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이라는 신화의 감춰진 얼굴

2009-03-02     편집자

 특집 '보호무역주의' 회귀

 자유무역을 거부하는 것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자급자족 체제로 퇴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한국이나 중국의 무역'개방'과 빠른 성장은 '자유무역'의 본보기로 소개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의미와 중요성을 살펴볼 때 맞지 않는 말이다. 자유무역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은, 자유로운(따라서 대등한 상대끼리의) 경쟁을 의미한다. 자유무역의 반대 개념은 자급자족도 아니고 국가통제 하의 무역거래도 아니다. 높은 '개방률'(생산지표에 비해 높은 수출 비율)은 경제성장을 '보호'하는 한국이나 중국처럼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오늘날 모든 선진국들이 이와 똑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세계무역의 역사는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
 19세기 영국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이론가인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자문을 받아 그때까지 영국의 곡물산업을 보호하던 곡물법을 폐지시켰다. 프랑스보다 100년이나 앞서 자본주의 산업혁명을 겪었던 영국은 다른 무역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중상주의'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군사력으로 '신세계'를 정복하고 세계의 주요 무역로를 통제하면서, 강한 국가와 주요 '원거리'무역상의 결탁이라는 틀 안에서 보호주의정책을 펼친 것이다. 산업혁명과 무역의 팽창은 서유럽에 이어 미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보호무역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었다.
 '자유무역'이론은 심각한 수익 감소 위기를 타파해야 하는 세계최대의 산업국이자 식민제국에서 탄생했다. 그 이론이 1980년대 미국에서 무대 전면에 다시 등장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리카르도는 토지의 수확이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보고 이익의 감소현상을 밝혀냈다(이후에 칼 마르크스가 발전시켰다). 영국은 밀 생산을 중단하고 더 저렴한 원자재를 수입함으로써 이익을 회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유무역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나라마다 '비교우위'에 있는 부문의 생산을 '자유롭게'(지배가 전무한 상태에서) 특화하면서 이득을 볼 수 있다며 '보편성'을 내세웠다. 선진국이 후진국에 융자를 해주거나 투자를 함으로써 후진국이 선진국의 재화를 사들이고, 수출을 통해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이미 19세기에 미국과 영국에서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영국의 경쟁 상대로 떠오른 강대국들은 영국이 지배자의 위치를 점유하자 보호주의 철폐를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서유럽의 강대국들에 맞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치던 미국·독일·일본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피지배국에 보호장벽 철폐를 요구하며 제국주의적 확장을 시작했다. 본국에서는 국가가 개입하여 위기와 사회 혼란을 저지하는 한편, 피지배국에서는 '자유무역'이라는 명목으로 개방을 강요하는 이중적 양상이 드러났다.
 20세기에 주변국에서 벌어진 혁명은 저개발의 원인인 지배국과의 의존관계를 끊으려는 시도였다. 냉전은 탈식민지화를 촉진하였으며, 지배에 대한 저항을 용이하게 했다. 독재정권이나 '소비 사회'의 국가개입주의 정책으로 인해 자국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선택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1970년대 들어 이 모든 경제모델은 모순에 부딪히게 되었다. 패권을 잃고 수익의 위기를 맞은 미국은 '자유 경쟁'을 다시 내걸었다. 강대국의 철저한 보호무역주의와 대비를 이루는 이러한 담론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세계무역의 3분의 1이 다국적기업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다국적기업들은 세계 어디라도 조세 및 임금 비용 면에서 비교우위에 있는 지역이 있으면 그 곳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한다.
  출처 : <르몽드 세계사>
 번역 | 권지현 yein20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