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국의 문화톡톡] 무질서-회복탄력성 그리고 한강 별곡

2025-02-03     최양국(문화평론가)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억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감사한다.// ~(중략)~ // 문이 얼마나 좁은지/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 Invictus(1888년),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W.E.Henley) -

 버려진 과거가 신들의 유희로 덮여간다. 찾아온 현재는 운명의 나무로 자라난다. 무질서를 경계하는 가지가 소리를 높이며 하늘을 그린다. 회복탄력성을 꿈꾸는 줄기는 침묵을 성찰하며 땅의 노래를 부른다. 운명의 나무는 무질서와 회복탄력성의 진화 게임을 한다. 불안과 혼동에서 태어난 무질서는 회복탄력성으로 깨어난다. 슬픈 겨울이 하얀 눈으로 떨어지면 붉은 생명의 계절이 멀지 않은 것이리. 2025년을 대표하는 상수인 무질서와 변수인 회복탄력성이 줄다리기한다. ‘절규’의 흰색과 ‘합창’의 붉은색 기를 흔들며 한강의 별곡을 찬미한다.

 

올해(2025년)의 / 대표 상수 / ‘무질서(Disorder)’ / 향한 ‘절규’

 2025년의 지배적 대표 상수인 ’무질서(Disorder)‘의 다리를 건너며 만난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년~1944년). 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노르웨이의 국민화가다. 경험에 의해 축적된 내면의 감정을 심리적 구성을 통해 재현하여 광기스런 색채와 왜곡된 선과 형태로 그리고자 한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대표적 선구자이다. 인상주의에서 시작한 그의 그림은 다양한 유파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우리에게 가장 뭉크답게 다가오는 작품은 표현주의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절규(Skrik 또는 The Scream, 189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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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된 뭉크의 기억 속에 고통스럽게 자리한 소중했던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과 사랑을 바쳤던 여인과의 불협화음 속 이별. 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사랑에 따른 불안과 고독으로 점차 확대되며 세상과 만난다.

‘절규’는 뭉크가 두 친구와 함께 크리스티아니아(현 오슬로) 교외를 산책하고 있을 때 자연을 매개로 직접 체험한 격렬한 내적 감정의 소리를 그린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일기장(1892년 1월 어느 날)을 통해 ‘절규’를 그린 배경을 뱉어낸다. 어느 해질녘 산책 중에 핏빛으로 물든 것처럼 보이는 노을을 본다. 마치 검푸른 피오르드 위 불의 혀와 피가 하늘을 찢는 듯하다. 멀어져가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오싹한 공포를 느끼며 자연의 비명을 듣는다. 이러한 서사는 1893년의 어떤 날 ‘절규’로 태어난다. 청각의 시각화. 삶의 외생적 변수에 의해 쌓인 공포와 불안, 고독을 내면화한 그림이다.

이 작품 속 중앙에는 두려움의 극한에 노출된 듯한 검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서서 해골 같은 모습으로 흐늘거린다. 들려오는 자연의 비명을 거부하기 위해 뒤돌아서서 손으로 귀를 막는다. 놀란 눈과 입에서 무언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앞쪽의 두 친구는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산책을 하며 무심히 다리를 걷는다. 곡선으로 물결치는 하늘과 바닷가 물은 자연의 비명과 더불어 요동친다. 곡선으로 뒤틀린 사람의 몸, 동그랗게 확장 중인 눈과 입, 사선의 다리와 직선의 두 실루엣은 중앙의 사람이 느끼는 공포감을 더욱 극대화한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과 입을 크게 열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절규‘를 듣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피동적인 주체의 모습이다. 찬란한 노을과 보통의 산책길이라는 시공간에 불안, 공포와 고독이 일렁인다. 핏빛 같은 붉은 하늘과 쪽빛 같은 바닷물을 통해 불안, 공포와 고독이 확대된다. 일상에서 만난 자연의 모습은 뭉크의 기억을 환청과 환각으로 소환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화상으로 되살아난다.

’절규‘는 인간 내면의 주관적 감정인 불안과 우울, 죽음과 공포, 고독 등이 미학적 형태로 포장되거나 생략되지 않고 어두운 부정성을 날것으로 드러낸다. 이는 음산함과 강렬함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고통받은 한 인간의 시공간 서사로서, 날것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내면적 감정의 표현은 보편적 공감과 치유의 에너지로 환원되어 호흡한다.

뭉크의 ’절규‘는 소리에서 출발한다. 소리는 내면의 부정적 감정을 불러낸다. 온몸을 왜곡해서라도 버텨내야 하는 두려움과 공포로 이어진다. 새해인 2025년도 소리로 시작한다. ’무질서‘라는 소리. 축적된 불안과 혼동을 DNA 삼아 무질서는 자라난다. 자본(돈)과 호모 데우스(Homo Deus), 권력과 제국 이기주의는 무질서를 맹종하며 확대된다. 마치 ’절규‘의 연작처럼 재생산된다. 다리 난간에서 돌아서 불안과 공포 뒤에 좀비처럼 따라오는 무질서를 보고 있는 듯한 ’1893년의 그‘.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절규‘를 하고 있는 걸까.

 

무질서 / 극복 방법 / ’회복탄력성(Resilience)‘ / ‘합창’ 노래

 뭉크의 절규가 노래로 바뀌는 무대에서, 환희에 찬 불멸의 음악을 듣고 있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년~1827년). 그가 작곡한 아홉 번째 교향곡이자 마지막 교향곡인 제9번 ‘합창’은 공식적으로는 《교향곡 제9번 라단조, 작품 번호 125》(182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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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청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 쓴, 노래와 합창을 수반한 교향곡으로 총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악(오케스트라)에 성악(남녀 혼성합창단+4명 남녀독창자)을 어우러지게 한 최초의 교향곡이다.

제1악장(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빠르게 지나치지 않게 장엄하게)~ 제2악장(Molto vivace, 매우 빠르게)~제3악장(Adagio molto a cantabile, 매우 느리고 노래하듯)~제4악장(Finale-Allegro Assai, 아주 빠르게)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게 다가오며 대중적으로 대표되는 악장은 4악장일 것이다. 제4악장에 나오는 합창과 독창 때문에 ‘합창(Choral)’이라는 부제로 불리고 있는데, 그 가사는 대부분 프리드리히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년∼1805년)의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1785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시는 자유와 단결의 이상, 인류애를 향한 환희를 찬양하는 내용의 장엄하고 화려한 서정적 운율로 넘쳐 흐른다.

베토벤의 전기 집필자인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 1795년-1864년)의 증언에 따르면, 베토벤은 이 곡을 작곡하면서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 아마도 실러의 시가 갖고 있는 길고 복잡한 서정적 내용을, 최초로 시도한 관현악단과 인간의 목소리가 접목된 교향곡으로 작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초기 구상에서 시작하여 31년 만에 완성된 이 곡은, 베토벤의 삶에 대한 철학과 음악사상을 대표하는 최고의 곡으로 자리매김한다. 심상(心象)의 청각화. 송년 음악회의 대표곡이자 EU의 공식 국가(4악장 주제인 ‘환희의 주제’)로 지정되어 불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혁신의 아이콘으로써 말러, 드보르작, 브람스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합창‘은 청력 상실에 대한 절망과 음악가로서의 운명을 완성하기 위해 육체 및 정신 질환을 극복하려고 하는 열망을 바탕으로 한다. 제1악장은 고요 속에서 점점 커져가는 음으로 확장된다. 현실에 대한 불안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작은 몸부림처럼 다가오다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 간다.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이 고조되어 커간다. 이어서 제2악장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어, 짧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의 여운을 주며 치밀한 푸가(fuga, 하나의 선율을 한 성부가 연주한 뒤, 이후 다른 성부가 다른 음역에서 모방하는 대위법적 모방의 한 기법) 형식을 진행한다. 삶을 향한 화려한 성취와 자연을 향한 생명력의 약동을 오롯이 드러낸다. 제3악장에서는 전통적 구조의 교향곡과 다른 템포의 구성으로 인한 반전의 미를 연다. 보통 총 4악장 구조의 교향곡에서 표현되는, 느린 템포의 2악장 이후 빠른 템포의 3악장으로 이어지는 것과 반대의 순서를 취한다. 극도로 느려지며 햇살이 낮게 비치고 안개 같은 바람도 불어온다. 제4악장의 시적 피날레를 향해 느린 노래의 변주곡(variation,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리듬이나 선율, 화성 등에 변형을 주어 만든 악곡)은 점점 뚜렷해지는 햇살과 바람의 건강한 호흡과 함께한다.

피날레인 제4악장은 ’템페스트(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를 연상시키며 강렬한 도입부와 함께 더욱 강하고 빨라진다. 환희를 향한 기대와 긴장이 어우러지며 복잡한 감정으로 발전한다. 이를 위해 변주곡 외에 론도(rondo, 프랑스에서 일어난 2박자의 경쾌한 춤곡. 합창과 독창이 번갈아 되풀이되는 음악 형식), 현악기를 활용한 레치타티보(recitativo, 오페라에서 대사를 노래하듯이 말하는 형식) 풍의 가락과 성악의 형식을 차용한다. 제1악장~제3악장에서 나왔던 주요 선율들이 재현되었다가 이내 사라져간다. ’환희의 송가‘ 선율이 나오며 베토벤의 독백을 담은 가사(“오 친구들이여! 이런 소리들이 아니오. 좀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자”)가 바리톤을 통해 나온다. 이어서 ’환희의 송가‘ 합창과 독창이 어우러지며 환희를 향한 송가를 마무리한다.

베토벤의 ’합창‘은 고요한 침묵에서 출발한다. 침묵은 몸과 마음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바라보며 변동한다. 환희의 송가는 불안과 절망으로 이어지는 부정적 감정이나 상황의 변화량 보다,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나 긍정 에너지의 변화량이 더 많을 때 나오는 노래다. 회복탄력성(Resilience, 부정적 감정이나 상황의 극복 의지나 긍정 에너지의 변화량/부정적 감정이나 상황의 변화량)의 값이 1보다 커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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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가장한 무지가 무질서 되어 회색코뿔소의 등에 타고 있다. 2025년의 오늘에 대해 ’1824년의 베토벤‘.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합창‘을 듣고 싶을까.

 

붉은색 / ’회복탄력성‘ / 한강 별곡 / 송가(頌歌)로 흐르네

 2025년이 절규한다. 그 소리는 자본(부)과 자연을 향한 천민적 이기주의와 더불어 기울어진 운동장(uneven playing field)에 퍼진다. 당파적 권력 이기주의와 제국적 국가 이기주의가 깨진 종소리 되어 눈비로 쏟아져 내린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Han Kang) 작가. 그 시상식 연설에서 엘렌 맛손(Ellen Mattson)은 “한강의 글에는 두 가지 색이 만납니다. 흰색과 붉은색.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눈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에 보호막을 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흰색은 또한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합니다. 붉은색은 생명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고통, 피, 그리고 칼의 깊은 상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후략)~.”라고 한강을 소개한다.

불안~혼동~무질서로 이어지는 부정적 감정이나 상황은 흰색이다. 불안과 혼동의 끝 단계인 무질서는 객관적 공존의 경계가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 공존의 경계가 무너진 시공간은 이분법적 사유가 수직으로 지배하는 세계이다. 이분법적 사유의 세계는 개별적 자아나 집단적 자아가 서로 배타적 독립적 관계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시공간이다. 여기에서는 교만과 편견이 팽배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을 내세우며 승자 독식의 논리를 우선시한다. 무질서의 흰색은 회복을 통해 새로운 채색을 간절히 기다리는 빈서판(Tabula rasa)과 같다. 빈서판을 둘러싼 어설픈 궤변의 보호막이, 미래의 시공간을 슬픔과 죽음의 색으로 덧칠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질서와 흰색은 발산의 속성을 가진 화이트홀(White hole). 그 색칠을 위한 뭉크의 ’절규‘는 인간 내면의 부정적 감정에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며, 희망과 긍정의 길을 향해 나아갈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그로 인해 내면의 고통을 속살처럼 드러내며 극복하는 방법을 축적한다. 뭉크의 메시지는 베토벤의 ’합창‘을 통한 자유와 단결, 이상과 인류애를 향한 환희로 이어진다. 무질서의 채색을 위해 회복탄력성으로 향한다.

회복탄력성은 원래의 제자리 이상으로 되돌아오는 힘으로서, 미래를 향한 긍정적 상승 역량 변화량(분자량)을 과거로의 회귀나 후퇴를 향한 변화량(분모량)으로 나눈 값이다. 공존의 사유가 수평으로 함께 하는 세계이다. 상호 불완전성을 인정하며 보완의 관계를 인정하고 상생을 추구한다. 개별적 자아와 집단(국가)적 자아의 지속가능한 진화를 위한 회복탄력성의 값은 분모량과 분자량을 결정하는 자아와 자아 간 의지와 지혜의 몫이다. 이는 고통, 피, 그리고 칼의 깊은 상처를 극복하고 건강한 생명력을 추구하는 붉은색으로 대변된다. 회복탄력성과 붉은색은 수렴의 속성을 가진 블랙홀(Black hole). 그 채색을 위한 베토벤의 ’합창‘은 회복탄력성을 확대한다.

객체적 상수인 무질서와 작별한다. 주체적 변수인 회복탄력성이 온다. 한강(Hangang River)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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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위로와 치유의 강이며, 진화를 위한 서사의 강이다. 한강을 비추는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의 정체성으로 어우러지는 한강 별곡을 짓는다. 운명의 주인과 영혼의 선장이 부르는 환희의 송가(頌歌)가 울려 퍼진다. 그렇게 겨울이 닫혀간다. 입춘지절(立春之節).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