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문화톡톡] 우리로 돌아가기

2025-02-10     이인숙(문화평론가)

강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그 물결에 반사된 햇볕은 마치 보석처럼 반짝인다.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는 눈은 자연스레 평온함을 얻고, 그 물결의 일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타고 마음은 조용히 문을 연다. 물결이 반사하는 햇빛의 조각들은 신비로우며, 그 일렁임으로 조화롭고 신비한 아름다움을 공간과 마음속에 흩뿌린다. 그러나 이토록 황홀한 아름다움도 가뭄으로 인해 강바닥이 드러나는 순간 더 이상 그 찬란함을 유지할 수 없다. 

가득 차 넘쳐흘렀던 강물이 마르고 나면, 그동안 감춰져 있던 메마름과 거침, 황폐함, 그리고 바닥에 숨겨져 있던 온갖 추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현재 마주한 정치적, 사회적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곳곳에 균열이 가 있고, 감춰졌던 불안과 부정적인 요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간다. 고난이 찾아와도 참고 견디며, 나 하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 내 이웃, 그리고 우리 공동체와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때로는 포기하기도 하고, 좌절을 감추기도 하며, 심지어는 스스로를 희생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채 흔들리는 기준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버텨야 했고, 그런 시간을 지나 지금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그 시절,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연민을 가졌고, 물질적으로 주고받을 것이 없어도 따뜻한 눈길과 말 한마디가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 그때 우리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지만, 서로를 지탱해주는 정과 온기만큼은 충만했다. 그 시절의 강은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절망적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우리들 마음속의 강은 서로의 마음을 채우며 여전히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하고 풍요로운 시대가 되었다. 물질적인 부족함이 거의 없는 세상,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한강의 기적, 문화 강국,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근면과 성실,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투지 등,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강은 풍요롭게 흐르지만, 우리의 마음속 강은 점점 더 메마르고 거칠어지고 있다. 넘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인간적인 정과 연대는 사라지고,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다.

 

‘우리’라는 말의 의미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습관처럼 사용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라는 단어를 말한다. 우리 집, 우리 나라, 우리 부모님, 우리 아이들,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라는 말은 단순한 소유격을 넘어선다. 그것은 정서적 유대감을 포함한 단어이며, 한국인의 삶과 사고방식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개념이다.

한국에서 "우리"라는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과 관계 중심적 사고방식, 그리고 사회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핵심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에서 "나의"라는 표현이 사용될 상황에서도 한국에서는 "우리"라는 단어가 훨씬 더 자주 사용된다. 우리는 "우리 엄마"라고 말하지만, 영어권에서는 "My mother"라고 말한다. "우리 회사"라는 표현 역시 "My company"와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우리"라는 단어는 단순한 소유를 넘어 공동체적인 소속감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우리"라는 개념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한국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농경 사회였다. 농업은 개인이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마을과 공동체 전체가 협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구조였다.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하고,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를 바탕으로 마을 단위로 이루어진 공동 노동, 즉 두레와 품앗이 같은 협업 방식이 발전했고,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개념이 공동체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의 기초를 이루었고, 가족과 국가라는 공동체를 개인보다 우선시했다. 개인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가족과 사회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효(孝)와 충(忠)이라는 가치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더욱 강조된 것은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억압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수 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강한 결속력을 필요로 했고, "우리"라는 개념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단결을 강화했다.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한국은 오랜 시간 동안 인종적,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유지해온 단일민족 사회였다. 이는 "우리"라는 개념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으며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겪어온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단순한 공동체의 의미를 넘어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특히 외부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우리"라는 개념은 더욱 강조되었고, 이를 통해 민족적 연대감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우리말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한국어는 개인보다는 관계를 강조하는 언어적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라는 표현은 단순한 복수형(나 + 너)을 넘어, 집단적 정체성과 연대를 포함하는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특히 서구 문화권에서 개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방식과 비교해 보면, 한국어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 개념의 지속성은 공동체의 이익과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보여준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우리"라는 개념이 강한 연대와 협력을 의미하는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고 한국적 정체성과 글로벌 환경의 균형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우리"라는 개념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라는 개념이 항상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강한 집단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도 있으며, 특정 집단 내부의 동질성을 강요하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라는 개념이 강조되면서 개인이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을 표현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고, 집단 내부에서 "우리"라는 이유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거나, 다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우리"라는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균형 잡힌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라는 단어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우리"라는 개념은 단순히 함께 산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며 이러한 "우리"의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천 년을 견딘 농다리, 그리고 ‘우리’

충청북도 진천에는 유형문화재 제28호 농다리(籠橋)가 있다. 고려 시대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다리는, 오랜 세월 동안 강물의 흐름을 견디며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넘치거나 다리에 부딪히지 않고, 돌 사이사이로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며 흐른다. 그렇게 천 년의 시간을 견뎌 왔다.

농다리를 이루는 돌들은 반듯하게 다듬어진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이름 없는 평범한 돌들이 서로를 받쳐주며 틈을 메우고, 하나하나 모여 다리로서의 역할을 하며 천 년의 무게를 견뎌 왔다. 개별적으로 보면 하찮아 보일 수도 있는 돌들이 모여, 단단한 다리를 이루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우리"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세월과 역경을 함께 견디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과 같다. 우리는 각자 다 다르지만, 함께 모였을 때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존재들이다.

 

충북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라는 이름 아래에서 우리는 보호받고, 안정되며, 서로를 배려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라는 개념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어려운 시절을 함께 이겨내며 서로를 의지하고 돌보았지만, 이제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며 각자의 생존만을 걱정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다시 "우리"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공동체라는 울타리 속에서 우리는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혜로운 민족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위해 손을 내밀고, 함께 걸어가며 누군가가 힘들어 할때, 기꺼이 손을 잡아주는 다정한 마음을 가진 민족, 누군가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울 줄 아는 따뜻함을 지닌 민족. "우리"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며, 서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급속한 변화 속에서 많은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세대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으며,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국민이 나뉘고, 사람들은 점점 더 타인을 경쟁자로만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라는 개념은 더욱더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를 적이 아닌 동반자로 바라볼때 함께 성장하고, 함께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라는 울타리는 단순한 보호막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이루어나가야 할 가치이며,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필수적인 요소다. 물론, "우리"라는 개념이 때때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지만 그 한계를 뛰어넘는 지혜를 발휘할 때, 우리는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 발전해 가는 것이다. 

 

울타리

마치 너무 긴 숟가락을 가지고 혼자 밥을 먹는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입으로 음식을 가져올 수 없는 상황만 반복 될 것이며 결국 굶주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긴 숟가락을 이용해 건너편의 상대에게 밥을 떠먹여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 다시 한 번 마음속 깊이 새기며 우리는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글·이인숙
문화평론가, 교육학박사, 문화예술경영전공.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한국ESG위원회 공연예술위원회 위원장, 북경수도사범대학교과덕대학 공연예술대학부학장역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 한국연기예술학회이사, 국제문화예술교육교류협회회장, EINSchool대표이사, 국제문화& 예술학회 국제이사, 청주시도시문화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