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깊이를 담은 로베르트 무질의 작품들
후대 사람들이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을 오직 한 작품으로 기억하는데, 바로 『특성 없는 남자』의 작가로서다. 무질(1880~1942)은 이 방대하고 압도적인 소설로 가장 잘 알려졌다. 약 2,000 페이지에 달하는 이 대작은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됐다(1930년, 1933년). 하지만 그는 결국 이 작품을 끝내지 못했다.
1913년 빈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주인공 울리히의 눈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과 나아가 서양 문명의 쇠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냈다.
『특성 없는 남자』
제1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둔 이 시기는 여러 면에서 혼란스러웠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계몽적 자유주의’는 서서히 죽어가고, 인문주의적 이상은 위기에 빠졌으며, 스테판 츠바이크가 『어제의 세계』에서 언급했듯이, 이성은 ‘끔찍한 패배’를 맛보았다.
반면 ‘도구적 이성’(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철학적 개념으로 효율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역주)은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평화주의자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사상 영역에서는 정신분석학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낙관적 믿음을 뒤흔들었고, 언론계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한 정치 선전이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소설은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펼쳐졌다. 20세기 위대한 작가군에 속하지만, 무질은 여전히 널리 읽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출판계의 조명을 받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편, 1960년 필립 자코테의 번역 이후 60여 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인 그의 첫 작품 『학생 퇴를레스의 방황』(1)의 출간은 의미가 깊다.
『학생 퇴를레스의 방황』
작가는 이 작품에서 명문 사관학교 기숙생인 퇴를레스가, 두 동급생이 한 학생에게 가하는 도덕적, 육체적, 성적 폭력을 목격하며 겪는 내면의 고뇌와 혼란을 그려낸다. 무질은 퇴를레스가 겪는 양심의 위기와 그의 선택을 깊이 파고든다. 이는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져가던 빈 부르주아지의 위기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1906년에 발표된 『학생 퇴를레스의 방황』은 이미 그 시대의 정신을 꿰뚫어보는 특별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에세이, 『독성의 시대』
정신의 어두운 면에 대한 이런 통찰은 에세이 『독성의 시대』(2)에서도 나타난다. 이 에세이는 퇴를레스를 하나의 임상 사례로 분석한다. 정신분석가 클로틸드 르귀는 현대인의 새로운 불안 형태를 규명하면서, 당시 사회와 인간 정신의 병든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독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녀는 퇴를레스의 내면 경험을 면밀히 분석한다. 충동적 방종의 포기, 그로부터 얻는 쾌감, 뒤따르는 고통을 통해 구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병폐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확실한 답 대신 혼란을 던지고…
소설가의 새로운 시각은 희곡작가들을 당황케 했으나,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에세이스트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1937년 빈에서 『어리석음에 관하여』(3)에 관한 강연에서 무질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다뤘다. 이 주제는 처음엔 사소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의 대담한 시도의 본질을 이해하기 전까지의 평가다. 그는 불명확해 보이는 분석으로 1930년대 사회의 실체에 다가가려 했다. 무질의 독특한 매력은 어떠한 정의나 교리도, 어떠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는 유추를 통해 사유하길 즐기며, 현상들 사이의 관계와 균열을 파고든다. 결국 그는 확실한 답 대신 혼란을 던지고,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며, 완벽한 해답이 아닌 부분적인 해결책들만 내놓는다. 그는 사유의 교묘한 방해꾼인 셈이다.
글·니달 타이비 Nidal Taïbi
문학비평가
번역·나정인
(1) 로베르트 무질, 『학생 퇴를레스의 방황』, 도미니크 타셀 번역, 라 바르크 출판사, 렌, 2024, 208페이지, 26유로. 폴커 슐뢴도르프가 1966년에 이를 영화화했다.
(2) 클로틸드 르귀, 『독성의 시대. 문명의 새로운 불안에 관한 에세이』, PUF 출판사, 파리, 2023, 208페이지, 18유로.
(3) 로베르트 무질, 『어리석음에 관하여』, 알리아 출판사, 파리, 2023, 64페이지, 6.50유로. 참조: 자크 부브레스, 『정확성에 대한 열정. 로베르트 무질과 철학』, 오르 다탕트 출판사, 마르세유, 2023, 160페이지, 17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