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의 문화톡톡] 일상이 아름다운 이유, 새로운 것의 향유로부터
영화 <괴물>이 선사한 뜻밖의 행복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Monster)>(2023)을 보았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제작 연도에 개봉했으나, 이듬해 재개봉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미 세계적으로 시네필을 형성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그의 영화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일본 영화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 끝에 <괴물>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 <괴물>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괴물>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 하나만 언급하려 한다. 바로 주인공 미나토와 교장 선생님이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둘은 자신의 마음을 사실대로 고백하지는 않지만, 트럼펫과 호른을 연주하며 내적으로 공명한다. 음악이 언어보다 강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미나토는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트럼펫을 연주하며, 교장 선생님은 뒤이어 호른을 연주한다.
모양도 소리도 아름다운 호른
필자는 클래식 음악을 대단히 좋아해서 수십 년째 듣고 있지만, 곡명을 잘 외우지는 못한다. 그저 좋은 연주 앨범에 대한 욕심이 많고, 눈 뜨자마자 클래식 음악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며 하루를 시작하는 정도이다. 물론 요즘엔 스마트폰의 앱이 있어 정말 편리할 따름이다. 어디서건 꽤 좋은 음질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특히 피아노 연주를 좋아한다. 그리고 첼로나 바이올린 정도랄까.
그런데 요즘 글을 쓸 때나 책을 읽을 때 호른 연주 음반을 반복해서 듣곤 한다. 사실 <괴물>에서 들은 그 호른 소리가 처음부터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구독 중인 어느 의사 선생님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받은 이후부터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이고 연주까지 하신다며, 좋은 앨범을 몇 장 추천해 주셨다. 그중 두 장을 구입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호른 소리가 그토록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줄 줄이야. 곡에 따라 다르겠지만, 추천하신 음반들은 반복해서 들어도 지겹지 않고 오히려 글쓰기에 집중하게 해 준다.
위의 그림처럼 나팔꽃 모양의 악기인 호른(horn)은 밸브로 음높이를 변화시키는 금관악기이다. ‘뿔(角)’을 의미하는 호른은 뿔피리(角笛)가 기원이다(위키백과 참조). 무겁기도 하거니와 연주하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소리는 내면에 깊이 와닿고 영혼을 맑게 해 주는 것만 같다.
흩어진 것들이 연결되는 일상의 미학
이제는 주일마다 교회의 성가대 오케스트라 단원 중, 호른을 연주하는 이에게 집중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는 것만 보인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이다. 그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 호른 악기와 연주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상의 아름다움은 평범한 것들이 주는 소중함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알고 향유하면서 더 풍요로워짐을 다시금 깨닫는다. 호른 연주를 듣고 난 이후 영화 <괴물>의 그 연주 장면이 자꾸만 떠오르고, 이제는 내게 <괴물>의 명장면이 되었다. 흩어져 있는 것들이 연결되면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나의 주변을 채울 때, 나는 비로소 일상을 찬미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에 오감을 열어두기로 한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은가. 공기와 같은 자연이 그러하고 사랑과 같은 감정이 그러하듯,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향해 가슴을 열어 그것을 만끽하는 나날이 되길 소망해 본다.
글·김소영
문화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교수 겸 서울사이버대 객원교수. 한국영화학회 국제학술상임이사.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영화의이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