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진의 문화톡톡] 연극하는 삶
일상의 연기
아침에 일어나 출근길에 오르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양한 역할을 연기한다. 직장에서는 전문적인 직원으로, 가정에서는 따뜻한 가족 구성원으로, 친구들과는 유쾌한 동료로서 변신한다. 그리고 극장에서는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와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 서기도 한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취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처럼 우리는 연기를 하면서 산다. 이 모든 연기가 더해져 사회라는 하나의 연극이 완성되는 것이다.
연극을 한다는 것
연극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특권적인 그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와 서로 연관하여 설명될 수도 있겠지만, 연극은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소유하기보다는 그것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예술적 특징을 나타낸다. 이에 반해 누군가는 연극을 함으로써 연출가로서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연극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고, 이에 따른 경제적 보상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성공의 범주를 확인시킨다. 그 작동의 원리는 소유의 방식을 정확히 따르고 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연극에 대한 생각이 변하기도 한다. 자신의 부족한 재능을 스스로 인식하거나, 재능의 여부와는 별개로, 연극의 수행적 작동 원리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깨닫기도 한다. 연극은 인간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연극은 아직 소유하지 않은 것을 획득하려는 목적이 아닌,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희망적 태도를 강조한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유토피아적 잔여’를 활성화하는 것일 수 있다. 본질적으로 연극은 대상화된 무언가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닌, 세계와 하나가 되는 자발적이고 생산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것은 산업시대 이후 자본주의의 사회적 독점에 따른 물질적 풍요와 무제한적 자유에 현혹되지 않으려는 예술적 저항과 그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연극이라는 착시현상
세상에는 자본-헤게모니와 그 힘의 세례를 추동하는 연극과,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연극이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눈에 비친 연극은 마치 하나의 상태로서 통합된 것처럼 보이곤 한다. 이 착시현상은 소유의 방식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과 현실이 그대로 연극에 반영된 결과이다. 내가 사는 모습이 ‘이렇다면’ 우리 사회의 모습 역시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연극이 자신의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그 가치 역시 그대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극의 의미와 가치는 그것을 수행하는 대상의 행위에 따라 달라진다.
삶 속에서 시도되는 연극
인간은 연극 속에서 세상을 구현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연극을 하는’ 것이고, 이는 연극학자 에리카 피셔-리히테의 말처럼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선을 분리의 장치로서가 아닌, 연결될 수 없다고 믿었던 것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는 전이적 공간으로서 위치한다. 연극은 인간의 행동과 사건의 모방뿐만 아니라, 인간과 삶 속에서 존재적 관계를 구현한다. 그리고 이 시도는 반복적으로 감행된다. 연극이 지극히 인간적이고 희망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글·임형진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전공 교수.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대표 및 상임연출가. 독일문화와 예술, 수행성의 미학,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대한 연구 및 예술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5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