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미의 문화톡톡] 지금 여기 당신은, 기특한 사람
세상은 변했고, 직업에 성역이 없다고 하지만 여자의 일과 남자의 일은 따로 있다는 편견은 곳곳에 존재한다. 과거에 비하면 그 경계선은 흐려졌고, 당위성 역시 느슨해졌다고 해도 사라진 것은 것은 아니기에 종종 타성의 진입 장벽이 높은 영역에 발을 들이고, 그 안에서 버티며 오랫동안 그 업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낯설거나 신기하다는 느낌을 넘어 종종 대단하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걸 숨길 수 없다.
그중에서도 건축은 이른바 남자의 기술, 남자의 노동으로 꼽히며 다른 직군보다 여자의 참여 비중이 낮을 뿐 아니라 유지하는 건 더 어려운 직종 중 하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노동의 물리적 강도가 세고, 특별하고 특수한 기술을 요구하는 직종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에세이 『너에게 우주를 지어줄게』의 작가 김은경 남지연은 20년 넘게 건축을 업으로 삼아 온 건축가다. 굳이 수식어를 달자면 오십 대, 여성, 건축가.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얻기 전까지는 이러한 수식어가 커리어를 쌓는 데 끊임없는 방해물이 되었을 것이고, 직장과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후에는 커리어를 빛나게 하는 조건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시선일 테다. 그러나 정작 두 사람에게 이러한 수식어는 자신들을 규정하는 수백 개의 수식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들은 그저 자기 일을 좋아하고, 좋아해서 오랫동안 일하고, 오랫동안 일하고 나니 고인물이 된 것.
건축이라는 거친 분야에서 유리 천장과 마주하고, 물리적 힘에서 밀고 밀리며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완성하기까지 겪어왔던 그들의 경험은 꽤 흥미롭다. 그 이유는 이들이 ‘강한 여자 건축가’이 아니라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1. 집을 통해
우리는 욕망을 투사하기도 하고, 타인의 욕망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누가 뭐래도 한국에서 집은 주거수단인 동시에 재산 증식의 수단이다. 집을 구할 때 위치, 이름, 평당 가격을 따져야 하는,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이유를 근거로 김은경은 건축가란 직업이 인간의 자아 밑바닥에 있는 욕망을 들여다보는 직업이라 정의하며, 건축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런 욕망을 잘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구조 아래서 자본은 선택의 기준이자 결과다. 선택은 곧 자신이 가진 자본의 규모로 결정되고, 결과물은 얻은 이익의 규모로 평가받는다. 보통의 건축 의뢰인들은 최소한의 자본을 가지고 최대의 이익을 욕망한다. 그리고 의뢰인에게 의뢰를 받은 건축가는 의뢰인의 자본과 이익 안에서 결정하는 게 당연한데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는 건 이를테면 주변과의 조화로움, 공공선, 그리고 건축가의 예술적 가치관 혹은 신념이다.
예술적 가치가 담긴 건축을 하고 싶다는 건축가의 욕망과 돈이 되는 건물을 갖고 싶다는 의뢰인의 요구 사이에서 건축가의 직업윤리는 수시로 충돌한다. 김지연은 이 과정을 시험에 비유하고, 이 갈등을 잘 넘긴 것은 곧 시험에 통과한 것과 같다고 말한다. 시험에 통과했다는 건 곧, 건축가로서 추구하는 예술성과 자본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적절히 조합해 멋진 건축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의 다름 아니다.
이런 가치관을 두고 건축가의 예술성이 돈에 의해 훼손된다고 속상해할 이유도, 반대로 경제적 이익이나 가치만 우선시하는 건축가라고 비난받을 이유는 더 없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타협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건축가의 또 다른 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많은 부분은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 이 둘 사이의 틈을 좁혀나가기 위해 애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결되곤 한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건축이라는 일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담을 수 밖에 없다.
2. 기세를 올리며
일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는 건 곧 경지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개인에게 노동은 경제활동 수단인 동시에 자기 증명의 수단이다. 직업을 통해 느끼는 만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결국은 일과 인정 욕구는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어떤 일을 할 때 나는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가를 따진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자격(資格)이라 한다. 또 하나는 내가 그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를 따진다. 이를 자신(自信)이라고 한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자격과 자신 두 가지 모두 갖추고 있다면 뭐가 문제겠냐만,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자격은 있지만, 자신감은 부족해 번 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들도 많고, 반대로 자신감은 있지만 자격은 부족해 같이 일하는 사람을 ‘들들’ 볶아대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두 건축가는 운이 좋은 편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격도, 자신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처음부터 이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이들 역시 자격만 가지고 일하다 수도 없이 헛발질하기도 했고, 자신감에 취해 일을 벌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기도 했으며, 두 가지 모두 잃고 결국은 맡은 일을 중도에 포기해야 한 적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을 일으켜 세운 건 바로 기세다. 이들은 기세가 어디서 생기는지, 무엇에서 가장 강한지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쌓인 데이터베이스와 그로 인해 예민해지고 견고해진 역치이기도 하다.
그중에도 돈은 가장 강력한 기세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돈은 우리를 일하게 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고, 타인과 비교해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두 작가는 돈을 잃고 난 후 현실의 잔인함을 배웠고, 남부럽지 않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색한 사람을 보면서 존경심은커녕 환멸감만 커졌으며, 없는 돈을 미리 걱정한 것이 무색할 만큼 알아서 돈이 들어오는 경험을 통해 ‘돈의 기세’를 실감했다.
그중에서도 돈의 기세가 가장 강력하다고 느낄 때는 돈을 이용해 주도권을 쥐었을 때라고 고백한다.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 먼저 선택할 수 있고, 먼저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이상 일, 커리어, 돈은 서로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세 가지 중에서 몇 번째로 돈을 줄 세울 것인지는 오로지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이고, 얄밉게도 돈은 보통 기세를 가진 놈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자신을 세상에 내놓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현실이 급해서,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 자격이 부족한 것 같아서 등등, 이유는 많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가격'만큼의 사람으로만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잔인한 건 돈의 기세에 눌려 한번 떨어뜨린 나의 가치는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건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돈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건 돈의 기세를 이용하는 것이고,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돈의 기세에 눌리는 것이다.
3. 기특함을 얻은 사람들
작가 김은경은 자신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 바로 기특함. 기어이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기특함이다. 살아남은 게 아니라 죽지 않은 것에 대한 기특함, 공에 연연해지 하지 않는 특함.
언젠가부터는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어렵다 못해 버거워졌고, 뼈를 갈아 준비한 나를 세상에 내놓기 무섭게 또 다른 능력의 나를 내놓으라고 닦달한다. 버티는 것이 어렵고, 오랫동안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회적 구조는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그럴 때마다 ‘왜 나는 이모양 이 꼴인가’와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라는 말이 마음 안에서 변덕스럽게 들락거린다. 이럴 때면 ‘잘 될 거야.’라는 영혼없는 위로보다 자신도 그렇다며 맞짱구를 치는 사람에게 더 큰 위로를 얻는다. 먹고 사는 모양새는 결국 다 비슷하기 마련이니.
자격도 자신도 바닥을 치며 바둥거리는 나를 향해 누군가에게 기특하다는 말이라도 들으면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많다. 그동안 무시 받았던 나의 능력을 인정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동안 내가 겪어왔던 고통과 슬픔을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아서다. 잘한다는 칭찬보다 기특하다는 위로는 그래서 힘이 더 세다.
어떻든, 어찌 되었든, 지금 여기 당신은 누가 뭐래도 ‘기특한’ 존재다.
글·장윤미
소설가 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