 공연이 일반적인 콘서트보다 더 인기 있다.
(2) 월 최저임금은 자메이카 달러화로 20달러(약 182유로)다. 이는 2012년 7월 이래 11% 증가한 것이다.
(3)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자메이카는 3차산업에서 79% 이상의 국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비공식 경제도, 다른 나라에서 자메이카 국민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도 포함되지 않았다.
(4) 범아프리카주의를 주창하며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들이 그들 선조의 땅인 에티오피아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운동을 펼쳤다.
(5) 2009년 킹스턴 소재 웨스트인디대학 출판부에서 출판된 엘로이드 베스트와 카리 르비트 공저 <플랜테이션 경제에 대한 논고>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