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숙의 문화톡톡] 다큐멘터리영화 <비념> ― 제주43사건, 공권력의 집단살해와 애도의 부재
1. 서론: 제주43사건의 주민희생과 <비념>
<비념>(임흥순, 2013)은 제주 43사건에 대한 제주 주민의 증언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영화이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기점으로 시작되며, 경찰,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1]
수많은 주민이 희생되는 집단살해사건이다. 이 영화는 강상희 할머니의 삶에서 시작해서 강상희 할머니의 삶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강상희 할머니의 삶을 중심으로 제주43사건을 성찰한다. 카메라는 제주도의 납읍리, 가시리, 강정마을과 일본 오사카 등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며 제주43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애월읍 납읍리에 사는 강상희 할머니를 비롯해 제주도의 가시리, 강정마을과 일본 오사카의 43사건의 생존자와 관련자의 증언을 듣는다. 이 영화는 이러한 증언을 통해 밝혀지는 끔찍한 집단살해의 진실은 무엇인가?
2. 애월읍 납읍리: 무장대의 죽음과 가족의 연쇄 죽음
<비념>에서 애월읍 납읍리는 제주43사건으로 인한 무장대의 억울한 죽음뿐만이 아니라 무장대 가족의 연쇄 죽음으로 이어지는 사건, 비극적인 죽음의 연쇄작용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애월읍 납읍리의 강상희, 김봉진, 오국만, 애월읍 상가리의 강상문 귀약풀이, 표선해변, 가시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며, 1948년 12월 표선해변 토산리 주민 157명이 희생되는 사건을 말한다.
애월읍 납읍리에 살고 있는 강상희 할머니는 1946년 납읍리로 시집을 왔고 남편 김봉수를 제주43사건으로 잃은 인물로서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다. 이 영화는 고인이 된 강상문 할아버지의 귀약풀이(제주 무속의례)에서 시작하며, 강상문 할아버지는 강상희 할머니의 오빠이다. 고인 김봉수의 어머니는 8남매를 낳았으나 딸 3명이 죽어 큰아들 김봉수에게 특히 정을 많이 느껴, 일본으로 가겠다는 김봉수의 요청을 거절하고 결혼시키고 손주를 보고싶어 했으나, 김봉수의 죽음으로 절망해 밥도 안 먹고 울다가 돌아가시게 된다.
강상희 할머니의 딸 김순자와 손녀 김민경은 비석이 없는 고인 김봉수의 무덤을 찾기 위해 헤매다가 겨우 찾게 된다. 제주도 풍습에서 벌초는 남자들의 전유물이기에 여자는 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성차별의 잔재를 느끼게 만든다. 무장대인 김봉수의 가족은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상황, 말을 꺼내면 위험한 상황, 도피자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희생당하는 상황에서 ‘폭도새끼’라고 불리면서 침묵을 강요당했다. 제주43사건은 무장대뿐만 아니라 무고한 무장대 가족까지 학살함으로써 억울한 죽음, 죽음의 연쇄작용을 보여준다.
<비념>의 전반부 스타일은 핸드헬드, 트래킹, 교차편집, 분절된 영상을 통해 과거의 집단살해·불안·죽음과 현재의 트라우마·회한·삶을 대비시킨다. 오국만이 하소연할 수 없고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 도피자 가족으로 희생당하는 상황에 대해 진술하는 장면은 흔들리는 카메라, 핸드헬드, 인물의 뒷모습, 영상과 목소리 뒤에 나타나는 인물의 얼굴 등을 통해서 과거의 불안과 현재의 회한을 표현한다. 표선해변에서 아이들이 노는 장면은 1948년 12월 토산리 주민 157명이 희생되었다는 자막,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카메라, 트래킹과 핸드헬드의 결합하여 과거의 죽음과 현재의 삶을 대비시킨다. 여성들이 댄스스포츠를 추는 장면과 남성이 눈이 쌓인 산길을 걷는 장면은 교차편집과 분절된 영상을 통해 현재 자유의 즐거움과 과거의 을씨년스러운 역사의 상흔을 대비시킨다. 가시리 본향당(마을 신을 모시는 곳)에서 비가 떨어지는 장면은 비가 떨어지는 바위와 숲, 물에 비치는 나무 등 마치 실험영화처럼 분절된 영상, 영상/사운드의 분리를 통해서 과거의 집단살해와 현재의 트라우마를 표현한다.
3. 용담리와 강정마을: 무장대 총사령관의 십자형과 폭력의 확산
<비념>에서 제주43사건은 무장대 총사령관을 죽이고 시체를 십자형 틀에 매달려 전시하는 치욕을 안겨주고 무고한 가족까지도 학살한 잔인성을 드러냄으로써 죽음의 확산, 폭력의 확산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중반부는 일본 오사카의 제주도 할머니들, 제주도의 김성주, 이덕구 총사령관, 제주국제공항, 강정마을의 김정민에 대한 증언을 들려주고, 제주국제공항이 있는 용담리에서 1949년 10월 민간인 수용자 249명이 희생된 사건을 말한다.
일본 오사카로 피난 간 제주도 할머니들은 일본에서 한국말을 하면 멸시당해서 한국말을 하지 않아 한국말을 잊어버렸고, 고향이 타향이 되고 타향이 고향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할머니들은 집단살해를 피하기 위해 오사카로 왔기 때문에 한국, 특히 제주도에 대한 원한, 두려움, 거부감을 표출하고, 타국에 살면서도 계속 고국의 집단학술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김성주는 1949년 무장대와 함께 어머니 등에 업혀 입산하였고, 친가와 외가 모두 제주43사건으로 희생당하였고, 양식이 없어 친척집에 구걸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진다. 무장대와 무장대 가족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토벌대에 걸리거나 첩자에게 들통나거나 총격전에 희생당하는 등 1949년 9월에서 1950년 3월 사이에서 거의 죽어 나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무장대와 토벌대가 서로 무장해제하고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양쪽 모두 무장한 채로 만나 총격전이 벌어져 집단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덕구 산전은 무장대 2대 총사령관이었던 이덕구를 중심으로 1949년 봄부터 이덕구 부대가 주둔하며 토벌대(군인, 경찰, 서북청년회)와 최후의 항전을 벌인 곳이다. 이덕구는 조천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 입산해 약 2년 동안 무장대 활동을 했다. 1949년 6월 경찰과 교전 중 최후를 맞았고 시신은 관덕정 광장에서 십자형 틀에 매달려 전시되었다. 이덕구 일가족 대부분 토벌대에 의해 희생되었으며 조카 이복숙만이 우여곡절 끝에 일본 오사카로 밀항하여 생명을 유지했다.
강정마을의 김정민은 과거 많은 사람들이 구럼비 바위에서 헤엄을 치다가 물이 빠져 돌에 부딪혀 죽은 사건을 말하고, 현재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립하려는 정부의 시책으로 마을이 붕괴되는 것에 분노한다. 과거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서 죽은 43사건 피해자의 유족들은 현재 해군기지 건립에 의해서 마을이 붕괴되는 상황에 처한다는 점에서, 공권력은 과거 양민 학살과 현재 마을 붕괴에서 폭력의 가해자임이 밝혀진다.
<비념>의 중반부 스타일은 클로즈업과 익스트림클로즈업, 핸드헬드와 굿소리, 흑백영상과 리버스 화면을 통해 충격과 트라우마, 힘겨운 과거, 폭력과 공포를 표현한다. 오사카의 제주도 할머니들이 말하는 장면은 할머니들의 클로즈업과 입의 익스트림클로즈업을 통해서 과거의 충격으로 현재도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할머니들에게 감정이입한다. 오사카의 용왕궁을 보여주는 장면은 용왕궁의 여기저기를 훑는 핸드헬드와 남성 무당의 ‘밥이 없어 밥을 줍서 옷이 없어 옷을 줍서’의 대사와 결합하여 힘겨운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무장한 경찰들과 미군들이 주민들에게 총을 쏘는 장면은 흑백 영상, 거꾸로 돌리는 리버스 화면, 기괴한 음악소리가 합해져 과거 공권력의 폭력과 집단살해의 충격으로 인한 공포를 표현한다.
4. 가시리 고야언덕과 화북동: 공권력의 오판과 과도한 학살로 인한 집단살해
<비념>에서 고야언덕과 강정마을은 공권력의 오판과 과도한 학살로 인한 주민에 대한 집단 희생이 이루어진 공간이며, 억울한 죽음, 무고한 희생, 공권력의 횡포와 애도의 부재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오사카의 강명자(가명), 놀이패 한라산, 극단 항로와 제주도의 세화리 다랑쉬 오름, 화북동의 김봉수, 강정마을의 고인 강상문, 43연구소의 김은희, 납읍리의 강상희, 가시리 고야언덕의 한신화의 증언을 들려주며, 1948년 12월 22일 가시리 고야언덕에서 주민 500명이 희생된 사건, 강정마을에서 197명의 주민이 희생된 사건을 들려준다.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는 강명자(가명)는 제주43사건 때 젊은 사람들이 죽창으로 다 죽은 일을 말하며, 한국이 제일 사람이 못 사는 곳이며 제일 나쁜 곳이라고 말한다. 오사카에 거주하는 제주도 할머니들은 과거 집단살해로 인한 트라우마를 현재에도 겪으며, 한국, 특히 제주도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43사건을 다루는 극단 항로의 공연은 재일동포 3세인 김철의와 김민수의 2인 공연이며, 한국어와 일본어를 함께 사용하고 의상, 대사, 무대화에서 독특한 연출을 보여주지만, 남한국적과 북한국적을 거부한 조선적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한국 입국을 거부당한다.
강상희의 오빠인 고인 강상문은 제주도가 반공사상이 강해서 공산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무부 장관이 계엄령을 내리고 송요찬 계엄사령관이 군인에게 학살을 지시하면서 43사건의 집단살해가 벌어졌다며 분노한다. 강상희의 남편인 고인 김봉수는 1928년 애월읍 납읍에서 태어나 노형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48년 12월 29일 조작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49년 2월 제주시 화북에서 집단 총살되었다. 6개월 후 시신 수습이 허락되자 시신의 주머니에 있는 목도장으로 확인되어 아버지와 동생이 끄는 수레에 실려 자신이 태어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시리의 한신화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고야언덕의 대규모 주민 희생으로 도피하였고, 그 결과로 벌어진 과거 고아원에 떼어놓은 아이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 자녀의 죽음 등 가족의 죽음에 슬퍼한다.
<비념>의 후반부 스타일은 흑백 사진의 교차편집, 자막과 영상의 대비, 영상(전)과 인물(후), 익스트림롱숏을 통해 끔찍한 현장의 재연, 죽음/삶의 대비, 집단 역사와 개인 비극, 억울한 희생과 애도의 부재를 표현한다. 경찰들이 주민들에게 총을 쏘는 장면은 흑백 사진, 군인들의 사진, 양민에게 총을 겨누는 경찰들의 사진, 나무에 묶여 총을 맞고 죽는 주민들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사물놀이패의 “발사!”라는 말의 반복을 함께 들려줘 과거의 끔찍한 집단살해의 현장을 재연한다. 천지연 폭포 장면은 천지연 폭포. 청제연폭포, 정방폭포가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장소라는 자막과 천지연 폭포에서 웃으면 단체사진을 찍는 학생들을 보여주면서 과거의 끔찍한 죽음과 현재의 편안한 삶을 대비시킨다. 한신화 할머니가 가족의 죽음을 말하는 장면은 가시리의 눈 덮힌 무덤 영상을 먼저 보여주고 다음에 말하는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집단의 역사에서 개인의 비극으로 좁혀 들어간다. 고야언덕에서 사람들이 올라가는 장면은 1948년 12월 22일 마을주민 500여명이 집단 희생되었다는 자막과 사람들이 고야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을 담은 익스트림롱숏으로 공권력의 횡포, 억울한 희생, 애도의 부재를 표현한다.
5. <비념>: 목소리를 잃어버린 세상, 애도의 부재와 끝나지 않는 의문
<비념>은 공권력의 집단살해, 목소리를 잃어버린 세상과 애도의 부재를 드러낸다. 제주43사건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집단살해의 시초가 공권력의 발포사건이라는 것이고, 주민은 이러한 탄압과 학살에 대해 저항하여 무고한 죽음을 당했다는 점에서 공권력에 의한 집단살해 사건이라는 것이다. 제주도 화북동은 이 영화의 중심인물인 강상희 할머니의 남편 김봉수 외 38명이 과거 희생된 장소이면서 현재 올레 18코스이다. 이 영화는 과거 주요한 주민희생의 장소가 현재 올레코스라는 사실을 계속 밝힌다. 현재 제주도의 아름다운 문화관광 요소인 올레길이 과거 억울하게 숨진 주민들의 혼이 묻힌 곳이라는 사실은 새삼 섬뜩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는 고인 강상문의 귀약풀이(제주 무속의례) 장면으로 시작해서 끝난다. ‘비념’은 제주도에서 행하는 무속 의례로, '작은 규모의 굿'을 뜻하고 '비나리'라고도 불리며, '빌고 바란다'는 뜻의 '기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이 영화의 ‘비념’은 1차적으로 계속해서 굿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작은 규모의 굿을 의미하고, 2차적으로 억울하게 죽은 집단살해의 희생자의 원혼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이다. 제주43사건은 부당한 살해, 억울한 죽음이 일어났지만 말할 수 없어 침묵해야 하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린 세상, 애도의 부재를 드러낸다. 무당이 읊조리는 “나는 간다. 아이고, 고생만 하고. ······ 마음 편하게들 가지고. 모두 모두 고생하였어.”는 고인뿐만 아니라 집단살해의 주민들 모두를 애도하는 진혼곡이다.
참고문헌
[1]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536쪽.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비념> 포토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현재 청주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학문후속세대양성위원회 위원장,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