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의 교훈
처벌을 피할 수 없는 반인도적 범죄
2024년 11월 21일,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와 요아브 갈란트에 대해 전쟁 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앞서 그해 1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 방지 협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보전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스레브레니차 사건(1995년 보스니아 전쟁 중, 스레브레니차에서 세르비아군이 8,000명 이상의 보스니아 무슬림 남성과 소년들을 학살한 사건)이후, 이러한 유형의 소송에 대한 법적 기준과 절차는 더욱 명확해졌다.
2024년 11월 11일, 헤이그 국제 재판소 판사들은 보스니아 세르비아 공화국군(VRS)의 사단장 이었던 라드슬라브 크르스티치의 편지를 공개했다. 크르스티치는 드리나 군단의 전 사령관으로, 집단학살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유럽인이다. 그는 조건부 석방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부인해오던 범죄를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속했던 군대가 1995년 7월 스레브레니차에서 보스니아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저는 그 집단학살을 알고도 지원했으며, 일부 주요 참모들이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1)
이는 그가 이전까지 부인했던 범죄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인정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스레브레니차의 교훈, 정의를 위한 길
21년 전인 2004년 4월,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TPIY) 항소심 재판부는 라드슬라브 크르스티치 장군에게 집단학살 방조 혐의로 징역 35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크르스티치가 “이 계획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드리나 군단의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보스니아 무슬림 포로들의 처형에 크게 관여한 점”을 인정했다. 집단학살(Genocide)은 단순한 대량 학살이나 민족 청소를 넘어서는 범죄로 규정된다.(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 중 저질러진 잔학 행위를 심판하는 과정에서, TPIY는 1948년 12월 9일 채택되어 현재 153개국이 비준한 ‘집단학살 방지 및 처벌 협약(CPRCG)’에 근거하여 처벌 가능한 법적 틀을 더욱 구체화했다. TPIY는 오늘날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전신 역할을 했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구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학살 중, 집단학살로 공식 인정된 사례는 1995년 7월 스레브레니차 함락 이후 보스니아 세르비아군이 7,000명 이상의 보스니아 무슬림 남성을 학살한 사건뿐이었다.
크르스티치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책임자들은 이 끔찍한 범죄에 따른 치욕의 낙인을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는 앞으로 이와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려는 자들에게 강력한 경고가 될 것이다.”(3)
이 혐의로 보스니아 세르비아 공화국(Republika Srpska)의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와 보스니아 세르비아군(VRS) 총사령관 랏코 믈라디치는 각각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카라지치는 이슬람계 마을인 스레브레니차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 혐의로, 믈라디치는 유엔이 보호하던 이 지역을 공격하고 주민들을 공포에 빠뜨린 혐의로 각각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보스니아 병력이 세르비아 마을에서 저지른 잔학 행위가(4) 이른바 ‘군사적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 공격은 민간인을 목표로 했으며, 16세 이상의 남성들이 거의 모두 체포된 점에서 그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다고 보았다.1995년 여름,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와 같은 인권 단체들은 1992년 4월 전쟁 발발 이후 이어진 수많은 잔학 행위에 뒤이어 스레브레니차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경고했다.(5)
집단학살 방지 협약 제9조에 따르면, 협약의 해석, 적용, 또는 국가의 책임과 관련된 분쟁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관할에 속한다.(6)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제소를 받은 ICJ는 1993년 4월 8일 연방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에 대해 보전 조치를 명령했다. 2007년 2월 26일에 내려진 ‘집단학살 범죄’ 판결에서는, 이 범죄에 대한 엄격한 정의와 적용 기준이 다시 한번 강조되었다.(7)
‘중요한 일부’만 겨냥해도 집단학살로 간주
극악한 인권유린은 설령 특정 집단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겨냥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집단학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의도’가 추가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특정한 의도가 반드시 사전 계획된 것일 필요는 없다. 재판부는 “특정 집단을 파괴하려는 의도는 작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목표로 설정될 수도 있다”라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스레브레니차에서 저질러진 행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무슬림 집단의 일부를 파괴하려는 특정한 의도”로 자행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집단 전체가 아니라 ‘중요한 일부’만 겨냥하더라도 집단학살로 간주될 수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한 변호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제법 교수 올리비에 코르텐(Olivier Corten)은 이 선례를 통해, 보호받는 집단 중 매우 적은 일부만을 겨냥했더라도 질적 기준, 즉 단순히 ‘몇 명을 살해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어떤 의도로 살해했으며 그것이 해당 집단의 존속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판단하여 집단학살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이 질적 기준에 대한 해석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8)
크르스티치 사건에서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TPIY)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집단의 일부를 겨냥한 행위의 중요성을 평가할 때, 그 숫자적 규모뿐만 아니라 해당 집단 내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위치도 고려해야 한다. (…) 1995년, 이 지역의 대부분의 무슬림 주민이 스레브레니차라는 거점에 피신해 있었기 때문에, 이 거점을 제거함으로써 지역 전체에서 무슬림 인구를 제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96년 이 사건과 관련해 집단학살 처벌의 보편성과 협약 서명국의 협력 의무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ICJ는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각국은 집단학살 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협약에 따라 영토적 제한을 받지 않는다.”(9)
“집단학살을 예방할 의무를 위반했다”
2007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세르비아가 “그 기관이나 국제법상 책임을 지는 행위자들을 통해 집단학살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또한 “공모하지도 않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을 더 광범위한 집단학살의 일부로 본 보스니아의 주장은 기각되었다.
그러나 ICJ는 세르비아가 “집단학살을 예방할 의무를 위반했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1993년 4월 8일과 9월 13일에 ICJ가 명령한 보전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고, 랏코 믈라디치를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TPIY)에 송환하지 않았으며, 1995년 7월 스레브레니차에서 발생한 집단학살을 예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구성하는 세 민족 간의 갈등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10)
2025년부터 매년 7월 11일을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 추모일로 지정하는 결의안이 지난해 5월 23일 유엔(ONU) 총회에 상정되었다. 이 결의안은 찬성 84표, 반대 19표, 기권 68표로 총회의 의견이 갈렸다. 이미 1월 27일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4월 7일은 르완다 투치족 집단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날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유엔 표결과 세르비아 지도자들의 적대적인 반응은 크르스티치 장군이 판사들에게 편지를 쓰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저는 상상할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 이 편지가 공개되어, 제가 한 말이 제가 속한 나라의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요청합니다.”
글·필리프 데캉 Philippe Descamps
언론인
번역·강태호
(1) 2024년 6월 18일 라드슬라브 크르스티치의 편지, 국제형사재판소 잔여업무기구(IRMICT)에서 2024년 11월 11일 공개, www.irmct.org
(2) 「우리가 학살이라 부르는 것」,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4년 7월.
(3) 판결 번호 IT-98-33-A,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TPIY), 2004년 4월 19일, www.icty.org
(4) 「스레브레니차 사건에 대한 공동 정보 조사 보고서 번호 3413」, 2001년 11월 22일, www.assemblee-nationale.fr
(5)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스레브레니차 함락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군에 의한 인권 침해」, 국제앰네스티, 1995년 8월 11일, www.amnesty.org; 또한 「스레브레니차 함락과 유엔 평화유지 실패」,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1995년 10월 15일, www.hrw.org
(6) 안-세실 로베르, 「국제사법재판소가 불러일으키는 가자지구에서 대량 학살의 위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4년 2월.
(7) 「집단학살 방지 및 처벌 협약 적용과 관련된 사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제사법재판소(ICJ), 2007년 2월 26일 판결, www.icj-cij.org
(8) 올리비에 코르텐, 「ICJ가 집단학살 사건(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 세르비아)에서 내린 판결: 집단학살로 인한 국가 책임 조건의 완화로 가는 길?」, 『프랑스 국제법 연감(Annuaire français de droit international)』, 제53권 1호, 파리, 2007년 1월.
(9) 「집단학살 방지 및 처벌 협약 적용과 관련된 사건」, 국제사법재판소(ICJ), 1996년 7월 11일 판결, www.icj-cij.org
(10) 필리프 데캉과 아나 오타셰비치, 「보스니아에서 전쟁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는 기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