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독재종식 후, 초조해진 이스라엘의 위협
바샤르 알아사드가 아직 궁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텔아비브는 이미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시리아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동안, 이스라엘군은 시리아의 군사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며 이웃 나라 영토에 발을 들이고 있다. 이는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자연은 빈 공간을 싫어하듯(Natura abhorret vacuum. ‘자연은 진공을 혐오한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문구로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서 유래-역주), 이스라엘은 이웃 국가들의 정치적 변화가 가져오는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듯하다.
아니면,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 시리아 전역에 규모 폭격작전 감행
2024년 12월 8일 아침, 바샤르 알아사드가 도망쳤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전에 텔아비브는 시리아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무력 과시는 우선 유엔 평화유지군 1천여 명이 감시하는 골란고원 비무장지대에 자국 군대를 배치하는 형태로 시작되었다. 약 80km에 이르는 이 완충지대는 1974년, 시리아가 골란고원 탈환에 실패한 지 6개월 만에 체결된 휴전협정에 따라 설정되었다.
골란고원은 1967년 이스라엘이 전체 면적의 3분의 2(1,250km²)를 점령한 이래로 점령지 상태로 남아있다. 중동 지역의 소수 종교·민족 집단인 드루즈족들이 거주하는 이 지역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정착촌이 점차 확산되었고, 1981년 이스라엘 의회 크네셋의 법안 통과를 통해 공식적으로 병합되었다. 이 병합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즉각 “무효이며 법적 효력이 없다”라고 선언했지만,(1) 현재까지 이를 인정한 국가는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동안의 미국이 유일하다.
이러한 지상 작전과 동시에 텔아비브는 항공 전력을 동원해 대규모 폭격 작전을 벌였다. 13년간의 시리아 내전과 시리아군 붕괴 이후 시리아가 보유한 남은 군사 장비를 겨냥한 것이었다. 공격 대상은 대공 방어 시스템, 비행장, 해군 기지, 무기 생산 시설, 화학 실험실, 탄약고, 장갑차, 레이더, 미사일, 드론 등으로 다양했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 공습은 무기가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공습 이틀 만에 이스라엘군은 이미 시리아의 군사 능력 중 70~80%를 파괴했다고 주장했지만, 미사일 공격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공습이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나는 동안에도 이스라엘 공군은 수백 차례의 폭격을 가했고, 시리아의 14개 주 전역이 피해를 입었다. 일부 공습은 그 강도가 매우 컸다.
이스라엘, 2011년부터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대비
초기 며칠간의 충격이 지나자, 이스라엘의 ‘기정사실화 전략’(fait accompli 전략이라고도 하며, 상대방의 동의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상황을 진행하여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전략을 뜻함-역주)은 여러 아랍 및 유럽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다마스쿠스의 새로운 정권과 관계를 맺으려는 외교적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이러한 주권 침해에 대한 비판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유엔 인권 및 대테러 특별보고관인 벤 솔은 제네바에서 “국제법상 어떤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예방적 차원에서 그 국가를 무장 해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는 완전히 불법이며 아무런 정당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수행한 작전은 ‘바샨의 화살’로 명명되었는데, ‘바샨’은 골란고원의 고대 지명으로 성경적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작전의 신속성과 목표의 정밀성은 이스라엘이 시리아 영토에 대해 얼마나 철저히 파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텔아비브는 2011년 시위가 시작될 때부터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에 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2)
실제로 이스라엘은 그 이후로도 시리아에 대한 불법적 공격을 꾸준히 이어왔다. 시리아 내전이 자국 영토로 확산되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 아래, 이스라엘 공군은 지난 13년간 수십 차례에 걸쳐 공습을 감행했다. 주요 목표는 이란과 그 산하 민병대, 헤즈볼라, 그리고 시리아군이 점령한 거점이었다.
하지만 텔아비브는 이번 공습으로 사태를 직접 주도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이스라엘의 접근 방식은 철저히 안보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2013년, 이스라엘 외교관 알론 핀카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양측, 정부군과 반군이 계속 싸우며 피를 흘리게 놔두는 것, 그것이 전략적 사고다. 그런 상태가 이어지는 한, 시리아로부터의 실질적인 위협은 없다.”(3)
새 지도자 알샤라아, “시리아는 분쟁에 휘말릴 의도 없어”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는 냉소적인 태도로 시리아 독재자의 전복을 자신의 업적으로 돌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골란고원의 고지대에서 “이는 헤즈볼라와 이란에 대한 우리의 단호한 조치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가자지구를 초토화하고 레바논을 붕괴시킨 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새 정권이 물려받아야 할 군사력을 철저히 파괴했으며, 내부 치안이 불안한 상황에서 병사들과 정착민들이 시리아 측 수자원 근처를 배회하도록 방치했다.
이는 난민 문제는 피하면서 시리아의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이 성공한 것이었다. 아흐메드 알샤라아는 이란의 철수와 헤즈볼라의 패배를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입은 더 이상 정당성을 가질 수 없으며 오히려 전쟁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비판하며, 국제 사회가 텔아비브에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했다.
“시리아는 전반적으로 극도의 피폐 상태에 있어 이스라엘을 포함한 어떤 국가와도 분쟁에 휘말릴 의도가 없다”고 다마스쿠스 신정권의 새로운 지도자는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자신의 전투명 ‘알줄라니’를 통해 자신이 ‘골란 출신’임을 내비쳤다.
글·앙젤리크 무니에-쿤 Angélique Mounier-Kuhn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기자
번역·박명수
(1)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497호, 1981년 12월 17일.
(2) 사뮈엘 포레와 엘렌 살롱, 「이스라엘 폭격 캠페인으로 파괴된 시리아 군사 무기고」, <르몽드>, 2024년 12월 16일.
(3) 조디 루도렌, 「이스라엘, 시리아에 대한 제한적 공습지지」, <뉴욕타임스>, 2013년 9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