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가 노리는 것

2025-01-31     마이클 클레어 | 매사추세츠 햄프셔대학 교수

도널드 트럼프는 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제공하기로 한 결정을 비난하며, 이 사안에서 전임자의 우선순위와 결별하려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계 다른 지역들에게 ‘미국 우선주의’는 자국의 양보를 강요받고, 이념이나 동맹 관계와 상관없이 ‘딜’을 강요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25년 1월 20일부터 이끌어 가는 세계 질서는 바이든이 임기를 마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전임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외교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그의 정책 기조는 미국과 세계와의 관계를 크게 바꿔놓을 전망이다.

바이든과 그의 참모진은 세계를 거대한 체스판으로 바라봤다. 분쟁 지역에서 지정학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우방과 적대 세력이 대립하는 구도였다. 반면 트럼프는 세계를 부동산과 시장, 자원 같은 귀중한 자산을 두고 여러 경쟁자가 다투는 모노폴리 게임판(‘독점’이란 이름이 붙은 보드게임-역주)으로 본다.

바이든 시대에는 이념이 최우선이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존중’, ‘서구적 가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외교 정책은 경제적, 전략적 이익을 무조건 추구하는 도구일 뿐이다.

 

트럼프 외교정책의 네 가지 핵심

트럼프의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지난해 11월 6일 소셜 네트워크 X에 글을 올려 차기 대통령의 세계관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지금 세계정세에서 미국의 책임 있는 외교는 이상주의적 망상이 아닌, 미국의 핵심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적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루비오가 말하는 ‘핵심 이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와 트럼프가 이를 서로 다르게, 때로는 상반되게 언급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 가지 기본 원칙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세계 패권 유지, 중국 견제, 동맹 관계의 유연화, 자원 확보가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기 행정부가 추구할 외교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외교·군사 정책의 주된 목표는 당연히 세계 패권 유지였다. 1992년 미 국방부는 나중에 <뉴욕타임스>가 공개한 기밀문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새로운 경쟁자의 재등장을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적대 세력이 세계적 강대국이 될 만한 자원이 있는 지역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면 그들도 세계적 강대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1)

 

바이든과는 다른 미국 우선주의

이 문서는 당시 국방부 차관이었던 폴 월포위츠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개되자마자 미국 관리들은 앞다퉈 그 내용을 비난했고 이후 누구도 이런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 측근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즉,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 지위로 지속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월포위츠가 이런 입장을 밝힐 당시만 해도 미국은 잠재적 경쟁국들에 훨씬 앞서 있었다. 중국은 아직 경제 강국으로 떠오르기 전이었고, 러시아는 군사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인도처럼 잠재력을 가진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지위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과 이들 나라들의 힘의 차이는 점점 좁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은 미국과 같은 뜻을 가진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려 했고, 이러한 동맹 관계가 모든 참여국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런 접근에 고개를 돌렸다. 바이든식 접근이 오히려 미국의 약점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면 우방국들과의 동맹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트럼프 첫 임기 때의 신보수주의자들이 아닌, 루비오나 부통령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같이 트럼프의 새로운 ‘미국 우선주의’를 맹신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 정책을 이끌어갈 것이다.

 

트럼프, “관세야말로 인류가 발명한 것 중 가장 훌륭해”

트럼프 진영은 세계적 우위를 지키려면 경제력 회복이 필수라고 본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주요 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 미국 경제가 쇠퇴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높은 관세를 매겨 수입을 줄이면 미국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NATO 회원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의 제품에도 적용된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 “관세야말로 인류가 발명한 것 중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월포위츠가 잠재적 경쟁자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당시만 해도 세계 강대국이 될 만한 나라는 없었지만 이제 중국이 그 자리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는 첫 임기부터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외교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워싱턴은 세계 최강대국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첨단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중국이 미국의 기술 혁신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며, 서태평양 지역의 미국 군사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미국은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중국 견제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하겠지만, 이들이 예전처럼 미국의 무조건적인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오히려 자국 방어를 위해 더 많은 국방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2)

 

트럼프, 분쟁 지역에 대가 요구

이러한 기조는 대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2022년 8월, 도발적인 대만 방문으로 중국의 대규모 해공군 무력 시위를 촉발했던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이나, 마르코 루비오, 그리고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월츠 같은 의회 내 ‘대중 강경파’들은 대만이 중국의 침공 가능성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미국 정책의 핵심이라고 본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해 7월 16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이 우리의 방어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맹 관계를 약화시키려는 이런 기조는 우크라이나와 NATO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트럼프와 밴스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만 미국이 군사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이는 자칫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의 최소 20%를 러시아에 내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측은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이 자국 방어에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지원을 대폭 줄이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나토 회원국들의 GDP 3% 수준으로의 국방비 증액 목표는 2023년 2,380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한 미국 군수업체들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전망이다.(3)

트럼프 측근들은 이와 같은 요구를 하면서 유럽 방위보다는 중국 세력 견제가 더 중요한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첫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냈으며 차기 정부의 자문위원으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는 “미국이 모든 곳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더 위험하고 심각한 위협”이라며 “유럽에서 러시아 견제를 위해 그만큼의 군사력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4)

 

석유 등 필수자원 확보에 전력

트럼프 외교 정책의 또 다른 핵심은 필수자원을 확보하고 생산하는 데 있다. 그는 화석 연료 시대를 이어가면서 미국의 경제와 기술 발전에 꼭 필요한 부품과 원자재를 확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재생 에너지 정책을 폐지하고 미국 내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늘리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이미 에너지 자급자족을 달성했음에도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페르시아만 산유국 등 다른 석유·가스 생산국 지도자들과 가까운 관계를 과시해 왔다. 첫 임기 때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과 친밀한 관계를 쌓았고, 이후 그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포함한 가족들은 이 지역에서 큰 수익이 기대되는 사업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5)

이란에 대한 공동의 반감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이 관계는 화석 연료의 입지를 유지하려는 공통된 의지도 보여준다. 사우디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에서, 특히 최근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당사국 총회(COP29)에서도 화석 연료 사용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끊임없이 저항해왔다. 트럼프는 자신이 취임하는 날 즉시 미국을 이 협약에서 탈퇴시키겠다고 공언했다.(6)

 

이익 셈법에 따라 움직이는 트럼프 정책

이러한 태도 때문에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같은 다른 주요 석유·가스 생산국들과 타협을 모색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는 계속 적대적이었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는 애매한 태도를 보여왔지만, 이들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새 행정부가 제안한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협정이 성사된다면, 미국은 2022년부터 러시아 석유·가스 산업에 부과해 온 제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국 기업들은 다시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란과 새로운 핵 협정이 맺어지면 이란의 유전과 가스전 개발이 재개되면서 화석 연료의 입지가 더욱 커질 것이다. 한편 공화당 후보의 주요 후원자인 해리 서전트 3세는 베네수엘라 제재 해제를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미국 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7)

이런 조치들은 이란에 맞서는 이스라엘을 돕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이나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제재하려는 그의 의지와 상충되기 때문에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석유 생산국들과의 거래를 선호하는 트럼프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트럼프는 컴퓨터, 전기차 배터리, 항공우주 장비 등 첨단기술 산업에 필수적인 코발트, 리튬, 희토류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일론 머스크와 피터 틸을 비롯해 그의 측근 조언자들과 긴밀하게 연관된 산업이다. 이러한 원자재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채굴되거나 정제되고, 중국 기업이 소유한 아프리카와 남미 광산에서 생산된다. 

이 때문에 미국 내 광물 생산 확대가 우선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광물 매장량은 다른 지역에 비해 순도나 규모 면에서 떨어지고, 새로운 광산 개발은 환경 문제로 인해 비용이 많이 들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칠레, 페루, 콩고민주공화국처럼 풍부한 광물 자원을 가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쟁 개입을 꺼리는 미국, 그러나 충돌위험도

트럼프의 기본 노선은 여러 면에서 군사적 개입을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려 하지만 이를 위해 군사력보다는 경제와 기술적 수단을 활용하려 한다. 잠재적 적국을 상대로 군사력을 과시할 수는 있지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끝없는 전쟁’에 미국이 휘말리는 것은 피하려 한다. 석유 생산국들과 관계를 강화하려는 그의 의도대로라면 이란, 베네수엘라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고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지키려는 그의 의도는 잘못된 판단으로 전쟁을 부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해외 주요 광물 자원을 확보하려는 시도 역시 현지 세력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와 충돌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상반된 경향 중 어느 쪽이 우세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트럼프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전임 대통령들의 연설에 단골로 등장했던 ‘규칙 준수’, ‘민주주의 발전’, ‘인권 보호’ 같은 ‘이상주의적 환상’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선언들도 실제로는 한계가 많았다. 특히 바이든 임기 마지막 해에 팔레스타인이 겪은 뼈아픈 경험이 이를 잘 말해준다. 

 

 

글·마이클 클레어  Michael Klare
매사추세츠 햄프셔대학 교수. 『기후변화에 대한 펜타곤의 시각, 모든 지옥이 열리다』(메트로폴리탄북스, 뉴욕, 2019) 저자

번역·박명수


(1) 「국방 계획 지침 초안 발췌」, www.pbs.org; 폴 마리 드 라 고르스, 「워싱턴과 세계 지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2년 4월호 참조.
(2) 줄리언 E. 반스, 헬렌 쿠퍼, 앤드류 E. 크레이머, 에릭 슈미트, 「트럼프의 전쟁 종식 약속으로 우크라이나의 선택지 줄어들 수 있어」, <뉴욕타임스>, 2024년 11월 21일.
(3) 마이크 스톤, 「2023 회계연도 미국 무기 수출 사상 최고치 기록」, <로이터>, 2024년 1월 29일.
(4) 마이클 허시, 「트럼프의 나토 계획 윤곽 드러나」, <폴리티코>, 2024년 7월 2일에서 인용.
(5) 이브라힘 와르드, 「트럼프와 비즈니스의 기술」, <분열된 제국, 미국> 특집호, <마니에르 드 부아르> 프랑스어판 제197호, 2024년 10~11월호 참조.
(6) 리사 프리드먼, 「글로벌 기후협상에서 망치 역할을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뉴욕타임스>, 2024년 11월 18일.
(7) 패트리샤 가립, 케잘 비야스, 「더 많은 석유와 더 적은 이민자, 트럼프에게 베네수엘라와의 거래를 촉구하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 2024년 11월 28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