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에 구걸하는 윤석열과 마크롱의 ‘닮은꼴’ 정치
뭐든지 손을 대면 일이 꼬이는 ‘마이너스 손’, 사상 최저치의 지지율, 빈번한 공권력 의존과 돌발적인 비상계엄, 그리고 구치소행…. 지구 반대편에서 아직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마크롱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윤석열의 ‘다이내믹한 종말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를 떠올려본다. 두 사람은 닮지 않은 듯 닮은 듯 여러모로 흡사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진 강력한 중앙집권제의 나라에서 “짐이 곧 국가”라는 기분으로 ‘왕 노릇’하다가 국민의 외면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선, 권좌에 오르기까지 성공 가도를 달린 두 사람은 자신을 요직에 임명한 진보좌파 정권의 뒤통수를 치고 뛰쳐나가, 진보-보수, 좌-우가 아니라 오로지 국가만을 생각한다는 제3의 정치를 주창하며 자신을 대선 후보로 만들어준 우파 보수당까지도 궤멸시킨 뒤 극우로 돌아선 과정이 희한하게 비슷하다. 좋게 말하면 ‘영광의 검투사’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돌아선 ‘배신의 화신’이다.
3년 전, TV 대선토론 때마다 손바닥에 굵은 펜으로 임금왕(王)를 쓰고 나온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진짜 왕으로 군림(?)했다. 아무런 논의나 토론도 없이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붙어있는 경복궁 뒤편의 청와대를 떠나,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관저를 한남동으로 옮긴 뒤 수많은 무리수를 두었다.
아침 저녁으로 경찰들은 그의 출퇴근 차량을 안내했고, 가끔씩 그가 술기운에 제때 출근을 못하면 마치 진짜 출근하는 것처럼 빈 차를 호위해야 했다. 2022년 10월,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로 160여명이 참사를 당한 것은 그의 호위에 바쁜 경찰이 당시 할로윈 축제행사의 10만 명 인파를 통제할 여력이 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다.
재직 2년 6개월, 그는 자신이 26년 동안 재직했던 검찰의 후배들을 동원해 오로지 정적과 그의 가족을 괴롭히는 데 몰두했고, 한미일 안보동맹이라는 미명 아래 남북관계를 파탄냈으며, 미국을 대신하여 중국을 악마화하고, 숭미친일 굴종외교로 미국과 일본을 즐겁게 했다.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진실화해위원회, 인권위원회 등 국가기관에 노골적인 친일 사관을 드러낸 ‘불량품’ 인사들을 기용했고 심지어, 그의 휘하에 있던 육군사관학교장은 교정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 등 독립투사들의 동상을 끌어 내리기까지 했다.
윤석열은 집권기간 내내 측근들의 죄를 눈감아주고, 의인들에 대해서는 괴롭히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악행을 저질렀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의 경찰 이첩 보류 명령을 따르지 않는 혐의 등으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을 기소(최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시대착오적인 국방부 검찰단은 군사법원에 항소를 제기했다)하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재임기간은 국민에게 “자고나니 후진국”이라는 웃픈 농담이 나올 정도로 자존감 상실의 나날이었다. 그런 그가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반란의 수괴 혐의로 감옥살이를 할 운명이지만 당당하다. 지지자들에게 메시지를 통해 다시 돌아와서 정권 재창출에 노력해 미완의 자유민주주의를 완성시킬 것을 약속했다. 그런 그를 과대망상자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앞세운 극우 시위대가 그의 ‘부활’을 외치고 있고, 졸지에 그의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긋는다.
지구 반대편의 프랑스에서는 지난 7개월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잇단 선거 패배를 무시하고, 권력 유지를 위해 우파부터 중도좌파까지 아우르는 ‘제3세력’ 연합으로 정국의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사상 최저치의 지지율로 유럽의회 선거와 총선에서 연이어 패배한 그는 소수당 전락 이후 자신이 내세운 후보의 총리 임명시도가 무산되자 2017년 대선에서 자신의 당선을 결정적으로 도왔던 정치인 프랑수아 바이루의 총리임명을 강행했다.
바이루는 이후 국민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던 정년 연장안을 비롯한 무리한 정책 변화에 동조해 온 인물이다. 프랑스에서 대통령의 집권당이 총선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야당에 총리직을 내주고, 내각 구성권을 양보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그는 고집을 부렸다. 과거 미테랑 좌파 대통령은 총선 패배 후 우파 시라크를, 시라크 우파 대통령은 좌파 조스팽을 총리로 임명하고, 내각구성권을 넘긴 적이 있다.
집권당은 소수당으로 전락했으나 국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동거정부(Cohabitation) 덕택이었다. 이는 프랑스가 대통령제이지만 선거의 민심을 적극 반영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이원집정부제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크롱은 그러한 선례를 무시했다. 다수당인 좌파연합의 동거정부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야당이 탄핵할 줄 알면서도 자신의 고집대로 총리 임명을 강행했고, 좌파연합은 또 한차례 총리 불신임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정국 불안정의 가장 큰 원인은 마크롱의 불통과 아집이다. 마크롱은 자신의 국정 비전에 비협조적인 좌파 연합에 맞서, 극우와 중도좌파 사이를 오가며 사탕발림을 하고 있다. 극우를 설득할 때는 안보법이나 반이민법을 미끼로 삼고, 중도좌파를 대상으로는 비례대표제 도입을 약속하거나 국회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법률 조항을 제안한다.
프랑스 연금 개혁이 바로 이 조항을 이용해 강행된 대표적인 사례다. 낮은 지지율만 보면, 영국이나 독일 같은 의원내각제에서는 당장에 물러나야겠지만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제라는 보호막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월호는 탄핵 이후 윤석열과 파국 직전의 마크롱의 닮은꼴 운명을 진단한다. 프랑스와 한국 정치의 첫 번째 과제는 어떻게 극우 정치를 극복하느냐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