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진의 문화톡톡] 연극의 두 얼굴

2025-01-31     임형진(문화평론가)

 

연극과

실제와 허구

연극은 일상 속에서 진실의 측면과 거리가 먼 것처럼 취급되곤 한다. “너 연극 하니?”라는 말은 상대가 연극계에 종사하는지를 묻는 것일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며, 실제하지 않는 것을 행동하고 모방하는 것에 대한 확인일 수도 있다. 연극 활동의 경제적인 측면과 허구적 정서는 연극을 예술로서 이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허구인 연극을 현실 속에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상의 연극이 예술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연극을 하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리스 비극의 공동체성

B.C. 5-6 세기 경 그리스의 기록에 나타난 연극은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공동작업의 형태를 나타냈다. 특히 코러스의 비극적 행동을 보면,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함으로써 연극을 완성하는 방식이 아닌, 참여자 모두의 역할을 서로 유연하게 연결시키는 특징을 보인다. 당시 그리스 연극의 공동체성은 연극의 주요한 예술적 특성을 깨닫게 하는 지점이 된다.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는 허구의 무언가를 공동으로 행동하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연극에 참여하는 자신들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하나의 공동체로서 연결시키길 바랐다. 이처럼 연극은 태생적으로 특정 개인의 소유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동시에 연극은 일상을 벗어난 무언가를 꿈꾸게 하였다. 이것은 현실을 외면할 수 있게 하는 삶의 도취제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동시에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시대와 역사 속에서 연극은 각각의 방식을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양면성

예술은 역사 속에서 부당한 거대 권력을 비판하기도, 반대로 그것에 기생하기도 하였다. 연극이 가진 허구적 성격은 이 두 가지 태도 모두를 가능하게 한다. 연극은 그 자체만으로 저항적이라거나 혁명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예술의 성격은 그것을 누가 수행하고 참여하는지에 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술이 지닌 사회적 방향성과 책임감을 역사적으로 인식한다면,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사실만으로 연극이 예술적 실천을 완성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연극은 한 사회의 공동체성을 실현하려는 작은 희망의 실천의 영역일 수도 있으나, 이와는 반대로 개인의 욕망을 확대하는 반사회적 도구이자 장치로서도 선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빈번하게 드러나고 있다.

 

실제와

연극의 경제성

연극을 한다는 것이 경제적인 이득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한때는 연극을 한다는 것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연극의 경제적 취약성은 연극배우가 영상 매체로 활동 영역을 옮겨가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 속에서 연극은 거대 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는 실천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연극인으로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우구스토 보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대 현실 속에서 연극은 자본의 진열장 속에 놓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극은 관객을 소비자로 인식하고, 그들의 소비적 크기를 연극의 생산성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에게 관객의 수는 연극의 성공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반면 어떠한 연극은 자본의 진열장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극은 자본의 힘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며, 그 영향력의 외곽에 위치하면서 사회적 감각을 유지하는 언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완전하지 않은, 연극

이처럼 연극은 각기 서로 다른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연극의 양면성은 자본의 권력 발생과 사회적 실천의 수행 사이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연극의 허구적 성격은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불가능성을 실천의 영역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연극이 사회적으로 실재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희망을 품고 있는 실천하는 참여자의 몸과 그것 사이의 연대이다. 연극은 그 자체로는 예술로서 파악될 수 없는, 절대적이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상태로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임형진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전공 교수.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대표 및 상임연출가. 독일문화와 예술, 수행성의 미학,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대한 연구 및 예술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5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