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정 콩고의 평화를 바라는가?

2012-11-12     쥐앙 브랑코

지난 10월 13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열린 세계프랑스어권 정상회담 참석차, 킨샤사를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조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카빌라 대통령은 전제정치를 고수하고 있으나, 세계 외교관들은 현재 교전이 진행되는 키부 지역에서 국가 권위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그의 무능력을 비난하고 있다.

지난 8월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는 비밀을 숨기고 있는 외교관들이 가장무도회를 벌이는 연회장이 되었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대호수지역국제회의(ICGLR)(1)에 모인 조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과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1996년부터 콩고민주공화국(DRC) 북부 키부 지역을 휩쓸고 있는 위기 해결을 위해 협상을 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 2012년 봄부터 북키부 지역의 갈등은 얼마 전 정규군에 통합된 전 반군 출신 군인 수백 명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또 다른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다수 투치족으로 구성된 새로운 반군 세력 M23(전 국민방위민족회의(CNDP))은 르완다의 은밀한 지원을 받으며 시민 수천 명을 학살하고, 사라졌던 10여 개 민병대를 재등장시키며 몇 주 만에 광범위한 지역을 장악했다. 지역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ICGLR 정부 수반들은 중립국으로 구성된 국제평화유지군 창설에 대해 입장 차이를 분명히 드러냈다. 중립평화유지군 창설은 언제든 국지전으로 악화될 소지를 안고 있는 분쟁을 우려하는 유럽 및 미국 행정부를 진정시킬 목적의 눈속임에 불과했던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는 이 지역의 질서를 회복해줄 것으로 생각되는 중립평화유지군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현재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유엔평화유지군(MONUSCO)이 공격권을 가질 수 있도록 재협상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반면, 르완다는 중립국이 아닌 르완다군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처지에서는 르완다가 북키부 지방에 대해 공동 감독권을 갖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북키부 지방의 위기는 1994년 투치족 학살 이래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양국 사이 끝나지 않는 분쟁의 되풀이일 뿐이다. 카가메가 이끄는 르완다 애국전선(FPR)의 반격으로 르완다 내 후투족 수백만 명이 이웃 나라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로 피란했고, 조제프 모부투 장군의 쇠약한 자이르는 대규모 난민 유입을 통제할 방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난민들 중에는 학살에 가담한 후투족 무장단체 '후투 파워'의 지도자 다수가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무장 민병대를 구성했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르완다해방민주세력(FDLR)이다. 이 시기 대규모 난민수용소에는 온갖 무기들이 유통되면서 폭력과 굶주림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콩고의 풍부한 자원을 얻으려는 르완다와 우간다의 욕심, 자이르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더욱 위험했다. 결국 1996년 로랑 데지레 카빌라(1941∼2001)는 북키부를 장악하기 위해 후투 민병대와 전투하는 르완다애국전선과 우간다군과 손잡고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린 뒤 1997년 권력을 장악한다. 이로써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는 결별하고 제2차 콩고 내전이 발발한다.(2)

오늘날까지 르완다는 콩고의 천연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점점 약화되고 있는 후투족 무장단체들에 군사적 갑실을 제공하며 M23 같은 정치군사 조직을 지원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M23에 대항하고 자국 영토에 대한 외관상의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민병대를 이용하는 것조차 꺼리지 않는다. 그중에는 국제형사재판소가 고발한 전범 9명 중 하나인 실베스트르 무다쿠무라가 이끄는 FDLR도 포함돼 있다.

지난 4월 11일,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은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가진 보스코 은타간다를 체포하겠다고 공포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카빌라 대통령의 계산된 지그재그 행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은타간다는 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투치족 반군 국민방위민족회의(CNDP)의 전 지휘관으로, 2006년 국제형사재판소로부터 전범과 반인륜 행위로 기소됐다. 하지만 카빌라 대통령은 이런 사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2009년 3월 23일 CNDP를 정규군에 재통합하는 협상을 통해 은타간다를 콩고민주공화국군(FARDC) 장군으로 임명했다. 은타간다는 2011년 12월 수많은 항의를 받은 콩고민주공화국 선거- 주요 야당 인사인 에티엔 치세케디는 카빌라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에서 북키부와 남키부 주민들이 '훌륭한 길을 선택'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카빌라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역 주민들의 투표 과정에 온갖 종류의 협박과 폭력이 동원됐고, 이런 부정행위가 카빌라 대통령의 최종 승리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유럽연합(EU)이 2억5천만 유로를 지원한 선거가 수많은 부정행위로 오점을 남기자 출자자들은 언성을 높였고, 시민사회는 선거 기간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부패와 폭력을 규탄했다.(3)

훌륭한 처신의 증거

카빌라 대통령이 은타간다를 체포해야 하는 '100가지 이유'를 열거한 것은, 실질적으로는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잘 처신하고 있다는 증거를 국제 공동체에 과시하려는 것이다. 은타간다가 르완다의 기세니와 콩고민주공화국의 고마 등 휴양지에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유엔평화유지군 책임자들은 이후시 호텔 테니스 코트에서 은타간다를 정기적으로 마주친다고 한다. 대통령의 선언이 있자 그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마시시로 도피하는 여유를 부렸다. 그곳에서 포위된 그는 5일간의 놀라운 '휴전'을 이용해 다시 르완다로 갔고, 마찬가지로 국제형사재판소로부터 기소된 로랑 은쿤다, 예전 캠프 보좌관이었다가 이 조직의 합법적 대외 창구를 맡게 된 술타니 마켄가와 함께 5월 6일 르완다에서 M23을 창설했다.

르완다 대통령은 분쟁과 관련 없다고 부인하지만, 그는 확실하게 분쟁과 관련 있다. 르완다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키부와 이투리의 천연자원 불법 개발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FDLR를 완전히 축출할 방법을 모색하며 M23 책임자들을 접대하고 인력과 물자를 제공하는 식으로 지난 2월부터 M23의 창설을 지원했다. M23을 지원했다는 명백한 증거(4)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르완다에 대한 국제원조가 위협당하자 르완다는 우간다에서 열린 회담에서 중립평화유지군 창설을 수용함으로써 시간을 벌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속임수에 불과했다. 르완다는 미국의 비난을 잠재울 방안 역시 모색했다. 스티븐 랩 국제형사재판소 미국 대사는 르완다 지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 프랑스는 지난 8월 2일 M23과 M23을 지원하는 모든 해외 세력을 규탄했다. 그러나 1994년 대학살 이후 관계가 경색돼 있는 르완다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5) 프랑스는 '1천 개 언덕의 나라' 르완다에 대해 특별히 공격적이지 않은 외교정책을 선호하는 듯 보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모잠비크 마푸토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정상회담에 참여했고, 콩고민주공화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였지만 2005년 르완다의 가입을 거부한 바 있는 SADC는 8월 19일이 되어서야 르완다의 반군 지원을 규탄했다. 이런 뒤늦은 입장 발표는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이 아프리카민족회의(ANC)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르완다와 남아공이 화해를 시도했던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양국 관계는 2011년 7월 망명 중인 르완다 장군이 요하네스버그에서 암살되며 경색된 바 있다. SADC의 입장 발표 이후 남아공은 역사적으로 동맹관계를 맺어온 콩고를 지지하는 전통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SADC의 결정으로 아프리카에서 몇 개월 동안 상대적으로 고립돼온 카빌라 대통령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공격 노선

레이몽 치반다 콩고민주공화국 외교부 장관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사실 콩고민주공화국은 전통 우방들이 형식적으로 르완다를 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콩고민주공화국 입장에 완전히 동조하도록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대호수지역국제회의 회원국인 앙골라는 콩고민주공화국의 간절한 지원 요청을 받고도 때를 기다리는 듯 보이고, 프랑수아 보지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자국을 약탈하고 있는 차드 반군 문제로 여념이 없다. 또한 보지제 대통령은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재무부 장관이 음모에 가담한 혐의가 드러나 젊은이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재무부 장관을 경질해야 했다.

카빌라 대통령의 측근이고 '정치 난민'으로 브라자빌에 망명한 장군의 이름을 딴 '포스탱 무네네' 사건으로 콩고-브라자빌과 콩고민주공화국의 관계는 난처해졌다. 약화된 콩고민주공화국은 르완다에 인도적 압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키부 지역 분쟁을 매스컴에 호소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사실상 국제기구와 언론들은 지난 4월부터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이 지목한 적들이 저지른 비리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어, 정작 그의 측근이 연루된 수많은 부패 혐의와 선거 부정은 관심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런 전략은 분명 M23이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콩고민주공화국이 주도(州都)인 고마를 지킬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콩고민주공화국은 군사력을 재정비하고 지역 민병대들과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사이의 지역자원을 공동 관리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콩고민주공화국은 이를 모욕으로 간주하고 일괄 거부했다. 하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은 여전히 자국 영토 내 상당수 중요 지역에서 주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온갖 불법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는 키부와 이투리 지역의 천연자원은 철저하게 약탈당하고 있다. 금에서부터 주석원광, 다이아몬드, 심지어 우라늄까지 행정력은 광산 활동의 미미한 부분밖에 관리하지 못한다. 그와 병행해서, 평화협정이라는 명목으로 예전 반군 세력들이 승급한 채 정규군에 편입되면서 벌을 받지 않는 관행을 만들어냈고, 반군이 양산됐다. 폭력이야말로 경제적 재난 지역에서 살아남고 신분 상승하는, 다시 말해 국가의 운명을 만들어나가는 최선의 방법이 되었다. 이런 순환 과정을 끊어보려는 유일한 희망이 국제 정의라는 것인데, 그것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현재로서는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아프리카연합 집행위원장에 장 핑 가봉 대통령 후임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은코사자나 주마가 선출된 이후 아프리카연합은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해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과 국제형사재판소의 관계는 처음부터 대립관계에 있었고, 국제형사재판소가 인종학살 혐의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아프리카연합은 앞으로 카다피를 기소할 예정인 국제형사재판소에 협조하지 말 것을 회원국들에 지시했다. 이는 지나친 인맥정치 네트워크로 귀착되곤 하는 아프리카 다국주의의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에서 인간개발지수(HDI)가 가장 낮은 국가인 콩고민주공화국은 지난 시대 제국주의 열강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것처럼 지역 세력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다시 한번 출구를 알 수 없는 폭력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분쟁으로 1997년 이래 300만∼1천만 명의 사람이 희생됐고, 지난 5월부터 계속되는 사건들로 5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데다 세계의사협회에 따르면 '성폭행 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한다. 8월부터 세 차례 진행된 대호수지역국제회의 정상회담이 별 진척을 이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종폭력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지역의 중심 인물들은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합의점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 주민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관심한 것이다.

*

글 쥐앙 브랑코 Juan Branco 전 국제형사재판소 검찰특별보좌관

번역 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1) 2000년 유엔과 아프리카연합이 창설한 대호수지역국제회의(ICGLR)는 부룬디 수도 부줌부라에서 열리는 중요한 아프리카 대호수지역 외교 포럼이다. 앙골라, 부룬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 콩고민주공화국, 케냐, 우간다, 르완다, 수단, 탄자니아, 잠비아의 11개국이 참여한다.
(2) 1차 콩고 내전은 1996년 시작해서 1997년 모부투 대통령의 하야로 끝난다. 모부투 대통령 후임으로 로랑 카빌라가 취임하고 국명을 자이르에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바꾼다. 2차 콩고 내전(1998∼2002)에는 8개국이 관여해 콩고민주공화국·앙골라·나미비아·짐바브웨·차드가 한 편, 르완다·우간다·부룬디가 한 편이 되었다.
(3) Tristan Coloma, ‘콩고, 농촌사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2월호 참조.
(4) 유엔안전보장이사회, 2012년 6월 27일자 콩고민주공화국 전문가 임시보고서 S/2012/348 부록, www.un.org/ga/search/view_doc.asp?symbol=S/2312/348/Add.1.
(5) 지난 2월 르완다 정부가 엘렌 르 갈 대사에 대한 신임장을 거부한 이래 프랑스는 르완다에 대사를 파견하지 않고 있다. 그사이 엘렌 르 갈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아프리카 고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