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레이버 투게더’는 노동당의 자금 펌프

기업의 영향력에 밀착된 영국 노동당

2025-02-28     피터 조지건 | 저널리스트

영국 언론은 최근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론 머스크가 나이젤 파라지가 이끄는 극우 세력에 1억 달러를 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권력을 되찾은 노동당 역시 기업계의 후원을 받았으며, 이제 기업들은 투자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

 

‘영향력 산업’은 이제 영국 정치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2019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Tories) 소속으로 의회에 입성한 의원 중 5분의 1은 로비 활동이나 홍보(PR) 분야 출신이었다. 2024년 7월 총선에서 새로 선출된 노동당(Labour) 의원들 가운데도 최소 34명이 과거 자선단체, 비정부기구(NGO), 로비 기업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노동당이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이해관계 산업도 노동당에 가까워졌다. 2023년 10월 리버풀에서 열린 영국 노동당 전당대회에서는 한 걸음만 떼도 로비스트와 마주칠 정도였다.

 

노동당과 더 가까워지는 로비스트들

노동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것은 이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 되었다. 대형 기업들은 이러한 특권적 접근을 제공할 수 있는 인물들에게 높은 급여를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2024년 초, 노동당의 여러 핵심 인사들이 로비 및 컨설팅 업계로 이직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프레디 쿡은 5년 이상 노동당에서 의회 보좌관으로 근무한 후, 로비 및 홍보 기업인 호손 어드바이저스(Hawthorn Advisors)로 자리를 옮겼다.

사무엘 화이트는 2021년 9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았으나, 이후 플린트 글로벌(Flint Global)로 이직했다. 플린트 글로벌은 고든 브라운 전 총리 내각에서 장관을 지낸 제임스 퍼넬이 이끄는 컨설팅 기업으로, 메타, 아마존, 우버 등의 대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 회사는 “노동당 내부 메커니즘에 대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해도”를 제공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2023년 노동당 전당대회의 핵심 행사였던 ‘비즈니스 포럼’에서, 당시 야당 대표였던 스타머는 약 200명의 기업인과 로비스트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여러분도 함께 정부로 들어갈 것입니다.”

당시 스타머의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은 실제 행정 경험이 부족한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미 HSBC, 내트웨스트(NatWest),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등의 금융 및 컨설팅 기업에서 파견된 직원들과 협력하고 있었다. 총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노동당 핵심 관계자들은 여러 엔지니어링·기술·경영 컨설팅 기업에 추가 인력을 요청하여 정책 개발을 지원받았다.

 과거 스코틀랜드 노동당 대표였다가 로비스트로 변신한 제임스 머피는 스타머가 민간 부문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태도를 높이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그는 노동당 역사상 최초로 ‘민간 부문 중심 정부’를 이끌게 될 것입니다.”

 

노동당과 기업 로비의 결합은 토니 블레어의 유산

겉으로는 노동당이 이전 보수당 정부를 뒤흔들었던 각종 부패 스캔들에서 자유로울 것처럼 보인다. 새로 임명된 장관 대부분이 공립학교 출신이며, 전임자들과 달리 대자본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진 인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총선 승리 직후, 노동당은 국민건강서비스(NHS)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앨런 밀번 전 보건부 장관을 기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밀번은 토니 블레어 총리 내각에서 보건부 장관을 지냈으며, 재임 당시 공공의료 서비스의 민영화를 적극 추진한 인물이었다. 그는 NHS 서비스의 외주화와 공공-민간 협력(PPP) 확대를 강력히 옹호했으며, 심지어 병원 주차장 운영마저 수익성 사업으로 전환했다.

그는 이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정부 및 헬스케어 산업’ 부문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사모펀드 기업 브릿지포인트 캐피털(Bridge Point Capital)의 고문을 맡았다. 브릿지포인트 캐피털은 2024년 10월까지 영국의 주요 민간 의료 서비스 제공업체인 케어 UK(Care UK)를 소유했으며, 이 회사는 요양원 체인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밀번은 AM 전략(AM Strategy)이라는 개인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으며, 그의 가족은 지난 10년 동안, 이 회사로부터 950만 유로(약 135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밀번의 사례는 예외가 아니다.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전직 노동당 의원들이 여럿 있다.

마이클 두거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고든 브라운 총리의 특별 보좌관을 지냈으며, 현재 영국 최대 도박 산업 로비 단체인 베팅 & 게이밍 협의회(Betting and Gaming Council)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도박 업계는 2020년 이후 노동당에 약 47만 5천 유로(약 67억 원)의 정치 후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노동당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는 로비 활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2008년 12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불과 1년 반 만에 그는 토니 블레어 어소시에이츠(Tony Blair Associates)라는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으며, 이 회사는 후에 토니 블레어 글로벌 체인지 연구소(Tony Blair Institute for Global Change, TBI)로 재편되었다.

TBI는 전 세계적으로 750명 이상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2022년 기준 연 매출 1억 2천만 달러(약 1,600억 원)를 기록했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TBI는 스타머와 그의 그림자 내각에 무료로 조언을 제공했으며, 정책 지침 문서를 대량으로 작성하는 역할도 맡았다.

 

보수당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은 노동당

‘돈의 정당’은 예상과 달랐다. 보수당은 전년도 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거운동 비용 상한선을 4,200만 유로로 인상했으며, 이는 전문가들과 감시 기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조치였다. 그러나 보수당이 실제로 모금한 금액은 이 상한선에 한참 못 미쳤다. 2019년 총선 당시, 보리스 존슨의 선거 캠프는 불과 일주일 만에 675만 유로를 모금한 반면, 2024년 리시 수낙은 선거 기간 내내 모금한 금액이 이 액수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노동당은 다른 모든 정당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선거 자금을 확보했다. 2024년 초, 개인 후원자와 기업들로부터 1,400만 유로 이상의 기부금을 유치하며, 전통적으로 노동당의 주요 재정 기반이었던 노동조합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다. 이 부유한 후원자 중에는, 제러미 코빈 대표 시절 노동당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온 로드 세인스버리가 있다. 그는 2023년 초부터 2024년 중반까지 950만 유로를 기부했다. 

또한, 오토글라스(Autoglass) 전 CEO 게리 루브너는 650만 유로 이상을 후원했다. 루브너는 자신이 상원의원직을 바라거나 노동당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는 없다고 밝혔지만, 모든 후원자가 그런 시민 정신을 가진 것은 아니다. 보리스 존슨 총리 시절, 연간 30만 유로를 기부하면 주요 장관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보장되었다. 신노동당(New Labour) 정부 시절(1997~2010년) 또한 특혜 제공과 영향력 거래 스캔들로 얼룩진 바 있다.

이런 전례를 고려할 때, 스타머 정부가 인프라 건설 사업이나 공공 계약과 관련해 이전보다 더 많은 부패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의 정부가 이전보다 더 개입주의적(interventionist) 성향을 띠는 만큼, 정경 유착의 여지가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림자 조직 ‘레이버 투게더’의 진짜 역할은?

이 기록적인 후원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영국 정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레이버 투게더(Labour Together)라는 단체가 있다. 이 조직은 2015년 총선에서 에드 밀리밴드가 패배한 직후 설립되었으며, 현재 막대한 기부금을 받고 있다. 원래 레이버 투게더는 노동당 내부의 이념적 논의를 활성화하고, 글, 포럼, 토론 등을 통해 분열된 당을 통합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내게 레이버 투게더의 존재 이유는 언제나 노동당의 단합과 화합을 이루는 것이었지,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상 후원금 모금이 조직의 핵심 활동이 되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이 조직의 창립 멤버였으나 2023년 여름 탈퇴한 조너선 크러다스 전 하원의원이다. 현재 레이버 투게더는 노동당과 공식적으로는 독립된 싱크탱크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당 지도부에 자금과 인력을 공급하는 채널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영국 정치에서 새로운 형태의 조직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레이버 투게더의 변신, 권력의 도구로

이 조직의 변화는 2017년 총선 직후, 모건 맥스위니가 새 이사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맥스위니는 조너선 크러다스의 지역구에서 풀뿌리 조직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렸으며, 2015년 노동당 대표 경선에서 블레어주의 성향의 엘리자베스 켄달을 지지하는 선거 전략을 총괄했다. 그러나 켄달의 경선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맥스위니는 표면적으로는 레이버 투게더를 노동당의 내부 계파를 초월하는 캠페인 조직처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러미 코빈으로부터 당의 통제권을 빼앗기 위해 조직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상징하는 장면이 있다. 런던 복스홀(Vauxhall) 지역에 위치한 레이버 투게더 사무실의 한쪽 벽에는 해적 깃발이 걸려 있다. 이는 기존 노동당 지도부에 대한 저항과 도전의 메시지를 암시하는 듯하다.

맥스위니는 레이버 투게더를 이끌며 노동당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목표는 코빈 지지층의 상당수를 끌어들일 수 있는 새로운 당 대표의 ‘이상적 프로필’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의 선택은 키어 스타머에게로 향했다.” 조너선 크러다스 전 의원은 이렇게 회상한다. “스타머가 설문조사에서 도출된 이상적 리더의 모습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2020년 노동당 대표 선거 캠페인은 이 조사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그의 공약은 코빈주의와 주류 노동당 사이의 다리를 놓기 위한 수단이었다.”

맥스위니는 공식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스타머 캠페인을 직접 지휘했으며, 스타머가 당선되자 그의 비서실장으로 합류했다. 이후 레이버 투게더는 다시 연구 보고서와 세미나에 집중하며 새로운 당 지도부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한 진보 성향의 저명한 학자는 당시를 이렇게 증언했다. “스타머가 우리 경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몹시 지루해하는 듯했다. 질문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레이버 투게더는 ‘정치적 싱크탱크’

2022년 말, 리즈 트러스 정부의 붕괴로 노동당의 차기 총선 승리가 유력해졌다. 그러나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 소속 의원들 대부분이 한 번도 정부 요직을 맡아본 경험이 없었고, 이들의 부족한 경험이 우려를 낳았다. 이에 따라 노동당 내부에서는 차기 집권을 대비한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 과정에서 레이버 투게더는 ‘정치적 싱크탱크’로 변모했다. 이들은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우파 정책 연구소인 ‘경제 문제 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IEA)’를 견제할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를 자처하며, 점점 더 노동당 지도부와 밀착된 관계를 형성했다.

새로운 국면에서 레이버 투게더의 지도부는 조슈아 시몬스가 맡게 되었다. 시몬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post-doc)을 마치고, 제러미 코빈의 최측근 정책 보좌관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코빈이 반유대주의 논란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와 결별했다. 이후 그는 페이스북에서 ‘AI 윤리 전략’ 부서를 담당했다.

레이버 투게더가 싱크탱크로 변신한 뒤, 기부금이 급격히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 자금을 활용해, 그림자 내각의 장관들은 정부 행정 경험이 풍부한 인재들을 참모로 영입할 수 있었다. 노동당이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인력 지원을 레이버 투게더가 해낸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스타머의 메시지를 다듬고, 그의 정책을 뒷받침할 연구와 분석을 제공하며, 사실상 노동당 지도부의 전략 기획 및 정책 브레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급성장한 레이버 투게더의 배경은?

레이버 투게더의 초기 후원자들은 반(反)코빈 성향의 노동당 지지자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사업가 마틴 테일러와 벤처캐피털 투자자 트레버 친이 있으며, 당시 모든 기부금은 선거관리위원회에 공식적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맥스위니가 조직을 이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영국 선거관리위원회는 레이버 투게더에 기부금 공개 의무를 준수할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2017년 12월부터 2020년 말까지 보고된 기부금은 단 한 건, 즉 트레버 친이 기부한 1만 5천 유로뿐이었다. 2021년, 선거관리위원회는 레이버 투게더가 총 86만 5천 유로 상당의 기부금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이에 대해 1만 7천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레이버 투게더 측은 이를 “행정적 착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같이 불투명한 운영 방식에도 불구하고, 기부자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조너선 크러다스 전 의원은 레이버 투게더를 “노동당 재정과 연결된 자금 펌프”라고 표현했으며, 실제로 이 조직은 2023년 초부터 2024년 중반까지 475만 유로 이상의 기부금을 유치했다. 현재 키어 스타머가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 입성했고, 맥스위니가 그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만큼, 레이버 투게더는 앞으로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자금 개혁 약속한 노동당, 실천은 불투명

노동당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치자금 규제를 강화해 민주주의를 보호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정작 이 공약이 실제로 어떻게 이행될지는 불분명하다. 정부는 개인 기부 한도를 설정하는 방안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이며, 노동당 역시 국회의원의 겸직 금지 정책을 완화했다. 또한, 퇴임한 장관이 5년 동안 로비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도 완화해, 이제는 ‘이전 직책과 직접 관련된 업무’에만 적용되도록 축소했다.

사실 정치자금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보수당보다 노동당에 더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당은 보수당보다 당원이 훨씬 많으며, 여전히 노동조합으로부터 안정적인 후원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혁당(Reform Party)은 실질적인 당원 기반이 없는 조직으로, 외국, 특히 미국에 기반을 둔 불투명한 정치자금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자금의 영향력을 줄이는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노동당이 오히려 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정당의 자금 운용을 더욱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개인 기부금 한도를 설정하고, 선거운동 지출 상한선을 낮추며, 정당이 기부금의 출처를 철저히 검증하도록 의무화하고, 기업 기부금을 영국 내 수익 범위 내에서 제한하며, 선거법 위반 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불충분한 정당 보조금을 대폭 늘린다면, 정당들이 대기업이 제공하는 정책 자문과 로비스트들에게 의존하는 악순환을 끊고 보다 독립적인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글·피터 조지건 Peter Geoghegan 
저널리스트. 이 글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에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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