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영국은 떠나라! “100년이면 충분했다!”

영국군 철수를 요구하는 케냐 원주민들

2025-01-31     장크리스토프 세르방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2022년 9월13일 취임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케냐 언론은 1956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재위 당시 피로 물들었던 마우마우 봉기의 진압을 잊지 않고 상기시켰다. 해외 최대 규모의 영국군 주둔으로 얻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에도 불구하고, 케냐에서의 영국군의 권력 남용은 이제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2022년 3월 10일 케냐 나이로비. “역사적인 결정이다”이라는 문장이 케냐 일간지 <더 네이션>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1)  난유키 환경·토지 지방법원의 안토니나 코시 보르 판사는 롤다이가 지역 영세농 수천 명이 케냐 주둔 영국군 육군훈련지원부대(바툭・Batuk)의 훈련으로 토지가 훼손됐다며 제기한 소송을 받아들인다고 선고한 것이다.

1964년부터 케냐에서 활동해온 바툭은 매년 최대 4,000명의 영국 보병을 훈련시켜 왔으며, 케냐와 영국 간에 체결된 5년 단위 국방협정이 2016년 갱신될 때까지 오랫동안 외교적 면책특권을 누려왔다.

지금까지 바툭은 법적 문제에서 보호를 받아왔지만 이제 ‘소송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다. 라이키피아 카운티(케냐에는 총 47개 카운티가 있음)에 속한 롤다이가 주민들의 투쟁은 옛 식민지 열강의 군대에 맞선 오랜 저항의 최신 사례이다.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조모 케냐타가 집권하던 당시, 바툭은 케냐 북부에서 첫 훈련을 실시했고, 그 이후 대영제국의 식민지(1920~1963)였던 케냐 국민에게 수많은 미해결 사건과 가슴 속 응어리를 남겼다.

아프리카의 21개국이 영연방에 속해 있는 가운데, 케냐는 영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브렉시트 이후 보리스 존슨이 추진한 ‘글로벌 브리튼’ 전략의 실험장이 되었다. 유럽연합과 동아프리카경제공동체 간의 협정에 이어 2020년 12월에는 영국과 케냐 간 양자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 따라 모든 케냐산 제품(차, 원예작물, 채소 등)은 영국 시장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은 케냐의 채소 수출량 중 43%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더 시티’(영국 중앙은행과 전 세계 주요 금융회사가 집결되어 있는 런던 특별행정구역-역주)의 금융계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를 언젠가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필적할 만한 지역 금융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원조를 하고 있다.(2) 영국의 새로운 외교 정책에 따라 군사 협력에도 변화가 있었다. 2021년 7월에 체결된 새로운 5년 방위 협정의 일환으로 바툭은 ‘자연에 대한 존중과 밀렵과 테러와의 전쟁에 대비한 케냐 방위군의 훈련’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10년 전부터 이슬람 무장세력인 셰바브(shebab)가 테러를 일삼고 있는 케냐에서 꼭 필요한 임무였다. 다수의 영국군 및 외교 소식통에 의하면 해당 협정문은 케냐의 동의하에 외국 군대가 군사 훈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다자간 트랙을 포함하고 있다.

이미 네덜란드 고위 관료들이 바툭을 방문했다. 앞으로 케냐에서 나토군이 훈련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한편, 케냐는 중앙아프리카의 광물자원을 실은 중국행 선박들이 오가는 인도양의 여러 항구들을 보유하고 있어, 서방과 중국 간의 경제 전쟁에서도 전략적 요충지가 되고 있다.

 

봉기가 일어났던 숲, 이제는 영국군 ‘바툭’ 냐티 캠프

나이로비에서 210km 떨어진 리프트 밸리의 메마른 북쪽 지역으로 이어지는 중앙고원 지대에서 영국군은 넥타이를 벗고 모래색 위장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식민지 시대에 케냐산 기슭에 자리 잡은 난유키는 북부 감시를 담당했던 아프리카 영국군(King’s African Rifles)의 주둔지였으며, 유명한 백인 사냥꾼들이 선호하던 영국령 아프리카의 요새로 명성을 떨쳤다.

1950년대, 난유키는 눈 덮인 산맥의 숲과 동굴에서 일어난 마우마우 봉기 진압을 위한 군사작전의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현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숲과 동굴이다).(3) 2021년 1월, 4만 명이 거주하는 이 도시 입구에 바툭의 새로운 본부인 냐티 캠프가 문을 열었다.

영국 정부는 케냐 공군으로부터 부지를 임대해 약 7,000만 파운드의 예산을 들여 냐티 캠프를 건설했다. 이 캠프에는 영국군 최대 규모의 차고(천 대 이상의 차량 수용 가능)가 있으며, 528명의 상주 인력(군인 280명 포함)과 581명의 케냐인을 고용하고 있다.

‘폭풍 속의 병사들’이란 뜻의 ‘아스카리 스톰’(Askari, 동아프리카에서 군인 또는 경찰을 의미하는 스와힐리어-역자 주)이라 불리는 바툭의 훈련은 연 2회 실시된다. 4개월간 진행되는 이 훈련에는 영국에서 파견된 약 2,000명의 보병이 참여하며 1,500명의 케냐인 임시 근로자들이 동원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며칠 후인 2022년 3월에 실시된 ‘아스카리 스톰’에서는 “적대 국가의 하이브리드 공격(복합적인 침공. 재래식 전쟁 외에도 사이버전, 경제전, 심리전 등 다양한 전술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전의 특성을 의미-역주) 이후, ‘동맹국의 요청에 따른 군사력 배치’를 가정한 시나리오가 진행되었다.

 

케냐 바툭 기지, 이라크에 파견된 영국군의 훈련장소

바툭의 첫 군사 훈련은 60여년전에 돌돌(Dol Dol)과 아처스 포스트(Archer’s Post)에 있는 케냐군이 할당한 공공 토지 내 리프트 밸리의 아카시아나무 사이에서 이뤄졌다. 그 후 바툭은 중앙고원으로 훈련 장소를 확장했다.

중앙고원은 영국 본토에서 온 정착민의 후손들이 거대한 토지를 차지한 곳으로 유명하다. 바툭이 토지를 임대하는 목장 7곳 가운데 6곳이 백인 케냐인의 소유였다.(4) 이제 막 난유키에 도착한 어린 신병들은 ‘조니’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그들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그곳에 온다.(5)

바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는 영국군을 훈련시키는 장소이다. 그곳의 목장은 고급 숙소를 갖춘 민간 야생동물보호구역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부유한 관광객들이 비싼 사파리 사진을 찍으러 온다.

라이키피아 농민협회 회장이자 올 메조르 목장의 주인인 마틴 에반스는 가축과 영양이 뛰어다니는 1만 2,000헥타르의 사바나를 1년에 41일간 바툭에 임대한다. 3세대 정착민 출신의 백인 케냐인인 에반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임대를 하는 게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어쨌든 군대는 우리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전혀 없었거든요.”

 

 

큰 피해를 입은 마사이족과 삼부루족 주민들

하지만 모든 케냐인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툭은 2000년대까지 “사자와 표범부터 전갈과 블랙맘바 독사에 이르기까지 잠재적으로 위험한 동물들”을 상대하는 훈련에 집중하느라 “주민들의 마음과 정신”을 얻는 데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목축업을 하는 아처스 포스트와 돌돌 인근의 삼부루족과 마사이족 주민들은 큰 대가를 치렀다. 2002년 영국 국방부는 바툭이 사용했던 땅에 방치된 불발탄 때문에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228명의 마사이족에게 450만 파운드(당시 710만 유로)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레이 데이 로펌(인권 보호 전문 법률회사)과 합의했다.

2년 뒤에는 1,100명의 다른 주민들에 대한 보상 합의도 이루어졌다. 같은 해 국제앰네스티가 ‘평화 증진 및 분쟁 방지를 위한 원주민 운동(Impact)’이라는 지역 협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초부터 영국군에게 강간당한 삼부루족과 마사이족 출신의 여성들은 최소 650명 이상이다. 하지만 오래전 일을 입증하기 어려워 고소인들은 원하는 재판을 받을 수 없었다. 바툭을 향한 비난은 이게 다가 아니다. 이전의 소송과는 달리, 롤다이가 지역 주민들은 형사 재판소에 호소했다. 고소인은 중앙 권력에 의해 소외되고 관광 산업에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 삼부루족이나 마사이족이 아니라, 인구 5,300만 명의 케냐에서 양대 거대 부족 가운데 하나인 키쿠유족 소농들이었다(다른 한 부족은 루오족이다).

“영국이 지불한 합의금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의가 이제 케냐로 옮겨와야 한다”라고 켈빈 쿠바이는 주장했다.

 

“정의가 케냐로 옮겨와야 한다”

무라마티 마을의 원로 가브리엘 은가타는 이번 소송을 위해서 ‘롤다이가를 위한 정의’라는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은가타는 아내와 함께 작은 마당에서 양 6마리와 소 4마리, 염소 2마리, 암탉 20마리와 함께 3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1년 전 마을의 토지를 집어삼킨 화재가 시작된 롤다이가 힐즈 회사의 언덕이 한눈에 보였다. 코끼리와 사자를 만날 수 있는 사설 동물보호 구역인 롤다이가 힐즈 회사는 화재 당시 백인 케냐인 로버트 웰스의 소유였다.

웰스는 매년 군사훈련을 위해 바툭에 2만 헥타르를 임대해왔다. 2021년 3월 ‘아스카리 스톰’을 실시하던 중 덤불에서 시작된 불길이 생물다양성의 안식처였던 50㎢의 땅을 태웠다. 영국군 병사가 버너를 잘 끄지 않았던 탓으로 추정됐다.

보호구역에서 탈출한 코끼리 떼가 언덕에서 달려와서 저지대의 농작물을 짓밟고 지나갔고 은가타와 이웃들, 세 마을에 살던 1만 가구 가량은 사흘 동안 짙은 매연 속에서 지내야 했다. “이후 우기가 되자 언덕에서 내려오는 물이 맛도, 색도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은가타는 회상했다.

소들은 눈이 멀었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산이 늘었으며, 노인들은 폐에 문제가 생겨서 지난해 12월에는 한 명이 의문사하기까지 했다. ‘승리의 예배당’(오순절파)의 던컨 웨이테케 목사는 이렇게 탄식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위로뿐입니다.”

 

영국군의 살인, 고문, 성폭력

그 땅에서 자란 한 익명의 지역 관리자는 이러한 현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도 때도 없는 바툭의 야간 훈련과 온갖 소음과 오가는 트럭이나 헬리콥터 때문에 잠을 자기 힘들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은 처음 겪는 일이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그가 말했다.

어떤 농부는 코끼리 때문에 쓰러진 아보카도 나무 앞에서 “더 이상 수확할 게 없고,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변호사인 쿠바이는 “우리는 바툭의 훈련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툭의 훈련 때문에 지역사회의 일상이 무너지고 환경이 파괴되는 것에는 전적으로 반대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더 이상 그 문제에 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바툭이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바툭과의 협력 관계를 되돌아보니 우리가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툭은 냐티 캠프와 관련해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오래된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6) 2012년 3월, 21세의 키쿠유족 성 노동자 아그네스 완지루가 실종된 지 2개월 만에 난유키의 한 호텔 정화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이 호텔은 휴가 중인 군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지난 가을 선데이 타임스는 한 영국 군인이 동료들의 고발로 범죄 혐의자가 됐다고 보도했다. 영국군은 이 사건을 은폐했는데, 성 노동자의 살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케냐 경찰도 이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다.

케냐 언론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자 국내외 언론 이곳저곳에서 사설이 쏟아졌다. 케냐의 풍자화가 패트릭 가타라는 2021년 11월 알자지라(Al Jazeera) 사이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완지루 사건에 대한 케냐와 영국 정부의 은폐 시도를 보면 과거가 떠오른다. 1952년, 마우마우 봉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식민 정부는 7년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 기간 동안 영국에서 온 정착민들과 공무원들, 군인들, 경찰들이 수천 명의 케냐 주민들을 살해하고 고문했지만, 그 누구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레이 데이 로펌의 변호사 두 명이 봄에 난유키를 방문해서 완지루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수집해갔다.

 

거액의 보상금으로 지역주민을 달래는 영국군

거센 항의에 직면한 바툭은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경제적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인기 작전을 펼쳤으며, 고참인 아드리안 웨일 소령이 이 작전을 이끌었다. 2003년 이라크 디카르 주의 임시 부지사로 임명됐던 웨일 소령은 예비역 신분으로 해당 작전을 위해 케냐를 다시 찾았다.

영국군은 매년 75억 파운드(약 5,800만 유로)를 케냐 경제에 투입하고 있었고, 이미 개발 프로젝트(학교 개축, 우물 파기 등)에 1억 유로 이상을 지원했다. 극심한 건기에 물을 실은 바툭의 트럭이 온 지역을 누비고 다니며 목마른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했다.

바툭은 또한 난유키 인근에 ‘법의학 전문가와 의사, 상담사, 성폭력 전문 치안 판사’가 있는 폴리케어(Policare) 센터를 세우기로 하고 필요한 자금 900만 파운드(7만 3,000유로) 가운데 75%를 지원했다. 잔인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영국군 웨일 소령에 따르면 바툭은 완지루 살인사건이 폭로된 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영국군 헌병대는 도시를 더 자주 순찰하게 됐고, 신병들은 더 이상 성 노동자들을 만나지 말고 자정 이전에 냐티 캠프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서민 동네인 마젠고에 있는 난유키에서 나고 자란 40대 여성 마리안느 완기는 과거 성노동자였다가 현재 500명 정도로 집계되는 난유키 성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지난 가을 <선데이 타임스>의 폭로 이후에 그녀는 어린 소녀들과 함께 케냐 정부에 조사 개시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우리가 영국군 신병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례는 항상 있었으며, 특히나 그들이 술에 취했을 때 더욱 많았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증언하기를 두려워했다. 경찰이 자신의 말을 믿어 줄지 걱정한다. 바툭과 맞서는 것도 두려워한다”라고 말했다.

난유키에 사는 젊은 블로거, 피델 지저스는 이렇게 말했다. “바툭은 민감한 주제이다. 정치인들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바툭을 격렬하게 비난하지만 공개적으로 바툭과 등을 지기를 꺼린다. 지역적으로, 국가적으로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우리는 라이키피아 카운티의 은디리투 무리티 전 주지사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그는 우리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

 

 

“식민지 남작들이 마사이족에게서 빼앗은 땅”

마사이족 투사 말리 올레 카웅가는 2000년대에 영국군 부대로부터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현재 ‘평화 증진 및 분쟁 방지를 위한 원주민 운동’을 이끌고 있는 카웅가는 영국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합의를 봤다. 그는 영국 본토에서 온 정착민의 후손들이 케냐를 떠날 것을 요구하는 “100년이면 충분하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여러 시위와 기습 작전에 참여했다. 당시 케냐에서는 1904년 영국의 식민 행정부가 마사이족 지도자였던 올로나 올레 음바티안에게 협정을 강요한 뒤 마사이족들을 거주지에서 보호구역으로 강제 추방한 사건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된 것을 추모했다.

영국과 케냐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던 동안 영국은 바툭을 오만으로 이전하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영국은 브루나이, 벨리즈, 독일 등지에 5개의 지역 군사 센터를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오만에 있었다). 롤다이가의 민간 보호구역은 마사이족 유목민들의 침입을 받았지만, 경비원의 반격으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웅가는 침착하게 변했고, 그가 이끄는 ‘평화 증진 및 분쟁 방지를 위한 원주민 운동’도 자리를 잡고 존경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분석은 변하지 않았다. “바툭이 훈련을 하는 땅은 식민지 남작들이 마사이족에게서 빼앗은 땅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툭의 존재는 완전히 정당하지 않다.”

오래전부터 케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부족들로부터 배척을 받아온 마사이족과 삼부루족은 전통적으로 요구조건을 말하는 데 거침이 없다.

“오랫동안 우리는 바툭과 영국 출신의 백인 농장주들이 개입된 그 생태계를 공개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비판한 유일한 부족이었다. 케냐 정부는 우리를 무시했다… 그리고 난유키에서 누군가 영국군의 존재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지역 경제에 해를 끼치는 배신자로 간주됐다. 하지만 이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른 지역사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로운 힘의 균형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 없이, 모든 것이 영국에서 결정돼”

난유키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에와소네로강 북쪽 기슭은 삼부루 카운티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토지 분쟁과 가뭄으로 인해 서방 외교관들이 관광객의 방문을 권하지 않는 지역과 맞닿아 있다. 다리 건너편에 사는 1만 명의 주민들은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며, 바툭이 케냐에서 처음 훈련을 시작한 이래로 훈련장을 제공해왔다.

바툭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라이키피아 카운티의 사유지에서 진행하는 훈련과는 달리 야간 훈련 조명을 위해 백린탄과 박격포를 포함한 실제 탄약을 사용한다. 가뭄에 시달리는 이 마을 인근에서 불발탄으로 희생된 수백 명의 유목민들이 영국 국방부로부터 450만 파운드의 배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모든 게 지역사회 개입 없이 영국에서 결정됐다”라고 지방 정부 관료였던 파비안 로솔리는 후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보상금이 지급되었을 때 많은 사람은 그토록 큰 돈을 본 적이 없었다. 많은 목축업자들의 삶은 바뀌었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상 술로 인해 더욱 나빠졌다.”

바툭의 무책임한 행태는 비난을 받았지만, 막대한 보상금이 주민들에게 지급되었을 때 이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던 케냐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파 훈련으로 초원을 파괴한 영국군

방식이 바뀌었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은 불발탄을 제거하고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사회적 평화를 돈으로 사는 것과 같다”라고 로솔리는 말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마르사빗으로 이어지는 A2 고속도로를 따라 동물 보호구역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카유 로초데(현지어로 ‘멀리 보는 자’라는 뜻)라는 지역 경비원은 바툭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정적인 활동을 위해 우리에게 일을 하게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 땅을 임대하러 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카운티라는 행정구역이 만들어진 2010년 헌법 개혁에서도 토지 소유권 주장이 제기됐다. 바툭은 공식적으로 케냐군이 빌려준 땅에서 훈련을 하는데, 그 때문에 940명의 삼부루족 사육농가 공동체인 로시아 커뮤니티 랜드가 보유한 9만 에이커(3만6,000헥타르)의 땅을 잠식하게 됐다.

로시아 커뮤니티 랜드는 이곳에서 소 1만 마리, 단봉낙타 1,000마리, 염소 5만 마리를 방목하고 있었다. 로시아 커뮤니티 랜드의 신임 회장인 사무엘 르모요그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공짜로 훈련을 계속합니다. 이미 가뭄 때문에 피해를 입었는데, 폭파 훈련을 해서 우리가 키우는 가축들이 뜯어먹는 초원을 파괴합니다.”

르모요그 회장은 까다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목축업을 하는 아버지와 (부인 6명에서) 넷째부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그는 로세시아에서 나고 자랐고 바툭과 마을 공동체 간 교섭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이곳은 제 땅입니다! 우리는 8월 총선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세대에 의지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직 우후루(Uhuru, 자유)가 아니다”

이 새로운 세대는 호화로운 지대에 소들이 있는 풍경을 아이폰으로 촬영하고, 노래를 자체 제작해서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는 최초의 세대다. 특히 레게에서 차용한 이 새로운 컨트리 음악은 환경 보호와 가뭄, 지역사회 간 관용, 사랑, 휴대폰 등을 이야기하며 과거도 잊지 않는다.

22세의 젊은 통계학자 필라즈 필론제가 노래한 ‘유콜로니(UKolony)’라는 곡은 20세기 초 영국인을 믿고 받아들였다가 환멸을 느낀 삼부루족에 대해 말한다. 필론제가 말하길 현재의 사건과 ‘공감되는’ 작품이다.

롤다이가에서 첫 비와 함께 나쁜 소식이 들려왔다. 바툭의 최고사령관은 지난 3월 보르 판사가 내린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이것은 이미 힘없는 소규모 농민 공동체에 대한 지연과 재정적 압박을 의미한다”라고 쿠바이 변호사는 말했다.

그 때 쿠바이 변호사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취했던 행동을 떠올렸다. 그의 할아버지는 무사 음와리아마 사령관으로 마우마우 봉기를 이끌었던 최고 계급 장교였으며, 케냐산 은신처에서 작전을 펼쳤지만 영국의 식민지 군대에 생포되지도 않았고 목숨을 잃지도 않았으며 마지막까지 지하활동을 펼쳤던 인물이었다.

쿠바이 변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1989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아직 우후루(Uhuru)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아직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장크리스토프 세르방 Jean-Christophe Servan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이연주


(1) Mercy Mwende, 「Landmark ruling opens floodgates to lawsuits against British army」, <더 네이션>, 나이로비, 2022년 3월 14일.
(2) Mercy Mwende, 「Kenya deal with UK aims to turn Nairobi into Africa’s finan-
cial hub」, <파이낸셜 타임스>, 런던, 2021년 7월 27일. Gérard Prunier, 「Au Kenya, les habitants de la côte exclus du banquet démocratique 케냐, 민주적 향연에서 제외된 해안 주민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10월.
(3) Ngugi Wa Thiong’o, 『Rêver en temps de guerre 전쟁에 꿈을 꾸다』(Éditions Vents d’ailleurs, 파리, 2022).
(4) John Letai, 「The sun never set: British army secret payments to colonial era farms」, <디클래시파이드 UK(Declassified UK)>, 2021년 4월 8일, https://declassifieduk.org.
(5) 「Paras push the limits in Kenya」, <영국군 온라인 신문>, 2017년 11월 16일, https://www.army.mod.uk
(6) Cf. 「Neuf ans après les faits, un soldat britannique accusé du meurtre d’une jeune kenyanne 사건 발생 9년 후, 젊은 케냐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영국 군인」,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Courrier International)>, 파리, 2021년 1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